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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수상록『하늘과 땅』은 어떤 책인가?
1. 『하늘과 땅』사이에 사는 이원적 존재인 인간의 운명을 진솔하게 묘사한다.
산도르 마라이는 이 책에서 하늘과 땅 사이에 사는 이원적인 존재로서의 인간과 인간의 운명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세상사 모든 것에 대해 진솔하게 묘사한다. 평범한 서민에서부터 정신과 예술에 위대한 업적을 남긴 위인들에 이르기까지 온갖 종류의 사람들을 예리하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지켜보고, 이들이 엮어내는 삶과 죽음의 서사시, 사랑과 정열, 문학과 예술에 관해 깊이 성찰하고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해부한다. 마라이의 예리한 시선은 현상의 배후 깊숙이 파고들어서, 삶을 생성하고 파괴시키는 근원적인 힘, 이 힘이 엮어내는 변화무쌍하고 불가사의한 파노라마를 주의 깊게 뒤쫓는다. 2. 가슴에 천상적인 것을 품고도 지상에 두 발을 딛고 사는 인간의 아픔을 그린다. 이 책은 무엇보다도 천상적인 것, 신적인 것을 가슴에 품고 있지만 결국 지상에 두 발을 딛고 살 수밖에 없는 인간이 시종일관 작품의 중심을 차지한다. “나는 .... 불멸의 신神적인 것을 가슴에 품고 있지만, .... 한번은 카페에서 술 취한 돈 많은 사업가와 주먹질하며 싸웠다. 세상 만사를 이해하고 슬기롭게 마음의 평정을 유지할 때는 공자의 형제지만, 신문에 오른 참석 인사의 명단에 내 이름이 빠져 있으면 울분을 참지 못한다.” -제1부 「하늘과 땅」의 프롤로그 중에서 인간은 선과 악, 천상과 지옥의 양극단 사이에서 끊임없이 많은 모순과 갈등, 부조리에 시달리며,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좌절한다. 3. 그러나 산도르 마라이는 인간의 힘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마라이는 이러한 한계와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과 세상에 절망하면서도, 결국 이 절망을 넘어설 수 있는 인간의 힘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는다. 평화와 질서 뒤에 파괴적인 힘이 숨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폐허와 죽음 뒤에서 끊임없이 생명이 탄생하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다. “흑사병과 오욕 너머에 밝은 힘들이 존재하며, 언젠가는 인류를 밝게 비추어 줄 광명이 숨어 있는 것을 믿는다.” -제1부 「하늘과 땅」의 ‘삼월처럼’ 중에서 마라이는 무상하고 허무해 보이는 인생과 자연에서 불멸의 소박한 아름다움을 찾아내고, 이에 대한 환희를 묘사한다. 마라이에게 결국 삶은 넘치게 풍성한 것, 경이로운 것이다. 우리는 마라이의 글에서 소박하고 진솔한 삶에 대한 경외심, 삶과 자연에 대한 사랑, 자연의 풍성한 선물에 대한 환희와 겸허하게 감사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다. 『하늘과 땅』은 삶의 무상함이나 인간의 나약함에 대한 슬픔과 그런 삶이나 인간에 대한 애틋한 사랑, 절망과 희망이 현악 이중주처럼 어우러지는 마라이만의 독특한 세계를 그려낸다. 산도르 마라이가 행복에 대해 쓴 글을 보면 진솔하고 작지만 아름다운 삶의 태도를 느낄 수 있다. “맞습니다, 저도 행복한 때가 있었습니다. 그 행복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그 맛이 아직도 혀에 생생하고, 그 향기가 코끝을 스치고, 그 긴장이 신경을 타고 흐릅니다. 그런데 그게 언제였지요? 어린 시절?…… 아닙니다. 그다지 즐거운 어린 시절이 아니었습니다. 고통스러운 일이 많았습니다. 청소년기 아니면 나이 들어서? 음울한 기억들이 더 강하게 모든 것을 뒤덮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과연 언제 행복했지요?…… 이제 알겠습니다. 기억조차 할 수 없는 평범한 순간이었습니다.”-제1부 「하늘과 땅」의 ‘행복’ 중에서 4. 『하늘과 땅』은 망명 생활과 권총 자살의 불운한 삶을 산 산도르 마라이의 삶을 그대로 담고 있다. 산도르 마라이의 장편 소설 『열정』, 『반항아』를 비롯한 많은 작품들이 자전적인 요소를 담고 있지만, 『하늘과 땅』은 다른 어느 작품에서보다도 생생하게 마라이의 진실한 모습을 보여준다. 작가가 직접 체험한 인생 경험과 감동적인 추억, 여기에서 받은 느낌과 이에 대한 성찰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 마라이는 자신이 하늘과 땅 사이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겪고 인식한 것, 자신을 기쁘게 하거나 슬프게 한 것, 두려움을 자아내거나 놀라게 한 것, 절망하게 하거나 분노하게 한 것에 관해 이야기한다. 