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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스치는 풍경들
1장 서투른 사내 어떤 오후│정류장│고슴도치│홉스굴 가는 길│나무꾼이 되다│방물장수│도시 유목민│비박│초원 화장실│가치담배│국수 한 그릇│오토바이│초원 주유소│울지 않는 아이들│햐르가스 호수│사막 한가운데 호수 2장 자유인의 나라 받아주지 않은 검은 마을│공포는 상상력에서 온다│갈 곳 없는 저녁│참바가라브 산│검은 머리 여자아이│주유소 주인 놀이│증언하다│신기루│자유의 감옥│매 사냥꾼│망루 위 오수 3장 사막의 빗방울 기도│소나기│잘 먹고 잘 자는 것│적막│얼음골│모래사막│낙타 4장 광야의 이정표 초원에 묻고 길에 묻다│어워│아이락│노란 바람의 언덕│게르의 밤│길│시장에서│별│마르지 않는 샘│진스트 구멍가게│염소│어제 저녁 붉게 노을 졌던 태양│드넓은 대지의 집│아침 Epilogue 나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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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에는 내 생에 한유했던 어떤 비밀의 오후가 멈추려 했다. 나는 얼른 카메라를 들었다. 카메라의 셔터는 깜박이는 눈과 같다. 어떤 것을 보는 순간은 뜬 눈이지만, 메모리가 되는 시간은 눈을 깜박이는 탄지의 순간이다. 그러니 실제로 촬영되는 어떤 광경이란 실제로는 사진가가 보지 못하는 순간이다. 그것이 카메라의 숙명이자, 사진가의 운명이다.
우리는 보이는 것을 찍는 척하지만, 실은 보이지 않는 것을 찍는다. 그리고 그 보지 못한 광경을 마치 본 것처럼 한 장의 인화지에 되살린다. 사람들은 그 광경을 사진가가 목격한 것으로 인정한다. 사진가는 실제로 보지 못한 것을, 사람들이 목격한 것으로 인정한다는 허위의 기초 위에 발표한다. 그 발표는 때로 전시로, 때로 책으로 묶인다. 그것들은 내가 거기 있었다는 증언이 되어 떠돈다. 그러나 그 증언은 나는 거기 있었지만 실은 그것을 보지 못했다는 또 다른 사실의 증거이기도 하다. --- p.20~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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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아이는 내 눈을 보던 눈 그대로 카메라 렌즈를 보았다. 카메라라는 매개물에 전혀 동요되지 않고 신기할 것도 없다는 눈빛이 이어지는 듯했다. 두 번째 셔터가 끊어졌다. 서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찍고 찍히는 관계가 성립된 듯했다. 그러나 세 번째 셔터가 끊어지려고 할 때 파인더 속의 여자아이는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모퉁이 담벼락 뒤로 사라져버렸다. 셔터가 두 번 끊어지고 아이가 고개를 돌린 시간은 채 일 초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짧은 순간 우리의 거래는 성사되지 못했다.
나는 검은 머리 아이를 쫓아갈 수 없었다. 여기서 더 이상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은 폭력이었다. 여자아이는 카메라를 거부했고 나는 거기에 순응해야 했다. --- p.129~1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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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에는 부드러운 음식과 거친 음식, 맛난 음식과 먹는 것 자체가 괴로운 음식을 가리지 않고 먹을 수 있는 비위가 중요하다. 장기간 떠돌면서 제대로 먹지 못하면 결국 집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든 잠을 푹 잘 수 있는 성정이 갖춰져 있어야 한다. 잠을 자지 못하면 몸에 이상이 생기고 혹독한 일정을 마치지 못하고 돌아가야 하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잘 먹고 잘 자는 두 가지만으로도 떠도는 자의 기본 요건은 갖추는 셈이다.
