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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표 설명
서문 및 감사의 말 제1장 이론적?역사적 배경 제2장 세종대왕 영도하 왕립 천문기상대의 대혁신 제3장 문종(文宗)부터 영조(英祖)까지(1450~1776) 제4장 송이영과 이민철의 혼천(渾天)시계(1669) 제5장 18세기 한국의 병풍천문도 후기 옮긴이의 말 Notes 참고문헌 |
Joseph Needh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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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역사에서는 올바른 역사적 관점이 진정으로 불가결하다. 고대와 중세의 유럽이 그러했던 것처럼 중국, 한국, 인도 및 아랍 제국 모두가 과학을 소유하고 있었다는 것이 우리의 견해이다. 이 모든 국가나 문화권이 과학의 발전에 기여했다.
--- p.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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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은 1418년에 자신의 아들(세종으로 추서됨, r. 1418~1450)에게 왕위를 물려주었으며 그 뒤에도 계속해서 다른 아들들의 질투에서 새 왕을 보호했다. 태종은 자신의 후계자를 잘 선택했다. 세종은 눈부신 업적을 쌓으며 한국의 국가적 영웅이 되었다. 세종대왕은 위대한 정치가이자 모든 학문 분야의 후원자였다. 뒤에서 이어지는 장에서 보겠지만, 세종이 후계자들에게 물려준 유산 중에서도 특히 뛰어난 것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천문관측소였다.
--- p.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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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 통치하에 이루어진 위대한 천문학적 개혁에 대한 이야기는 『세종실록』에 기록되어 있고 『증보문헌비고』에도 보강된 설명이 나온다. 이 두 편년사(編年史)에는 왕립 천문대의 천문의기와 함께 나란히 전시하기 위하여 작성한 몇 개의 명문이 포함되어 있다. 그 명문들, 특히 김빈(金?)과 김돈(金墩)의 명문과 공적 기록은 의기들 자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곁들이고 있다. 이들에 대해서는 뒤에서 길게 인용할 것이다. 이들의 서문과 요약문은 더 일반적인 용어로서 표현되어 있으며, 또한 새로운 의기를 제작한 동기에 대해 왕과 관료들이 논의하는 내용을 다루었다. 그러한 문서를 다룰 때에는 당연히 신하들의 아첨이나 과장됨을 염두에 두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데도 문서들을 보면 동아시아 역사에서 천문의기 제작의 가장 풍성한 열매를 맺는 시기를 맞이한 데에 왕의 주도가 결정적인 요인이었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 p.45~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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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의기는 서구형의 시계 제작 기술을 합체하고 있다는 점에서 놀랍게 혁신적이지만, 동시에 고대 동아시아의 계시학적인 의기 제작 전통에 충실하다는 점 또한 주목할 만하다. …… 송이영과 이민철의 시계는 동아시아 시계학(計時學) 역사에 있어서 하나의 획기적인 사건으로 널리 인식되어야 할 가치가 있다.
--- p.235~2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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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천문학 전통의 독창적인 민족적 변형에 바치는 찬사
저자들은 저명한 과학사가답게 책 첫머리에서부터 조선왕조에 대한 일반적인 편견을 통렬히 타파한다. 조선왕조에 관해 가장 널리 퍼져 있는 진부한 인식 중 하나는 조선이 무미건조한 신유교주의와 관료적 파벌주의가 초래한 정체 상태에 빠져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들은 이러한 인식이 실제로는 잘못이며, “서양 선교사들과 일본 식민주의자들의 이기적인 서술에 나타나는 제국주의적 사고방식의 산물”이라고 단언한다. 이 책에 서술된 활발한 과학 활동이 그 증거로서, 이는 조선에 신유교주의로 말미암은 ‘지적(知的) 정체’가 있었다는 생각과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20세기 과학사의 기념비적인 저서로 손꼽히는 『중국의 과학과 문명(Science and Civilization in China)』에서도 저자들은 두 번이나 다음과 같이 역설했다. “중국 문화권에 속하는 모든 민족 중에서 한국인은 과학, 기계기술 및 의학에 가장 관심이 컸다.” 실제로 세종대왕은 새로운 천문학 의기들을 제작하기 위하여 엄청난 국고를 썼고,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시기에 북경을 방문했던 조선사행은 매번 빠뜨리지 않고 천문학, 수학, 지리학 및 의학에 관한 최근의 저서를 조사했으며 각종 의기의 견본까지도 입수했다. 물론 한국의 천문학은 이웃 중국의 영향을 끊임없이 받아 왔다. 이 책에서 논의하는 대부분의 의기와 유물도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중국과 연결되어 있다. 특히 중국 원(元) 왕조의 궁정 천문학자 곽수경(郭守敬)이 만든 의기와, 중국 북경에 파견된 예수회 선교사 천문학자들의 작품 및 저서들이 조선 천문학의 이론적 바탕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저자들은 한국의 천문학이 중국의 천문학에 단단한 기초를 두고 있지만, 한편으로 의미 있는 한국 특유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확언한다. 그들에 따르면 한국의 천문학은 중국의 사상과 기술에 커다란 변형을 가했다. 또 때때로 북경 주재 예수회 선교사로부터(그리고 약간은 일본에게서) 받은 영향을 중국과는 다른 방식으로 소화했다. 다르게 표현하면 한국 천문학은 동아시아 천문학 전통의 독창적인 민족적 변형인 것이다. 한국의 천문학과 과학사 분야에 커다란 획을 그을 세기적 역작 저자들은 이 책의 1장에서 중국 천문학과 한국의 천문학에 대한 간단한 이론적 배경을 제시한다. 뒤이은 2장에서는 1430년대에 세종이 일으킨 왕립 천문기상대의 혁신과 그의 명령으로 만들어진 의기들을 서술하고 논의한다. 이 의기에는 곽수경의 간의(簡儀)를 복사한 혼천의, 다양한 종류의 해시계 및 복잡하고 정교한 물시계가 포함되어 있다. 저자들은 이런 의기들의 작동 원리를 논하고, 의기들의 사진과 복원도까지 제시한다. 3장에서는 후대 왕들이 세종대왕의 의기들을 어떻게 수리하고 보강했는지, 그리고 궁극적으로 의기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논의한다. 그리고 4장에서는 송이영(宋以潁)과 이민철(李敏哲)의 혼천시계에 대한 기술적 내용을 제시하며, 마지막 5장에서는 18세기 중엽 조선의 병풍천문도에 대해 서술한다. 두말할 것 없이 이 책이 언급한 각종 의기와 문서 기록들은 한국과 세계 과학사의 귀중한 유산으로 남을 것이다. 하지만 조선 왕립 천문기상대 서운관의 의기들에 대한 연구는 앞으로 더욱 활발한 논의를 거쳐야 한다. 조선의 천문학 분야에는 아직도 수많은 관측 기록의 역사와 미해결 문제들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분명 저자들은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로 측우기를 발명하였다는 사실에 회의적이며, 자격루의 작동 원리에 대해서도 이견을 드러낸다. 그러나 그 모든 논란거리를 넘어 우리는 조선이 “매우 유교적이었고 문화적으로 긍지가 높았으며 역동적”이었고, “천문학과 계시학의 과학과 기술을 깊이 추구함으로써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이목을 집중”시켰다는 니덤의 확신에 찬 서술에 충분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실로 조지프 니덤의 세계적인 명성에 걸맞은 이 값진 저서는 조선 천문학 분야의 르네상스 시대에 분출되었던 위대한 과학적 에너지를 오롯이 집약한 결과물로 우리 곁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