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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아메리칸 문학의 대표 주자
이창래는 이제 우리에게 그다지 낯설지 않다. 한국계 미국인이면서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으로 당당히 꼽히는 그에게 쏟아지는 찬사는 국내에도 여러 차례 소개된 바 있다. 지난해 미국의 명문 프린스턴 대학 인문학 및 창작과정 교수로 임용되면서 다시 한 번 화제를 모았던 이창래는 미국의 권위 있는 문화 교양지 <뉴요커>가 ‘40세 미만의 대표적인 미국 작가 20명’ 중 한 명으로 선정했을 정도로 미국 주류 문단에서 촉망받는 작가다.
세 살 때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간 그가 내놓은 데뷔작 『네이티브 스피커』는 1995년 출간되자마자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주요 일간지 및 잡지에서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극찬을 받았다. “서정적이면서 신랄하고 명민한 언어로 이민 세대와 2세들의 고뇌를 용해시킨 수작이다”, “긴장감을 늦출 수 없는 작품이다”, “황홀하다”, “세련되고 완성도가 높은 문학이다”, “흡인력이 대단하다” 등 이 작품에 쏟아진 찬사는 상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헤밍웨이 재단상, 반즈 앤드 노블 신인작가상, 펜문학상, 아메리칸 북상, 뉴보이스상 등 굵직굵직한 상을 여섯 개나 받으며 까다롭기로 소문난 미국 평단에 돌풍을 일으켰다. 나아가 일반 시민과 고등학교 2·3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뉴욕시 권장 필독서로 선정된 것을 비롯해 미국 명문인 프린스턴 대학 독서 프로그램 필독서로 선정되었을 정도로 이 책은 탄탄한 구성과 날카로운 심리 묘사, 미국인보다 훨씬 유려하고 시적인 문체 등으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1999년에 발표한 그의 두 번째 작품 『제스처 라이프』 역시 아니스펠트울프상과 아시아-아메리카 문학상을 받음으로써 이창래는 결코 만만치 않은 저력을 지닌 작가임을 다시 한 번 과시했다. 이제 명실공히 아시아-아메리칸 문학의 대표 주자로 떠오른 그는 내년 상반기에 한국인 아내를 잃은 60대 미국인 남자와 남은 자녀들의 이야기를 다룬 세 번째 소설 『얼로프트(Aloft)』를 펴낼 예정이다. 번역 완전히 새로 하고 책 제목 바꿔 그의 작품들은 몇 년 전 국내에도 번역되어 소개되었다. 그러나 『네이티브 스피커』는 2001년 절판되는 바람에 그동안 우리 나라 독자들은 그의 책을 읽고 싶어도 읽을 수가 없었다. 그의 작품이 미국뿐만 아니라 프랑스·독일·이탈리아 등지에서도 번역되어 많은 사랑을 받고 있음에도, 정작 우리 나라에서는 구하기 어렵다는 사실은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 때문에 책을 만나고 싶은 독자들의 요구가 끊임없이 있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한국 독자들의 갈증을 풀어 주기 위한 책이 바로 이번에 형식과 내용 면에서 완전히 새롭게 탈바꿈한 『영원한 이방인(원제 : 네이티브 스피커)』이다. 책 이름을 지난번과 달리 『영원한 이방인』으로 붙인 것은 ‘네이티브 스피커’가 한국 독자들에게는 의미가 명확히 전달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았던 것을 고려한 것으로, 주제를 좀더 선명하게 드러내고 독자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가기 위한 것이다. 이 소설이 미국 사회에 진정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아웃사이더적인 존재로 살아가는 한국인 이민자들의 정체성 문제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영원한 이방인’이라고 붙일 수 있다고 생각해서였다. 아울러 이 책은 종전의 번역을 무시하고 완전히 새로 번역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번역은 현재 이화여대 번역대학원 겸임교수로 있는 정영목씨가 맡았다. 불과 30세의 젊은 작가가 수준 높은 영어를 구사하며 문학성 짙은 작품을 완성했다는 것에 대해 미국 문단이 놀라움과 함께 찬사를 쏟아낸 데서도 엿볼 수 있듯이, 이 책을 우리말로 옮기는 것은 여간 까다로운 작업이 아니다. 