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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_ 돌격! 우리가 백두산이다!
제1장 꿈은 열정을 키우고 열정은 인생을 키운다 국민가수 인순이 매력 포인트 Made by 유현상 오직 기타만을 위한 가출 너희들끼리 해 인마! 동두천의 기타 소리 전국을 울리다 기타를 자르자 치즈를 먹자! 남산 데이트가 키운 최고의 뮤지션 유현상과 윤수일 두들겨 맞고 짓밟혀도 음악을 위해서라면 기타는 내게 마약 노래는 내게 열정 제2장 대한민국 헤비메탈의 전설을 쓰다 눈물과 한숨으로 희망을 작사하다 꿈과 꿈이 만나면 전설이 만들어진다 세계가 놀란 한국의 Big Band, 백두산 당신들은 방송출연금지야! 백두산이 무너졌다 전설이 사라졌다 제3장 백두산보다 높게, 백두산보다 화려하게 대한민국 최초의 아이돌 스타 이지연을 낳다 지연이가 대신 이룬 백두산의 꿈 헤비메탈의 전설에서 ‘아이돌 메이커’로 너는 사랑을 향해 달리고, 나는 내리막을 향해 치닫고 한 시대의 로망이 떠나고 절망의 끝에서 다시 음악을 외치다 제4장 사랑, 그 아름다운 해독제 막다른 길에서 새로운 길을 찾다 우연히 만난 운명, 아름다운 여자 최윤희 두 사람이 꾸는 하나의 꿈 누구도 막지 못한 운명적 사랑 이 결혼 인정할 수 없네 상대가 돼야지! 전격 비밀결혼 대작전 여자야 여자야 약해지면 안 돼 제5장 가족은 내 인생 최고의 행복 첫 아들, 첫 사위, 첫 인정, 첫 행복 아이들은 우리에겐 기쁨 그 자체 외조의 왕이 되어 미국 땅을 밟다 왜 이렇게 망가졌어? 당신은 마녀, 나는 산타클로스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이름 남편과 아빠 제6장 백두산, 다시 세상을 향해 외치다 백두산의 이름으로 화려하게 부활하다 세대를 뛰어넘는 전설의 무대, 이제부터 시작이다 아저씨 개그맨 맞죠? 소리쳐, 다 같이 젊음을 소리쳐 다시 한 번 록의 전성기여 오라! 에필로그 _ 음악은 늙지 않는다 우리가 대한민국이다 화보 _ 나의 꿈, 나의 사랑, 나의 가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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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은 인순이와 집 앞에서 놀다가 티격태격 다툰 적이 있다. 무슨 일 때문이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내가 장난을 심하게 걸어서 화가 났던 것 같다. 인순이는 나와 싸워봤자 좋을 것 없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냅다 달아났고, 나는 도망치는 인순이를 쫓아가 몸을 밀쳤다. 그때 공교롭게도 인순이는 화단처럼 돌이 쌓여 있는 곳에 넘어져 뾰족한 돌에 턱이 찢기고 말았다. --- pp.20~21
나는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기타를 들고 목공소를 찾아가 톱으로 윗부분을 잘라냈다. 속이 다 후련했다. 내 음악을 방해하는 가장 큰 걸림돌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무대 위에서 절정에 이르는 한순간 하늘 높이 기타를 치켜드는 내 모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 pp.37~38 비디오로 본 외국 밴드의 모습을 마음속에 그림을 그려가며 연습하면서 느꼈던 점도 있었다. 외국인들과 우리는 걸음걸이부터 다르다는 것이었다. 식습관도, 언어도, 풍습도 다 달랐다. 그러자 문득 저 친구들이 먹는 음식을 먹고, 저 친구들이 하는 말을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당분간 김치를 먹지 말자. 한국말도 하지 말자. 친구도 외국인들만 사귀자. 