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1. 우물이 차고 초목(草木)이 생기를 얻다.
2. 푸른 구름을 타고 3. 운대 완원과 담계 옹방강 4. 연경을 떠나며 5. 매화를 만나다. 6. 사실에 의거해 사물의 진리를 밝히다. 7. 남의 수레 뒤를 따르지 않겠노라.(不肯車後) 8. 무장사비( 藏寺碑)를 찾아서 9. 푸른 대나무의 향기 10. 가슴이 아니라 손끝이로다. 11. 남도의 천재, 조선의 작은 대치가 되다. 12. 검은 구름 속에서 번쩍이는 번개를 품으리 13. 세한지절(歲寒之節)의 정성 14. 푸른 오동나무아래 모여들다. 15. 쏟아져 내리는 매화 16. 무릎을 맞댄 묵장의 영수 17. 강상(江上)에서 18. 또 다시 시련이 찾아들다. 19. 시련 속에 피어나는 붓끝 20. 외밭 초가집에 머물며 21. 묵장의 영수, 추사 떠나고 매화도 지다. 에필로그 |
표윤명의 다른 상품
|
“스승님, 항간에 수예론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를 어찌 보시는지요?”
허유의 물음에 추사는 미간을 찌푸렸다. “수예론이라?” “그렇습니다. 손의 기예를 연마하면 누구든지 예술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화론입니다.” “대체 누가 그런 경망스런 화론을 입에 올린단 말이더냐?” 추사의 추상같은 소리에 허유는 조아리며 답했다. 마치 입에 담아서는 안 될 말을 읊조린 듯한 태도였다. “우봉 조희룡이란 분이 그런 화론을 이야기 한다 들었습니다.” “우봉 조희룡이라?” 추사는 우봉 조희룡이란 말을 되 뇌이고는 입 꼬리에 힘을 주었다. 매우 못마땅하다는 태도였다. “그 작자가 그예 요망스럽고 경망된 화론을 들고 설치는구나! 그래 세상이 무어라 하더냐?” 추사의 물음에 허유는 보고 들은 그대로 고해바쳤다. “그 분의 매화가 장안에 화제이옵니다. 저도 보았는데 지금껏 보아오던 매화와는 확연히 다른 출중한 매화그림이었습니다. 전통의 화법에서 벗어나 있기는 했으나 그것 이상의 훌륭한 기법과 격이 있어 보였습니다. 그 분의 말로는 진정한 조선의 매화를 그려내려 노력한 결과물이라 한다 하였습니다.” “이리 오너라!” 추사의 부름에 안에서 단정한 차림의 우봉이 곧 나왔다. “뉘십니까?” 낯선 목소리에 의아한 얼굴로 우봉이 문을 열었다. “나는 추사라는 사람이오. 우봉 조희룡이란 사람을 찾아 일석산방에 들렀소이다.” 추사라는 말에 우봉은 크게 놀라며 머리를 조아렸다. “대감께서 어찌 이런 누추한 곳을 찾으셨습니까? 제가 우봉 조희룡입니다.” 우봉의 조아림에 추사는 만족한 미소를 머금었다. 스스로 조아리는 모습에 흡족했던 것이다. “자네가 벽오시사라는 것을 만들어 조선의 그림이 이렇고 저렇고 하며 떠들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네.” “벽오시사를 운영하고 있는 것은 맞사오나 제가 어찌 감히 조선의 그림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지필묵을 좋아하고 즐겨할 따름입니다.” 겸손하나 비굴하지 않은 우봉의 태도에 추사는 적이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추사의 형편없는 평에 죽향은 부끄러웠다. “나으리, 향기가 없고 난잡할 뿐이라니요? 제가 보기에 이 매화는 최고의 수준에 이르러 있는 듯 합니다만.” “그렇지 않느니라. 보아라. 이 두개의 잔가지가 무엇을 뜻하는 것이더냐? 겨우 이런 속된 기예로 사람을 놀리려하다니. 어찌 그의 마음이 저잣거리 여염집 아낙의 것과 다르지 않다 하랴.” “두 개의 잔가지라 하심은?” 죽향은 짐짓 모르는 척 되물었다. “아직도 모르겠더냐? 이것은 그 자의 너에 대한 마음을 음험하게 드러낸 것이니라.” 추사의 말에 죽향은 얼굴을 발그레하게 붉히고 말았다. 추사도 자신과 같은 해석을 하는 것으로 보아 홍매도의 의미가 분명함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 것이다. “마주보는 이 붉은 꽃잎과 흐드러지게 핀 매화송이들이 무엇을 말하는 것이더냐? 고얀 지고.” 추사는 노여운 얼굴로 매화도를 쏘아보았다. 하지만 죽향의 가슴은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매화등걸을 칠 때는 용을 후려치고 범을 낚아채듯 해야 한다. 