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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창조를 위한 용기
용기란 무엇인가? 신체적 용기 도덕적 용기 사회적 용기 용기의 모순 창조적 용기 현실을 직면하는 용기 격노와 창조성 반역과 창조 제2장 창조성의 본질 창조적 활동이란 무엇인가? 창조하는 과정 만남의 강렬함 만남 ? 세계와 상호관계 맺기 제3장 창조성과 무의식 불안의 원인 새로운 통찰이 뚫고 들어올 때 통찰과 휴식 의식적 작업과 뜻밖의 깨달음 정신의 창조성 시인의 창조 활동 제4장 창조성과 만남 ‘비존재’와의 싸움 예술가가 느끼는 불안 만남의 산물 열정이 부족한 시대 창조와 불안 체험 제5장 심리치료사인 델포이 신전의 사제 상징과 신화 아폴로의 눈 신탁의 형식과 해석 통찰을 투사하는 신탁 제6장 창조성의 한계에 대해 한계의 가치 형식은 창조성의 제한이다 상상과 형식 제7장 형상에 대한 열정 꿈속의 상징과 신화 삼각형의 상징 세계를 형성하는 정신 심리적 탯줄 후주 옮긴이의 말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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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케고르, 니체, 카뮈, 사르트르가 용기란 절망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절망하더라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았는가. 단순히 고집이 센 것은 용기가 아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창조적인 일을 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자신의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표현하지 않거나 자기 존재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신을 배신하는 일이다.--- p.14~15
만남은 자발적인 노력, 즉 ‘의지력’을 포함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건강한 아이의 놀이에는 만남의 본질적인 특징이 들어 있다. 우리는 건강한 아이의 놀이가 성인이 하는 창조적 활동의 중요한 원형임을 안다. 중요한 것은 자발적인 노력이 있나 없나가 아니라 얼마나 깊이 몰입하고, 얼마나 집중하느냐다(이에 관해서는 뒷장에서 자세히 다룰 것이다). 즉 반드시 몰입의 고유한 특성이 나타나야 한다. 이제 우리는 현실 도피적인 가짜 창조적 활동과 진짜 창조적 활동의 차이를 발견한다. 현실 도피적인 창조적 활동은 만남이 빠진 창조적 활동이다.--- p.55~56 경험의 네 번째 특성은 일에서 휴식으로 넘어가는 순간에 통찰이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자발적인 노력을 중단할 때 통찰은 일어난다. 내게 통찰이 일어난 것은 책을 치우고 지하철역 쪽으로 걸어갈 때였다. 순간 나는 그 문제를 까맣게 잊었다. 그것은 문제에 열정적으로 집중하기 시작하고, 다시 말해서 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그 문제와 씨름하면서 작업 과정을 유지하는 것과 같다. 내가 애써서 성취하려는 것과 다른 패턴의 일부가 생기려고 버둥거리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창조적 활동을 할 때 느끼는 긴장이 발생한다. 너무 완고하거나 독단적이어서 전에 내린 결정에 묶여 있다면, 우리는 당연히 새로운 요소가 의식 속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할 것이다. 또한 우리 내면의 다른 단계에 존재하는 지식을 깨달으려고도 결코 하지 않을 것이다.--- p.83~84 만남의 한 가지 두드러진 특징은 강렬함의 정도 또는 내가 열정이라고 부르는 그것이다. 정서의 양이 많음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참여의 질이며, 이것은 창문 밖의 나무를 흘깃 보는 것과 같이 반드시 대량의 정서를 포함하지 않는 소수의 경험에서만 나타난다. 하지만 순간적인 짧은 경험이 예민한 사람, 즉 열정을 위한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p.121 인간의 한계를 인식하는 데서 의식이 생긴다. 인간의 의식은 인간 존재의 현저한 특징이다. 한계가 없다면 우리는 결코 의식을 발전시키지 못한다. 의식은 가능성과 한계 사이의 변증법적 긴장에서 생기는 인식이다. 공을 자신과 다른 것으로 경험하면서 유아는 한계를 인식하기 시작한다. 엄마도 아이에게 제한 요소다. 아이가 배고프다고 울 때마다 젖을 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런 한계를 수없이 경험하면서 아이들은 자신을 다른 사람이나 사물과 구별하고, 만족을 지연하는 능력을 발달시키는 법을 배운다. 한계가 없다면 의식도 없다. --- p.161~1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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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전공자가 새롭게 번역한 롤로 메이의 대표작
