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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권 고대사 차례
Ⅰ. 역사와 역사학 제1장“역사”란 말의 어원과 의미 제2장역사 연구의 범위와 대상 제3장역사란 무엇인가 제4장역사학의 성격 제5장역사 연구의 목적 제6장역사관 Ⅱ. 고고학의 시대구분과 역사학의 국가형성단계론 제1장고고학의 시대구분론 제2장역사학의 국가형성단계론 Ⅲ. 무리사회와 부족사회(部族社會) 제1장구석기시대의 문화와 무리사회 제2장신석기시대의 문화와 부족사회(部族社會) Ⅳ. 군장사회와 국가의 발생 제1장청동기시대의 문화 제2장청동기시대와 군장사회 및 초기국가의 발생 제3장초기철기시대(철기시대 전기)와 정복국가의 형성 Ⅴ. 고조선 제1장단군조선 제2장후조선(예맥조선) 제3장위만조선 Ⅵ. 여러 나라의 성장과 발전 제1장부 여 제2장원고구려(구려국, 졸본부여) 제3장옥저와 동예 제4장삼 한 Ⅶ. 고대국가의 발전 제1장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제2장부여의 발전과 멸망 제3장백제의 성립과 발전 제4장신라의 성립과 발전 제5장가야제국(加耶諸國) 제6장고대국가의 대외관계와 고구려의 수·당 전쟁 제7장백제의 멸망 제8장고구려의 멸망 Ⅷ. 고대국가의 정치구조와 사회 제1장고대국가의 사회성격 제2장고구려의 정치제도와 사회 제3장백제의 정치제도와 사회 제4장신라의 정치와 사회 Ⅸ. 삼국의 주요 금석문 제1장낙랑 점제현(?蟬縣) 신사비(神祠碑) 제2장고구려 광개토왕릉비(廣開土王陵碑) 제3장중원(中原) 고구려비(高句麗碑) 제4장고구려 안악(安岳) 3호분 묵서명(墨書銘)과 묘주(墓主) 논쟁 제5장신라 단양적성비(丹陽赤城碑) 제6장신라 창녕(昌寧) 진흥왕척경비(眞興王拓境碑) 제7장북한산(北漢山) 신라진흥왕순수비(新羅眞興王巡狩碑) 제8장영일냉수리신라비(迎日冷水里新羅碑) 제9장울진봉평신라비(蔚珍鳳坪新羅碑) 제10장신라 울주(蔚州) 천전리서석(川前里書石) 제11장신라 명활산성작성비(明活山城作城碑) 제12장신라 남산신성비(南山新城碑) 제1비 제13장포항(浦項) 중성리신라비(中城里新羅碑) Ⅹ. 고대국가의 신앙과 문화 제1장토착신앙 제2장불교의 발달 제3장유학과 문학의 발달 제4장도교의 수용 제5장삼국의 문화 ⅩⅠ. 남북국시대 제1장나당전쟁과 신라의 삼국 통합 제2장통일신라론과 남북국론 제3장발해의 건국과 남북국시대 제4장발해의 흥망과 그 문화 제5장후기 신라의 흥망과 문화 ⅩⅡ, 후삼국시대 제1장신라 하대의 왕위 쟁탈전 제2장골품제의 붕괴와 6두품 및 호족의 등장 제3장후기 신라의 혼란과 후삼국의 성립 제4장후백제 견훤 제5장후고구려 궁예 제6장후삼국의 대외교류 제7장고려의 건국과 후삼국 통일 제2권 중세사 차례 Ⅰ. 중세사회의 발전 제1장시대구분과 고려사회의 중세성 제2장고려의 성립 제3장중세의 경제 제4장중세의 사회 제5장중세의 문화 Ⅱ. 근세사회의 발전 제1장근세의 정치차례 제2장근세의 경제 제3장근세의 사회 제4장근세의 문화 Ⅲ. 근대사회의 태동 제1장근대 태동기의 정치 제2장근대 태동기의 경제 제3장근대 태동기의 사회 제4장문화의 새 경향 제3권 근현대사 머리말 Ⅰ. 개항기 34년史 제1장1863~1873년 대원군 집정기 제2장고종친정 후 1870년대 제1절 고종 친정초기의 동향 제2절 개항과 그 영향 제3장1880년대 초 정부개혁의 시도 제1절 정부주도의 개혁시도 제2절 개혁에 대한 안티테제(‘반명제’) 제3절 1880년대 전반기 개화파의 활동 제4절 1880년대 전반기 대외관계 제4장갑신정변-급진적 개혁의 시도 제5장1880년대 후반 이후의 정국(1885-1894) 제1절 내무부 체제(1885-1894) 제2절 1880년대 후반 이후의 구체적 개혁내용 제3절 국제정세 제4절 개화세력들의 동향 제6장“1894년” : 농민전쟁, 갑오개혁, 청일전쟁 제1절 동학농민전쟁 제2절 갑오·‘을미’ 개혁 제3절 청일전쟁의 경과 제4절 의병의 대두 제6-1장아관파천기(1896.2~1897.2) 제7장대한제국의 성립 제1절 대한제국의 성립(1897)145 제2절 대한제국의 각종 개혁·개화 사업:‘광무개혁’(궁내부 중심의 개혁) 제3절 독립협회의 활동:3년여 간의 근대적 ‘시민’의 경험 제4절 대한제국기의 농민운동 제5절 대한제국기 국제정세:청일전쟁·아관파천 이후의 국제정세 제7-1장러일전쟁과 대한제국의 쇠락 제1절 러일전쟁(1904~5)172 제2절 통감정치의 시행:‘이원적’ 정부체제 제3절 민족(해방)운동의 개막 제7-2장대한제국의 몰락 Ⅱ. 