저들을 이기려면 먼저 저들의 풍습과 생활 습관부터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 p.40 어느 날,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던 나는 문득 깨달았다. 외국 그룹의 음악을 따라하는 나는 뮤지션이 아니라 한낱 원숭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 생각을 하자 나도 모르게 슬픔이 북받쳐 올랐다. 왜 나는 원숭이처럼 남의 음악을 흉내만 내고 있는 것일까? 왜 내 것을 가지고 있지 못할까? --- p.47 문을 열고 들어가자 키가 크고 비쩍 마른 친구가 기타를 연주하고 있었다. 순간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저 친구 외국인인가?’ 눈을 크게 뜨고 무대를 쳐다보았다. 온몸에 소름이 돋을 만큼 놀라운 소리였다. 나는 귀신에 홀린 사람처럼 콜라 한 잔을 들고 무대 위로 올라가 노래를 불렀다. “마셔. 마셔.” 내가 노래를 끝내고 콜라를 건네자 비쩍 마른 친구가 피식 웃었다. 그 친구가 바로 백두산의 기타리스트, 김도균이다. --- p.66 일본 잡지「번」은 ‘아시아의 수준을 넘어섰다.’며 백두산 2집에 최고점을 주었다. 한국에 들어와 우리를 취재해 간 잡지 기자는 내가 마이크를 입에 넣는 사진까지 실으면서 ‘한국의 그룹이 우리들에게 경고를 하고 있다.’는 기사를 썼다. 실제로 앨범은 한국보다 일본에서 더 많이 팔렸고, 지금도 꾸준히 팔리고 있다. 일본뿐만이 아니었다. 영국의 록 주간지 「케랑Kerrang」도 ‘백두산이 정말 한국인들로 구성된 그룹이 맞느냐?’며 우리에게 스콜피언스Scorpions와 대등한 점수를 주었다. --- pp.72~73 방송출연금지 사유는 ‘가사가 영어로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외국인들이 보기에도 기가 막혔는지 그 내용이 아시아판 타임지에까지 실렸다. 내 사진도 실렸는데, 역시나 입에 마이크를 집어넣는 사진이었다. --- p.76 도균이가 영국으로 떠나면서 백두산은 끝내 해체되었다. 베이시스트 김창식은 그래도 계속 록을 하겠다며 밴드를 결성해 활동을 이어갔고, 드러머 한춘근은 재즈 공부를 하면서 음악적 식견을 넓혀갔다. 1986년 「어둠 속에서」를 발표하며 세상에 그 존재를 알렸던 백두산이, 세계를 휘어잡으려고 강력한 사운드를 장착했던 백두산이 웅지를 채 펴보지도 못하고 불과 2년 만에 진격을 멈춘 것이다. --- p.80 “그래? 현상 씨, 저기 좀 봐.” 그때 송 피디가 손으로 가리킨 사람이 바로 지연이었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어떻게 지연이를 발견했을까? 피디의 눈에는 고감도 안테나라도 달려 있는 모양이었다. 당시 송창의 피디의 조연출이었던 안우정 현 MBC 예능국장도 같은 말을 했다. “아까부터 저 아이가 자꾸 눈에 들어오네. 저런 친구 괜찮지 않아? 어때?” --- p.88 지연이는 NHK방송국 공개홀 무대에 나카모리 아키나와 함께 섰다. 사회자가 KBS가요TOP10에서 5주 연속 1위를 차지한 가수라고 지연이를 소개했다. 낯선 일본 땅에서, 낯선 관객들 앞에서 기죽지 않고 당차게 노래를 부르는 지연이를 보자 벅찬 감동이 밀려왔다. 내가 꿈꿨던 일을 마침내 지연이가 해낸 것이었다. 그때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지연이의 모습을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 p.95~96 나는 한강 고수부지에서 운동을 하고, 기타와 발성 연습을 하면서 곡을 썼다. 그리고 앞으로 가야 할 길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다. 지나간 일들은 배에 띄워 멀리 바다로 떠나보내기로 마음먹었다. 과연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두렵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내 자신을 믿었다. 