이번에 출간하게 된 『창조를 위한 용기』는 심리학 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롤로 메이의 저서 『권력과 거짓순수』, 『신화를 찾는 인간』을 옮긴 신장근 번역가가 새롭게 맡아 번역했다. 기존 번역본의 오역을 바로잡고, 정확하면서도 이해하기 쉽게 번역하기 위해 노력했다. 또한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옮긴이 주를 충실하게 달았으며, 롤로 메이가 역설하는 ‘창조를 위한 용기’에 대한 깊이 있는 해설을 ‘옮긴이의 말’에 담아 작품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였다. 창조를 위한 용기란 무엇인가 창조는 새로운 미래를 만드는 일이다. 아직 누구도 살아보지 못했고, 아무도 동의하지 않는 낯선 세계에 나를 던지는 것이 창조적 활동이다. 창조적 활동에 용기가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롤로 메이의 말대로 “용기란 절망하지 않는 것이 아니고 절망하더라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롤로 메이는 신체적 용기, 도덕적 용기, 사회적 용기, 창조적 용기에 대해 차례로 설명하며 그중, 창조적 용기를 가장 핵심적인 용기로 뽑는다. 창조적 용기는 새로운 사회를 세울 새로운 형식, 새로운 상징, 새로운 양식을 찾는 용기이기 때문이다. 그는 가짜 창조적 활동이 진짜 창조적 활동을 내쫓는 현상, 즉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현상에 대해서도 경고한다. 그가 말한 가짜 창조적 활동이란 도피적인 창조적 활동이며, 만남이 빠진 창조적 활동이자 예술적 자기과시다. 몰두와 사로잡힘, 완전히 열중함이라는 강렬한 만남을 경험하지 못한 채 자기를 돋보이게 만들 수단으로 예술을 선택한다면, 대리 작가가 쓴 글이나 표절한 글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대리 작가가 그린 그림으로 유명 화가의 반열에 오르는 유명인과 똑같은 과오를 범하게 된다는 것이다. 롤로 메이는 새로운 통찰이 의식의 벽을 뚫고 들어올 때, 시인도 죄책감과 불안을 느끼지만 이내 그 죄책감과 불안은 창조의 희열로 바뀐다고 주장하며, 이러한 통찰은 강렬하게 몰입할 때 일어난다고 말한다. 때문에 이러한 고독 속에서 충분히 몰입하지 못한 채 통찰이 자신을 찾아올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는 사람이 예술과 창조라는 이름으로 쏟아놓는 상품에 우리는 병들어간다고 말한다. 또한 예술가는 만남을 경험할 때 동시에 불안도 느낀다고 주장한다. 결국 창조적인 사람은 남보다 앞서 남이 모르는 불안을 직면하는 사람이자, 혼돈 속에서 질서를 창조하는 사람인 것이다. 창조성에는 형식과 한계가 필요하다 오늘날 사람들은 ‘한계’라는 개념을 비난하곤 한다. 그러나 롤로 메이는 예술가는 한계에 부딪힐 때 창조적 활동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한계에 직면하는 것은 결국 한계를 확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한계를 인식하는 지점에서 창조적 의식이 생긴다고 믿으며, 그러한 순간이야 말로 창조적 활동 시간이라고 말한다. 창조성에 대한 또 다른 오해는 ‘형식’이 부정적이라는 인식이다. 그러나 롤로 메이는 왜곡된 형식주의에 대한 공격에서 우리가 비난하는 것은 형식 자체가 아니라 생명력을 잃은 특정한 형식이라고 말한다. 또한 상상이 형식에 활기를 주듯이, 형식은 우리가 상상 때문에 정신병에 빠지지 않도록 지켜준다는 견해를 밝힌다. 결국 인간에게는 강력한 상상력과 함께 충분히 발달된 형식에 대한 감각이라는 두 바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개인을 넘어 사회로 합리성과 이성을 강조할수록 불합리성에 무릎 꿇게 되는 경우를 우리는 적지 않게 본다.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현대인이 겪는 우울증과 같은 개인적 차원을 넘어 한국을 뒤덮고 있는 미세먼지, 세월호의 비극 그리고 세계를 위협하는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 등에서 볼 수 있듯, 경제적 이익을 위해 ‘합리성’과 ‘이성’의 이름으로 비극을 촉발하는 경우를 쉽게 접하게 된 것이다. 롤로 메이는 이런 현상을 “무의미에 굴복하여 혼돈 속에 빠지는 것”이라고 진단하며, 길 잃은 현대인에게 상상과 창조적 정서가 오성 못지않게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고 말한다. 인간은 상상과 창조성을 통해 ‘이성’에서 놓칠 수 있는 불완전한 부분을 채워가고 새로운 세상을 형성하며, 세상을 구원할 아름다움이라는 인간적 형식을 만들어가기 때문이다. 영국의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는 “고문에 대한 유일한 대안은 예술이다”라고 했으며, 도스토옙스키는 소설 『백치』에서 주인공 미슈킨 공작의 말을 빌려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예술이라는 아름다움에 대한 도전과 반항의 칼날이 날카롭게 선 사회에서는 ‘고문’이라는 파괴적인 행동을 멈출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어느 때보다 그 용기가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 그리고 『창조를 위한 용기』를 읽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