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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소개

메트로폴리탄의 보석, 세계 최정상의 프리마돈나, 홍혜경 한국 가곡집

디스크

CD 1

  • 01 그리운 금강산
  • 02 보리밭
  • 03 그리워
  • 04 수선화
  • 05 가고파
  • 06 신아리랑
  • 07 산촌
  • 08 고향의 노래
  • 09 그네
  • 10 내 마음
  • 11 그대 있음에
  • 12 사랑
  • 13 떠나가는 배
  • 14 기다리는 마음
  • 15 동심초
  • 16 나의 백두산아

아티스트 소개 1

연주홍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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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prano : 홍혜경
Ensemble Orchestral de Paris
conductor : 김덕기
soprano : 홍혜경
홍혜경은 한국의 강원도 출생으로, 그녀의 집안은 음악을 사랑하는 가정이었고, 그녀 또한 어릴 적부터 노래에 대한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이 앨범은 세계 여러 나라 사람과 고국의 노래를 함께 나누고 싶다는 그녀의 오랜 꿈을 담은 것이다. 본 음반에 수록된 대부분의 가곡들은 20세기의 전반기에 쓰여진 것이며, 또한 여기에 상당수의 작곡가들은 서구 문화에 이미 영향을 받거나 그 중심에 있었던 일본이나 미국에서 음악적인 교육을 받았고, 그들이 고국에 소개했던 기독교 신앙과 찬송가들의 영향을 많이 받은 사람들이었다.
홍혜경의 집안은 독실한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의 외할아버지는 광주에서 창립된 대한 장로교회의 설립자이기도 했다. 한국에 처음으로 들어온 한 선교사는 그의 할아버지에게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오르간을 선물했고, 홍혜경의 어머니는 이 악기를 독학으로 연습해 연주했다. 홍혜경은 이러한 어머니의 음악적인 재능과 관심이 그녀의 뱃 속에 있을 때부터 자신에게 영향을 주었고, 또한 어머니가 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치는 동안 할아버지의 오르간을 가지고 놀면서 음악에 대한 사랑을 키워 왔다고 믿고 있다. 어머니는 홍혜경이 말을 배우기 이전부터 노래를 부르게 했다고 한다.
그녀는 이미 어린 시절부터 성악적인 재능을 보였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유학을 권유 받게 된다. 16세에 미국으로 건너와 뉴욕에 있는 줄리어드 학교에 장학생으로 입학하였으며, 곧 촉망 받는 아티스트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녀는 1982년 메트로폴리탄 국립 오페라 오디션에서 우승한 뒤, 1984년의 메트로폴리탄 데뷔 무대는 엄청난 반응을 이끌어 내었다. 그 이후 메트의 매 시즌마다 20개 작품에서 주연을 맡으며 200회 이상의 공연을 해오고 있다. 그녀는 밀라노의 라 스칼라, 파리 오페라, 빈 국립 오페라, 뮌헨의 바이에른 국립 오페라, 샌프란시스코 오페라, 시카고의 리릭 오페라 등을 포함한 수많은 주요 오페라 무대에서 최고 수준의 오페라 작품을 소화해 내고 있다.
홍혜경의 공연은 매시즌 세계 최고 수준의 오케스트라, 지휘자와 함께 언제나 강한 인상을 심어 주었다. 1998년 뉴욕의 앨리스 툴리 홀에서 있었던 그녀의 첫번째 리사이틀 무대는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며 전석 매진되었다. 같은 해 그녀는 김대중 전대통령의 방미에 맞추어 클린턴과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특별 초청을 받고 백악관에서 리사이틀을 가졌다. 그 후 다시 워싱턴으로 돌아온 홍혜경은 케네디 센터의 스프링 갈라 콘서트에 출연, 북미 데뷔 공연을 진행 중이던 안드레아 보첼리와 듀엣 연주를 가졌다.
홍혜경은 2001년 리처드 턱커 갈라 콘서트를 포함하여 뉴욕의 에이버리 피셔 홀에서 있었던 실황 공연과 메트로폴리탄의 최근 발표작인 '돈 조반니', 그리고 전세계적으로 10억 명 이상이 시청한 2002년 한, 일 월드컵 조 추첨 행사에 특별 출연하는 등 TV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돋보여주고 있다.
1995년 여름, 그녀는 광복 50주년을 기념하여 여러 콘서트와 리사이틀을 연 일이 있으며, 여기에는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와 함께 서울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가진 2차례의 갈라 콘서트가 포함되어 있다. 이 공연은 TV 중계를 포함하여 음반과 레이저 디스크, 그리고 비디오로도 특별히 제작되었다.
홍혜경의 첫 독집 음반은 1998년 발매되었고, 이듬해 벨리니의 '캐플릿가와 몬테규가'와 메조 소프라노 제니퍼 라모어와 함께 노래한 오페라 듀엣 음반도 발표되었다. 2000년에 들어 아틀란타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오르프의 '카르미나 부라나' 녹음을 진행하였고, 2002년에는 뉴욕 시티 보이시스 오브 어센션 코러스와 함께 성가곡집을 만들기도 했다. 그녀는 바그너의 '라인의 황금'에서 보글린데로 레코딩 데뷔를 했다. 이 녹음은 메트의 거장 지휘자인 제임스 레바인이 지휘를 맡은 것이다. 레바인은 홍혜경이 여사제로 출연한 베르디의 '아이다'도 또한 지휘한 일이 있다.
이 앨범은 홍혜경의 첫번째 한국 가곡집이며 음악 활동과 경력의 정점에서 고국의 독특한 여운을 지닌 노래인 한국 가곡에서 그녀의 남다른 재능과 음악적 안목을 이끌어낸 것이다. 그녀는 이 곡들이 멜로디 뿐 아니라 가사를 특히 강조하고 전달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점을 놓치지 않고 있다. 수록 곡의 가사는 사랑, 숭고함, 조국에 대한 열정과 향수 등의 보편적인 개념을 노래하고 있으며, 작곡된 시대의 분위기와 배경을 그대로 투영해 내고 있다.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대부분의 삶을 외국에서 살아온 한 예술가로서, 이 곡들은 저에게 엄청난, 아주 특별한 의미로 다가옵니다. 그것은 이 레코딩이 제가 어릴 적 불렀던 조국의 음악을 향한 커다란 회귀선 상에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하고 홍혜경은 솔직히 털어 넣고 있다.

