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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무거운 가방
양장
이상림 저
생각의나무 2003.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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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미아
다섯 중 하나/ 캘빈 클라인 다이어리/ 아주 무거운 가방/ 더 그리스

미호
낯선 동네/ 꿈/ 아홉 시 뉴스를 보는 시간

성운
다른 사람의 결혼식/ 한 여름의 바/ 타이밍 혹은 운명

환기
디어 파크/ 생의 절정

미아
지극히 개인적인 핸디캡/ 형부의 최신형 볼보/ 연약한 것들/ 그렇지만 나쁘지 않다

저자 소개

저자 이상림
서울에서 출생하여 성신여대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소설부문에 「색맹시대」가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했고, 단편소설 「달아나는 말」, 「봄날은 간다」, 「원」 등을 발표한 바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3년 08월 27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231쪽 | 416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84982697

책 속으로

어렸을 때 미아는 자신이 언제나 광장에 홀로 서 있다고 느꼈다. 광장엔 너무나 많은 종류의 사람들이 너무나 바쁘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 복잡하고 시끄러운 광장 한 가운데서 그녀만이 할 일을 잊은 채 막막하게 서 있는 것 같은 기분, 그게 바로 생에 대한 그녀의 단적인 이미지였다. 하지만 스무 살에 러브호텔의 복도를 걸어가면서 미아는 문득 생이 결코 광장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미아

어떤 때 그녀는 행복이란 별 게 아니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것은 조금씩 살이 찌는 것이라고 어느 영화에서 주인공이 말했다. 그녀는 그 영화를 보면서 울었다. 세상의 너무 많은 사람들 중에, 지구 저 끝에 살고 있는 어떤 여자도 지금의 그녀와 똑같은 저녁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하면, 문득 모르는 그녀가 아득하게 그리웠다. - 미호

섹스를 마치고 났을 때 상대의 존재가 완전히 잊혀지는 그런 순간. 그런 순간들의 고독을 차라리 즐기면서 살아온 게 아닐까? 자고 있는 미아를 보면서 성운은 이상한 착잡함을 느꼈다. 그녀에게 가까이 가는 자신에게 그는 겁이 났다. 누구에게도 상처받을 만큼의 감정은 주고 싶지 않다. 아침에 일어나 더러운 이불 속의 잠든 여자를 딱한 눈으로 봐야 하는 그런 감정은 싫다. 그는 가볍고 싶었다.- 성운

아버지나 사라, 어쩐지 두 사람 모두 자신과 똑같은 사람인 것만 같아 환기는 혼자 웃었다. 그들은 모두 자기 자신을 위해 잡념 없는 하루를 산다. 누구에게 자신을 호소하는 일 따윈 없다. 그렇지만 마찬가지로 누군가의 호소를 읽어내지도 못한다. 밤에 침대에 누우면 그들은 모두가 다 고독하다. - 환기

.

줄거리

전형적인 강남의 중산층 커플, 미아와 환기. 백화점 디스플레이어인 미아는 성운과 연애하고 있으나 남편 환기에 대해 일말의 미안함이나 불편함을 가지지 않는다. 전문직에 종사하고 경제적인 부족함 없이 살아오고 있는 미아. 그녀는 삼풍백화점으로 부모를 잃었다. 그녀는 삶이 더없이 무료함을 느끼고, 지겹고 무난한 일상에 나른해지고 말았다. 성운과 적절치 않은 관계를 맺어보지만 그녀가 원했던 소통에는 성공하지 못한다.
가난한 집안 출신으로 우아한 삶을 희구해 온 성운은 어려서부터 ‘살아낸다’는 저의 윤리를 되뇌어왔다. 무거운 세상에 한없이 가볍고 싶어 하는 무거운 청춘, 성운 결손가정 출신으로 어렸을 때 어머니를 무척 보고 싶었으나 볼 수 없었고 이제 가족이 필요 없는 나이가 되어버리자 어머니가 나타난다. 그는 가볍고 싶어서 수많은 여자를 전전하지만 그는 천근만근 무겁다. 그 자신도 진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는 부정하고 싶다.
환기. 그는 무난한 중산층의 남자다. 그가 미아와 관계를 맺은 것은 너무나 뻔하고 이미 정해져 버린 그 자신의 인생 법칙 위에 세워진 시도였다. 완벽한 그의 인생에서 미아의 존재는 처음부터 불안정성이었으므로 그는 미아의 모든 행위를 용납할 수 있다. 혹은 무시할 수 있다. 그러나 관계를 맺으면 어쩔 수 없는 책임과 의무를 느끼게 되는 타입인 그는 착잡하다. 그의 미국행은 착잡함의 결과이다. 그곳에서 시계에 맞추어 끊임없이 자신이 할 일을 해나가는 것으로 조금씩 자신을 회복해 간다.
미아의 언니 미호. 오랜전부터 부엌에 숨다시피 쪼그려 앉아 연달아 담배를 물어대는 주부. 이 끔찍한 가방은 눈물겹다. 그녀는 부모의 변칙적인 죽음으로 정신적인 질병에 시달린다. 그녀는 가학적인 남편의 굴 안으로 걸어 들어갔고 의지할 것 없는 이 세상으로부터 보호받기를 원했으나 그것은 그녀의 오판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그녀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온전하게 자신으로 복귀할 것을 꿈꾼다.
이 4명의 인물들은 다들 철저하게 이기적이다. 자기 본위가 아니고서는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들은 그렇게 버티며 이 지난한 세상을 지나간다.

