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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오스카상 후보에 올라 국내에서도 소개되었던 <디 아우어스>는 시간을 주제로 한 영화다. 버지니아 울프를 연기한 니콜 키드만은 시간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자살하는 명연기를 펼쳐 여우 주연상을 받기도 했다. <댈러웨이 부인>을 쓰는 1920년대의 버지니아 울프와 그 작품을 신주처럼 읽으면서 일상의 탈출을 꿈꾸고 있는 50년대의 여성, 그 작품을 2000년대에 출판한 출판업자와 그의 시인 남편의 이야기가 다른 공간 다른 시간대에도 불구하고 단 하루 동안에 중첩되어 그려지고 있다. 일종의 비동시성의 동시성이라고 할까? 물리적 시간에서는 도저히 공존하기 어려운 사건들이 동시적으로 오버랩되는 것은 작가의 시간에 대한 원초적 체험 속에서 얼마든지 가능함을 보여준다. 여기서 물리적으로 진행되는 시간은 아무 뜻도 없이 진행되는 일상과도 같다. 결국 시간의 의미는 삶의 의미요, 일상적인 삶의 의미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에게 단순한 시간의 진행은 버겁고 참을 수 없는 무게일 뿐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우리는 다시 한번 삶의 의미와 시간의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시간이라는 것이 그렇게 시계추의 움직임처럼 규칙적으로 진행되는 것인가? 우리가 경험하는 시간은 많은 경우 일일 여삼추나 남가일몽처럼 일 순간에 온 인생을 체험할 수도 있지 않은가? 이렇게 보면 시간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삶과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이 달라질 수 있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문학은 일찌감치 시간의 이런 속성을 이해하고 작품 속으로 적극 반영하고 있다.
반면 이러한 질적 측면과 달리 시간에는 양적인 측면도 공존한다. 크로노미터로 대변되는 '시계의 시간'에서 보듯, 자연과학적 시간은 변화와 속도를 측정하는 객관적 기준이다. 이런 공적 시간을 통해서 우리의 사회 생활, 산업 활동 그리고 과학 연구등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런 과학적 시간은 이미 베르그송이 지적했듯, 순수 지속이 없는 공간화된 시간이자 파편화된 시간, 디지털화된 시간일 뿐이다. 자연과학적 시간에 기초할 때, 세계에 대한 체험은 통일성을 상실한체 분절화된 계기로 드러난다. 가령 영국의 대표적 경험론자인 흄은 감각적 지각의 생생함이 인상을 주지만 그것이 경험의 통일성이나 인과관계의 필연성을 보여주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프루스트나 조이스같은 20세기 소설가들은 자연과학적 세계상에 의해 파편화된 자아의 원초적 체험을 어떻게 복원하느냐의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그것은 결국 영원성과 통일성이라는 시간의 질적 차원을 회복하는 문제에 귀일하는 것이다. 계량화된 크기와는 상관없는 시간 경험 속에서 개인의 전생애가 재구성되고 세계 체험의 전체가 드러나기도 한다. 현대 소설은 '의식의 흐름', '순수 지속', '자유 연상'등의 기법을 활용하여 영원성을 상실한 개인의 파편화 현상, 시간 속에서의 자아의 상실과 회복이라는 정체성 문제, 시간의 방향과 관련한 죽음의 실존 상황등을 다루고 있다. 물론 이러한 것들은 자연 과학의 양적 시간으로는 접근할 수 없는 것들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책은 문학 작품에서 나타나는 시간의 다양한 의미를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1) 문학에서 시간의 의미는 어떻게 다루어지고 있는가? 주관적 상대성의 차원에서 이해..물리학에서는 시간의 지속이라는 개념이 간과... 이미지의 논리-유의미한 연상들에 의해 인과적으로 규정된 구조 ‘댈러웨이부인’이나 ‘피니간의 경야’에서 획득된 시간의 엄청난 확장과 응축에 긴밀하게 대응 환상과 상상 속에서의 시간적 요소들의 ‘무시간적’ 공존이 가능하다 2) 무엇이 문학에서 취급되는 시간의 주요소들인가? 3) 근대 세계에서 시간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4) 시간에 대한 이러한 문학적 논의가 철학에서 차지하는 의미는 무엇인가? 200여 페이지가 안되는 적은 분량이지만 저자 마이어호프는 이런 주제들을 상당히 심도 있게 요리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그는 미국과 유럽의 지성계에서 문필가로서의 명성을 획득하기도 했다. 오늘 날에는 학제간 연구의 필요성이 특히 제고되고 있는데, 문학과 철학의 접경 지대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이러한 연구가 좋은 범례가 될 수도 있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