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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의 말 맑고 순정한 사람 이수일 도종환
추천의 말 감옥이라는 공간에서 꿈틀댔던 인간의 이야기 홍세화 머리말 - 어둠의 두레박으로 길어 올린 달빛 한 항아리 1. 혁명을 꿈꾼 죄 내가 죽은 날/ 아킬레스의 건/ 비겁한 폭행/ 남영동 대공분실/ ‘자생적 공산조직’ 이근안의 볼펜심문/ 소풍 가는 날/ 나의 지방조직/ 비 맞는 태극기의 비밀 춥고 배고픈 유치장/ 유서 깊은 서대문구치소/ 부활절 계란 선물/ 적과의 동침 김재규 일당의 사형집행/ 감방생활 입문/ 도둑 열전/ 역사의 향기/ 나의 수호천사 거꾸로 가는 공안재판/ ‘남민전’ 명칭 유감/ 무엇이 문제였을까/ 동지적인 만남과 헤어짐 2. 자기 땅에서 유배당한 사람들 포승에 묶여 한강을 넘으며/ 광주특사 입주기/ 운동시간의 의미/양보할 수 없는 ‘정량’ 투쟁 고무줄 저울의 숨은 사연/ 엄중독거의 그늘/ 저항하는 ‘막걸리 반공법’/ 특사의 통방문화 전사의 죽음을 애도하는 법/ 감옥에서 만난 5·18/ 한겨울의 냉수마찰/ 졸업하는 날의 소회 투쟁으로 얻는 것과 잃는 것/ 독서 금단 현상과 성경/ 귀뚜라미 음악회 잊지 못할 이름 박관현 열사/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 의무과의 수의학박사 크리스마스 위문공연/ 사랑의 편지, 사연이 없는 편지/ 사상전향 유감/ 장기수 열전 3. 감옥이라는 이름의 학교 감방 학당/ ‘착한’ 오송회 교사들/ 재일교포와 조국/ 손유형 선생의 진보정당론 손유형 선생의 암치료법/ 류락진 선생과 서예/ 첫 가족 면회/ 경주할머니의 사랑과 죽음 사회견학/ 비정(非情)의 시대/ 특별사면 증후군/ 양심수 석방투쟁/ 나의 비둘기 구구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4. 사랑을 넘어 슬픔도 넘어 사랑하는 대구여/ 전향 장기수들의 실향/ 양심수 의식의 허와 실/ 공장출역의 진의 원예의 국화재배/ 병아리와 족제비/ 추억의 서화반/ 목공장의 견습생활 마른하늘의 날벼락/ 어머니의 마음/ 어머니여, 마리아여!/ 양심수 특별사면 마음의 문/ 다시 듣는 “선생님!”/ 놀라운 세상의 변화 1/ 놀라운 세상의 변화 2 놀라운 세상의 변화 3/ 놀라운 세상의 변화 4/ 세월의 발자국/ 대회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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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약칭 남민전) 사건으로 10년을 복역했던 이수일 씨의 회고록 『자기 땅에서 유배당한 사람들』이 출간되었다. 저자는 남민전 사건으로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수감되어 다른 남민전 관련자들과 10년을 복역하다가 1988년 대통령특별사면으로 출옥했다.
다시 ‘남민전’을 꺼내들며 남민전은 고 이재문 씨 등이 지난 1976년 2월 반유신 민주화와 반제 민족해방 운동을 목표로 조직한 비밀단체로, 1979년 연루자 84명이 검거되면서 유신 말기 최대 공안사건으로 기록됐다. ‘남민전 사건’ 관계자들이 검거된 지 31년이 지난 지금 우리에게 남민전이란 무엇일까? 2006년 3월 13일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는 남민전 사건 관련 민주화운동 심의 신청자 33명 가운데 29명을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하면서 “폭압적인 유신체제에서 남민전이 조직적 체계를 갖추고 박정희 정권에 저항한 점에서 실질적으로 민주화운동을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떤 이들로부터는 “친북 성향의 반국가단체(경찰청 과거사위)”로 비판받기도 했다. 「「자기 땅에서 유배당한 사람들」」은 여러 가지 빛깔로 잘못 알려진 남민전 내부의 운동과 성향을 소상히 보고하면서 ‘남민전’을 명예회복하려고 한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강압적인 수사와 고문으로 점철된 남민전 수사와 공판기록만이 후대에 남겨질 것을 생각하니 “끔찍했다”고 밝힌다. 