스스로 포기만 하지 않으면 기회는 분명히 찾아올 거라고 생각했다. --- p.113 트로트는 우리의 정서가 고스란히 담겨 훀는 장르다. 선천적으로 타고나지 않으면 부를 수 없는 노래가 바로 트로트이기도 하다. 다시 헤비메탈을 하는 데 있어서도 트로트 가수로 활동하던 시절 배웠던 것들이 큰 도움을 주고 있다. 그리고 어차피 음악은 장르와 상관없이 하나로 통하는 것 아닌가? --- p.119 윤희와 희경 씨는 말을 하기보다는 주로 듣는 편이었다. 조금은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윤희를 보면서 나는 천사가 있다면 바로 저런 얼굴을 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얼핏 했다. 늦가을의 하늘빛처럼 맑고 고운 눈빛, 갓난아이만큼이나 투명한 피부, 조용조용한 목소리의 윤희는 방송국에서 볼 때보다 더 고와 보였다. 참 아름다운 여자였다. --- p.122 다섯 살 때 수영을 시작한 윤희는 세상을 잘 몰랐다. 나는 이 세상에는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새벽에 윤희를 불러내 수산시장에 데려갔다. 윤희는 이른 새벽부터 짐을 들쳐 메고 뛰어다니는 사람들을 보더니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지금이 몇 신데 저렇게들 열심히 일하는 거죠?” --- p.130 윤희와 데이트를 하고 차로 집에 바래다주는데, 집 앞 골목길에서 어머니가 윤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이왕 이렇게 된 거 피하고 싶지 않아 차 문을 열고 나가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윤희의 손을 잡아끌며 찬바람이 도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윤희야, 상대가 돼야지.” --- p.137 나와 윤희는 이기종 기자만 믿고 작곡가 이건우, 윤희 선배 양희경 씨와 함께 드레스와 결혼반지 등을 챙겨 약속 장소로 갔다. 호텔 주차장에는 뜻밖에도 가수 이승철과 이호연 사장현 DSP미디어 대표이사, 백민 사장현 BIG엔터테인먼트 대표, 작곡가 하광훈 등이 나와 있었다. 이기종 기자가 우리들의 결혼식 증인 겸 하객이 되어 달라고 부른 것이었다. --- pp.142~143 「갈 사람」을 버리고 「여자야」를 띄우기로 마음먹은 나는 송창의 피디를 찾아가 사정을 이야기하고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물었다. 내 얘기를 다 들은 송창의 피디는 윤희와 함께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 나와서 「여자야」를 부르라고 배려해 주었다. --- p.150 여전히 찬바람이 돌던 장모님은, 그러나 아내가 첫 아이 동균이를 낳자 완전히 마음을 풀고 나를 사위로 인정했다. 그러니 동균이는 가족을 화해시킨 일등공신인 셈이다. 연락을 받자마자 병원으로 달려온 장모님은 동균이를 보면서 물었다. “이게 정말 윤희 아들인가?” 나는 속으로는 ‘내 아들인데….’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네.” 하고 대답했다. --- p.158 아내가 ‘킹 아쿠아틱 스위밍 센터’의 헤드코치로 임명되어 취임식을 하던 날, 많은 교민들이 몰려와 축하해 주었다. 그 모습을 보니 코끝이 찡했다. 교민들이 나에게도 한마디 하라기에 “열심히 살겠다.”고 짧게 말했다. 이상하게 눈물이 나와 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동균이와 호균이가 보기에도 내가 이상했던지 왜 그러느냐고 자꾸 물었다. --- p.163~164 나는 정중히 남자의 청을 거절했다. 스탠드바와 헤비메탈은 도무지 어울리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거절하자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하지만 도저히 못 참겠는지 잠시 후 술병을 들고 다시 무대 위로 올라왔다. 