품목정보

발매일
2014년 06월 12일
시간/무게/크기
110g | 크기확인중
KC인증

제작사 리뷰

김성태(1910생)의 「동심초」는 당나라 기생 설도(薛濤)의 5언 절구를 안서 김억이 번역한 것을 가사로 사용했다. 해방 직후 작곡되었고, 2절은 작곡가 자신이 덧붙여 "무어라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 한갓 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하는 애절한 후렴만 반복하게 했다. 동심초(同心草)는 특정 식물의 이름이 아니고 동심결(同心結)을 맺는 풀을 말한다. 홍혜경은 이루지 못한 사랑의 애석함을 풀잎을 묶으며 달래려는 설도의 속절없는 마음을 절절히 풀어낸다.
김말봉이 가사를 쓴 금수현(1919∼92)의 「그네」는 해방 이듬해인 1946년 작곡되었다. 전통적인 리듬과 음수율에, 상승 음형과 하강 음형을 번갈아 가며 그네의 움직임을 선율로 표현한, 짧고 운치 있는 곡이다.
1932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난 장일남은 김순남에게 작곡을 배운 순수 국내파 음악인이다. 여기 실린 「기다리는 마음」(김민부 작사)은 6·25 사변 중에 작곡한 작품으로 1962년 작곡한 「비목」과 함께 작곡가의 대표작이다. 토속적인 선율에 고독한 심정을 담아 부른 쓸쓸한 곡이다.
홍혜경의 외조부는 한국 장로교외의 설립에 참여한 목회자로 그녀는 어려서부터 어머니가 연주하는 풍금 소리를 통해 음악을 접했다. 이토록 교회 음악이 우리 양악 발전에 미친 영향은 지대했다. 작곡가 윤용하(1922∼65)도 정규 음악 교육을 받은 적은 없지만,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일찍이 교회 음악에 눈을 떠서 음악 교사로 교편을 잡았다. 동요 「나무잎배」로 유명한 그는 부산 피난 중이던 1952년 박화목의 시를 가사로 「보리밭」을 작곡했다. 저녁놀 지는 보리밭의 풍경이 님을 그리는 마음과 어우러져 애틋한 여운을 자아낸다.
「명태」(1952)와 「떠나가는 배」(1953)로 널리 알려진 변훈(1926생)은 외교관이 본업이지만 호방하고 남성적인 작곡풍으로 한국 가곡사에서도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님 실은 배를 떠나보내는 야속하고 속절없는 애슬픔이 진중한 분위기와 맞물려 한을 풀어낸다. 변훈이 남성적이라면 그 반대편에 서 있는 작곡가가 김순애이다. 김순애는 1920년 황해도 안악에서 태어나 이화여전을 나왔고, 해방 후에 이스트먼 음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귀국해 모교에서 많은 후학을 길러냈다. 「그대 있음에」는 수많은 세월 동안 한이라는 정서를 가슴에 품고 살아온 우리 여인네의 마음을 대변하는 곡으로 홍혜경이 어머니로부터 고스란히 물려받은 심정을 들을 수 있다.
「선구자」의 조두남(1912∼84)은 평양 숭실전문학교에서 음악을 공부하고 해방 전까지는 만주에서 활동했다. 해방 후 귀국했으나 곧 6·25 사변이 일어나 마산에 정착하여 작곡에 몰두한다. 1958년에 작곡한 「산촌」은 민요풍의 흥겨운 노래로 수확을 앞둔 농촌의 풍요로움과 부산함을 시각적으로나 청각적으로 정겹게 포착했다.