그래서 ‘친북’이라는 오해를 받는 ‘남민전’이라는 명칭 자체가 실은 조직에선 심각한 논란을 불러온 나머지 지도부에서 명칭 논의를 보류했던 일을 소상히 밝힌다. 관련자들이 ‘민투’로 여기고 있는 조직을 공안당국이 ‘남민전’으로 확정, 공표했던 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는 것이다. 남민전은 수학자 안재구 씨, 시인 김남주 씨, 이수일 전 전교조 위원장,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 등 민주화와 진보운동을 이끌어온 사람들의 모태이기도 하다. 특히 남민전 조직의 대표로 옥중에서 죽어간 이재문 씨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신향식 씨에 대해서도 운동가로서의 풍모와 인간적인 모습을 자세히 옮긴다. 김남주가 옥중에서 쓴 시 「전사 1,2」로 기려지듯 “혁명을 꿈꾸고 거기에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걸었던 우리 시대의 마지막 혁명적 로맨티스트”(126쪽)였다는 것이다. 많은 운동가들이 사라진 지금, 세월은 거꾸로 흐르듯 다시 그들을 고문했던 사람들이 목소리를 키우는 형편이다. ‘고문기술자’로 악명을 떨치다가 목사 안수를 받은 이근안에 대한 그의 개인적인 체험이 시대의 증언이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는 짐승 같은 체력에도 불구하고 작업도중에 두세 번을 쉬었다. 맞는 것만 힘든 것이 아니고, 때리는 것도 힘이 드는 모양이었다··· 나는 이근안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은 일찍이 떨쳐버렸고, 오히려 인간적인 연민의 정마저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최근에 그가 언론매체에 다시 등장하여 일말의 반성은커녕 자기야말로 애국자라며 너무나 억울해하는 모습에 기가 질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그러한 그의 모습을 보면서 한 인간을 변화시키기는 세상을 변화시키기보다 더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저자의 관심은 외부의 오해를 거두는 것만은 아니다. 또한 진보진영을 겨냥해서 솔직한 자기반성도 서슴지 않는다. ‘지명수배자 숫자 누적과 장기간의 게릴라식 투쟁방법은 조직의 피로를 쌓이게 했고, 반격을 예상치 못한 모험적인 전술이었다’(‘무엇이 문제였을까’ 83-86쪽)는 것이다. 저자의 자기 반성적인 태도는 수감환경을 개선하려는 성급한 투쟁이 오히려 장기수 노인들에게 견디기 어려운 고초를 가져다주었던 과정(‘투쟁으로 얻는 것과 잃는 것’ 134쪽)과 우리나라에서 진보정당이 성공하기 어려운 이유를 감옥에서 만난 전 일본 공산당원에게서 배우는 대목(‘손유형 선생의 진보정당론’ 204쪽)까지 한가지다. 앞선 선배 운동가들이 그러했듯 저자 또한 자신의 경험을 후대의 거울이 되게 하려는 생각에 시종 마음을 쓰고 있음을 보여준다. 적, 잡범, 동지, 선생들과의 10년 살이 “내가 잡힌 날은 내가 사회적으로 완전히 죽은 날”(‘내가 죽은 날’ 23-26쪽)이라는 저자는 10년 감옥에 살면서 “나를 가장 사랑했던 사람들과, 가장 빛나는 청춘을 빼앗겼다”(‘머리말’)고 절규한다. 그러나 저자에게 감옥은 어둠의 나락만은 아니었다. 「「자기 땅에서 유배당한 사람들」」은 비인간적인 삶속에서 인간답게 살려 애쓰는 사람들의 모습을 ‘인간 박물관’으로 그려낸다. 수감 초기, 저자는 박정희에게 총을 쏘았던 김재규의 전속운전사 유성옥과 같은 사동에서 지낸다. 오갈 때면 저자의 방을 들여다보며 “여러분들이야 말로 애국자”라고 격려하며 김재규의 심정을 전하기도 했던 유성옥과의 일화는 유신의 핵심 권력과 전위운동가가 마주친 유신 말엽 역사의 아이러니를 그려낸 풍경이다. 소매치기, 노숙자, 강도, 심지어는 조직폭력배들과도 한방에서 부대끼며 청취한 그들의 인생사연도 저자의 감옥생활 한 풍경을 이룬다. 또 박학하고 다재다능한 안재구, 감옥에서도 소리 높여 시를 낭독하던 김남주 등이 그의 동지들이었다면 전공산당원이자 사업가인 손유형, 전북대 교수였던 이성희 수의학 박사, 서예의 길로 인도한 류락진 선생 등은 그의 스승이었다고 한다. 