뭔가 느낌이 심상치 않았다. 남자는 잠시 나를 쳐다보더니 노래를 부르고 있는 내 머리 위에 술을 부었다. --- p.171 “아빠, 건강은 어떠세요?” 두 아이가 동시에 물었다. “아빤 건강하지. 아빠 지금 맛있는 거 먹고 있다.” 스탠드바 옆에 있는 어둡고 좁은 골목에 서 있었지만, 나는 일부러 근사한 음식점에 앉아 있는 것처럼 말했다. “맛있는 거 많이 먹고 힘내세요!” “그래. 고맙다.” 아이들이 내게는 희망이었고 용기였다. 아이들과 얘기하고 있으면 아무리 힘들었던 일도 잊을 수 있었다. --- p.173 “그럼, 수영에서 금메달 따면 김연아 선수 만날 수 있는 거야?” “당연하지.” 아내는 웃으며 말했다. “좋았어! 나도 금메달 딸 거야!” 호균이는 자신 있게 말했다. 처음에는 저러다 말겠지 했다. 하지만 호균이는 장모님과 함께 10일 정도 연습을 하더니 경기도 고양시에서 주최한 수영대회에 나가 자유영·배영 두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정말이지 피는 속일 수 없는 모양이었다. --- p.177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는 동균이는 성적이 뛰어나 하버드와 스탠포드를 비롯한 미국의 여러 명문대학에서 러브콜을 보내오고 있다. 동균이는 그중에서 스탠포드대학교에 가기로 마음먹은 듯하다. 추위를 많이 타고, 또 수영을 해야 하는 엄마를 생각해서 햇살이 따뜻한 캘리포니아 주에 있는 대학을 택한 것이다. --- p.178 내가 다시 록음악에 도전하겠다고 하자 아내와 아이들은 흔쾌히 찬성표를 던졌다. 고마웠다. 나를 믿어주는 아내와 아이들이. 가족들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록음악을 접고 밤무대를 돌아다니며 성인 가요를 부른 것은 지금 생각해도 잘한 일이었다. --- p.180 이제는 우리들이 앞장서서 힘들어 하는 후배들을 이끌어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배들 중에는 세계적인 뮤지션들과 겨루어도 뒤지지 않을 만큼 뛰어난 실력을 갖춘 친구들이 제법 있었다. 해외에서도 충분히 통할 수 있는 그들이지만 이끌어주는 사람이 없어 좁은 한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용기, 희망을 주고 싶었다. --- p.186 나는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기타에 매력을 느껴 음악을 시작했다. 최고의 기타리스트가 되려고, 최고의 보컬이 되려고 남들이 보면 징그럽다고 느낄 정도로 열심히 연습을 해왔다. 그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이다. 백두산을 만든 것이다. 지금 우리들의 바람은 롤링스톤스나 에어로스미스처럼 10대부터 60대까지, 나이와 성별을 뛰어넘어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록그룹이 되는 것이다. --- p.2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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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이 있기에, 나에겐 절망은 없다!
