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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작두 위에 선무당같이 춤춘 80년 2
신용승 자서전
신용승
잉걸 2010.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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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발간의 글_참 '늑잖은' 이야기꾼 신용승
추천의 글1-옹이 박힌 '민중자서전'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추천의 글2_민족사의 오락반장 (임헌영·민족문제연구소 소장)
추천의 글3_의에 굶주려온 삶의 숨결 (표명렬·평화재항군인회 상임대표)
책을 펴내며_이런 졸작을 겁 없이 뻔뻔하게 세상에 펴내면서

드디어 교단에 서다
21. 대망의 국민학교 교사가 되어

교직을 떠나 방황하다
22. 교직을 버리고 방황하기 시작하다

수원시 공무원 생활
23. 수원시 행정공무원 생활이 시작되다

네 번의 결혼과 자식들 성장 이야기
24. 나의 자식들과 결혼 이야기

다시 교직에 복직하다
25. 시골학교로 부임하여
26. 처음으로 도시학교에서 겪은 교사생활
27. 각양각색의, 내가 본 교사들의 백태
28. 말년의 교사생활은 부끄러움이 너무도 많다
29. 정년퇴임 후를 생각하며 살다

교직을 퇴직하고 역사를 생각하며 살다
30. 역사의 현장에서
31. 평양방문기
32. 지금의 나의 삶

저자 소개

저자 : 신용승
1933년 경기도 안성에서 태어났다. 교직에서 명예퇴직한 뒤 '민족문제연구소' 경기남부지부 제3대 지부장을 역임했다. 현재까지 친일문제 청산과 '역사 바로세우기'를 위한 활동을 중심에 놓고, 여러 진보적 사회단체들과 함께 민족과 역사를 생각하며 통일조국을 열어가는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중학교 2학년 때 퇴학을 당하고 연극배우의 꿈을 키웠다. 뒤늦은 나이에 고겨에 진학했으나 2학년 때 그만두었다. 악동들과 어울려 싸움질이나 하는 불량기 가득한 '문제아'로 청소년기를 보냈다. 이후의 삶 역시 방황 속에 주먹깨나 쓰며 치기와 객기로 점철되었다. 한국전쟁이 터져 인공 치하에서 배우의 꿈이 실현되나 싶었는데, 오래지 않아 형편상 포기하고 말았다. 해군에 2번 입대를 했으며 탈영했다가 수감된 일도 있다. 탈영병 처지에 가짜 고교 졸업장을 가지고 서울 국립맹아학교에 입학해 교사 자격증을 획득, 훗날 교직에 설 수 있었다. 1964년부터 7년간, 또 1980년부터 명예퇴직을 한 1997년까지 두 차례에 걸쳐 국민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중간엔 수원시 행정공무원 생활을 하기도 했다. 반골 기질의 '조숙한 반항아'로 극장이나 들락거려 국민학교 4학년 때 담임으로부터 '극장 대장'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6학년 때는 3일 학교에 오면 4일은 나오지 않는다고 '삼한사온'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청년기에는 무슨 일이든 안 끼는 데가 없는 동네 유지처럼 주먹깨나 쓰며 여기저기 끼어든다고 해서 친구들 사이에서 '유지 건달'로 불렸다. 교직에서 물러난 뒤 사회활동을 하며 얻은 별명은 '유교적 사회주의자'다.