꽃잎을 그려 넣을 때는 하늘의 선녀가 구름을 노닐 듯 가볍게 해야 하며 한줌의 벼룻물이라 할지라도 창해를 보는 듯해야 한다. 아! 바로 그것이었구나!” 크게 깨달은 우봉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화구암으로 향했다. 미투리가 벗겨지고 도포자락이 가시에 걸려 찢겨지는 것도 몰랐다. 섬사람들은 우봉의 뒤를 멍하니 바라만 보았다. 화구암으로 돌아 온 우봉은 젖은 옷도 벗지 않은 채 지필묵을 끌어당겼다. 이어 붓을 들고는 심호흡을 하며 화폭의 구상에 들어갔다. “그렇다. 용매도(龍梅圖)로다. 용매도(龍梅圖).” 우봉이 붓을 들어 움직이기 시작하자 용이 구름을 뚫고 치솟아 올랐다. 용의 몸뚱어리가 구름을 뚫고 치솟아 오르듯 매화등걸도 그렇게 치솟아 올랐다. 용틀임하는 등걸에 하얀 비늘이 화르르 쏟아져 내렸다. 쏟아져 내린 비늘은 흰 꽃으로 분분히 떨어져 내렸다. 비늘은 화려하고 현란한 꽃잎으로 피어났다. 차마 눈뜨고 못 볼 화려하고 현란한 광경이었다.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보기 어려운 조선만의 화려한 매화였다. 조선의 문인화가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우봉은 넋을 잃은 채 자신의 그림 속으로 뛰어들었다. “휘몰아치는 꽃보라에 눈을 뜰 수 없을 지경이로구나. 이 현란한 꿈속에서 어떻게 깨어날까?” 그러자 또 다른 우봉이 나섰다. “이처럼 황홀한 꽃 세계에서 왜 깨어나려 하는가? 난 이 꽃 세상에 있을 것이네. 깨어나려거든 네나 깨어나게나.” 우봉은 자신의 매화도에 취해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추사가 잠시 쉬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나의 추사체는 벼루 열개를 구멍 내고 붓 천 자루를 몽당붓으로 만든 후에야 비로소 완성되었느니라. … 네가 나의 가르침을 받았기에 특별히 이르는 말이니라. 너만의 글씨와 난을 만들어내도록 하여라. 오직 너만의 것이어야 하느니라.” --- 본문에서 |
|
“서권기문자향이니라.” vs “수예론입니다.”
‘산숭해심’(산은 높고 바다는 깊다.) 추사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이다. ‘불긍거후’(남의 수레 뒤를 따르지 않겠노라.) 우봉을 더없이 잘 표현해주는 말이다. 추사 김정희와 우봉 조희룡, 이 책은 조선 후기에 글씨로 정점을 이룬 추사와 그림으로 정점에 오른 우봉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다루고 있는 역사소설이다. 1786년생인 추사와 1789년생인 우봉은 세 살 차이로 같은 조선 후기를 살았다. 추사 김정희의 글씨는 조선을 넘어 천하의 것이었다. 그의 글씨 한 점을 얻기 위해 왜나라와 청나라 사람들이 수없이 국경을 넘나들었고, 연경의 청유 16인은 불후의 명작 세한도에 먼저 찬을 적겠다고 요란을 떨었다. 추사는 명실공히 조선시대 최초의 한류스타였다. 천하가 그를 흠모하고 떠받들었고 조선후기의 한류바람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런 추사에게도 마음속으로 경계하던 라이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우봉 조희룡이다. 조선의 정체성을 지키려 했던 우봉은 누구나 노력하면 최고의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수예론을 주장했다. 서권기문자향이라는 문인화의 전통적 가르침을 고집한 추사와는 당연히 대립각을 세울 수밖에 없었다. 작가는 설타스님이라는 가상의 인물을 창조하여 추사와 우봉의 세계를 자연스럽게 연결하며 조선의 두 남자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풀어내고 있다. 분량이 꽤나 길지만 첫 페이지를 여는 순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게 만드는 역사소설이 바로 묵장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