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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폴리탄의 보석, 세계 최정상의 프리마돈나, 홍혜경 한국 가곡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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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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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태(1910생)의 「동심초」는 당나라 기생 설도(薛濤)의 5언 절구를 안서 김억이 번역한 것을 가사로 사용했다. 해방 직후 작곡되었고, 2절은 작곡가 자신이 덧붙여 "무어라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 한갓 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하는 애절한 후렴만 반복하게 했다. 동심초(同心草)는 특정 식물의 이름이 아니고 동심결(同心結)을 맺는 풀을 말한다. 홍혜경은 이루지 못한 사랑의 애석함을 풀잎을 묶으며 달래려는 설도의 속절없는 마음을 절절히 풀어낸다.
김말봉이 가사를 쓴 금수현(1919∼92)의 「그네」는 해방 이듬해인 1946년 작곡되었다. 전통적인 리듬과 음수율에, 상승 음형과 하강 음형을 번갈아 가며 그네의 움직임을 선율로 표현한, 짧고 운치 있는 곡이다. 1932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난 장일남은 김순남에게 작곡을 배운 순수 국내파 음악인이다. 여기 실린 「기다리는 마음」(김민부 작사)은 6·25 사변 중에 작곡한 작품으로 1962년 작곡한 「비목」과 함께 작곡가의 대표작이다. 토속적인 선율에 고독한 심정을 담아 부른 쓸쓸한 곡이다. 홍혜경의 외조부는 한국 장로교외의 설립에 참여한 목회자로 그녀는 어려서부터 어머니가 연주하는 풍금 소리를 통해 음악을 접했다. 이토록 교회 음악이 우리 양악 발전에 미친 영향은 지대했다. 작곡가 윤용하(1922∼65)도 정규 음악 교육을 받은 적은 없지만,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일찍이 교회 음악에 눈을 떠서 음악 교사로 교편을 잡았다. 동요 「나무잎배」로 유명한 그는 부산 피난 중이던 1952년 박화목의 시를 가사로 「보리밭」을 작곡했다. 저녁놀 지는 보리밭의 풍경이 님을 그리는 마음과 어우러져 애틋한 여운을 자아낸다. 「명태」(1952)와 「떠나가는 배」(1953)로 널리 알려진 변훈(1926생)은 외교관이 본업이지만 호방하고 남성적인 작곡풍으로 한국 가곡사에서도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님 실은 배를 떠나보내는 야속하고 속절없는 애슬픔이 진중한 분위기와 맞물려 한을 풀어낸다. 변훈이 남성적이라면 그 반대편에 서 있는 작곡가가 김순애이다. 김순애는 1920년 황해도 안악에서 태어나 이화여전을 나왔고, 해방 후에 이스트먼 음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귀국해 모교에서 많은 후학을 길러냈다. 「그대 있음에」는 수많은 세월 동안 한이라는 정서를 가슴에 품고 살아온 우리 여인네의 마음을 대변하는 곡으로 홍혜경이 어머니로부터 고스란히 물려받은 심정을 들을 수 있다. 「선구자」의 조두남(1912∼84)은 평양 숭실전문학교에서 음악을 공부하고 해방 전까지는 만주에서 활동했다. 해방 후 귀국했으나 곧 6·25 사변이 일어나 마산에 정착하여 작곡에 몰두한다. 1958년에 작곡한 「산촌」은 민요풍의 흥겨운 노래로 수확을 앞둔 농촌의 풍요로움과 부산함을 시각적으로나 청각적으로 정겹게 포착했다. 겨울 날 자연의 풍광을 바라보며 고향을 떠올리는 「고향의 노래」(1967)는 시각적인 감수성이 짙게 투영된 작품이다. 이수인(1939생)은 오랫동안 KBS 어린이 합창단을 이끌며 동요와 가곡 작곡·보급에 힘써 왔다. 북녘을 날아가는 기러기를 쳐다보며 고향집 싸리울에 쌓인 함박눈 소리를 회상하는 마음은 홍혜경이나 우리 같은 한국인이 아니면 이해하기 힘든 내용이다. 음반의 처음과 마지막에서 들을 수 있는 곡은 가지 못하는 북녘 산천에 대한 그리움을 읊은 작품이다. 최영섭(1929생)의 「그리운 금강산」(1972)은 가장 애창되는 가곡 중 하나로 수려한 금강산의 존재를 민족의 혼이 서린 '주제'로 부각한 규모 큰 곡이다. 박경규의 「나의 백두산아」 역시 민족의 얼이 서린 천지를 신화와 한의 고향으로 예찬한 곡이다. 통일을 염원하는 민요조의 호흡이 긴 여운을 남긴다. 성악곡의 지휘에 남다른 실력을 보여온 김덕기와 파리 앙상블 오케스트라의 호흡은 자연과 사랑에 대한 이 예찬에 가치를 더했다. 외국 성악가들이 내한 공연을 가질 때 간혹 우리 가곡을 부르는 경우가 있다. 서비스 차원이기도 하지만 일단 몇 곡을 불러보고 난 후에는 "아니 이렇게 아름다운 노래가 있었나" 하고 감탄해 마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그리운 금강산」, 「동심초」 등을 어색한 발음으로 들으며, '리트'나, '칸초네'가 아닌 '한국 가곡'이 세계화 될 수 있는 날이 머지않아 반드시 오리라고 생각했다. 버진 클래식과 새로 계약을 맺은 홍혜경은 마침내 우리의 예상이 실현되는 하나의 시금석을 깔아 놓았다. 더 나아가서 한국산 '오베르뉴의 노래'를 자신의 레퍼토리에 추가할 성악가들이 늘어날 것임을 이 음반은 확인시켜 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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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라노 홍혜경의 가고파라, 내 고향, 내 사랑, 내 어린 시절!