특히 2부 시론에서는 예술가로서 마라이의 절망과 고뇌, 긍지와 열정을 엿볼 수 있다. 마라이는 작가로서 맛보는 수많은 좌절과 시련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고자 하는 불가사의한 욕구를 느끼게 하고 글을 쓰게 해 준 운명에 겸허하게 감사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마라이의 문학적 세계를 일구어내고 지탱하는 작업장, 문학의 산실에 보다 가까이 접근할 수 있다. 『하늘과 땅』은 인간과 예술가로서 마라이의 솔직한 자화상을 보여주는, 삶과 인생에 대한 고백이라 할 수 있다. 5. 제2부 「시론」에서는 산도르 마라이의 문학관과 작가로서의 의지, 삶의 모습 등이 세밀하게 그려져 있다. 산도르 마라이는 괴테, 서머셋 몸, 앙드레 지드 등의 위대한 작가들에 대해 고찰하고 생각해보며, 자신의 문학관에 대해 고찰한다. 산도르 마라이는 거창한 주제와 의식보다는 삶 속의 작은 사건들이 더 진실이라고 고백한다. 작가가 한 줄의 시행을 위해서 할아버지를 파는 시기, 세상과 삶을 인간적인 것과 비인간적인 것을 표현하기 위한 고리타분한 구실로 여기는 조야한 문학적 시기. 이 시기는 작가의 철부지 시절이다. 이 철부지 시절이 오래 계속되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플로베르는 죽을 때까지 철부지였다. 할아버지 아니면 사소한 인간의 운명을 완벽한 시구보다 얕보지 않게 되는 날, 그래서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게 되는 날, 작가는 진정으로 어른이 된다. -제2부 「시론詩論」의 ‘철부지 시절’ 중에서 6. 제3부 「후추와 소금」에서는 마흔과 쉰 사이의 나이가 가지는 삶에 대한 진지한 의미를 차분히 깨닫게 해준다. ‘후추와 소금’ 사이라는 말은 ‘마흔과 쉰’ 사이의 나이를 뜻한다. 젊은 시절은 허황된 꿈과 욕심, 방탕에 젖지만 이 나이에는 온유해지고 성급하지 않게 하루 하루의 시간을 현재의 의미로 충분히 감사하며 살아간다. 산도르 마라이는 마흔과 쉰 사이에서 삶에 대한 성찰을 보여준다. 이제 모든 것에서 제 맛이 난다. 단 것은 달고 떫은 것은 떫고 향기로운 것은 향기롭고 악취를 풍기는 것은 악취가 난다. 마흔과 쉰 사이의 나이는 아마 완성의 시간이 아닐까. 시간이여, 나는 너의 소리 없는 숭고함에 깊숙이 고개 숙여 절을 한다. 그리고 말없이 진심으로 찬미한다. -제3부 「후추와 소금」의 ‘완성’ 중에서 7. 시적인 묘사와 간결하고 섬뜩한 문장은 독자를 심오한 사고의 세계로 이끈다. 산도르 마라이는 삶에 대한 진솔한 고백, 예리한 관찰과 냉정한 성찰을 마치 돌을 깎아 보석을 연마하듯이 세심하게 다듬고 간결하게 응축시켜 서너 줄 아니면 길어야 열 줄에 담아낸다. 언뜻 아주 단순하거나 평범해 보이는 사물이나 사건도 심오한 사상과 인식을 담고 있으며, 주옥같은 영상과 문장을 통해 빛을 발한다. 그래서 독자는 한 편 한 편의 글을 마치 시와도 같이 되새기고 길게 가슴을 파고드는 여운을 음미하게 된다. 심오한 삶에 대한 고찰을 이렇듯 짧은 형식에 불러내어 독자를 사고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뛰어난 예술적인 능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백합과 붓꽃, 꽃받침 모양의 꽃, 관엽 식물들이 관 주변에서 보초를 섰다. 꽃송이들은 유리로 만든 것처럼 창백해 보였으며, 죽은 사람 앞에서 살며시 숨을 쉬듯 은은한 향기를 내뿜었다. 죽은 자가 잠을 자고 있으니 우리 방해하지 말자! 꽃들은 그렇듯 향기로웠다. 자제하는 온유한 태도, 부드럽고 은은한 색채, 친밀한 향내를 통해서 꽃들은 죽은 자의 세계 안으로 성큼 들어섰다. 죽은 자가 화학적이고 관념적인 의미에서만 이 지상의 세계에 존재하듯이, 꽃들도 더 이상 지상의 꽃이 아니었다. 죽은 자도 아직은 완전히 익숙해지지 못한 상태에, 꽃들은 훨씬 더 섬세한 감각으로 적응했다. -제3부 「후추와 소금」의 ‘꽃’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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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의 대문호 산도르 마라이
산도르 마라이는 1900년 독일과 헝가리 문화의 접합지이며, 1차 세계 대전 후 체코에 귀속된 카샤우에서 태어났다. 마라이의 아버지 집안은 작센에서 이주한 독일 계통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는 유년 시절부터 헝가리어와 더불어 독일어를 말하고 배웠다. 그리고 슬로바키아 어도 약간 말할 수 있었으며, 당시 중부와 동부 유럽의 시민 계층에서 대부분 그랬듯이 프랑스어를 배웠다.
