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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전 교장 에비슨 자료집 1
국내 발행 영문잡지 기사 양장
선인 2017.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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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사료총서

책소개

목차

제1부 에비슨이 쓴 글

? The Korean Repository
1. “서울에서 유행한 콜레라,” 1895년 9월호
2. “한국의 질병,” 1897년 3월호
3. “한국의 질병 II,” 1897년 6월호

? The Korea Field
4. “브라운 총무의 수술 돕기,” 1901년 11월호
5. “병원 전도,” 1902년 2월호
6. “독실한 것 다음으로,” 1902년 8월호
7. “여성병실에서,” 1902년 8월호
8. “병과 병의 소문,” 1903년 8월호

? The Korea Review
9. “세브란스병원,” 1904년 11월호

? The Korea Methodist
10. “연합,” 제1권 제9호, 1905년 7월 10일

? The Korea Mission Field
11. “서울의 O. R. 에비슨 박사로부터 온 소식,” 제3권 제4호 1907년 4월
12. “멕시코의 한인 교민들-에비슨의 편지에서,” 제5권 제6호, 1909년 6월
13. “세브란스 씨의 서거에 대한 한국 서울지회의 결의안,” 제9권 제8호, 1913년 8월 (호러스 G. 언더우드와의 공동 발표문)
14. “사회봉사와 병원,” 제10권 제7호, 1914년 7월
15. “의료선교에서 무엇이 문제인가?,” 제12권 제1호, 1916년 1월
16. “장례식 연설, 고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신학박사, 법학박사를 위해 1916년 10월 19일 서울 중앙Y.M.C.A.에서 거행됨,” 제12권 제12호, 1916년 12월
17. “육체, 마음, 영혼의 균형에 달린 선교의 능률,” 제13권 제1호, 1917년 1월
18. “의료사역의 자금 문제,” 제13권 제10호, 1917년 10월
19. “전쟁 후의 기회들, 미국에서 쓴 O. R. 에비슨 박사의 편지 발췌문,” 제14권 제8호, 1918년 8월
20. “우리가 젊었을 때,” 제15권 제3호, 1919년 3월
21. “선교사역에서의 사회적 접촉의 가치,” 제15권 제7호, 1919년 7월 (부인과 공동 발표문)
22. “응답받은 기도의 예들,” 제16권 제2호, 1920년 2월
23. “최고의 선교사 만들기,” 제16권 제4호, 1920년 4월
24. “자기 자신과 기회를 가장 잘 성공시키는 법, II부-기회를 가장 잘 선용하기” 제16권 제5호, 1920년 5월
25. “연희전문학교, 언더우드관과 과학관의 초석 놓기,” 제17권 제12호, 1921년 12월
26. “의학교수들의 영어문제,” 제18권 제7호, 1922년 7월
27.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의 시험을 총독이 인정함,” 제19권 제5호, 1923년 5월
28. “O. R. 에비슨 박사 부부-감사의 말씀,” 제19권 제8호, 1923년 8월 (신흥우와 에비슨의 발언)
29. “달성될 수 있을까?,” 제20권 제1호, 1924년 1월
30.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목사, 신학박사 명예법학박사의 생애 개요,” 제23권 제3호, 1927년 3월
31. “증축된 세브란스병원,” 제23권 제10권, 1927년 10월
32. “추도일 연설, 1929년 6월 1일, 한국 서울,” 제25권 제8호, 1929년 8월
33. “한국에서의 결핵 퇴치운동,” 제26권 제5호, 1930년 5월
34. “왜 우리 병원들은 자선사역을 하는가?,” 제27권 제2호, 1931년 2월
35. “A. A. 피터스 의사의 부인을 추모하며,” 제28권 제9호, 1932년 9월
36. “호러스 N. 알렌 의사를 추모하며,” 제29권 제5호, 1933년 5월
37. “J. W. 허스트 박사께 바침,” 제30권 제4호, 1934년 4월
38. “의료 선교의 미래,” 제30권 6호, 1934년 6월
39. “한국 의료선교사역의 몇 가지 성공 사례, 제1부,” 제35권 제4호, 1939년 4월
40. “한국 의료선교사역의 몇 가지 성공 사례, 제2부,” 제35권 제5호, 1939년 5월
41. “한국 의료선교사역의 몇 가지 성공 사례, 제3부,” 제35권 제6호, 1939년 6월
42. “한국 의료선교사역의 몇 가지 성공 사례, 제4부,” 제35권 제7호, 1939년 7월

제2부 가족·지인이 쓴 글, 보도 기사

? The Korea Field
1. 에비슨 부인, “발군의 세 여자,” 1903년 8월호
2. 에비슨 부인, “여름휴가 사역,” 1903년 8월호
3. 에비슨 부인, “1903~1904년의 보고서,” 1904년 8월호