겨울 날 자연의 풍광을 바라보며 고향을 떠올리는 「고향의 노래」(1967)는 시각적인 감수성이 짙게 투영된 작품이다. 이수인(1939생)은 오랫동안 KBS 어린이 합창단을 이끌며 동요와 가곡 작곡·보급에 힘써 왔다. 북녘을 날아가는 기러기를 쳐다보며 고향집 싸리울에 쌓인 함박눈 소리를 회상하는 마음은 홍혜경이나 우리 같은 한국인이 아니면 이해하기 힘든 내용이다.
음반의 처음과 마지막에서 들을 수 있는 곡은 가지 못하는 북녘 산천에 대한 그리움을 읊은 작품이다. 최영섭(1929생)의 「그리운 금강산」(1972)은 가장 애창되는 가곡 중 하나로 수려한 금강산의 존재를 민족의 혼이 서린 '주제'로 부각한 규모 큰 곡이다. 박경규의 「나의 백두산아」 역시 민족의 얼이 서린 천지를 신화와 한의 고향으로 예찬한 곡이다. 통일을 염원하는 민요조의 호흡이 긴 여운을 남긴다. 성악곡의 지휘에 남다른 실력을 보여온 김덕기와 파리 앙상블 오케스트라의 호흡은 자연과 사랑에 대한 이 예찬에 가치를 더했다.
외국 성악가들이 내한 공연을 가질 때 간혹 우리 가곡을 부르는 경우가 있다. 서비스 차원이기도 하지만 일단 몇 곡을 불러보고 난 후에는 "아니 이렇게 아름다운 노래가 있었나" 하고 감탄해 마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그리운 금강산」, 「동심초」 등을 어색한 발음으로 들으며, '리트'나, '칸초네'가 아닌 '한국 가곡'이 세계화 될 수 있는 날이 머지않아 반드시 오리라고 생각했다. 버진 클래식과 새로 계약을 맺은 홍혜경은 마침내 우리의 예상이 실현되는 하나의 시금석을 깔아 놓았다. 더 나아가서 한국산 '오베르뉴의 노래'를 자신의 레퍼토리에 추가할 성악가들이 늘어날 것임을 이 음반은 확인시켜 준다
소프라노 홍혜경의 가고파라, 내 고향, 내 사랑, 내 어린 시절!
알버트 슈바이처는 프랑스와 독일의 접경인 알자스의 스트라스부르에서 태어난 까닭에 독어와 불어에 모두 능통했지만, 평생 "모국어는 하나이다"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아무리 여러 나라말을 능숙하게 구사한다고 해도 부엌에서 사용하는 가재도구 따위를 얘기할 때 떠오르는 말이 진짜 자신의 모국어라는 것이 슈바이처의 생각이었다.
서양 여러 나라의 노래를 들으며 흥에 겨워 휘파람을 불고 애틋한 감동의 눈물을 흘릴 때가 많다. 하지만 아무리 그 언어에 밝다고 해도 외국인으로서 그 말이 전하는 언어의 핵심에 도달하기란 쉽지 않다. 부엌에서 '국자'나 '집게' 같은 말이 떠오르듯 '저녁놀', '함박눈', '옥색 치마' 등 너무도 자연스럽게 가슴을 열어 젖히는 시어가 들어 있는 우리 '가곡'이야말로 우리가 진정 모국의 음악 언어를 체험할 수 있는 곳이리라.
이는 서양인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일본이나 중국과는 다른 우리만의 고유한 감수성을 이해하는 데에 우리 가곡은 좋은 길잡이가 된다. 예를 들어 수선화는 그리스 신화에서 자아도취의 미소년을 상징하지만 이 음반에 들어 있는 김동진의 곡에서는 사랑하는 여인의 순수하고 청초한 모습을 대변한다.