일제 36년史 제1장1910년대 제1절 일제 정책사 : 헌병·군대에 의한 통치 제2절 민족운동사 제2장1920년대 제1절 일제 정책사: ‘문화’라는 기만적 통치 제2절 민족운동사 : 임시정부의 수립과 민족단체 통합운동 제3장1930~40년대 제1절 일제?책사 : 민족말살 정책 제2절 민족운동사 Ⅲ. 현대사 100년을 향하여 제1장 해방정국과 미군정의 수립 제1절 1945년:해방정국 제2절 1946년:좌·우의 분화 제3절 1947년:분단의 고비 제4절 1948년:분단정부의 수립 제2장 제1공화국 제1절 1948년~1950년 제2절 한국전쟁(1950~1953년) 제3절 1954~1960년 : 전쟁 후 1공화국 제3장 제2공화국 제1절 수립전야(1960) 제2절 제2공화국의 수립(1960.8~1961.5.16) : ‘짧디 짧은’ 민주주의 경험 제4장 제3공화국 제1절 수립전야 : 군정기간(1961.5.16~1963) 제2절 제3공화국의 출범(1963~1972) 제3절 제3공화국의 경제 제5장제4공화국 제1절 유신체제의 성립 제2절 제4공화국(유신체제)의 경제 제6장 제5공화국 제1절 신군부의 등장 제2절 5공화국의 수립(1981~1987) 제7장 제6공화국 제1절 노태우 정권 : 보통사람들의 시대, “북방교섭의 시작” 제2절 김영삼정권(문민정부) : “‘세계화’를 향하여” 제3절 김대중 정권(국민의 정부) : “다시 통일의 시대로” 제4절 노무현 정권(참여정부) : “민주주의; 국민이 주인이 되는 시대” 제5절 이명박 정권 : “중도실용”, “녹색성장”, “서민을 위한 정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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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권 고대사 머리말
“역사학은 흘러가는 물 옆에 객관적인 큰 눈을 마련하고 서서, 사람들에게 흘러가야 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학문이다.” 필자의 대학 1학년 시절, 근현대사를 전공하신 강만길 선생님께서는 한국사학입문 수업 시간에 역사학을 이렇게 정의하셨다. 그러면서 역사학은 옛 것을 좋아하는 호고적(好古的)인 것이어서는 안되며, 마한의 위치나 연구하는 것은 역사학이 될 수 없다고 하셨다. 이 말씀은 당시부터 지금까지 한국고대사를 좋아하고 있는 필자가 항상 떠올리고 있는 화두가 되었다. 이에 대한 대답은 대학 2학년 시절, 조선시대를 전공하신 민현구 선생님으로부터 마련할 수 있었다. 역사학에 관심을 가지는 이들에는 사회 참여적인 이들도 있지만, 존재의 근원에 대한 탐구에 흥미를 가진 이들도 있다는 것이다. 이는 역사학이라는 학문이 흘러가야 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사회과학적인 학문이기도 하지만, 인간의 근원과 본질에 대해 탐구하고자 하는 인문학적인 학문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드디어 고려한국사라는 이름의 책이 나온다. 이 책은 일단 한국사능력검정시험과 7급 공무원시험을 염두에 두고 쓰여진 것이지만, 그러한 성격 외에도 한국사의 전체 영역을 통사(通史)로 서술한 교양서의 역할까지 기대하면서 기획되었다. 그러므로 기존의 수험서들처럼 지식을 전달하기만 하는 방식과는 다른 차원의 인문학적인 서술 방식을 택하고 있다. 앞에 붙은 “고려”라는 말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이는 ‘고려대학교’의 ‘고려’나 ‘고려시대’의 ‘고려’라는 의미보다는, 대한민국의 영문표기 ‘korea’와 더 큰 관련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한국사 전체를 포괄할 수 있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또한, ‘고려’라는 국호는 고구려와 발해, 후고구려, 왕건의 고려에 이르기까지 한국사 속에 명멸했던 많은 왕조에서 쓰였던 명칭이기도 하다.그 동안 한국사 연구의 대가분들께서 쓰신 통사류의 책들이 몇 가지 있다. 