우리나라 연예인 중에서 유현상만큼이나 극적인 변신을 거듭한 사람이 또 있을까. 그는 90년대 초반 헤비메탈의 전설적인 그룹 백두산의 리더에서, 대한민국 최초의 아이돌 스타 이지연의 매니저로 변신한다. 첫 번째 변신이다. 한국 남성들의 로망이었던 이지연이 어느 날 갑자기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훌쩍 미국으로 떠나자 이번에는 트로트 가수로 변신한다. 두 번째 변신이다. 그리고 2008년에 다시 백두산으로 화려하게 부활한다. 세 번째 변신이다. 그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일은 또 있다. 김연아 선수 못지않게 국민적인 사랑을 받았던 아시아의 인어 최윤희와 비밀리에 결혼식을 올린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원조 국민요정 최윤희와의 결혼으로 그는 수많은 남성들에게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어떤 라디오 방송 피디는 그의 디스크를 집어던지며 후배들에게 “이제부터 유현상 노래 틀지 마!”라고 소리를 질렀다는 이야기도 있다. 극적인 변신을 거듭한 대가로 그는 ‘유현상 때문에 백두산이 해체되었다.’, ‘여고생 가수 이지연과 동거한다.’, ‘최윤희를 납치해 강제로 결혼했다.’는 등 수많은 헛소문에 시달려야 했다. 또한 이지연을 톱스타로 키워 탄탄대로를 달리던 그때 갑자기 이지연이 미국을 떠나면서 그는 순식간에 내리막길을 탔다. 하지만 그는 절망에 휩쓸리지 않았다. 상황은 암담하기 그지없었지만 그는 불씨처럼 남아 있는 열정을 지펴 꿈이자 희망인 음악을 붙잡고 다시 일어섰다. 그의 앞에 아름다운 사랑이 나타난 것도, 그가 인생 최고의 선물인 가족을 얻을 수 있었던 것도,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여전히 무대 위에 서서 하늘을 찌를 듯 송곳 같은 샤우팅으로 관객을 휘어잡을 수 있는 것도 모두 희망의 힘, 열정의 힘 때문이다. 이 책은 중학교 때 기타에 빠져 세계적인 기타리스트를 꿈꿨던 사람, 대한민국 최초의 헤비메탈 그룹 백두산을 이끌었던 사람, 톱스타 매니저와 트로트 가수로 변신을 거듭하다 음악적 뿌리인 록으로 되돌아온 사람, 이제는 다시 전설이 되어 음악으로 세계를 정복하려는 사람, 유현상의 열정적인 삶을 담은 최초의 자전적 에세이다. 절망이여 오라, 나는 물러서지 않는다 새로운 도전? 두렵지 않다 나이 지긋한 한 남자가 머리를 길게 기르고, 가죽옷을 입고, 젊은이들의 거리 홍대 앞 상상마당 공연장에서 노래를 부른다. 강한 비트의 노래를, 열정을 다해 목이 터져라 외친다. 바로 헤비메탈의 전설적인 그룹 백두산 리더 유현상이다. 공연장 모습을 보자. 자식 또래의 젊은이들이 손가락으로 사랑의 표시를 만들어 끊임없이 내보이며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고 있다. 하늘을 찌를 듯한 샤우팅 창법이 터져 나오면 아낌없는 환호와 박수를 보낸다. 아빠 품에 안겨 몸을 들썩이는 아이도 있고,‘현상 오빠’라는 피켓을 높이 치켜들고 흔들어대는 젊은 여성들도 있다. 새롭고, 놀라운 장면이다. 최근 들어 부활의 김태원과 함께 예능 늦둥이로 주목받고 있는 유현상. 2008년 백두산을 재결정한 후 20대 못지않은 열정과 자신감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유현상. 절망적인 상황이 폭풍처럼 밀어닥쳐도 물러서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의 이야기는 힘겹게 살아가는 이 땅의 모든 이들에게 희망과 의욕을 선물할 것이다. 아내에겐 외조의 왕, 아이들에겐 산타클로스할아버지 유현상의 가족사랑은 늘 ‘가족은 내 인생 최고의 행복’이라고 말할 정도로 지극하다. 그는 아내가 공부하고 싶다는 뜻을 보이자 적극적으로 아내에게 대학원에 들어가라고 권했다. 또 두 아이가 미국에서 공부하고 싶어 하자 아내와 함께 미국으로 보냈다. 기러기 아빠가 된 그는 아내와 두 아이를 뒷바라지하기 위해 록음악을 접고 밤무대를 돌아다니며 성인 가요를 불렀다. 서울에서 목포로, 목포에서 광주로, 광주에서 다시 녹동으로 이틀 동안 2,000km를 운전했던 적도 있었다. 전라도 광주에 있는 한 스탠드바에서 노래를 부를 때는 백두산 팬이었던 한 손님이 무대로 올라와 노래를 부르고 있는 그의 머리에 술을 붓기도 했다. 그래도 그는 아내와 두 아이를 생각하며 온갖 굴욕과 어려움을 참고 이겨냈다. 