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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아이에이,Mathangi 'Maya' Arulpragas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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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적이며 미래적인, 그리고 치열한 아티스트
[Maya](2010) by M.I.A.
그녀의 이름을 두고 M.I.A.라 불러야 할까 미아라 불러야 할까 잠깐 혼란을 느꼈던 적이 있을지 모른다. 그녀는 그런 망설임을 최소화할 만한 앨범을 최근 완성했다. 그녀의 본명은 Mathangi "Maya" Arulpragasam이고 막 발표한 세 번째 앨범의 제목은 [Maya](2010)이다. 그러니 이제 좀 편하게 그녀를 마야라 부르기로 하자. 여담으로 제목에 이름을 표기하는 일은 그녀에게 익숙했다. 뿌리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남다른 그녀는 그동안 제목으로 이를 반영해왔다. 데뷔 앨범 [Arular](2005)는 아버지의 이름, 두 번째 앨범 [Kala](2007)는 어머니의 이름이다. 그리고 이제는 자신의 이름을 쓴다. 자신의 이름을 제목으로 택했다는 것에서 특별한 의미를 찾는 일은 어쩐지 괜한 수고가 될 것 같다. 마야에게 있어 제목을 결정하는 일은 그냥 작업의 연장이자 작품의 진행에 가까워 보인다. 어머니 이름을 썼건 아버지 이름을 썼건 변함없이 자신을 강하게 드러내는 작품을 만들어왔기 때문이다. NON MUSIC 마야의 활동명 M.I.A.는 전투 중에 실종된 상태를 뜻한다(Missing In Action). 이는 그녀의 배경과 성장해온 환경을 투영하는 이름이다. 스리랑카 출신의 부모를 둔 마야는 기록에 따르면 런던 하운슬로Houndslow 태생으로, 생후 6개월이 지나 스리랑카를 찾았다가 다시 영국에 돌아와 정착하게 되었는데 이는 정치적 망명이었다. 인종차별 정책을 주도한 권력층 싱할라족과 반정부적인 타밀족의 첨예한 투쟁에서 학생운동 및 시민혁명을 이끈 주요 인물이 그의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한때 그녀는 아버지와 대면하는 일조차도 어려웠다고 말한다. 정부의 엄격한 통제로 인도의 어딘가로, 어느 유기된 난민 캠프로 이동해왔던 마야의 가족은 그렇게 오랜 스리랑카 내전을 몸으로 통과해왔다. 1975년생 마야는 1980년대 후반이 되어서야 영어를 깨우쳤다고 말한다. 성장하면서 예술적인 재능을 조금씩 발견하게 되자 마야는 가족의 역사와 민족과 모국의 역사를 자신의 작품에 반영하기 시작한다. 거짓말쟁이와 허풍쟁이만 있더라는 런던의 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아트와 디자인을 전문으로 하는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 콜리지에서 마야는 미술과 영화와 비디오를 전공했으며 2001년 첫 전시를 열었다. 그녀의 작품은 몹시 복잡했다. 그래피티 아트를 골자로 하는데 마야의 다양한 정체성이 뒤섞여 있었다. 그녀는 어딘가에서 온 이주민이었고 어딘가에 자리를 잡은 정착민이었다. 실존에 대한 거대한 혼란을 야기했을 남다른 환경은 작품의 동력이 되었다. 그 복잡한 작품에 마야는 굳게 정부권력을 상대하는 타밀의 정치적 입장을 얹었고 현대의 소비자 보호 운동을 지지한다는 자신의 입장을 표명했으며 아울러 런던의 보편적인 삶을 함께 담았다. MUSIC 마야가 눈길을 준 예술의 세계는 다양했다. 다방면의 종합예술을 경험한 후, 시각적인 효과를 강하게 부각하는 사운드야말로 자신의 복합적인 예술적 에너지를 아쉬움없이 표출할 수 있는 분야라 느꼈던 것이 분명하다. 송라이터, 프로듀서, 래퍼, 패션 디자이너, 비주얼 아티스트, 레이블 설립자, 다큐멘터리 감독, 정치적 액티비스트 등 다양한 직함을 갖고 있는 마야는 세 장의 앨범으로 이 모든 이력을 증언했다. 복잡한 성향과 풍성한 이력처럼 그녀의 음악은 접근과 이해가 사실 그리 만만하지 않다. 