대표적인 것들로 이기백의 한국사신론, 변태섭의 한국사통론, 한영우의 다시 찾는 우리 역사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이 책들은 저명한 선생님들께서 하나의 흐름에 따라 한국사를 서술한 것이므로 한국사 전체를 통시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시각을 제공해주고 있으며, 오랜 시간 동안 수험한국사 기본서의 역할도 해왔다. 하지만 한분께서 한국사의 모든 부분을 다루다 보니 소략한 부분이 없지 않다. 한길사에서 나온 한국사 27권과 국사편찬위원회의 신편 한국사 53권은 민찬(民纂)과 관찬(官纂)의 대표적인 한국사 서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내용이 방대하여 일반인들의 접근이 어렵고, 여러 저자들이 챕터를 나누어 쓴 까닭에 일관성이 적다는 단점이 있다. 따라서 고려한국사는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고자, 한국사 대학원에서 각 분야를 전공하여 공부하고 있는 젊은 연구자 3명이 모여 고대사(이장웅), 중세사(신영식), 근현대사(원유철)의 세 부분으로 나누어 각자의 일관된 체제를 갖추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이 책은 실제 대학원에서 최신의 연구 경향을 접하고 있는 젊은 연구자들이 편저했다는 점에서, 기존의 수험서들과는 많은 차별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 중에서 필자가 맡은 부분은 고대사 부분이다. 지금까지 나온 고대사 부분의 입문서로는 이기백·이기동의 한국사 강좌 1 고대편과 신형식의 한국의 고대사 등이 있다. 이 책들은 한국고대사의 대가 선생님께서 일관성을 가지고 서술한 책이지만, 출간된 지 꽤 시간이 흘러 최신의 연구성과는 반영되지 못한 감이 있다. 최근에는 필자의 선배 선생님들께서 김정배 선생님의 정년에 맞춰 한국 고대사 입문 3권을 출간하여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수업의 교재로 쓰이고 있다. 이는 최신 고고학과 문헌사학의 연구성과가 반영된 고대사 각 부분의 연구사 정리서라고 할 수 있지만, 일반인들이 접근하기에는 매우 어려운 점이 있다. 이에 필자는 고려한국사 1권 고대편을 통해, 최신의 고고학과 문헌사학의 연구성과가 반영된 고대사의 전체 부분을 다루면서도 수험생들과 일반인들이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게 서술하고자 노력하였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많은 성과를 이루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필자는 대학에서 한국사학과 국어국문학을 전공하였으며, 대학원에서는 백제 한성기 왕실의 변동과 건국신화의 변화 과정이라는 논문으로 석사를 졸업하고, 한국고대사 중에서 하늘과 인간의 감응(感應) 관계를 공부하면서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아울러 필자는 2004년부터 지금까지 7년째 한국사학과 답사 조교를 하면서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사랑을 키워 왔다. 이 작은 책자는 이러한 필자의 공부를 정리해본다는 의미도 지니고 있다. 수험생들이나 일반인들에게 역사학은 암기 과목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하지만 역사학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이루어진 인간에 대한 학문이다. 인간들이 이룩한 성과들을 외우는 것이 역사학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한 사건들이 왜 발생하게 되었는지 시간과 공간의 맥락 속에서 인간의 행동과 그 성과물을 이해하려는 것이 역사학의 본질이 아닌가 한다. 필자는 이를 위해 역사학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를 먼저 간단하게 제시하였고, 한국고대사의 시대구분에 관한 논의도 조금 장황하게 소개하였다. 동양에서도 역사책은 존재했지만, 역사학이라는 학문은 역시 서양에서 시작하였다고 볼 수 있다. 특히 한국사가 세계사의 보편적인 맥락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많은 서양의 이론도 도입되었다. 