품목정보

발행일
2010년 05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367쪽 | 564g | 153*224*30mm
ISBN13
9788995952535

책 속으로

그런데 근무를 하면서 지켜본 학교는 내 생각과 거리가 멀었다. 학교가 얼마나 폐쇄적이고 보수적이며 획일적인지, 내 나름대로 아이들을 지도하기에는 어려운 환경이었다. 교육청 장학사들이라는 사람들은 평교사 1, 2년 하다가 해방을 맞아 일본 놈들이 모두 쫓겨 가는 바람에 30도 안 된 젊은 나이에 교장으로 벼락 승진했다가 장학사가 된 사람이 태반이었다. 교사들의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일본 놈들의 식민지 교육을 그대로 받아들여 권위의식만 머리에 꽉 차 있었다. 그래서 교사는 아이들 수업보다는 교육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공문과 엉터리 통계만 잘 내면 되었다.
‘공문을 작성해 보고하라’는 상부지시만 내려오면 교감과 교무주임이 얼마나 일방적으로 설쳐대는지, 수업시간에도 무조건 자습을 시키고 교육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불필요한 공문을 작성해야 했다. “교사가 학생 수업이 제일 중요하지 무슨 놈의 공문 처리가 이렇게 중요하냐? 공문 처리는 수업하고 나중에 하면 되지 않느냐?”고 항의 비슷하게 말하면, “신임 교사가 왜 학교 방침대로 하지 않고 말이 그리 많으냐?”는 것이었다.
불만을 토로하고 항의를 하거나 토론 등을 요구하면, 그런 선생들은 아무리 교사다워도 영영 진급을 할 수 없는 풍토였다. 아이들을 위해 교사답게 아무리 온 정열을 쏟고 올바른 행동을 하더라도 교장이나 교감의 지시에 순응하지 않고 비교육적인 것을 보고 잘못되었다고 지적을 하면 그 교사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교육계에서는 철저히 배제되었다.---pp.27-28

운동장 한구석에서 조용히 몸을 숨기고 교실로 들어가 시험지를 받아보니 국어, 영어, 국사, 사회, 수학, 이렇게 다섯 과목이었다. 국어, 국사, 사회, 세 과목은 쉽게 답안지를 작성했는데, 영어와 수학은 도저히 답을 쓸 수가 없었다. 과목낙제가 있었기 때문에 ‘영어와 수학 때문에 떨어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4지선다형이니 체면상 연필을 굴릴 수는 없고, ‘기왕 떨어질 바에야 아무렇게나 쓰고 빨리 나가자’는 생각뿐이었다.
영어는 국어 답안지와 똑같이 작성하고, 수학은 적당히 작성해 제출하고 제일 먼저 나왔다. 원래 나는 성질이 급해 답안지를 쓰면 바로 제출하지, 다시 검토하지 않는다.
1주일 후 합격자 발표 날, 창밖으로는 보슬비가 촉촉이 내리고 있었다. 이미 과목낙제라고 생각해 발표 보러갈 생각도 않고 빈둥대고 있었는데, 처가 합격자 발표 날짜를 잊지 않고 있다가 “왜 안 가느냐? 어서 가보기나 하라”고 성화를 부렸다. ‘그래, 또 모를 일이니, 가보기나 하자’ 우산을 쓰고 시청으로 가 게시판 앞으로 다가갔는데, 이게 웬 놀라운 사건? 스무 번째에 내 이름과 수험번호가 붙어있었다. 기쁨보다 어이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18명으로 공고했는데 왜 20명을 합격시켰지? 모집공고대로 18명에서 잘랐으면 불합격인데, 합격선을 20명으로 긋는 바람에 꼴찌로 합격했구나!’ 싶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2명은 예비로 합격시켜 만반의 대비를 한다고 했다.---pp.78-79