대한민국 모든 가장들이 그러하듯 가족은 그에게 희망이었고, 용기였다. 가족을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던 그가 다시 록음악에 도전하겠다고 하자 아내와 두 아이는 흔쾌히 찬성표를 던졌다. 그는 지금 자신을 믿어주는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어느 자리에서든지 아름답고 빛이 나는 ‘남편’과‘아빠’가 되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대한민국 대표 아빠’라는 칭호가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 그가 바로 유현상이다.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헛소문과 오해 진실은 무엇인가? 유현상은 거듭되는 극적인 변신과 결혼으로 여러 차례 화제의 중심에 섰던 인물이다. 그로 인해 수많은 헛소문과 오해가 마치 꼬리표처럼 그의 뒤를 따라다녔다. 첫 번째 헛소문은 백두산이 해체된 이유가 바로 유현상 때문이라는 것. 하지만 백두산은 해외 진출의 야망을 품고 대부분의 곡을 영어로 만든 2집「King of Rock’n Roll」이 영어 가사 때문에 방송출연금지 처분을 받자 이 땅의 음악 풍토에 환멸을 느낀 기타리스트 김도균이 영국으로 떠나면서 자연스럽게 해체되었다. 두 번째 헛소문은 이지연과의 동거설. 데뷔하자마자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이지연은 남성들에게는 ‘로망’이었지만 여성들에게는 ‘공공의 적’이나 마찬가지였다. 다시 말해 질투의 대상이었다. 그 사실을 증명하듯 확인되지 않은 온갖 악성 루머가 이지연 곁을 떠나지 않았다. 매니저와의 동거설 역시 그중 하나였다. 이 소문은 이지연이 사랑하는 남자와 함께 미국으로 떠나면서 잠잠해졌다. 세 번째 헛소문은 최윤희 납치 결혼설. 모 음료 CF의 모델로 활동할 정도로 청순한 외모를 자랑하던 최윤희와 상대적으로 험악한 인상의 유현상, 13세라는 나이 차, 비밀리에 올린 결혼식 때문에 소문은 급속도로 번져갔다. 그러나 두 사람의 사랑은 지극했다. 집안의 극심한 반대에도 무너지지 않을 만큼 단단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유현상에 대해 품고 있는 결정적인 오해는 무엇일까? 바로 음악 실력과 노래 실력이 ‘평범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이 부분은 그가 이지연 1집 전곡과 백두산 1, 2집에 실린 대다수의 곡을 작사 작곡했다는 사실(도원경이 부른 「성냥갑 속 내 젊음아」도 그가 작곡한 노래다), 그리고 들국화의 전인권이 남긴 다음의 말로 가볍게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유현상 씨는 우리나라에서 기타 치는 모든 사람들의 꿈이었다. 작곡도 아주 잘해서 유현상 씨 노래를 경식이 형님도 자주 불렀던 기억이 난다. 그때 먼저 연주하던 유현상 씨는 기타를 품에 꼭 껴안 듯하고 딥 퍼플Deep Purple의「하이웨이 스타Highway Star」를 불렀었다. 「하이웨이 스타」가 크게 히트하기 전이었다. 초저녁이라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백인들이 ‘휙휙’ 소리와 함께 엄청난 환호를 보냈다. 유현상, 그 유명한 유현상을 난 그렇게 만났던 것이다. 곧이어 지미 핸드릭스James Marshall Hendrix의「더 윈드 크라이즈 메리The Wind Cries Mary」를 연주했는데 오우, 현상 씨의 음악들이 나에게 파고들었다. 내 몸이 얼어붙는 줄 알았다. 그때 만일 여러분도 그 노랠 들었다면 나의 마음을 이해했을 것이다. 엄청난 실력이었다. 곳곳에 지미 핸드릭스가 살아 있는 듯 차분하면서도 영혼이 느껴지는 그 곡은 현상 씨를 너무나 멋지게 만들었다. 아니 지미 핸드릭스보다 더 잘하는 것 같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