따라서 이러한 논의들을 정리하면서 이 책 나름의 시대구분도 제시하고자 노력하였다. 하지만 역사학의 시작과 끝이 시대구분이라는 말도 있듯이, 이는 기본이 되는 것이면서도 상당히 어려운 것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절충 정도를 벗어나지 못한 한계도 있다. 그리고 역사적 이해를 위한 연결고리를 제시하고자 하였다. 예를 들어 신라의 골품제에 대해서는 성골, 진골, 6두품, 5두품 등으로 무조건 외우곤 하였지만, 여기서는 신라가 주변 나라들을 정복하여 그 지배층들을 포섭하는 과정에서 골품제가 발생하였다는 점을 제시하여, 시간과 공간의 맥락 속에 유기적으로 사건을 위치시키고자 하였다. 특히, 최근의 7급 공무원시험 문제들을 살펴본 결과, 문화사(文化史)와 관련된 부분이 많이 출제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에 문화유산과 관련된 서술도 많이 하고자 노력하였다. 제2권 중세사 머리말 9급 공무원 시험 대비 해동한국사에 이은 고려한국사 책은 7급 공무원 시험에 대비하기 위한 책으로 오래 전부터 기획하였다. 그 동안 수험생분들께서 해동한국사에 정말 많은 성원을 보내주셨고, 그에 부응하고자 더욱 알찬 내용을 담은 책을 내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필자 개인의 사정과 여러 주위의 사정 등으로 인하여 그 성과물이 매우 늦어지게 되었다. 그 점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이 고려한국사는 다른 수험서들은 물론, 해동한국사와도 많이 다른 구성을 하고 있다. 특히 이 책은 3인 공저 체제의 3권으로 구성하여, 각각의 책 내용을 그 책의 저자가 책임을 지고 편저하였다. 이는 이 책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것으로, 각각의 저자는 대학원에서 그 시대를 전공하여 공부하고 있는 젊은 연구자들이다. 필자는 중세사 중에서도 조선후기 사상사를 전공하고 있으므로, 중세사 부분을 맡아 심도 있는 서술을 하고자 하였고, 1권 고대사편은 고대사 박사과정을 마친 필자의 후배 이장웅이, 3권 근현대사편은 개항기 불교 관계사를 전공하고 있는 필자의 선배 원유철 兄이 담당하였다. 그러므로 이 책은 이제까지 나온 수험서들 중에서 가장 심도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다. 해동한국사 필수넷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을 보면, 아직 출간되지 않은 고려한국사에 대한 관심과 비판이 많음을 살펴볼 수 있었다. 그 중에서 고려한국사 강의에 대한 내용 중에 필자 외의 공저자는 검증되지 않은 강사가 아닌가 하는 글도 있었다. 물론, 역사라는 것이 흐름을 가지고 진행해 나가는 것이기에, 한 강사가 처음부터 끝까지 큰 흐름을 가지고 진행하는 것이 좋을 수 있다. 하지만, 최근 7급 공무원 시험의 출제 경향을 살펴본 결과, 그러한 큰 흐름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전문적인 지식을 요구하는 세부적인 문제가 점점 많이 출제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고려한국사는 이에 걸맞는 내용을 위해 그러한 체제를 갖춘 것이며, 공저자들 역시 검증되지 않은 분들이 아니다. 고대사 부분을 맡은 필자의 후배 이장웅은 학교에서 꾸준히 고대사 공부를 하여 박사과정까지 마친 관계로, 학원가에서 강의를 해본 적은 없다. 하지만 7년간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에서 답사수업 조교를 하면서 답사에 필요한 미술사, 고고학, 건축사, 고대사, 민속학과 관련된 기초 지식을 강의해 왔으며, 작년에는 대학 강의와 함께, 강서구청 문화원 문화강좌에서 고대 미술사 관련 강의를 담당하기도 했다. 특히 2009년 9월에 있었던 해동한국사 답사에 있어, 답사 코스를 짜고 모든 답사 지역에 대한 설명을 담당하였다. 필자에게 있어서 이 행사는 공무원이 되고자 하는 수험생 분들에게 단순히 시험에 합격하기 위한 역사적 사실의 전달이라는 차원을 넘어, 앞으로 공무원이 되고 나서도 올바른 역사의식과 현장감 있는 역사 유물에 대한 해석을 갖도록 하기 위하여 처음으로 마련해 본 행사였다. 