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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도의 길
나라가 임금보다 중요하니
도나미 마모루 저 / 허부문, 임대희 역
소나무 2003.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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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머리말
오십대국에 대한 간단한 소개
오대의 건국과 멸망을 둘러싼 주요 인물들과 연표
독자들께 드리는 말씀

1. 당 왕조의 최후

2. 풍도, 옥에 갇히다.

3. 환관 장승업을 만난다

4. 아버지의 죽음

5. 재상이 되다

6. 매사에 실무를 중실하다

7. 충도, 거란으로 사신 가다

8. 대학살을 저지하다

9. 자서전을 쓰다

10. 풍도의 죽음


맺음말
문고판 후기
옮긴이의 글

풍도에 과한 최근의 연구
이 책의 내용과 관련된 연표
풍도를 둘러싼 오대 왕조 연표
주석
찾아보기

저자 소개

역자 : 임대희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역사교육과 교수이다. 중국사에 관한 다양한 책들을 번역하고 쓰고 있다.
역자 : 허부문
서강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서강대, 명지대, 방송통신대 등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자 : 도나미 마모루
1937년 일본 오사카에서 출생했다. 교토 대학과 대학원에서 역사학을 공부했고, 동양사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소베 대학과 교토 대학에서 교수를 역임했고, 교토 대학에서 정년을 맞아 퇴임했다.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는 일본의 저명한 사학자 이먀자키 이치시다의 논문에 실린 풍도 관련의 글이었다. 거기서 풍도에 대한 매력을 느끼고, 아이이어를 점차 발전시켜 이 책이 탄생하게 되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3년 06월 07일
쪽수, 무게, 크기
352쪽 | 148*210*30mm
ISBN13
9788971393215

책 속으로

자서전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나의 집안과 가족들은 시평과 장락 두 개의 군현에 본을 두고 있다. 여러 왕조를 거치며 받은 관명에 대해서는 나라의 역사책과 집안의 족보책에 모두 실려 있다. 나는 먼저 연나라에서 몸을 빼어 진에 귀의해, 장종, 명종, 민제, 청태제에게 봉사했다. 또한 후진의 고조와 소제를 섬겼다. 거란이 변경을 점거하면서, 이민족 군주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진주에서 문무 신하들을 비롯해, 기병과 보병의 장수들과 함께 후한 왕조에 귀순해 고조와 지금의 황제를 모셨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오래도록 녹봉와 벼슬자리를 받으면서도 빠짐없이 어려움과 위기를 맛보았고, 위로는 조상을 드러나게 하고 아래로는 친천을 빛나게 했다.

---본문 중에서

하루는 명종이 이 네 사람을 모아 재상을 선발하기 위해 회의를 열면서, 누구를 뽑으면 좋겠느냐는 의견을 물었다. 먼저 안중회가 최협을 거명하자, 임환이 정면으로 반대했다.

안중회는 아직 조정 안에 있는 인물에 대해 잘 몰라서, 다른 사람의 말에 속고 있습니다. 최협은 비록 출신은 명문이지만 글을 거의 모릅니다. 심지어 세간에서는 그를 글자 없는 비석이라고 부릅니다. 제가 제대로 배우지 못해 재상의 지위를 욕되게 하고 있는데, 거기에 글을 모르는 최협마저 재상에 올릴 수 있겠습니까? 이는 결국 세상에 웃음거리만 되지 않겠습니까?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풍도라는 인물, 오대십국의 특수성

이 책을 만들고 있는 동안, 주위 사람들 가운데 풍도를 아는 사람이 아주 드물었다. 그러나 간혹 그에 대해 아는 사람들은 아주 논쟁적으로 관심을 보였다. 낯설지만 매력적인 인물인 듯했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거의 60년에 걸쳐 무장, 무인, 군벌 등으로 불리는 군인들이 끊임없이 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하던, 이른바 오대십국五代十國이란 시기였다. 풍도를 모르는 만큼, 사람들은 오대십국의 위치나 의미에 대해서도 곤혹스러워 했다. 그 시대는 한국인들이 중국 역사에서 가장 난감해 하는 자리였던 것이다. 당나라 말기의 안록산의 반란에서부터 시작된 절도사들의 반란 풍조가 결국, 당시 세계 최대의 문명국이었던 당 제국을 멸망시켰고, 송나라 이전까지 혈흔이 낭자한 쿠데타의 시대가 펼쳐졌다. 풍도를 이해하는 키워드는 바로 오대십국에서 벌어진 이 연속적인 쿠데타를 어떻게 평가하는가에 달려 있었다.

