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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공자_3천 년을 살아남다 난세에 태어나다 3천 제자 험난했던 벼슬길 주유열국 저술과 학설의 정립 사후의 영욕 여불위_천하통일의 바탕을 준비한 장사꾼 숨은 보물을 찾다 미인을 바치다 진나라 최고의 권력자가 되다 진시황의 등극 장량_군막에 앉아 천 리 밖 전쟁을 결정하다 기필코 진을 멸망시키리라 재주를 마음껏 드러내다 명예로운 은퇴 제갈량_삼고초려의 의리를 잊지 않다 융중의 은거자 삼고초려 적벽대전 백제성에서 명을 받들다 촉나라의 통치자 위나라를 치다 이백_천하를 주유하는 신선 자유분방한 협객, 세상을 주유하다 검 한자루 들고 유랑을 떠나다 장안 입성 한림공봉이 되다 다시 유랑길에 오르다 유랑길에 병사하다 양귀비_꽃은 시골길에 떨어져 묻히고 귀비가 된 여인 황후책봉 아들을 얻은 귀비 미인박명 왕안석_개혁에 일생을 바치다 주현의 관리가 되다 「만언서」를 올리다 재상의 변법 실행 변법의 실패 최후의 귀향 소동파_위대한 시인의 곡절 많은 삶 책 향기 가득한 집 경성을 진동시킨 명성 변법을 반대하다 세상을 떠돌다 정치의 어려움 시인의 죽음 악비_정충보국의 일심 악비의 등에 글자를 새기다 저항군의 영웅 농민의거를 진압하다 풍파정의 억울한 죽음 유기_세상의 이치를 손바닥에 놓고 보다 출장입상의 재목 재능을 발휘할 곳을 얻지 못하다 욱리자 진정한 주인을 만나다 결승천리 치세에 통달한 신하 위충현_나라를 망하게 한 희대의 간신 환관의 독재정치 충신을 참살하다 생사당을 건립하다 위충현의 멸망 이자성_명나라를 무너뜨린 농민군 지도자 고달픈 소년 시절 명성을 천하에 떨치다 실패에도 꺾이지 않는 의지 정권 건립 구궁산에서 죽다 유여시_의리와 기개를 품은 기녀 재상의 후실 화류계 입문 유여시와 전겸익 유여시의 죽음 화신_권력과 재물의 화신 ‘돈과 권력’에 세운 뜻 좋은 운을 만나 벼락출세하다 20년 동안 국정을 농단하다 허망한 최후 증국번_중국 근대화의 문을 열다 천재가 태어나다 행운의 사나이 형제의 정 상군을 창건하다 의병을 진압하다 양무운동의 아버지 명예롭지 못한 죽음 좌종당_양무운동의 대표자 벼슬길에 뛰어들다 남정북벌 양무운동의 시작 신강을 수복하다 홍수전_태평천국의 농민군 지도자 배상제교를 창립하다 천경 함락 정권 건립 천경사변 홍수전의 죽음 장지동_영욕의 망국 충신 소년의 큰 뜻 역경 속에 큰 인물 국경 수비의 중책을 맡다 망국의 충신 근대교육의 창시자 국운의 쇄락과 늙은 신하의 죽음 호설암_자수성가로 거부를 이룬 위대한 상인 자수성가 입신양명 풍화세월 화무십일홍 이홍장_망국의 물결이 휩쓸린 비운의 정치가 선학소년 회군의 창건 양무운동의 창시자 해군 창건 역보화국 말년의 정치역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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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는 중국 역사상 어느 누구보다도 의미가 큰 이름이다. 공자(孔子)는 유가(儒家)의 창시자로서 묵가와 더불어 ‘현학(顯學)’, 즉 저명한 학문이라 불릴 정도로 큰 영향을 끼쳤다. 공자는 현실정치에 참여하여 자신의 사상과 학문을 기량껏 펼칠 기회를 얻지 못했다. 하지만 “인이란 사사로운 욕심을 버리고 예로 돌아가는 것(克己復禮 仁也)”이라는 사상을 바탕으로 수많은 후학들을 길러냈고, 그의 사상과 가르침은 경세제민의 바탕이 되었다. 공자는 평생 3천여 명의 제자를 두어 인재를 양성하는 데 온힘을 기울였는데, 그중 70여 명은 가히 인재라 부를 만했다. 또한 말년에는 고대문헌과 전적을 정리하는 일에 전념하여 『시경』, 『서경』 등을 편찬했는데, 훗날 이는 ‘육경(六經)’ 또는 ‘육적(六籍)’으로 불리게 된다.