아울러 수험 생활에 지친 수험생들에게 활력소를 주기 위한 행사이기도 했다. 첫 행사였던 경주 답사는 많은 수험생들의 열성적인 성원과 참여에 힘입어 성황리에 마칠 수 있었다. 이에 따라 앞으로도 매년 1회씩 이러한 행사를 정기적으로 계속 마련해 나가고자 한다. 근현대사 부분을 맡은 필자의 선배 원유뛃 兄은 실제 수험 생활을 오랜 기간 동안 하였으며, 대학원 석사과정에서 개항기 불교 관계사를 공부하면서 신림동 학원가에서 강의도 해왔다. 현재는 노량진 이그잼 고시학원과 광주 스티마 행정고시학원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원유철 兄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완벽을 지향하는 인간미 넘치는 노력파 강사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완벽한 강의를 위하여 세세한 부분까지 철저히 신경을 쓰기 때문에, 강의 전날은 밤을 새우기가 일쑤라서 벌건 눈에 레이저 광선을 쏘기도 하지만, 막상 강의를 시작하면 열정이 넘친다. 그뿐 아니라, 수험생들의 고민에 대하여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정이 많으셔서 그들과 끊임없이 소통하고자 노력하시는 분이다. 한국의 개항과 근현대사에 대한 역사관은 물론, 현재 대한민국의 공무원으로서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가 하는 것과 관련된 자신의 생각도 투철하신 분이다. 필자가 담당한 한국중세사 중에서 고려시대 서술과 관련해서는 특히 박용운 선생님의 고려시대사 책에 의존한 바가 크다. 이 책은 박용운 선생님께서 강의안으로 써오시던 내용을 바탕으로 하여 1985년에 초판을 발행한 이후, 각 대학에서 고려시대사 강의 교재로 많이 쓰여 왔다. 그리고 2008년에는 선생님의 정년퇴임을 기념하여 그 동안의 최신 연구성과를 대폭 반영한 증보판을 내놓으셨다. 필자는 대학 시절 엄정하시면서도 자애로우신 선생님의 저자 직강 고려시대사 강의를 들으면서 고려시대 전체의 큰 흐름을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조선시대 서술과 관련해서는 필자의 지도교수님이신 조광 선생님을 비롯한 선배 선생님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조광 선생님은 조선후기 사상사 전공으로, 천주교에 대한 연구에서 시작하여 실학과 성리학은 물론, 그 밖의 조선시대 여러 방면에 많은 업적을 남기신 분이다. 수업시간에 학생들이 뜬금없는 질문과 답변을 해도, “발제자의 의도는 이런 것이겠죠?” 하시면서 수업의 흐름을 만들어 주시는 모습은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논문이다’라는 말이 나오게 한다. 이제 다음 학기를 마지막으로 정년퇴임을 하시고 나서는 익산 천주교 천호성지에 연구실을 만들어 그곳에 거처하시면서 전주 주위에서 공부하는 연구자들에게 공부할 책과 장소를 제공하려는 멋진 계획을 갖고 계신다. 필자는 작년에 선생님께서 그 연구실로 책을 옮기는 작업에 운전기사 노릇을 하면서, 선생님의 따뜻한 인품을 한층 더 느낄 수 있었다. 조선시대에서 필자가 심혈을 기울여 작성한 부분은 붕당정치사 관련 부분이다. 그 동안 붕당정치에 대해서는 일제의 타율성론, 정체성론, 당파성론에 입각하여 한국인의 민족성이 파벌을 조성하여 싸우기 좋아한다는 식으로 몰아간 점이 없지 않다. 하지만 붕당정치가 민생과 관련없는 정쟁에 시간과 물자를 낭비했다는 부정적인 면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조선을 지배했던 성리학 사상은 우주의 근본 원리와 마음의 근원을 밝히려는 학문이면서 이에 입각한 도덕적인 정치를 강조하였으니, 민생과 관련이 없는 뜬구름 잡는 의식 체계가 아니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한 붕당정치의 원리에는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입각한 정권교체라는 긍정적인 의미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한 가지 필자의 과제는 조선 후기 자본주의 맹아론과 관련된 사항이다. 