열여섯 살에 미국에 건너가 공부하고 활동하기 시작한 소프라노 홍혜경 역시 모국어와 우리 정서에 대한 사랑이 절절함을 이 음반을 통해 느낄 수 있다. 그녀는 음악적 표현을 위해 가사의 의미를 포기하거나, 가사의 의미를 포장하기 위해 음악을 과장하지 않는다. 시와 노래를 따로 떼지 않고 하나로 묶어 자연과 서정, 의지와 사랑을 표현한다. 발성은 서양 음악에서 온 것이지만, 발음과 억양은 우리 시어의 의미를 실어 나르는데 어김이 없다.
홍혜경은 「투란도트」의 류, 「라보엠」의 미미, 「파우스트」의 마르가레트 같은 서정적인 역에서 특히 실력을 인정 받았듯이, 한국 가곡의 정서를 고혹적인 음성에 실어 나르는 데 전혀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그녀가 이 음반에 담은 열 여섯 편의 가곡은 일제 시대 이래 우리 양악이 걸어온 성악곡의 정수들이다. 양악 1세대인 홍난파(1897∼1941)에서 해방 후 세대인 박경규의 작품까지 모두 우리가 사랑하고 세계에 자랑스럽게 내놓아 마땅한 노래이다.
시인 이은상(1903∼82)과 홍난파의 관계는 슈베르트와 빌헬름 뮐러나 슈만과 하이네가 맺은 인연과 같다. 「고향생각」, 「그리움」, 「금강에 살으리랏다」, 「장안사」, 「성불사의 밤」 등이 두 사람의 교감으로 작곡되었다. 여기 실린 「사랑」은 1933년 난파가 미국 유학 후 돌아와 연악회에서 펴낸 「조선가요작곡집」 제1집에 수록된, 역시 이은상의 시에 붙인 열여섯 곡 중 하나이다. 전통적인 3·4·4·4조의 음수율로, 여인의 사랑의 갈망을 담아 작곡한 아름다운 유절 가곡이다.
독일 유학 1세대인 채동선(1901∼53)의 「그리워」 또한 1933년에 작곡되었다. 원래 정지용의 시 「고향」에 붙인 곡이지만 분단 이후 이은상의 「그리워」로 가사만 바꾸어 다시 냈고, 이후에는 박화목의 「망향」에도 이 선율을 붙였으나 이은상의 것이 가장 유명하다. 같은 해 같은 시인의 가사에 곡을 붙인 김동진(1913생)의 「가고파」는 '한국 가곡의 왕'이라 할 수 있는 그의 처녀작인 동시에 대표작이다. 평남 안주 출신인 김동진은 평양 숭실전문학교 재학 시절 스승인 양주동의 권고로 이은상의 시에 곡을 붙였다. 고향 산천과 친구들, 돌아갈 수 없는 시절에 대한 애틋함이 민족의 정서를 대변한다.
김동진이 1941년 김동명의 시에 붙인 「수선화」는 "그대는 신의 창작집 속에서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불멸의 소곡"이라는 가사에서 보듯 남성적인 사랑의 고백이 물씬하게 풍기는 곡이다. 이듬해 작곡된 「신아리랑」은 양명문의 시를 가사로 썼다. 아리랑이라는 전통 음악이 담고 있는 민족 정서를 양악 어법으로 다시 풀어낸 가작으로, 중간에는 민요의 원곡조를 그대로 살려 자연스럽게 엮어 뛰어난 기법을 보여준다. 역시 김동명의 시에 곡을 붙인 「내 마음」은 1973년 세광출판사가 펴낸 '동명 가곡집'에 들어 있다. 홍혜경은 연인을 향한 마음을 호수와 촛불에, 나그네와 낙엽에 비유하면서 아낌없는 사랑으로 부서지고, 태우고, 밤새고, 떠나가는 상념을 감동적으로 표현한다.