기계적이고 기이한 그녀의 음악을 대체로 이상하다거나 어렵다고 평가하지만, 그러나 언제나 심오하고 자아중심적인 작품에만 몰두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지난해 거둔 성취가 대변해 준다. 마야는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에 흐르던 히트곡 'Paper Planes'로, 그리고 만삭 상태로 등장한 2009년의 그래미 무대로 친화적이면서도 파격적인 대중어필에 성공했다. 그렇게 마야는 '보이는 음악'을 추구한다. 보이는 마야의 음악은 그녀를 2009년 [타임]지 선정 '영향력있는 세계인 100인'의 일원으로 이끌었다. 마야는 아트워크와 비디오와 퍼포먼스에 개인의 역사와 정치/비정치적 입장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선율의 구성이나 악기의 편성 차원에서 기존의 음악적 흐름을 파괴하고 해체하면서 특화되고 진보적인 사운드를 선보인다. 그렇게 완성된 음악에는 세계가 있고 전쟁이 있으며, 국가라는 거대한 권력 앞에 무력하다 한들 범세계적인 각성과 선동을 두려워하지 않는 강인한 개인이 있다. 그리고 상업적이고 보편적인 음악 비즈니스에 던지는 날카로운 질문의 공세가 있다. 대개 변칙적이고 공격적인 사운드, 그리고 록과 힙합의 경계를 무참히 박살내는 비트와 랩으로 마야는 게으르거나 무심한 사회에 건강한 의미의 위협을 가한다. 그리고 그 치열한 화법은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그녀의 세 번냂 앨범 [Maya]는 말하고 있다. MAYA 여전히 마야는 공격적인 사운드로 일관한다. 우선 돌고 도는 루프 형태의 파괴적인 인더스트리얼 노이즈를 근간으로 한다. 여기에 덥dub의 공세를 아끼지 않는 베이스가 추가되고, 이국적이면서도 미래적인 마야 특유의 사운드로 앨범은 완결된다. 더러는 기발하고 아름다운 멜로디를 곁들이기도 한다. 발매 전 온라인으로 선공개했던 곡이자 폭력적인 영상으로 무려 유튜브에서 금지처분을 받게 된 문제의 노래 'Born Free', 듣는 순간 귀에 꽂히는 후렴구를 탑재한 'XXXO', 선율을 음미할 만한 여유를 주는 'Tell Me Why' 등의 이야기다. 이는 난해한 실험적 사운드에 주로 몰입하지만 대중적인 이해가 없는 뮤지션이 아님을 증명하는 아름다운 노래들이다. 그녀는 여전히 그렇게 적당히 파격적이고 적당히 보편적인 자유분방한 앨범을 만든다. 지난 앨범의 실험이 충분히 성공했고 'Paper Planes'를 통해 세계적인 지지를 획득했기 때문이며, 그녀는 이미 레이블 소유주(N.E.E.T. Recordings)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울러 앨범에는 루스코, 디플로, 블락스타 등의 프로듀서가 참여했고, 그녀가 상주했던 LA의 스튜디오와 자신의 집에서 녹음했다. 앨범은 혁신적인 사운드 말고도 확실한 언어에 집중한다. "검열되지 않은, 2010년의 캡쳐 화면"이라고 설명하는 앨범은 우리가 피부로 느끼는, 그러나 사실상 무디게 반응하는 문제의식을 동반한다. 마야는 앨범으로 언론이나 여론에 보도의 자유를 억압하는 '정보정치'의 세계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고 말한다. 일례로 구글링을 통해 그녀 모국 스리랑카의 진정한 특징과 성격을 알게 되기까지 40페이지 이상을 넘겨야 하는 수고가 따른다고 성토한다. 이렇듯 알권리를 제한하는 각종 네트워크와 테크놀로지를 통렬하고 세련된 방식으로 비판한다. 구글에 연결된다는 것은 정부에 연결된다는 것이며, 두뇌의 뼈가 아이폰으로 연결되고 아이폰은 인터넷으로 연결되고 인터넷은 구글로 연결되고 그렇게 연결 끝에 만나는 구글은 곧 정부라고, 마야는 첫곡 'The Message'를 통해 이야기한다. 간단하게 던지는 마야의 이야기에는 그리 간단하지 않은 현상이 있고 세계가 있다. 짧지만 예리한 메시지로 시작하는 앨범은, 우리가 음악을 듣고 느끼는 수동적인 일만으로 무언가 조금은 변화하고 있음을 일깨운다. 2010/07 이민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