그 동안 우리 학계에서는 일제시대에 일본의 식민지 정책에 의해서 근대화가 이루어졌다는 논리에 반박하기 위하여, 그 이전 시기인 조선 후기에서부터 자본주의가 자생적으로 싹텄다는 점을 증명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하지만 최근에 이르러 조선 후기에는 자생적인 자본주의의 싹을 보여주는 객관적인 실체가 없으며, 경제학적인 수치 통계를 통해 보면 일제시대 일본에 의해 자본주의가 이식되었다는 논리가 맞을 수 있다는 뉴라이트의 논의가 활개를 치고 있다. 수치를 통한 객관적인 학문적 논리를 들이대는 경제학이, 인간에 대한 다소 추상적일 수 있는 학문인 역사학을 학문적이지 못한 민족주의라면서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아직 이에 대한 완벽한 답안을 마련하지는 못하였다. 앞으로 이에 대한 역사학에서의 답안을 마련하여 수치만이 인간의 삶을 보여주는 잣대가 될 수 없음을 밝혀내는 것이 필자의 과제라고 생각한다. 고려한국사의 출간과 함께 새롭게 마련되는 홈페이지(www.korea-history.com)는 수험 준비와 관련된 정보와 동영상 강의 제공은 물론이고, 한국사 관련 종합 컨텐츠 제공의 역할도 하게 될 것이다. 3명의 공저자에 맞추어 각각의 질문 답변방이 마련될 것이며, 이장웅 선생이 담당할 고대사와 문화재 관련 칼럼과 답사자료방 및 원유철 선생이 담당할 근현대사 관련 칼럼 등을 통해 각 공저자의 색깔에 맞는 전문적이면서도 재미있고 유익한 내용들을 많이 채워 나갈 예정이다. 이를 통해 수험생분들과 수험 관련 이외 부분에서도 언제나 쌍방 소통할 수 있는 장을 더 많이 마련하고자 한다. 제3권 근현대사 머리말 역사가 ‘현재’를 살았던 인물들의 ‘정의롭고 도덕적인’ 행위만을 평가해주는 것은 아니다. 역사는 말 그대로 지나간 행위의 총체이다. 우리는 이 안에서 우리에게로 뻗어 온 마치 거울을 남기고 간 발자국처럼 지나간 ‘현재’를 반추해 볼 수 있다. 이것은 곧 다시 우리에게서 뻗어 나가는 새로운 발자취가 될 것이다. 대학원의 3명의 전공자들이 모였다. 처음에 대중과 역사학의 가교역할을 해보자는 작은 아이디어에서 시작하여 고려한국사라는 완성된 저작물을 내놓게 되었다. 여러 방면을 통하여 고려한국사를 기다리는 수험생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들었다. 호기에 시작했던 일인데 이렇게 많은 인내와 시간이 들게 될 줄은 몰랐다.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되어 고려한국사를 기다려준 수험생들에게 죄송스러움을 전한다. 통사를 쓰는 작업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을 이번에 절실히 느꼈다. 몇 개월간 같이 엉덩이에 종기 깨나 달았을 동료 위트쟁이 신영식 선생과 함박웃음 이장웅 선생의 노고에도 심심한 위로를 표한다. 무엇보다 끝까지 책을 믿고 기다려 준 수험생 제현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고려한국사에서 필자가 담당한 부분은 근현대 부분이다. 잘 알듯이 근현대사는 복잡한 전지구적인 세계관계가 시작되는 지점이었다. 이당시 조선은 세계와 어떤 방식으로든 상호작용을 해야 했다. 그러나 결국 조선과 대한제국은 ‘동아의 안정’과 조선의 안정적 성장을 위한 ‘보호’ 혹은 ‘인방의 시혜’라는 명분으로 일본에 의해 국권을 상실당하게 된다. 그리하여 이후 한국의 역사는 국권을 회복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전개되어 나갔다. 그러다가 독립운동의 현장에 과감히 뛰어든 선현들의 도움으로 광복을 맞이하게 되었다. 광복은 새로운 국가 대한민국을 만들어주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지금의 모습을 갖춰나가는 과정 중에 많은 아픔을 겪기도 하였다. 이러한 모든 것이 현재의 우리 모습의 일면이 되었다. 이처럼 이 책은 크게 개항기, 일제시기, 현대로 나뉘어져 있다. 세부적으로는 먼저 개항기에서는 개항전야의 조선의 정세를 다루었고, 이어 개항의 과정과 조선이 세계적인 체제속으로 편입되어 가는 과정을 서술했으며, 다음 개화에 대한 안티테제로서 벌어진 여러 사건들, 그리고 개화에 대한 조급함으로 인하여 벌어진 정변을 자세하게 서술하였다. 이어 정변이후의 조선의 정세를 조·청 관계에 중점을 두어 서술하였다. 