알버트 슈바이처는 프랑스와 독일의 접경인 알자스의 스트라스부르에서 태어난 까닭에 독어와 불어에 모두 능통했지만, 평생 "모국어는 하나이다"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아무리 여러 나라말을 능숙하게 구사한다고 해도 부엌에서 사용하는 가재도구 따위를 얘기할 때 떠오르는 말이 진짜 자신의 모국어라는 것이 슈바이처의 생각이었다.
서양 여러 나라의 노래를 들으며 흥에 겨워 휘파람을 불고 애틋한 감동의 눈물을 흘릴 때가 많다. 하지만 아무리 그 언어에 밝다고 해도 외국인으로서 그 말이 전하는 언어의 핵심에 도달하기란 쉽지 않다. 부엌에서 '국자'나 '집게' 같은 말이 떠오르듯 '저녁놀', '함박눈', '옥색 치마' 등 너무도 자연스럽게 가슴을 열어 젖히는 시어가 들어 있는 우리 '가곡'이야말로 우리가 진정 모국의 음악 언어를 체험할 수 있는 곳이리라. 이는 서양인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일본이나 중국과는 다른 우리만의 고유한 감수성을 이해하는 데에 우리 가곡은 좋은 길잡이가 된다. 예를 들어 수선화는 그리스 신화에서 자아도취의 미소년을 상징하지만 이 음반에 들어 있는 김동진의 곡에서는 사랑하는 여인의 순수하고 청초한 모습을 대변한다. 열여섯 살에 미국에 건너가 공부하고 활동하기 시작한 소프라노 홍혜경 역시 모국어와 우리 정서에 대한 사랑이 절절함을 이 음반을 통해 느낄 수 있다. 그녀는 음악적 표현을 위해 가사의 의미를 포기하거나, 가사의 의미를 포장하기 위해 음악을 과장하지 않는다. 시와 노래를 따로 떼지 않고 하나로 묶어 자연과 서정, 의지와 사랑을 표현한다. 발성은 서양 음악에서 온 것이지만, 발음과 억양은 우리 시어의 의미를 실어 나르는데 어김이 없다. 홍혜경은 「투란도트」의 류, 「라보엠」의 미미, 「파우스트」의 마르가레트 같은 서정적인 역에서 특히 실력을 인정 받았듯이, 한국 가곡의 정서를 고혹적인 음성에 실어 나르는 데 전혀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그녀가 이 음반에 담은 열 여섯 편의 가곡은 일제 시대 이래 우리 양악이 걸어온 성악곡의 정수들이다. 양악 1세대인 홍난파(1897∼1941)에서 해방 후 세대인 박경규의 작품까지 모두 우리가 사랑하고 세계에 자랑스럽게 내놓아 마땅한 노래이다. 시인 이은상(1903∼82)과 홍난파의 관계는 슈베르트와 빌헬름 뮐러나 슈만과 하이네가 맺은 인연과 같다. 「고향생각」, 「그리움」, 「금강에 살으리랏다」, 「장안사」, 「성불사의 밤」 등이 두 사람의 교감으로 작곡되었다. 여기 실린 「사랑」은 1933년 난파가 미국 유학 후 돌아와 연악회에서 펴낸 「조선가요작곡집」 제1집에 수록된, 역시 이은상의 시에 붙인 열여섯 곡 중 하나이다. 전통적인 3·4·4·4조의 음수율로, 여인의 사랑의 갈망을 담아 작곡한 아름다운 유절 가곡이다. 독일 유학 1세대인 채동선(1901∼53)의 「그리워」 또한 1933년에 작곡되었다. 원래 정지용의 시 「고향」에 붙인 곡이지만 분단 이후 이은상의 「그리워」로 가사만 바꾸어 다시 냈고, 이후에는 박화목의 「망향」에도 이 선율을 붙였으나 이은상의 것이 가장 유명하다. 같은 해 같은 시인의 가사에 곡을 붙인 김동진(1913생)의 「가고파」는 '한국 가곡의 왕'이라 할 수 있는 그의 처녀작인 동시에 대표작이다. 평남 안주 출신인 김동진은 평양 숭실전문학교 재학 시절 스승인 양주동의 권고로 이은상의 시에 곡을 붙였다. 고향 산천과 친구들, 돌아갈 수 없는 시절에 대한 애틋함이 민족의 정서를 대변한다. 김동진이 1941년 김동명의 시에 붙인 「수선화」는 "그대는 신의 창작집 속에서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불멸의 소곡"이라는 가사에서 보듯 남성적인 사랑의 고백이 물씬하게 풍기는 곡이다. 이듬해 작곡된 「신아리랑」은 양명문의 시를 가사로 썼다. 아리랑이라는 전통 음악이 담고 있는 민족 정서를 양악 어법으로 다시 풀어낸 가작으로, 중간에는 민요의 원곡조를 그대로 살려 자연스럽게 엮어 뛰어난 기법을 보여준다. 역시 김동명의 시에 곡을 붙인 「내 마음」은 1973년 세광출판사가 펴낸 '동명 가곡집'에 들어 있다. 홍혜경은 연인을 향한 마음을 호수와 촛불에, 나그네와 낙엽에 비유하면서 아낌없는 사랑으로 부서지고, 태우고, 밤새고, 떠나가는 상념을 감동적으로 표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