정영목씨가 1년 반에 걸쳐 심혈을 기울인 끝에 번역한 이번 작품은 원서가 주는 느낌을 거의 완벽하게 살림으로써 지난번에 나온 책과 전혀 차원이 다른 책읽기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와는 문화가 전혀 다른 미국 사회에서 쓰이는 말이나 낯선 용어로 인해 독자들이 책 읽는 것에 방해받지 않도록 곳곳에 옮긴이의 친절한 설명을 붙임으로써 내용을 한층 명확히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간결하면서도 시적이고 유려한 문장으로 이창래의 독특한 문체를 우리말로 소화해 낸 그의 탁월한 번역에 힘입어 우리는 비로소 이창래의 작품이 지닌 참된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하는 이방인의 아픔 그려 『영원한 이방인』은 한마디로 사설 탐정인 재미교포 2세 헨리 박이 한국계 시의원인 존 강의 뒷조사를 하면서 느끼게 되는 정체성 혼란을 그린 작품이다. 영어를 모국어처럼 사용하면서도 결코 미국인이 될 수 없었던 작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영원한 이방인으로 살 수밖에 없는 이민 사회의 애환을 그린 것이다. 한국의 명문대를 나왔으나 미국으로 건너온 뒤 야채상을 하며 돈벌기 위해 전쟁 같은 삶을 살았던 아버지와 언어의 장벽을 끝내 넘지 못하고 늘 주눅들어 살다가 세상을 떠난 어머니. 그들로 대표되는 이민 세대와 달리, 이민 2세인 주인공 헨리 박은 미국의 명문대를 나와 수준 높은 영어를 구사하고 미국인 여성과 결혼하는 등 언뜻 보기엔 미국 사회에 뿌리를 내린 듯이 보인다. 그러나 아들 밋이 백인 아이들과 놀다 밑에 깔려 죽는 사건을 계기로 그의 삶은 균열을 일으킨다. 그 사건을 계기로 그와의 갈등이 심화된 아내가 그의 곁을 떠나면서 건넨 목록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그는 “아주 비밀스러운 사람. 인생에서 B+ 학생, 불법 이민자, 감정이 격한 이방인, 황인종. 근래에 이민 온 사람, 이 세계에 낯선 사람으로 이류인, 배신자, 스파이”에 지나지 않는다. 그의 직업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계 인물에게 접근해서 정보를 캐내는, 이를테면 사설 탐정. 그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의뢰인으로부터 주문을 받지만 정작 자신이 캐낸 정보가 어디로 흘러가고 어떻게 사용되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는 오직 자신에게 요구되는 정보를 캐내는 일을 할 뿐이다. 그는 자신의 일을 철저히 비밀에 부친다. 심지어 아내에게까지도. 그러던 중, 그는 뉴욕 시장 출마가 유력한 존 강이라는 한국계 시의원의 뒤를 캐면서 심한 정체성의 혼란을 겪게 된다. 존 강은 어린 나이에 단신으로 미국으로 건너와 자수성가한 그야말로 입지전적인 인물. 그는 모국어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가족이란 틀에 얽매였던 헨리 아버지와 달리,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고 정치란 광장에까지 진출, 민족융화정책을 펼 것을 주장하다가 그를 견제하는 세력의 공격을 이기지 못하고 끝내 파멸하고 만다. 존 강의 파멸 과정을 지켜보면서 헨리 박은 심한 갈등을 겪게 된다. 그 어느 집단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하고 아웃사이더로 변방을 서성이며 살아가던 그의 삶이 더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을 호소해 오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헨리 박이 삶의 새로운 지평에 눈뜨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희망의 메시지로 끝난다. 즉 정보원 노릇을 그만두고 새로 이민 온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는 아내의 일을 돕는 것이다. 이 소설은 전체적으로 추리 기법을 동원한 짜임새 있는 구성과 날카로운 심리 묘사, 감성적이고 시적인 문체로 우리를 매료시킨다. 소설을 읽다 보면 때로는 슬픔이, 때로는 애잔한 감동이, 때로는 신랄한 조소가, 때로는 숨막히는 갈등이, 때로는 분노가 우리를 덮친다. 그 속에서 우리는 미국이란 사회에서 한국인으로 살아간다는 것, 그것도 먹고 사는 것 이상의 의미를 추구하며 산다는 것의 의미를 새삼 곱씹어 보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