그들의 지식과 인간됨이 감옥에서도 끊임없이 배움의 길로 이끈다. “(매년 설날이면 류락진 선생 면회를 온 가족들이) 사모님도 아이들과 함께 세배를 한다고 하였다. 그것은 아마 자라는 아이들에게 감옥에 있는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을 갖도록 하려는 어머니의 사려 깊은 교육적 의전의식일 것이다. ···나는 그의 외손녀인 배우 문근영 씨를 볼 때마다 그 믿음을 확인하는 것만 같아서 그때의 그 일을 다시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감옥에 있던 아버지에게 매년 그의 어머니와 함께 돗자리를 들고 세배를 다니던 단발머리 소녀가 다름 아닌 배우 문근영의 어머니이기 때문이다.”(‘류락진 선생과 서예’ 212쪽) 이름난 인사들만이 저자의 스승이 아니었다. 책은 간첩단 사건으로 들어온 수감자들, 재일교포 유학생들, 장기수 노인들의 기막힌 사연을 함께 전한다. 그중 죽음으로 배움을 남긴 사람들의 사연이 숙연하다. 남파 공작원 출신 황필구, 이용훈 두 장기수의 죽음이 특히 그렇다. 특사에서 단짝으로 생활하던 두 노인은 대전교도소에서 악명 높은 소장을 만나 인간적인 접촉과 생활조건마저도 빼앗기자 남아 있는 동지들을 위해 차례로 목을 매 자결하는 쪽을 택한다. 책은 역사가 건너뛴 이름 없는 이들의 죽음을 상세히 기록하며 철저한 자기희생에 바탕을 둔 끊임없는 ‘자기부정’을 이룬 삶을 눈물로 전한다. 10년을 지켜온 옥중 사랑 사랑과 희생은 감옥 밖에서도 이어진다. 민중시인 김남주를 10년 동안 옥바라지한 박광숙 씨의 사연은 잘 알려져 있지만, 저자의 사연은 더욱 애달프다. 이 책은 10여 년의 세월 동안 그를 뒷바라지한 ‘나의 천사’라고 부르는 그의 애인,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둔 그의 어머니, 혈육은 아니지만 혈육보다 그를 사랑했던 경주할머니를 감옥 속에서 하나씩 떠나보내야 했던 외로운 청춘의 수감기이기도 하다. “십년의 감옥생활은 그의 가장 빛나는 청춘을 가져가 버렸고, 어머니와 친할머니나 다름없던 경주할머니를 잃고, 사랑하는 수호천사가 떠나가게 만들었습니다. 삼백여 통의 편지를 난로에 넣으며 눈 내리는 밤길을 걸어가던 그의 뒷모습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픕니다. 그가 얼마나 외롭고 의지할 데 없는 사람이었는지 이 책을 읽으며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시인 도종환의 ‘추천의 말’ 중에서) 시인 고 김남주 씨의 사연과 다른 점이 있다면 매일 빠짐없이 편지를 보내주고, 매달 꼬박꼬박 면회를 오며 그의 뒷바라지를 도맡아 하던 ‘수호천사’가 오랜 단절과 가혹한 세월의 무게 때문에 10년 세월을 기다리고도 그와 이루어지지 못한 점인데, 그 사연 또한 읽는 사람의 마음을 울린다. 이별과 상실로 얼룩진 10년 감옥살이를 담은 이 책이 희망으로 끝맺는 것은 저자가 교사라는, 희망을 심어주는 직업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서대문구치소 창살 사이로 학생들이 보내온 부활절 계란을 받아든 뒤로 10년 감옥 생활 동안 학생들에 대한 생각의 끈을 놓지 않았다고 한다. “유신체제 아래서 좋은 교사는 감옥에 가는 교사라고 믿었”고 “괜찮은 한 사람의 시골학교 역사교사로 늙어가길” 희망했던 교사가 20년 만에 돌아온 학교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책은 저자가 출소한 10년 뒤인 1999년 9월 다시 교단으로 돌아오면서 남긴 글로 20년 동안 감옥 안팎에서 분투했던 기록을 마무리한다. “1979년 10월 4일 새벽 경찰의 기습을 받아 난투극 끝에 잠옷 바람으로 저승에 끌려가듯 떠나갔다 잠실고등학교에 배정을 받다니 무슨 얄궂은 운명의 장난인가. ···학교가 무너지고 있다는 비명소리에도 내심 ‘무너질 것은 다 무너지라지! 세상이 생긴 이래 아이들이 무너진 적이 있나?’하며 짐짓 태연해지려 한다. 예나 이제나 세상의 희망은 아이들이고 학교라고 믿기 때문이다.”(‘대회귀’ 318쪽) 이렇듯 『자기 땅에서 유배당한 사람들』은 교사이며, 청년이며, 운동가였던 한 사람이 시대의 격랑 속에서 자신의 소박한 희망을 지켜냈다는 점에서 희망의 기록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