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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 뒤엉킨 역사의 실타래를 풀며
1. 새로운 세계를 연 카를 대제의 황제 대관식 800년 12월 25일, 로마 2. 교황과 황제 간 충돌의 싹, 수트리 사건 1046년 12월 20일, 수트리 3. 종교개혁을 부른 마르틴 루터 사건 1521년 4월 17일, 보름스 4. 신교 부흥의 시작, 무적함대의 패배 1588년 8월 8일, 영불해협 5. 프랑스 혁명의 도화선, 미라보 백작의 연설 1789년 6월 23일, 베르사유 6. 독일제국을 탄생시킨 비스마르크의 등장 1862년 9월 22일, 바벨스베르크 7.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처 암살 사건 1914년 6월 28일, 사라예보 8. 사회주의의 꿈을 현실로 만든 러시아 혁명 1917년 11월 7일, 페트로그라드 9. 20세기를 피로 물들인 히틀러의 수상 등극 1932년 11월 30일, 베를린 10. 유럽공동체로 가는 길, 로마조약 1957년 3월 25일, 로마 옮긴이의 말 : 역사는 미래를 창조한다 서양사 주요 연표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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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상황은 무적함대에게 불리했다. 긴 대기 시간으로 영국인들은 또 한 번 기습 공격의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1588년 8월 7일 과 8일 밤 사이 뒨키르헨에서 에스파냐 군인들이 함대에 승선하고 있는 동안, 영국은 8명의 방화범을 무적함대로 보냈다. 이때의 방화범이란 무적함대를 불구덩이에 쑤셔넣기 위해 돌진하는 불타는 배들을 말한다. 해상전에서 때때로 이용하던 그 전술은, 목재로 배를 만들던 시대에 매우 성공적인 전술이었으며 그만큼 적에게 두려움을 주었다. 방화범 전술은 역시 효과가 있었다. 무적함대는 갈피를 못잡고 우왕좌왕하다 급히 닻을 올리고 열린 해상으로 도망갔다. 이런 혼란의 와중에 함대는 서로 충돌했고 강한 폭풍이 나머지 일을 마무리지었다. 영국의 전함을 이런 상황을 이용했다. 그들은 폭풍에 밀려 속절없이 남쪽으로 표류하는 에스파냐의 함대들을 공격했다. 폭풍과 영국인들은 무적함대를 연 이틀 끈질기게 괴롭혔다. 마침내 무적함대가 프랑스의 칼레스 항구에 모였다. 잃은 함대의 수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남은 배 중 대부분이 상당히 파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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