그가 대학 생활을 시작한 부다페스트는 당시 다른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급진적인 변화의 징조가 뚜렷했다. 군주제에서 좌익공화국으로, 그리고 다시 우익 호르티 정부로의 변화. 마라이는 눈앞에서 “모든 것이 붕괴한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그는 헝가리를 떠나 라이프치히의 신문학 연구소에서 강좌를 수강한 다음,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으로 옮겨 『프랑크푸르트 신문』에 독일어로 기고하기 시작했다. 귀족의 작위를 받은 작센-메렌-헝가리 시민 가문에서 출생한 마라이는 독일과 헝가리 양국의 언어에 능통했다. 1923년 잠시 베를린에 체류한 후, 그는 같은 고향 출신의 젊은 부인과 함께 파리로 이주했다. 그곳에서 그는 『프랑크푸르트 신문』에 계속 기사를 쓰는 한편, 유랑민과 같은 생활을 하면서 당대의 위대한 시인들의 작품을 읽는다. 그 가운데 그는 카프카?트라클?벤 등의 작품을 헝가리어로 번역한다. 카프카에 대한 헝가리 최초의 비평 역시 그의 손을 거쳐 1922년 『카샤우 신문』에 실린다. 1927년 그는 중동 여행기 『신들의 흔적을 좇아-여행 소설』을 출간한다. 그후 그는 영영 잃어버린 조국애를 키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헝가리 말로 글을 쓰기 위해서 고국으로 돌아간다. 거기서 그의 왕성한 작가 활동이 시작된다. 서정시?산문?희곡 그리고 마라이의 장기라 할 수 있는 수상록『가난한 이들의 학교』(1933), 『나라, 나라』(1945~1947) 등에서 그는 중부유럽의 상황을 선명한 필치로 절조 있게 논평하고, 타국에서뿐 아니라 헝가리에서도 드러나는 자신의 이중적인 이질감을 설명한다. 그리고 마라이는 『어느 시민의 고백』(1934)으로 성공을 거두어 유명해지기 시작한다. 당대의 저명한 한 비평가는 이렇게 말했다. “이 고독한 작가의 커져가는 인기를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그의 글 밑바탕에 웅크린 존재론적인 문제들 때문이 아닐까!” 마라이는 당시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영향을 미친 몇 안 되는 작가 중 한 명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이러한 성공을 뒤로하고 1948년, 고개를 쳐든 독재에 혐오를 느껴 헝가리를 떠난다. 처음에 그는 나폴리에 정착하지만, 1952년 뉴욕으로 이주한다. 그는 뉴욕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흥미있는 도시, 사람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아 애석하기 그지없다.” 마라이는 당시에 미국 시민권이 있었지만, 1968년에 이탈리아의 살레르노로 건너가 10년 이상 머무른다. 그러다가 다시 1979년 미합중국의 샌디에고로 돌아간다. 이 무렵 역사?신화?성경에 관련된 주제를 비유적이고 함축적으로 다룬 소설들을 헝가리어로 집필한다. 마라이는 망명지에서뿐 아니라 헝가리에서도 전과 다름없이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헝가리의 독재 정권은 그의 책들을 금지했지만, 그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는 동시에 1943년에 시작한 일지를 1983년까지 계속 쓰는 한편(일지는 방대한 분량뿐만 아니라 내용상으로도 그의 작품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1931에서 1947년 사이에 집필한 대하소설 『가렌의 업적』의 내용과 문체를 수정한다. 그의 망명 생활은 고독과 쓸쓸함의 연속이었다. 스위스에서 1년, 이탈리아에서 2년, 그가 증오한 뉴욕에서 15년, 다시 이탈리아, 그리고 결코 안식처가 될 수 없었던 마지막 거주지 캘리포니아 해안의 샌디에고. 그는 그곳에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이 낯설기만한 타향에서의 고독이 때때로 유럽을 생각나게 하는 뉴욕에서의 상실감보다 견디기 쉬웠다. 