추천평

선명회 합창단의 일원으로 세계를 돌며 여행하던 어린 시절, 노무현 대통령의 방미 기념 음악회에서, 백악관의 가장 큰 겨울 행사인 크리스마스 트리 점등식에서도 늘 어김없이 한국 가곡을 고집했던 홍혜경의 강하고 아름다운 의지가 실로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 반주를 맡았던 파리 앙상블 오케스트라 단원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홍혜경이 직접 나누어주는 영문 가사를 읽으며 마음으로 같이 호흡했고 바쁜 일정을 쪼개어 프로젝트에 마지막으로 합류한 지휘자 김덕기도 한 편의 서사시를 녹음하는 기분으로 녹음을 진행했다고 한다.

전 세계 동시 release되는 작품답게 홍혜경의 EMI 데뷔 앨범은 한국어, 영어, 불어의 3개 국어로 해설과 가사가 수록되어 있으며 홍혜경 본인이 직접 설명하는 간단한 작품 노트가 담겨있다(인터내셔널 버전은 영어, 불어, 독어로 제작된다). 지난 3월 13일부터 17일까지 서울대학교 교수인 김덕기씨가 지휘하는 파리 앙상블 오케스트라와 프랑스 파리의 퐁피두 센터에 있는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홀에서 녹음했으며,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홀은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완벽한 최첨단 시설을 보유한 녹음전용 홀이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작곡자이자 지휘자인 피에르 불레즈가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이름을 따서 설립했다.
"미국에서 성인기를 보낸 한국 아티스트로서, 우리 가곡들은 너무나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한국으로, 나의 어린시절로, 나의 가족으로, 그리고 오늘날 나를 있게 한 삶의 초기로… 이 노래들을 부를 때, 저는 수 많은 한국인들이 느끼게 되는 똑같은 감정과 열정을 느낍니다." 오랜 기다림에 대한 보답이라 할까. 그녀는 성악 강국 EMI로 전속사를 옮기면서 한국 가곡집이라는 용기 있는 선택을 감행했다. 지난 20년간 기회가 닿을 때마다 한국 가곡을 널리 알리는데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그녀의 염원이 EMI 데뷔라는 시점에 맞추어 이루어진 것이다. 홍혜경의 음반은 EMI의 또 다른 클래식 레이블 'Virgin Classics'와 엄격한 인터내셔널 계약으로 이루어졌고, 이의 배경에는 유럽에 비해 한국 내에서 상대적으로 대중적인 인지도가 낮은 '버진 클래식'의 이름 알리기에 홍혜경이라는 빅스타를 이용하려는 음반사의 깜찍한 계산이 담겨있었다(피아니스트 백건우가 바로 Virgin Classics 출신이다). 특이한 것은 메이저 레이블과 계약을 맺는 대다수의 연주자들이 판매에 불리한 조건을 만들지 않기 위해 첫 번째 음반은 음반사와 적절하게 타협하는 성격의 대중적 음반을 내는 것에 비해 홍혜경의 의지는 참으로 남달랐다는 것이다. 바로 제목만 들어도 친근한 16곡의 아름다운 한국 가곡집을 내기로 한 것이다. "한국 가곡처럼 아름다운 노래가 없어요. 제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입니다." 홍혜경의 의지는 확고했고 EMI 본사 또한 그녀의 선택을 존중해 주었다. 남은 것은 넘어야 할 많은 험한 고개들 뿐.