또 한 가지를 더하자면 언제나 ‘스마일’ 해야 한다. 돌아다니다 보면 봉변을 당할 수도 있고 생각지도 않은 일들이 연속으로 터져서 상황을 악화시키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항상 머릿속으로는 최악의 사태를 상정해두고, 일어나는 상황들에 대해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고 받아들일 줄 아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그런 가벼운 마음의 표현이 바로 스마일이다. 사람을 만나도 스마일, 뜨거운 바람을 만나도 스마일, 말 없는 바위를 만나도 스마일……. 그것이 길을 떠나는 궁극적인 자세이다. --- p.180~1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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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는 셔터를 누르지 않으면 언제나 닫혀 있듯 나의 눈도 그러했다. 외부의 힘이 없이는 셔터가 열리지 않듯 나 역시 외부로부터의 어떤 힘을 기대하며 떠돌았다. 스스로 셔터를 여는 카메라는 없다. 나는 쇠뭉치를 깎아 만든 한 대의 카메라와 다를 바 없었다.
몽골의 초원에서 길을 잃고 떠돌다 초라한 사거리 식당의 이정표를 보는 순간 알았다. 사람도 길도 없는 광야에서 오직 유일한 이정표는 나 자신이었다. 그리고 그 이정표는 동쪽으로 ‘무룽 이백사십일 킬로미터’라고 가리킬 때만이 존재 가치가 있다. 그리고 그 가리킴은 무심히 찍은 사진 한 장에서 출발한다. --- p.2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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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사진가’ 김홍희가 몽골의 광활한 대지를 걸으며 만난 사람과 자연을 사진에 담고 글로 기록한 책을 펴냈다. 사진은 혼자만의 예술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만나 부딪치고 소통하는 순간에 이루어진다는 믿음 아래 수많은 아마추어 사진가들의 멘토로 활동해온 작가가 이번에는 광활한 몽골의 대자연 속으로 홀로 걸어 들어갔다.
길을 떠나지 않는 사진가는 셔터를 누르지 않아 굳게 닫혀 있는 한 대의 카메라와 다를 바 없다고 말하는 작가는 드넓은 몽골의 대지를 밟고, 마르지 않는 샘에서 물을 길어 마시며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광야를 달리고 초원의 게르에서 처음 만난 이들과 술잔을 나누며, 셔터를 누르는 순간 사진가가 가져야 할 고뇌를 깨달았다. 그리고 작가만의 웅장하고도 섬세한 사진과 길 떠난 자의 여유와 사람과 사물을 대하는 따듯한 시선이 묻어나는 글을 가지고 돌아왔다. 자신이 걸어온 모든 길과 시간을 돌고 돌아 결국 제자리를 맴돌고 있음을 깨닫는 순간 사진이 시작된다고 말하는 김홍희. 그는 이 책을 통해 “사진은 방랑이다. 방랑은 나로부터 떠나는 것이자, 나를 만나는 것이다. 사진은 내 안의 나를 찾는 일이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김홍희, “나는 사진이다” 카메라 한 대 들고 세계 곳곳을 누비는 여행가,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사진 이론가, 여행 전문 수필가, 사진집단 ‘일우’의 수장……. 김홍희는 ‘다큐 사진작가’ 외에도 다양한 수식어를 가지고 있다. 그만큼 사진과 글과 사람에 대한 애착이 남다른 작가는 현각 스님의 <만행>, 소설가 정찬주의 <암자로 가는 길> 등의 책에 사진을 찍으면서 글과 사진을 접목시킨 책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열었다. 또한 사진이 혼자 하는 예술이라는 편견을 깨고 자신이 가진 것을 아낌없이 알려주고 독려하는 ‘대장 기질’을 발휘해 아마추어 사진가들에게 스승이자 친구로 전폭적인 신뢰와 지지를 받고 있다. 