나보다 3살쯤 더 먹고 산업계장이기도 해서 나름대로 존중해주었는데 번번이 반말지거리를 서슴없이 해서 많은 민원인들 앞에서 정색을 하고 “너 지금 뭐라고 했어?” 멱살을 틀어잡고 벽에다 대고 킥킥 소리가 나도록 조지면서 “이 새끼, 씨발이라고? 이 새끼, 아주 묘한 새끼 아니야? 야! 이 새끼야! 나도 우리 집에 문패 달고 아이들 학교 보내는 가장이다. 네 눈에는 내가 어린애로 보이냐? 이 새끼가 사람대접을 해주니까 뵈는 게 없냐? 이 새꺄, 이런 꼴을 우리 아이들이 보면 애비 체통이 어떻게 되겠느냐? 이 좆같은 새끼야!” 하면서 몰아붙였다.
동장이 나오면서 “신 주사, 왜 이래? 동민들이 보는 데서 이러면 돼? 그 손 놓고 이리 들어와!” 하며 나무라는 바람에, “내가 너 두고두고 지켜볼 거다. 네가 보기는 내가 우습게 보일지 몰라도 나도 당당히 공채로 시험보고 들어온 놈이야. 너같이 좆도 아닌 공화당 쫓아다니며 선거운동하고 빽으로 들어온 줄 알아, 이 새끼야!” 하며 손을 놓고 물러났다.---pp.98-99

시골학교에 근무할 때는 학부모들이 교사를 존경하는 모습으로 대해다보니 어린이들도 자연스럽게 스승을 존경하며 따랐다. 그런데 도시학교에 와서 학부모들을 만나면 돈 봉투나 내밀면서 으레 첫 말로 “우리 아이가 반에서 몇 등이냐?”고 물었다. 그러면 마음속으로 이런 어머니와 대화를 나눌 의욕이 없어 모른 척, “무슨 등수를 알고 싶으시냐? 씨름 등수냐? 달리기 등수냐?”고 역으로 물어보기도 했다.
도시학교에 와 근무해보니 학교를 찾는 분들은 대개 어머니들인데, 하루는 아버지가 찾아왔다. 어린이 문제로 상의를 하던 중 “이 아이는 공부보다는 다른 쪽으로 지도해주는 게 좋을 것”이라고 말했더니, 그 아버지가 “그럼 선생질이나 시킬까요?” 했다. ‘이 아버지 말처럼 해먹을 것 없으면 선생질이나 하는 것쯤으로 생각하는 세상이 왔나보구나. 이 세상이 왜 이렇게 변했을까? 이 책임이 우리 교사들에게는 없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을까?’---pp.177-178

내가 만난 수많은 장기수 선생들은 하나같이 아주 얌전하고 조용한 성품으로, 온화한 이웃 할아버지를 보는 느낌이랄까, 옛날 선비라는 사람들이 이렇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김동기 선생은 어찌나 노익장을 과시하던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이야기도 논리가 정연한데다, 활달하긴 얼마나 활달한지 정말로 넋 놓고 바라봐야 할 지경이었다. 게다가 말도 거침이 없었다. 말 많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나도 말할 틈이 없으니 그대로 듣기만 하였다.