1890년대에는 더 이상의 정부의 개혁시도가 한계점에 이르고, 부족한 재정과 더불어 관리들의 부정은 민중의 폐정개혁요구로 이어지고 이어 점증하는 외세의 강압에 결국 조선이 전장터로 화한 것을 기술하였다. 1894년의 개혁은 조선의 최초의 전면적 개혁으로서 나름의 의의가 있지만, 조선인 전체계급의 의견을 수렴하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은 개혁이어서 결국 반발을 불러일으키는 과정을 설명하였다. 더구나 이 개혁의 과정에서 배제된 왕이 궁궐을 이탈하여 이들과 배척되는 위치에 있음을 보임으로써 이들의 입지가 미약했음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나 개혁의 도도한 흐름은 막을 수 없는 것이어서 대한제국이 선포되고 곧 대한제국에 의한 본격적인 개혁들이 시도되었다. 이때의 개혁은 정부주도로 이루어진 의욕적인 개혁시도였지만 결국은 마지막 개혁시도가 되어버렸다. 1897년 독일의 교주만 불법점령과 이어지는 중국 분할논의, 그리고 1900년의 의화단 사건이라는 국제적 사건들을 겪으면서 대한제국을 둘러싼 국제정세는 다시 한 번 크게 요동쳐 갔다. 영국과 미국이 동아시아에서의 파트너십으로 일본을 확실히 택하게 된 것이다. 이는 1904년 러일전쟁으로 이어져 대한제국은 마지막 세력균형인자였었던 러시아마저 잃고 일본의 속국으로 전락해갔다. 이어지는 일제시기에서는 통사의 일반적인 서술체계인 ‘무단정치’, ‘문화정치’, ‘민족말살정책’으로 나누어 일제의 정책과 그에 따르는 한국민중의 대응을 서술하였다. 특히 이전의 수험서에서는 보기 힘든 세밀한 분석이 통치구조에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식민지 재정체계에 대한 설명이 포함이 되었다. 그러는 한편으로 한국민의 대응과정을 국내와 해외의 한인들로 나누어 상세히 설명하였다. 국내는 점차 무력적인 독립운동이 힘들어져가는 과정을 설명하고자 하였고, 국외에서는 한인사회가 형성되어 가는 과정부터 자세히 설명해 나가고자 하였다. 특히 최근의 동향을 반영하여 국제적인 배경이 일제의 통치정책과 항일민족운동에 미친 영향을 상세히 서술하고자 하였다. 전지구적인 관계가 이루어지는 근대에 걸맞게 제1차 세계대전,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국제질서를 재편하기 위해 개최된 파리강화회의와 워싱턴 군축회의의 영향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그리고 사회주의 국가의 출현으로 인한 반제국주의 대항체제가 식민지 한국에 가져온 영향, 그리고 이후 세계적인 자본주의 침체가 가져온 충격이 한국에 미친 영향 등을 서술하였다. 결국 이것이 후발자본주의 국가에 의해 전쟁으로 비화되고 이것이 확대되어 제2차 세계대전으로 나아가는 것을 서술했다. 그리고 이것이 한국 독립운동의 장을 새롭게 열어 나가게 된 것에 대해서도 설명하였다. 사실 일본의 확전은 한인들에게 독립의 호기로 받아들여져 광범위한 통합전선운동이 논의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통합이 미처 이루어지기도 전에 해방이 이루어져 한국은 다시금 주체적 역량을 제한당하게 되었다. 마지막 현대시기에서는 해방된 한국이 해야 될 일이 무엇이었으며, 그러한 것이 어떻게 좌절되어 갔는지를 설명하였다. 해방정국이 도래하면서 제 단체가 건국의 소명을 이루기 위해 활동해 나가는 과정을 자세히 설명하였다. 특히 통일사관의 관점에서 이전 수험서에서는 미약하게 다루어져 있었던 북한체제의 성립과정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설명해 놓았다. 미국과 소련이라는 존재를 염두에 두고 독립국가를 이루어나가야 했던 대한민국의 한계가 무엇이었는지를 설명하였다. 결국 그러한 이질성이 대한민국이 성체로 형성되어 가는 과정에서 하나의 홍역으로 나타났음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아직 채 아물지 않은 병흔(病痕)은 앞으로 우리가 어떠한 요양(療養)의 과정을 거쳐 나가야 될까에 대한 하나의 지침이 되겠다 싶어 여러분들에게 마지막 장을 남겨 둔 채로 장을 마무리 하였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결국 지금 우리들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항시 많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공직에 들어가는 분들에게 이러한 글을 전달할 수 있게 되어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 필자가 책을 쓰게 된 배경은 필자의 호기심도 작용을 하였다. 