사진을 이해하기 위해 늦깎이로 철학을 공부하고, 시인으로 등단하겠다는 꿈을 여전히 품고 있을 만큼 열정적이고 순수한 품성은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지닌 사진작품을 탄생시키는 밑거름이 되었다. 일본에서 사진을 공부할 당시, 몇 달을 접시 닦아 카메라 바디를 구입하고 또 몇 달을 설거지해서 렌즈를 살 만큼 힘들었지만 20년 후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니콘이 선정한 ‘세계의 사진가 20인’에 이름을 올리는 사진가가 된 김홍희. 그에게 사진은 밥벌이인 동시에 놀이이며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해주는 끈이고, 길을 떠날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자 그것 외에 다른 것들을 꿈꿀 수 있게 해주는 고마운 자산이다. 또한 사진을 찍으며 글을 쓰고, 사진을 찍기에 사람들과 인연을 쌓아가며, 사진을 찍기 위해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는 작가의 신작 <김홍희 몽골방랑>은 그의 사진을 사랑해온 독자들에게 사진만큼이나 글에서도 감동을 주는 첫 번째 책이 될 것이다. “사진은 방랑이다” 사진이 ‘일단 빠져들면 패가망신하는 취미’라는 오명을 벗은 지는 오래다. 디지털 카메라의 보급과 DSLR 사진동호회의 확산 등으로 인해 누구나 사진을 찍는 세상이 열렸으며, 그럼에도 ‘사진을 보는 것은 고답한 취미’라는 편견마저 13만여 명의 관람객이 찾은 매그넘 코리아 사진전의 대성공을 시작으로 점차 사그라지고 있다. 그러나 단 몇 초 동안 수십만 컷의 이미지가 생산되는 시대에도, 숨이 턱 막히는 한 장의 사진을 찍고자 하는 사진가의 열망은 잦아들지 않는다. 그리고 그 열망은 사진가로 하여금 또다시 길을 떠나게 만든다. 사람도 길도 없는 광야가 끝없이 펼쳐지는 광막한 초원, 그러나 손님에게 게르를 내어주고 자신은 기꺼이 초원에서 잠을 청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땅 몽골로 향하게 한 것이다. “나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하루 반나절을 달려도 사람 한 명 만날 수 없는 몽골의 초원에도 몽골의 사나운 개들이 낮게 으르렁거리기 시작하는 밤이면 게르 밖에 앉아 자신의 개들로부터 손님을 지켜주는 주인이 있고, 기름이 둥둥 뜨는 국물에 잘 씹히지 않는 양고기로 끼니가 괴로울 때 초원에서 구하기 힘든 맑고 맛있는 아이락을 흔쾌히 건네는 사내가 있고, 매보다 무서운 눈빛의 매 사냥꾼과 잊지 못할 여인 보르마가 있다. 그런데 작가는 그 모든 기억들을 뒤로한 채 돌아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고 술회한다. 몽골은 아무것도 없는 곳이라고. 그리고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몽골에 간다고. 카메라의 셔터는 깜박이는 눈과 같아서 셔터를 누르는 순간 카메라에 메모리 되는 장면은 사진가가 보지 못하는 순간이다. 사진가는 보이는 것을 찍고 있지만, 실은 보이지 않는 것을 찍을 뿐이다. 지도에도 없는 몽골의 초원과 호수를 찾아다니며 수많은 사물과 사람을 보았고 찍었지만, 사진가가 본 것은 결국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그 모든 것들이 어쩌면 사막에서 만난 신기루일지 모른다는 작가의 의구심은 그래서 망상이 아니다. 그런 신기루의 세상을 방랑하는 사람에게 유일한 이정표는 자기 자신뿐이다. 지도조차 믿을 수 없는 몽골의 초원에서 어디로 갈 것인지, 무엇을 찍을 것인지를 가리키는 이정표는 사거리 식당의 푯말이 아니라 오직 자기 자신인 것이다. 그리고 그 가리킴은 무심히 찍은 사진 한 장에서 출발한다. 작가가 본 것은 무엇이고 보지 못한 것은 무엇일까? 그럼에도 방랑을 숙명처럼 지고 사는 사진가란 과연 어떤 사람일까?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고 말하는 작가의 글과 사진 속에서 도리어 너무나 많은 것이 보이고, 느껴지고, 숱한 의문이 생기는 것은 사진작가 김홍희의 삶과 사진에 대한 치열함, 진실성이 그 속에 녹아 있기 때문이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