"지휘와 편곡, 오케스트라까지 모두 한국 사람이 맡았으면 했어요. 여건상 지휘를 김덕기씨가 맡아주는 것으로 그쳤지만 다행히 모든 것이 만족스럽습니다." 최종 계약이 성사된 2002년 여름부터 녹음이 진행된 2003년 봄까지 이 한편의 거대한 '애국심 프로젝트'는 조용하게 진행이 되었다. 뉴욕의 홍혜경씨는 레코딩 리스트를 뽑고 한국의 EMI에서는 좋은 편곡자를 찾는 역할을 맡았으며 프랑스 EMI-Virgin Classics에서는 레코딩 데이터를 결정하고 지휘자와 오케스트라를 물색하는 작업이, 아울러 한국의 매니지먼트인 영 예술기획에서는 전국적인 리사이틀 투어 스케줄이 차근차근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2001년 5월의 첫 번째 목요일 Virgin Classics의 사장 알랭 랑세롱(Alain Lanceron)에게 온 "친애하는 EMI Korea 여러분, 한국 출신의 소프라노 홍혜경을 아십니까?"라고 시작되는 한 통의 이메일이 2년하고도 4개월의 작업 끝에 이렇게 제대로 한 장의 훌륭한 결과물로 나타난 것이다.
정경화를 필두로 장영주, 장한나, 안 트리오, 백혜선, 양성원 까지 기악 각 분야의 내로라 하는 국제적인 스타급 연주자들의 산실인 EMI CLASSICS. 음반 비즈니스가 불법 복제와 다운로드의 횡행으로 위축 일변도를 걷고 있는 이때 EMI CLASSICS는 오히려 적극적인 마케팅과 홍보로 전년 대비 시장 점유율이 10% 증가하는 놀라운 기록을 수립하고 있다. 최근에는 사라 브라이트만을 필두로 막심, 더 플래닛, 이지 같은 21세기형 크로스오버 연주자들의 로스터를 크게 늘리면서 공히 클래식의 전방위적 레이블로 자리를 잡고 2002년 가을부터는 본격적으로 재즈 마켓에 뛰어들어 재즈 역사의 산 증인 블루노트와 캐피톨 재즈의 보급과 시장확보에 열을 올리며 뮤직 비즈니스의 다변화를 꿈꾸고 있다.

EMI International 매출 순위 6위로 본사의 의사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던 한국 지사는 단 하나 이루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으니 한국 출신의 소프라노를 보유하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이었다. 경쟁 레이블인 워너 클래식이나 유니버설 뮤직이 조수미나 신영옥 같은 대중적인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 소프라노의 앨범들로 손쉽게 매출고를 있을 때 EMI는 조용히 그러나 열의를 가지고 진정한 한 사람의 디바에게 러브 콜을 보내고 있었으니 바로 그녀가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 소프라노 홍혜경이다. (이미 공연기획사에서 배포한 자료에 상세하게 명기되어 있으므로 그녀의 상세한 이력은 생략한다.)

1995년 플라시도 도밍고와의 올림픽 주경기장 공연, 2000년 LG Art Center개관 기념 공연으로 제니퍼 라모어와의 듀오 무대, 그리고 2001년 서울에서만 있었던 솔로 리사이틀… 그녀의 명성을 확인하고 싶은 클래식 초심자들과 매니아 팬들은 그저 조용히 그녀의 한국 공연을 기다리는 수 밖에 없었다. 그 사이사이에 팬들은 간간히 발표되는 음반을 통해서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홍혜경의 음악을 접할 수 밖에 없었다. 일년에도 여러 번씩 공연과 내한 프로모션을 통해서 보고 듣고 만날 수 있는 옆집 언니처럼 편한 소프라노가 아니라 아주 먼 곳에 있는 알려지지 않은 신비의 그녀였을 뿐이었다.

"아이들이 어려서 떨어져 지내기가 힘들었어요." 자신의 영원한 모국, 한국을 자주 찾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을 슬그머니 털어 놓았더니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그녀가 답한다. 까다로운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이하 메트)에서의 20년 롱런과 맡는 배역마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비평가들의 찬사 뒷면에는 홍혜경을 든든히 지키고 있는 가정이 있었던 것이다. 매년 9월부터 그 다음해 5-6월까지 이어지는 뉴욕 메트의 바쁜 시즌 일정이지만, 홍혜경의 삶은 늘 가족을 중심으로 움직여왔다. 메트 데뷔 이후, 홍혜경에게 손짓하는 세계 무대가 많이 있었지만, 가족과 떨어져있는 시간이 너무 많다고 판단되면 과감히 출연요청을 거절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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