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일 플레트네프
1978년 제6회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는 진귀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자유곡 레퍼토리로 자신이 직접 편곡한 차이코프스키의 '호도까기 인형' 모음곡을 연주한 젊은 피아니스트가 있었기 때문이다. 관현악 작품을 피아노로 연주하는 것은 많은 어려움이 따르는 일이다. 익숙한 멜로디가 자칫 어색하게 들리기 쉬울 뿐만 이날, 피아노의 음색은 오케스트라의 다양한 색채를 단조롭게 만들기 때문이다. 더구나 피아노 곡으로의 편곡은 작곡가 자신이나 전시대의 명연주자들이 해왔던 작업이기 때문에, 심사위워 ㄴ앞에 자신의 기량을 증명해야 하는 콩쿠르 무대에서 신인 연주자의 편곡 잡ㄱ업은 다칫 감점 요인으로 작용할 위험성까지 지닌 일이었다. 하지만 젊은 피아니스트의 과감한 도전은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고, 그는 이 콩쿠르의 우승자가 되었다. 그가 바로 미하일 플레트네프로, 그의 나이 겨우 21세 때였다.
미하일 플레트네프는 1957년 백해 연안의 항구도시인 아르한겔스크에서 태어났다. 음악가였던 부모에게 피아노를 처음 배우기 시작하여, 13세때에 모스크바 음악원의 예비학교에 입학하였고, 1974년 모스크바 음악원에 진학하였다. 모스크바 음악원에 진학하기 1년 전에 그는 이미 파리의 국제 청소년 음악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한 바 있었고, 음악원 재학 중이던 1977년에도 레닌그라드에서 개최된 저 ㄴ소련연방 음악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했다. 소련의 기대주로 떠오른 그는 이듬해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도 도전하여 이론의 여지없이 우승을 획득할 수 있었다. 이때 자유곡으로 쳔주한 것이 바로 차이코프스키의 '호도까기 인형' 조곡의 피아노 편곡작품이었고, 본선의 결선곡은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제1번이었다. 이후 그의 행보는 잘 알려져 있는 그대로이다. 소련을 대표하는 젊은 피아니스트로 많은 활동을 펼쳤으며, 구소련의 붕괴 후 플레트네프는 러시아 피아노 학파에 있어서 가장 특이한 존재로 손꼽힌다. 그가 들려주는 연주는 러시아 연주의 맥을 잇고 있으면서도 자신만의 개성을 보여주는 데에 주저하지 않고 있다. 역대 피아니스트들 중에서 최상급의 테크닉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단순히 힘으로 몰아붙이는 연주를 피하고 있으며, 이보다는 서정적인 맥락 위에서 누구보다도 개성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독특한 프레이즈 처리와 절묘한 타이밍의 루바토, 작품에 신선함을 안겨주는 리듬감과 가끔씩 나타나는 경쾌하면서도 전율이 이는 속도감 등을 들려주며, 이러한 그의 연주는 다른 어떤 곳에서도 찾을 수 없는 성격의 것이다. 이러한 그의 장점은 특히 낭만주의 시기의 소품에서 가장 잘 발휘되고 있고, 그 중에서도 차이코프스키의 작품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그는 데뷔 초기부터 계속해서 모음곡 '사계'와 그랜드 소나타를 비롯하여 많은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독주곡과 협주곡 전곡을 녹음했으며, 연주회 무대에서도 계속해서 연주하였다. 또한 지휘자로 데뷔한 이후 녹음한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전집은 그가 지니고 있는 차이코프스키 음악에 대한 자신감을 확인할 수 있는 결과물이다. 플레트네프가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작품을 본격적으로 녹음하던 시기는 80년대 중후반으로, 이 시기는 30대의 나이로 가장 의욕적으로 활동하던 때이다. 국내에 소개된 플레트네프의 음반은 주로 90년대 이후의 연주가 중심을 이루고 있고, 이전 그의 녹음은 상대적으로 별로 소개가 되지 못했었다.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작품을 담고 있는 이 음원은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것으로, 우리가 자주 듣지 못했던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장점뿐만 아니라 플레트네프가 가장 자신을 가졌던 연주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Tchaikovsky
piano : Mikhail Pletnev
Recorded in Moscow, 19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