---p.209

출판사 리뷰

‘날것’ 그대로의 자서전

위선도 가식도 없다. ‘체’하는 건 질색이다. 자서전이라면 으레 그러려니 할 고담준론이나, 인생론이 어떻고 하는 훈육조의 태도도 없다. 꾸미는 건 가당치 않다. 그럴 듯하게 포장하고 미화하고 슬쩍 왜곡하고,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는 걸 싫어한다. 수치심이 없어서, 염치를 몰라 그런 게 아니다. 자신의 말대로 태생이 그렇다. 그래야 편하다. 자서전도 그렇게 썼다. 그저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발가벗고 낱낱이 썼다.
그는 논리의 잣대보다는 인간의 잣대로 사건과 현상을 본다. 대부분의 사람이 이성보다는 감정이 앞서기 쉽다. 감정에 지배당한 것에 전전긍긍하고 후회하기 십상이다. 인생을 정리하는 자서전을 쓰는 마당이라면 이런 일을 감추거나 없던 일로 치부하고 싶기 마련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쪼잔’하고 단세포적인 자의식도 결코 숨기지 않는다. 감정의 흐름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그래서 ‘교육자’가 행한 ‘비교육적 언행’도 서슴없이 드러낸다.
또한 배알이 뒤틀리면 직사포를 날린다. 빙빙 에둘러 돌리는 곡사포는 남의 옷을 걸친 것처럼 어색하고 기질에 맞질 않는다. 그러면서 오욕칠정에서 자유롭지 못한 인간 군상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그래서 ‘한 이빨’과 ‘한 성깔’이 날것 그대로 드러난다. 물론 그 속에서 자신도 결코 예외로 놓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결코 떳떳할 수 없는 일조차 거침없이 드러낸다. 예를 들면 이런 일이다.
그의 집안이 일제 때 창씨개명을 했다. 남들 같으면 사연이 이렀네 저렀네, 구구절절 이유와 핑계를 갖다 붙였는지 모를 일이다. 그런데 그는 외려 뼈아픈 고백을 한다. 창씨개명한 성과 이름을 조목조목 뜯어보면서 “이름만 창씨개명한 것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자진해서 일본인으로 귀화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속내를 털어놓는다.
한국전쟁이 터진 후, 혈기왕성한 나이의 그는 친구들과 어울려 미군 군수물자를 빼돌리는 ‘뚜럭질’(도둑질)로 상당한 재미(?)를 본다.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그 모든 얘기를 소상하게 밝힌다. 아무리 전쟁 통이었다 해도 일반적인 ‘도덕군자’들의 잣대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는 한 발 더 나간다. 미군 화물칸을 털어 가져온 ‘장물’을 처리해주는 목사가 있었다. 그런데 목사가 제값을 쳐주려하지 않았다. 결국 일이 꼬여 장물은 모두 국민방위군에게 몰수를 당한다. 그것이 모두 흔적도 없이 사라지리라는 건 누가 봐도 뻔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물건을 가로챈 국민방위군이 아니라 목사를 더 지탄한다. 솔직한 고백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그는 훗날 시기를 달리하며 두 차례에 걸쳐 교단에 선다. 군 제대 후 서울 국립맹아학교 보통사범과를 졸업한 결과다. 사실 그는 입학 당시에 응시 자격이 없었다. 고등학교 졸업 학력이 안 되었기 때문이다. ‘문제아’로 청소년기를 보낸 그는 고교 졸업장이 없었다. 결국 이를 허위 졸업장으로 대신해 맹아학교에 입학을 하게 된다. 물론 시험까지 치르고 합격을 해서 입학이 가능했으나, 당시 그는 탈영병 처지였다.
민족문제연구소 임헌영 소장의 말대로 “너무나 진솔하게 자신의 삶 그 자체를 속속들이 드러내 보이기에 읽기에 민망스러운 곳도” 있는 게 이 자서전이다.