게다가 샌디에고에서는 적은 수입으로 어떻게든 생활을 꾸려나갈 수 있었다. 마라이는 헝가리 망명 인사들의 모임에도 전혀 참여하지 않고, 헝가리 문인협회가 정치적인 화해의 표시로 발송한 초대장도 거절한다. 그리고 헝가리에서 자신의 희곡이 상연되는 것과 작품이 출판되는 것을 거부한다. 그의 고독을 대변해주듯 수상록 『하늘과 땅』(1942)에는 이러한 문구가 있다. “파스칼, 횔덜린, 니체를 파괴했듯이, 고독은 사람을 파괴할 수 있다. 그러나 유혹한 다음 무덤 속에 내팽개치는 세상에 아첨하는 것보다는 이러한 실패, 붕괴가 사색하는 인간에게 더 어울린다.…… 혼자 남아 대답하는 것……” 그가 60년 이상 생을 함께한 부인이 죽었을 때 그는 오히려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녀와 완전히 하나다.……그녀는 마치 독립된 개체가 아닌 것 같다.……그녀는 아름답다. 사멸의 아름다움은 청춘의 도도한 아름다움이나 완벽한 여성미보다 때때로 더 설득력이 있다.” 이렇듯 자신과 완벽하게 합일한 인간의 사멸에 대한 관찰은 동시에 자신의 죽음에 대한 신중한 준비라고 볼 수 있다. 게다가 부인에 이어 의붓아들마저 갑자기 세상을 떠났을 때, 그는 완전히 혼자 남았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상황을 반어적으로 표현했다. “그래서 나는 지루하지 않다.” 그러고 나서 그는 권총을 산 다음 경찰 강좌에서 무기 다루는 법을 배운다. 그의 고향은 그때까지 그를 계급의 적, 배반자로 칭했으며, 거의 40년 동안 그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와 그의 작품이 아예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데도 그는 추호의 의심 없이 말했다. “어디로 떠밀려 가든지, 나는 항상 헝가리 작가일 것이다.” 그는 젊은 날 한때 독일어로 글을 쓴 적이 있었으며, 영어도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 지구상에서 잘해야 천만 명 남짓한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소수 민족의 언어에서 가능한 최대의 것을 얻어내는 데 자신의 사명이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어쨌든 우리에게는 독일어 번역들이 그의 예술의 한 가닥 빛을 전해주어 참으로 다행이다. 그는 지극히 아름다운 문장들로 시적인 깊이를 창조했다. 그 때문에 씌어진 지 6, 7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그의 소설들은 선명함과 생명력, 슬픔과 사랑을 우리에게 안겨준다. 1988년 ‘전환기’가 예고되었을 때, 부다페스트의 출판사 세 곳에서 그의 대작을 출판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갑자기 깨어난 이러한 관심이 그를 움직일 수는 없었다. 그는 러시아 군대가 완전히 물러나고 자유로운 민주선거가 실행된 다음에야 자신의 작품을 출판할 수 있다고 고집했다. “문인협회라는 사람들이 집으로 전화해서 나와 내 책들의 기념비를 만들겠다고 한다. ……모든 기념비 공동의 운명은 개들이 발치에 오줌을 눈다는 것이다.” 그는 어떠한 초대에도 응하지 않았다. 정치적인 전환기가 새로운 답변을 요구하기 직전인 1989년, 세상과 완전히 격리되었을 뿐 아니라 더 이상 글도 쓸 수 없게 된 마라이는 샌디에고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89세의 그는 거의 한 세기를 헤아리는 자신의 삶을 권총으로 마감했다. 그는 죽음 앞에서도 자유로운 정신일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한 것이다. 그의 죽음은 그가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날을 무려 41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기다린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의 부인처럼 자신의 유골을 태평양에 뿌리게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