사실 필자가 많은 고민을 했던 것 중에 하나는 대중의 역사에 대한 수요였다. 그러던 중 용의 눈물, 허준 등의 사극이 당시로서는 ‘비정상적’일 정도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연이어 나오는 사극들이 여러 관심과 호평을 받는 것을 보고, 그리고 쏟아지는 대중역사서들을 보고 나서야 대중의 역사에 대한 관심정도를 가늠해 볼 수 있었다. 그것을 확인하고는 역사학이나 역사교육에 대한 정책적 부재가 가져왔던 회의감을 한 번에 날려버릴 수 있을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농담 삼아 “역설적이게도 우리나라 역사학은 일본이나 중국이 키워준다”는 말을 가끔 하곤 했다. 사실 우리나라 지도층의 역사의식 부재는 심각해 보이는 게 사실인 듯도 하다. 역사는 재정이 없을 때, 다른 과목이 필요할 때 가장 먼저 피해를 보는 과목이 되어버렸다. 그러다가 역설적이게 일본이나 중국이 역사왜곡문제를 터뜨려 사회적으로 이슈화가 되면 그제서야 역사학은 어렵사리 제자리를 찾게 된다. 그래서 자조삼아 중국·일본이 한국의 역사를 살려준다는 말을 하기도 했었다. 또 한편 필자는 오래전부터 역사학의 대중화에 대해서 관심을 많이 가져왔다. 그러나 역사학과 대중과의 간극은 생각보다는 작지 않은 것 같다. 대중들이 역사를 수요할 수 있는 경로는 지극히 한정되어 있어서 역사학에 있어서는 수요와 공급이 접점이 잘 이뤄지지 않는 것 같다. 높아진 대중의 수요에 비례하여 역사학을 공급하지 못하는 현실에 비추어 볼 때, 보다 많은 역사학 공급의 경로를 개척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러한 것이 역사대중들과 호흡하는 역사학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이 역사학계와 역사학을 공부하는 이에게도 소중한 경험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정책적 판단에 좌우되어 자신들의 불안한 위치를 비정하게 하는 것보다는 국민자체에 충분한 역사공급을 통해 역사교육 자체에 튼튼한 바탕구조를 만들어 두는 것도 효과적이리라 생각한다. 책 작업을 마무리하면서 여러 고마운 분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 책이 나오는 데는 먼저 무지한 자에게 학문적인 소양이나마 채울 수 있도록 도와주신 고려대학교 선생님들의 은공이 크다. 외도를 하고 있는 처지라 호명하기 참으로 어려운 처지이기는 하나 지도교수님에 대한 감사의 인사는 드리고자 한다. 항시 온화하고 부드러운 눈빛으로 늦게 공부하는 필자를 살펴주시는 최덕수 선생님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 책은 출간되지 못했을 것이다. 필자에게 근현대에 대한 학문적 소양을 일깨워주시고 공부하는 방법에 대해서 지도를 해주셨다. 또 게으른 학과공부에 대해 질책하지 않으시고 생활에 대한 고민까지 같이 해주시는 마음에 늘 한 구석으로 고맙고 죄송스러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짧은 문장의 글이지만 그 고마움을 전하고자 한다. 선생님께서 살펴주셨기에 미문(迷文)이고 조악한 책이지만 바깥으로 나올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이 독자제현에 도움이 되었다면 이는 전적으로 선생님의 덕이다. 또 선생님은 필자가 갖지 못한 위트와 유머를 풍부하게 갖고 계시면서 대학원생들의 감성이 메마르지 않게 해주시어 이 또한 필자가 학생들을 대할 때 유념하는 바이다. 그리고 늘 강조하시는 말씀이 “엉덩이 오래 붙이고 훀는 사람이 논문 빨리 쓴다”는 일제시대 정태헌 선생님의 말씀은 수험생들에게도 적합할 듯하여 누를 끼치는 줄을 알면서도 굳이 올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