출판사 리뷰

소통과 일탈의 엇갈린 명암, 건너가는 ‘법’에 대한 사유 혹은 명상
이 책은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다. 90년대 초반 등단한 동료들이 한국문학의 중추로 활발히 활동하는 가운데 작가는 무려 10년간 조용히 세상과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 긴 시간의 응시를 서사화한 이 소설은 충분한 발효기간과 사색의 찰기로 인해 그 말맛이 깊고도 아린 특산의 상품(上品)이 되었다. 통을 꿈꾸는 도회의 젊음, 상처와 그 상처에 대응하는 방식에 대해 담담하고 은근하게 말하는 작가는 이 작품으로 그간 다스려온 내면의 사유를 차분하게 드러내는 옹골진 결기를 보여준다.
중산층 혹은 여피족이라 부를 만한 도회적 생활과 정서를 영위하는 4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 소설의 구조는 미아라는 삶의 방향을 두리번거리는‘길 잃은 30대 여성’ 화자로부터 시작해 환기라는‘기억의 첨탑’에 사는 건조한 남성, 욕망과 소비의 황도를 ‘헤매는 남자’ 성운, 사로잡힌 운명과 그것으로부터의 탈주에 ‘미혹된 여자’ 미호를 지나, 다시 길을 잃었음을 명징하게 깨닫는 그로 인해 자신이 잃은 길 위에 서 있음을 긍정하는 미아로 되돌아온다. 이때 그들의 마음은 소실점을 모르는 가운데 산일하는 파편처럼 튕겨 흩뿌려지는 심심파적이며, 그들의 몸은 그 부려짐에 피곤해하는 무거운 가방이다.
이 소설에서 그려지는 21세기, 후기 소비산업사회의 시간은 지식 혹은 경험칙으로 무난히 살아낼 수는 있으나 그 연원과 깃들 곳은 마땅하게 주어지지 않으며, 그러한 세상에 대응하는 방식은 쉽사리 진퇴양난의 지경을 기웃거리게 한다. 물질의 소요 속에서 저만 따로 바닥으로 꺼지는 느낌, 수다한 독백과 번다한 방백들 속에서 침묵과 쓸쓸함마저 빼앗기는 과잉의 시간들. 이 소설에는 그와 같은 망실의 풍요 속에서 존재가, 관계가, 몸이, 시간이 아픈 여자와 그녀의 남자들이 등장한다. 그들이 수행하는 존재론으로서의 이탈(불륜) 혹은 불[火]의 윤리를 찾는 위험한 모험은 그 아슬아슬함 자체가 덕목이라 말하는 듯하다.
적절한 경제적 여력과 사회적 위치, 무난한 결혼을 소유한 미아는 오래 전부터 연애를 하고 싶다고 말해왔다. 그녀가 시도하는 연애라는 방식은 ‘쿨함’을 강조한다. “단순한 꿈을 꾼 단순한 침대에서 깨어나 단순한 재료로 만든 단순한 요리를 먹고 단순한 뉴스가 실린 신문만 골라 읽은 다음, 아주 단순한 사람을 만나 이윽고는 유쾌하게 사랑하겠다”라는 작가의 말처럼 단순해지길 바라나 “가장 단순하다고 믿었던 것조차 실은 가장 복잡한 배경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음을 뒤늦게 깨닫”는 미아는 ‘자기에의 배려’의 가능성을 잠시 붙잡는다.
작가는 이 첫 장편소설에서 자연스럽고도 지적인 지문, 적실한 외래어 구사, 군더더기 없이 냉정하게 육박하는 질문과 대답, 존재의 풍경을 적시하는 근사값에 도달한 비유들, 메마르고 뜨거운 찜질방과도 같은 분위기를 전달하는 문체, 독자로 하여금 들킨다는 느낌을 만들어내는 상황 설정, 무심코 베이는 빳빳한 종잇날 같은 서늘함, 일상적인 풍경을 무섭도록 낯설게 만드는 관찰력, 서구 소설을 읽는 듯한 위트 등 새롭고도 날선 작가적 재능을 드러낸다.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미아가 읊조린 다음과 같은 말로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아아, 그렇지만 나쁘지 않다. 그 시간들이 눈에 보일 만큼 현명한 사람은 세상에 그리 흔치 않다. 아주 다행이다.” 멈추지 않고, 묵묵히 사막을 건너가는 자의 표상을 그린 숱한 문학의 대상(隊商) 중에서도 이 작품은 더욱 두터운 옷을 입고 많은 짐을 진 자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그 물건을 사게끔 만들 것이다.
이 소설에서 묘사되는 우리 시대 30대들의 내면 풍경은 생의 가벼움과 일상의 무거움, 눅눅한 냉소와 자기연민으로 가득하다. 위험 수위에 도달한 권태와 불안, 결국 그것뿐인 불화와 섹스 사이에서 환멸과 허망을 생의 개념으로 주절거리는 개인들. 정체된 도로 위에서 병목이 풀리길 기다리는 지루한 자의 육체, 이 하릴없는 인생이라는 가방 안에 작가는 무얼 집어넣고 끄집어내려는 것일까.
작가는 운명이 아닌 타이밍을, 온전함이 아닌 핸디캡을 언급하는데, 이는 생의 무거움을 가벼운 언어로 전치하는 것이자, 자기 앞의 생을 전유하는 방법에 대한 피력이다. 각자의 핸디캡을 안고서, 우연하게 사건의 타이밍을 관찰하는 것. 이때 삶은 구조가 아닌 사건이 되며, 이 사건을 치루어내는 자는 삶이라는 사건의 당사자 곧 주역이 된다. 캐스팅되었으니 그 배역이 힘들더라도 맡은 이상 그 역할을 제대로 소화해내야 하지 않겠는가. 물론 이 어두운 연극에 동참한 다른 캐스팅과 호흡을 맞추면서.