-풍도에 대한 오해, 인물 평가의 어려움

: 풍도에 대한 오해는 생각보다 깊고 널리 퍼져 있었다. 하지만 실상 그에 대한 자료는 모두 단편적인 것들뿐이었다. 기존에 나와 있는 ?변경?(더난출판사), ?간신론?(아이필드) 등에서 다룬 풍도는 단지 송대 이후의 유교적 전통주의자들의 평가만 다루었기 때문에,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그를 <희대의 간신이며 변절자, 그리고 파렴치한>으로 단죄하고 있었다. 이 책을 만들지 않았다면, 우리 역시도 풍도라는 인물에 대해 가볍게 스치고 말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도나미 마모루라는 한 역사학자의 인물 평전을 통해, 풍도의 풀 스토리를 알게 되면서, 역사적인 인물에 대한 평가 행위란 얼마나 주의 깊어야 하는지를 절실하게 깨달았다. 근대 이후 ?삼국지?의 조조에 대한 새로운 평가를 시도하는 데서도 잘 알 수 있지만, 그 인물을 둘러싼 시대의 특수성을 파악하거나 인물 자체에 대한 종합적인 사료를 검토하지 않고는, 그런 평가들이란 단지 문학적 혹은 정치적 픽션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풍도가 23년 동안이나 재상의 자리에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 책을 거의 다 만들었을 무렵에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질문했다. 과연 풍도가 제 한 몸 살아남으려고 몸부림을 친 것은 아닌지, 혹은 어쩌면 당시의 군인들이 쿠데타 정권의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덕망있는 그를 앞다투어 등용한 것인지, 다시 물어야 했다. 23년 동안이나 재상의 자리를 지킨 풍도에 비해, 실제 그를 등용했던 5왕조의 평균 수명은 11년이 채 못되었다. 황위를 둘러싼 치열한 쿠데타와 음모 속에서, 풍도가 23년 동안 재상으로 살아남은 사실은 거의 기적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오대십국이 끝나고 나서 등장한 송나라 시대의 역사가들은 그런 풍도를 <지조 없는 파렴치한>으로 몰아세웠다. 하지만 실상 송나라는 전 시대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강력한 중앙집권제을 강화했고, 그에 따라 군주와 신하 사이에도 <엄격한 충성심>이 강조되었던 시기였다. 그러나 풍도가 살던 오대십국은 그런 송나라가 아니었다. 쿠데타로 새로 만든 왕조는 백성들의 기대와 덕망을 갖추기 위해, 그에 걸맞는 인재를 전면에 내세워야 했다. 풍도는 인격적으로 관대하고 명망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청렴결백한 관리였다. 게다가 탁월한 문필가였으며, 뛰어난 행정가이기도 했다. 그의 생존 비결은 쿠데타 왕조로부터의 요청과, 스스로의 분수를 지키고 자신의 역할에 충실했던 그의 실천 철학에서 비롯되었던 것이다.

-풍도와 비교되는 인물들, 인물 비교의 어려움

: 풍도는 오늘날 여러 인물들과 비교되면서 더 많은 논란을 가져온다. 간혹 스테판 츠바이 크가 묘사한, 나폴레옹 밑에서 2인자였던 조제프 푸셰(1759~1820)와 비교하기도 하지만 (?어느 정치적 인간의 초상?[한길사,1998] 참조), 풍도는 푸셰처럼 비밀조직을 만들만큼 권모술수형은 아니었다. 또한 종종 한국의 정치 상황에서 JP나 KG의 정치 편력을 거론할 때 풍도를 언급하기도 한다. 그러나 오대십국이란 시대와 풍도의 청렴결백함 그리고 그의 역사적 체험을 깊이 있게 알면서 논하고 있는 것인지 매우 의문스럽다. 오히려 지금은 그런 단순한 비교 평가를 하기 이전에, 우선 풍도라는 인물 자체을 선입견이나 고정관념 없이 보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한 인간이 극도의 난세를 살았던 기록을 가감없이 읽음으로써, 그리고 우리들 자신의 상황으로 추체험함으로써, 세치 혀로 떠벌이기 이전의 역사적 판단을 우리들 스스로가 먼저 해 보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한다.
참고로, 현대 중국에서 <영원한 2인자>로 불리는 주은래周恩來(1898~1976)는 권력투쟁을 거치면서, 주석의 자리가 얼마나 고독하고 위험한 자리인지 일찍이 간파한 사람이었다. 그는 중국 역사의 전통에서 황제는 권력을 좇지만, 재상의 역할은 황제와 칼자루를 다투지 않는 것임을 잘 알았던 사람이었다. 2인자로서의 역할은 1인자의 잘못된 생각을 고치도록 권유하여 바로잡을 수는 있지만, 결코 그 이상이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다재다능했고 모난 데가 없었던 팔방미인 주은래가 중국인민공화국의 초대 총리를 27년간 역임했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중국과 중국인의 은은한 초상을 볼 수 있으며, 동시에 풍도의 그림자가 멀리 드리워 있음을 느끼게 된다.
리뷰 총점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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