? The Korea Mission Field
4. 에비슨 부인, “한국 여자 기독교인들 사이의 도르가회,” 제2권 제5호, 1906년 3월
5. 에비슨 부인, “전도부인 사역,” 제2권 제11호, 1906년 9월
6. “세브란스병원의학교 졸업식 한국 최초의 졸업생들,” 제4권 제7호, 1908년 7월
7. “졸업식 세브란스병원의학교 제1회 졸업반, 한국, 서울. 1908년 6월 3일 오후 4시. 에비슨의 연설,” 제4권 제8호, 1908년 8월
8. “선교지회들에서 온 전언들-병원 교회,” 제6권 제5호, 1910년 6월
9. “세브란스병원 사람들,” 제8권 제2호, 1912년 2월
10. 레라 에비슨 양, “서울의 새 주일학교,” 제9권 제4호, 1913년 4월
11. 찰스. I. 매클라렌, “질문조사 기록: 한국 내 선교병원들에서 기적이 존재하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해, 그리고 의료사업과 교회의 적절한 관계에 대해,” 제12권 제2호, 1916년 2월호
12. 밀러 부인 & 에비슨 부인, “김씨 부인,” 제12권 제4호, 1916년 4월
13. 에비슨 부인, “기독교 가정을 세우고 계발하기; 어느 선교사 어머니가 한국인 어머니들께,” 제12권 제4호, 1916년 4월
14. “공지사항과 인물 동정,” 제13권 제10호, 1917년 10월
15. 더글라스 B. 에비슨, “한국에서의 소년시절,” 제21권 제7호, 1925년 7월
16. 고든 W. 에비슨,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사람들을 위해 일하지 않기,” 제22권 제5호, 1926년 5월
17. G. B., “세브란스에서 열린 축하행사,” 제24권 제4호, 1928년 4월
18. 더글라스 B. 에비슨, “미쓰이 낙농장,” 제24권 제5호, 1928년 5월
19. 더글라스 B. 에비슨, “환자를 세브란스병원에 보내는 것에 대해,” 제24권 제7호, 1928년 7월
20. 고든 W. 에비슨, “Y.M.C.A. 농촌사업의 시작,” 제24권 제9호, 1928년 9월
21. 고든 W. 에비슨, “협동운동의 실제 사례들,” 제24권 제12호, 1928년 12월
22. 더글라스 B. 에비슨, “한국의료선교사협회,” 제25권 제4호, 1929년 4월
23. 더글라스 B. 에비슨, “Ⅱ. 한국에서의 소년시절,” 제27권 제6호, 1931년 6월
24. 더글라스 B. 에비슨, “세브란스 병원의 운영비 삭감 성공과 그 방법!,” 제28권 제10호, 1932년 10월
25. 고든 W. 에비슨, “전라남북도의 농업실습학교,” 제29권 7호, 1933년 7월
26. 제시 W. 허스트, “O. R. 에비슨, 의사, 의학박사의 생애 개요,” 제30권 제3호, 1934년 3월
27. 메리언 E. 하트니스, “금혼식,” 제31권 제10호, 1935년 10월
28. 윤치호, “O. R. 에비슨 박사를 향한 송별사,” 제32권 제5호, 1936년 5월
29. 알렉산더 A. Pieters, “O. R. 에비슨 부인을 추모하며,” 제32권 제11호, 1936년 11월
30. 해리 A. 로즈, “O. R. 에비슨 부인,” 제32권 제11호, 1936년 11월
31. 더글라스 B. 에비슨, “제2세대 선교사들은 무엇이라 말하는가?: e. 우리가 너무 많다고 할 수 있는가?,” 제33권 제3호, 1937년 3월
32. 고든 W. 에비슨, “제2세대 선교사들은 무엇이라 말하는가?: g. 한국에 대한 우리의 소명,” 제33권 제3호, 1937년 3월
33. “D. B. 에비슨 박사가 5월 30일 캐나다 뉴브런스윅 주, 세인트존의 랭카스터 병원에서 쓰다,” 제37권 제9·10호, 1941년 9·10월

관련 분류

품목정보

발행일
2017년 02월 08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587쪽 | 1468g | 152*225*35mm
ISBN13
9791160680393

출판사 리뷰

이 책은 한국에 온 의료선교사 에비슨(Oliver R. Avison, 1860~1956) 자료집의 첫째 권으로, 국내에서 발간된 선교 영문 잡지의 기사를 모은 것이다.
에비슨은 일제 시기 한국 고등교육의 한 축을 이루었던 연희전문학교와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의 교장을 겸하면서, 한국의 근대학문, 근대의료 분야의 기반을 놓았던 분이다. 그는 1893년에 내한하여 1935년에 은퇴하고 떠나기까지 42년 동안 한국에서 활동하였는데, 한국 최초의 서양식 근대병원인 제중원을 세브란스병원으로 발전시켰고, 근대 의학교육을 정립하였다. 또한 언더우드(Horace G. Underwood, 1859~1916)를 도와 연희전문학교를 설립하고, 언더우드 사후에 교장직을 승계하여 유업의 완성을 위해 노력하였다.

에비슨은 두 학교의 교장을 겸하면서 통합된 연세의 기틀을 이루었고, 또한 일제하 조선을 위한 교육을 줄곧 추구하여 ‘동서 고근 사상의 확충’이라는 연세학풍 정립을 이끌었다. 자료집을 편찬하게 된 것은 에비슨의 활동과 글이 연전과 세의전을 넘어 기독교 선교, 한국의 교육과 학문 등을 연구하는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우리가 믿고 있기 때문이다.

5년 전부터 본인을 포함한 몇몇의 교수들이 연세의 역사와 학풍을 연구하기 위해 “연세학풍사업단”을 만들어 연세의 역사와 창립 정신, 학문 발전과 학풍 등을 검토하고, 이를 규명하는데 중요한 근거가 되는 여러 자료들을 연세사료총서로 간행하였다. 이런 활동을 바탕으로 2017년 1월에 국학연구원 산하로 “연세학풍연구소”를 세우게 되었다. 이 자료도 그 일환으로 이루어졌다.
1차 에비슨 자료집으로는 한국에서 발행되던 영문 선교잡지에 실린 에비슨의 글과 그의 부인 및 자녀의 글을 모았다. 이 사업은 2015년에 국학연구원의 연구지원을 받아 시작하였다. 국학연구원은 이미 학교의 역사 및 정신과 관련된 「언더우드자료집」을 간행한 바 있으므로, 이 자료집은 구 후속 작업이 될 것이다. (책머리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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