--- p.13, 공자_3천 년을 살아남다 왕안석(王安石)은 북송(北宋)의 명재상으로 사상가와 문학가를 겸한 걸출한 인재다. 그는 북송 중기의 사회 위기를 잘 파악하여 인종(仁宗)에게 「만언서(萬言書)」를 올리고 관리의 치적개혁과 변법(變法)의 실행을 주장했다. 신종(神宗)의 재위기간 동안 왕안석은 적극적으로 ‘신법(新法)’을 실시했고, 사마광(司馬光)을 우두머리로 하는 보수파와 투쟁을 전개하며 신법의 반포와 실행을 꾸준히 이어갔다. 레닌(Lenin)은 그를 ‘11세기 중국의 개혁가’로 칭송하기도 했다. 왕안석은 절묘한 시문들을 지어 당송팔대가의 반열에도 올랐다. 그의 문장 「상중영(傷仲永)」은 이성과 감정을 고루 갖춘 명문으로, 그의 유명한 시구 “봄바람이 강기슭을 또 푸르게 하는데, 밝은 달은 언제 내가 돌아갈 길을 비추겠는가(春風又綠江南岸, 明月何時照我還)”는 지금까지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 p.101, 왕안석_개혁에 일생을 바치다 증국번(曾國藩)은 청나라 말기 격동의 시기를 살다간 인물이다. 그는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라 평생 동안 이학(理學) 연구에 몰두했으며, 후일 상군(湘軍)을 창건하여 태평천국운동과 염군(捻軍)운동을 진압했다. 또한 중국을 부강하게 만들기 위해 양무운동을 창시했다. 증국번은 생전에 ‘중국 중흥의 제일명신’과 ‘양무의 아버지’, ‘이학대사(理學大師)’로 추앙 받았지만 사후에는 만주족 왕조에 충실했다는 이유로 ‘한간(漢奸)’, ‘도살자’, ‘매국노’라고 불리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그의 평가가 이렇게 엇갈리는 데도 중국 민족에게 행사하는 그의 영향력은 여전히 변함이 없고, 『증국번가서(曾國藩家書)』(증국번이 전쟁터에서 자식들에게 보냈던 편지)는 중국인에게 가족의 정을 깨닫게 해주는 책으로 사랑받고 있다. --- p.233, 증국번_중국 근대화의 문을 열다 이홍장(李鴻章)은 중국 근대 역사상 가장 논쟁의 여지가 많은 인물이다. 그의 일생은 근대 중국의 혼란한 시대 기록과 맞물려 있으며 중국의 운명과 불가분의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이홍장은 회군(淮軍)과 해군을 창건하고 근대공업의 건설을 추진했으며, 양문운동을 창시하는 등 중국 근대화의 선구자로서 활약했다. 하지만 이러한 업적 외에 농민의거를 무참히 진압하고 청나라 정부를 대표하여 열강과 함께 ‘중프신약’, ‘마관조약(馬關條約)’, ‘중러비밀조약(中俄密約)’, ‘신축조약’ 등 나라의 주권을 포기하는 조약에 서명함으로써 국민들로부터 매국노라고 손가락질 받았다. 생전과 사후에 관계없이 그에 대한 세인들의 평가는 한결같이 멸시와 존경이 뒤섞인 것이라 한마디로 단정 지을 수 없다. --- p.3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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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역사에서 꼭 알아두어야 할 20명의 인물들
공자, 여불위, 장량, 제갈량, 이백, 양귀비, 왕안석, 소동파, 악비, 유기, 위충현, 이자성, 유여시, 화신, 증국번, 좌종당, 홍수전, 장지동, 호설암, 이홍장 등은 중국 3천 년의 역사 흐름에서 큰 역할을 한 인물들이다. 바꾸어 말하면, 이들을 알면 중국의 역사를 한 눈에 꿸 수 있다. 이 책은 역사적 영향력이 크고 독특한 개성을 가진 인물 20명을 각 분야에서 한 명씩 선정해 개인별로 전기를 작성했다. 사상가, 책사, 문인, 명기, 경국지색, 간신 등 나라의 흥망을 주도했던 인물들의 일생을 시대별로 수록했다. 또한 중국 내의 정사와 실록을 기본으로 야사, 문집, 시부, 고고학 자료 등을 바탕으로 한 검증자료를 통해 생생하게 그 인물을 그려내고 있다. 오랜 역사를 가진 중국역사를 꿰뚫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여러 나라가 세워지고 스러졌던 중국역사에 대한 상식을 이 책으로 가닥을 잡아보는 것은 어떨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