추천평

사람들이 피서를 떠난 도시의 공터에 해바라기가 피었다. 해바라기는 뜨거운 꽃이다. 더위가 여물지 않았을 때 그 꽃은 피지 않는다. 장마가 끝나고 온 천지에 넘치는 폭양 아래 나뭇잎이 숨죽이고 개들의 혀가 늘어질 때, 그 꽃은 은밀한 속내를 거침없이 드러내며 피흘리듯 피어난다. 이 소설은 가장 뜨겁고 가장 메마른 불의 날들을 골라 핀 그 꽃을 삭뚝 잘라내어, 크리스탈 그릇의 얼음 속에 담아 내놓았다.
--- 김훈(소설가)

오랜만에 섣부르지 않은, 솜씨 있는 소설을 읽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이 참람한 세상에서 살아내는 방법을 찾으려고 무척 애쓴 흔적을 도처에서 확인할 수 있다. 등단 이후 거의 10년을 삭여 발표한 이 장편에서 그간 그녀가 침잠해 온 사색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다. 30대들의'허망'과 '결핍'의 정서를 관찰하는 시선이 무척이나 섬세하고 절절한데, 강남 문화로 대표되는 도회적 정서를 어색함 없이 전유하는 짧고 단정한 문체가 건조한 듯하면서도 아리다. 아마도'견딤'에 관한 이야기로는 극상림(極相林)에 속하지 않을까.
--- 이순원(소설가)

낯선 작가의 작품을 받아들었을 때는 언제나 모호한 감정에 사로잡힌다. 어떤 기대와 함께, 다른 한편에는 이미 결정이 난 환멸. 처음에는 아직도 불안한 열정에서 휩싸여 있는 우리 시대 30대의 세부를 그린 새롭지 않은 이야기로 읽었다. 그러나 끝까지 따라 읽게 만든 힘은 무엇일까? 질문의 절실함이 아닐까? 지지부진한 삶 속에서도 어느 순간 찾아오는 숨막히는 '생의 절정', 그것들로 이루어진 '낯선 동네'의 어지러우면서도 섬뜩한 지형도. 불안 속에서 자기 생의 출구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그 지형도는 때로 소중한 나침반이 될 것 같다.
--- 박철화(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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