생생하게 녹아든 한국현대사의 질곡

일제 강점기에 태어난 그는 ‘조숙한 반항아’로 자라게 된다. “일본인보다 더 일본인 같았던 조선인 선생”을 보면서 어렴풋이 친일이 뭔지 의식하다가, 결정적으로 조선말을 쓰지 못하게 하는 학교에서 반골의 싹을 틔우게 된다. 게다가 패색이 짙어가던 일제의 식민교육은 학교를 병영과 다름없게 만들어버린다. 결국 시대를 읽게 된 이 조숙아는 야만의 교육이 이루어지는 학교를 겉돌며 거리의 아이로 변해갔다.
또한 가난은 그를 일찍 철들게 했다. 중학교 입학금 문제로 학교 측과 다투는 어머니를 옆에서 지켜봐야 했고 어머니와 장사를 하며 당한 수모는 어린 가슴에 상처를 남긴다. 일본 육사 출신의 장교가 교장으로 와있는 학교는 일찌감치 사회의 모순을 깨닫고 불량기로 야물어진 그를 내버려두질 않는다. 중학생이 된 걸 자랑스러워하신 어머니의 바람도 저버리고 2학년 1학기에 퇴학을 당하고 만다.
이후 깡패니 건달이니 장래성 없는 놈이니 손가락질이나 받는 ‘문제아’로 청소년기를 보낸다. 하지만 무작정 주먹이나 휘두르는, 말 그대로의 깡패는 아니고자 했다. 오히려 그런 친구들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있어서는 안 될 일’에 반응하는 건달이었던 것이다.
배가 고파 입대했던 군대에서도 그런 그의 면모는 고스란히 이어진다. 이유 없이 후배를 구타하는 상급자에겐 위아래가 없었다. ‘한 성깔’로 남들이 쉬쉬하는 인물이었지만, 정작 그 자신 홧김에 단 퇇 차례 주먹질로 후배의 이를 부러뜨린 일에 대해 평생 마음의 빚으로 생각하며 살 정도로 ‘옳고 그름’의 기준이 명확했다. 그렇다고 논리적 정형성에 따른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인간적인 삶 속에 보편타당성이 우선되는 기준일 뿐이었다.
이는 교직에 있을 때나 공무원 생활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잘못됐다 싶으면 앞뒤 안 재고 직언을 하고 바로 잡아야 직성이 풀리는 그였다. 비리를, 거짓과 위선을 눈감아줄 줄 모르는 그를 남들이 곱게 볼 리 만무했다. 강자 앞에 비굴하지 않는 태도가 사회생활에서는 장해가 될 수 있다는 걸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그런 삶보다는 양심에 따라 ‘옳은 건 옳다’고 외치는 삶에 가치를 두는 그다.
군대의 비리를 보는 눈이 그랬고, 교직에 있을 때는 승진에 혈안이 돼있는 주임 급 교사들을 보는 눈이 그러했다. 선거부정을 보는 것 역시, 독재정권을 보면서도 대학생들의 시위를 볼 때도 전교조를 바라볼 때도 마찬가지였다. 광주에서의 학살 소식엔 인간적으로 비분강개할 수밖에 없었다. 정치한 논리보다는 양심에 따른 결과다.
질펀한 육담이 오히려 그답기에 편집하는 입장에서도 당혹감은 일부러라도 내려놔야 했다.

추천평

순탄하게 살고 싶지만 불의를 참지 못해서 대들고 싸우는 사람의 인생에는 옹이가 생기게 마련입니다. 아무리 곧게 뻗어 오르고 싶어도 시련과 억압을 견디다보면 구부러지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이 책은 그렇게 살아온 인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자서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랑이나 꾸밈이 없습니다. 정의를 위해 싸우고 비뚤어진 일을 바로잡으려고 노력하면서 얻은 성취와 그 과정에서 저지른 실수에 대해서도 미화하거나 변명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투박하고 거칠지만 거짓이 없고 담담하게 써내려간 자서전이 되었습니다.
유시민(전 보건복지부 장관)
마치 성직자가 참회록을 쓰듯이 너무나 진솔하게 자신의 삶 그 자체를 속속들이 드러내 보이기에 읽기에 민망스러운 곳도 한둘 있을 지경인데, 이게 인간 신용승 선생의 매력이기도 할 것이다. 이만큼 자신을 남에게 드러내기가 그리 쉽지 않음은 누구나 알 터인지라 이 자서전이 지닌 가치가 더더욱 고귀하게 느껴진다.
임헌영(민족문제연구소 소장)
옳다고 여기시면 물불 앞뒤 가리지 않고 나이 생각지 않으며 뛰시는 열혈남아! 그야말로 행동하는 양심이시다. 이 자서전 속에는 선배님의 의에 굶주려온 이런 삶의 숨결이 꾸밈없이 그대로 녹아있다.
표명렬(평화재향군인회 상임대표)
불의를 보는 눈을 가진 이의 삶은 고단하다. 분노를 행동으로 옮기는 이의 삶은 더욱 다난하다. 이들은 같은 시대를 살아도 할 이야기가 너무나 많다. 신용승 선생님의 삶이 그렇다. 들어도 들어도 끝이 없는 선생님의 시대활극을 보노라면 한국현대사의 질곡이 영화처럼 생생하다.
안재성(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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