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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소개

왜 아직도 칼라스인가? 마리아 칼라스의 열정.

디스크

CD 1

  • 01 Rossini : Il Barbiere Di Siviglia (세비야의 이발사) - Una Voce Poco Fa (방금 들린 그대 음성)
  • 02 Verdi : I Vespri Siciliani (시칠리아섬의 저녁 기도) - Merce, Dilette Amiche (고맙습니다, 여러분)
  • 03 Puccini : Gianni Schicchi (쟌니 스키키) - O Mio Babbino Caro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 04 Puccini : La Boheme (라 보엠) - Si, Mi Chiamano Mini (내 이름은 미미)
  • 05 Verdi : Rigoletto (리골라토) - Gualtier Malde...Caro Nome (괄티에르 말데...그리운 그 이름)
  • 06 Verdi : La Traviata (라 트라비아타) - Ah, Fors'e Lri (아 그이였건가)
  • 07 Delibes : Lakme (라크메) - Dov'e L'indiana Bruna (인도의 딸아, 어디를 가느냐)
  • 08 Counod : Faust (파우스트) - Un Bouquet!...Ah! Je Ris (아! 나는 웃는다)
  • 09 Saint-Saens : Samson Et Dalila (삼손과 데릴라) - Amour! Viens Aider (사랑이여! 나를 도와 주소서)
  • 10 Bizet : Habanera(Carmen) (하바네라)(카르멘) - L'amour Est Un Oiseau Rebelle (사랑은 자유로은 새)
  • 11 Thomas : Polonaise(Mignon) (폴로네이즈)(미뇽) - Je Suis Titania (나는 티티냐입니다)
  • 12 Cluck : Alceste (알레스테) - Dicinites Du Styx (스틱스의 여신)
  • 13 Bellini : Norma (노르마) - Casta Diva (정결한 여신)
  • 14 Verdi : Macbeth (맥베드) - La Luce Langue (햇빛은 엷어지고)
  • 15 Puccini : Turandot (투란도트) - In Questa Reggia (먼 옛날 이 궁전에서)

CD 2

  • 01 Puccini : Tosca (토스카) - Vissi D'arte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 02 Puccini : Madama Butterfly (나비부인) - Un Bel Di Vedremo (어떤 갠 날)
  • 03 Puccini : Suor Angelica (수너 안젤리카) - Senza Mamma (어머니도 없이)
  • 04 Catalani : La Wally (라 왈리) - Ebben? Ne Andro Lontana (멀리 떠나네)
  • 05 Ciordano : Andrea Chenier (안드레아 쉐니에) - La Mamma Morta (조르다노)
  • 06 Verdi : Il Trocatore (일 트로바토레) - D'amor Sull'ali Rosee (사랑은 장밋빛 날개를 타고)
  • 07 Bellini : Il Pirata (해적) - Col Sorriso D'innocenza (순결한 미소로)
  • 08 Bellini : Ernani (에르나니) - Ernani, Ernani, Involami (에르나니, 나를 뺏아아 도망가 다오)
  • 09 Verdi : Aida (아이다) - Ritorna Vincitor! (이기고 돌아오라)
  • 10 Bizet : Carmen (카르멘) - Carreau! Pique! (다이아몬드! 스페이드!)
  • 11 Mozart : Don Giovanni (돈 조반니) - Mi Tradi Quell'alma Ingrata (비열한 그 자가 나를 배신했구나)
  • 12 Verdi : Don Carlo (돈 카를로) - Tu Che Le Vanita (세상의 덧없음을 아시는 신이여)
  • 13 Ponchielli : La Gioconda (라 조콘다) - Suicidio! (자살!)
  • 14 Puccini : Manon Lescaut (마농 레스코) - Sola, Perduta, Abbandonata (홀로, 쓸쓸하게 버려지고)

아티스트 소개 1

연주Maria Call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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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칼라스

마리아 칼라스는 그리스 이민자의 딸로 뉴욕에서 태어났다. 부모의 이혼으로 14살 때 어머니와 함께 그리스로 향하게 되고 성악가로서의 경력을 쌓기 시작한다. 뚱뚱한 몸매 때문에 빛을 보지 못하던 칼라스는 무대에 어울리는 비주얼을 갖추기 위해 감량을 시도, 카리스마를 갖춘 오페라 프리마돈나로 거듭나게 된다. 메조소프라노와 소프라노의 음역을 모두 소화할 수 있었던 칼라스는 성악의 기교를 뛰어넘는 드라마틱한 표현력과 청중의 공감을 얻어내는 탁월한 재능을 갖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전성기는 그리 길지 못했다. 20살 연상의 남편 Giovanni Battista Meneghin
마리아 칼라스는 그리스 이민자의 딸로 뉴욕에서 태어났다. 부모의 이혼으로 14살 때 어머니와 함께 그리스로 향하게 되고 성악가로서의 경력을 쌓기 시작한다. 뚱뚱한 몸매 때문에 빛을 보지 못하던 칼라스는 무대에 어울리는 비주얼을 갖추기 위해 감량을 시도, 카리스마를 갖춘 오페라 프리마돈나로 거듭나게 된다. 메조소프라노와 소프라노의 음역을 모두 소화할 수 있었던 칼라스는 성악의 기교를 뛰어넘는 드라마틱한 표현력과 청중의 공감을 얻어내는 탁월한 재능을 갖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전성기는 그리 길지 못했다. 20살 연상의 남편 Giovanni Battista Meneghini와의 결혼 생활 중 선박 재벌 Aristotle Onassis와 불륜에 빠지게 되면서 그녀의 인생은 비극으로 치닫게 된다. 칼라스를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았던 오나시스는 결국 재클린 케네디에게 떠나고, 오나시스를 진정으로 사랑했던 칼라스는 사랑의 상처를 안은 채 고독한 말년을 맞이하게 된다. 이러한 그녀의 삶이 노래에 투영되어 더욱 설득력을 얻게 되었고 청중으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1973년부터 유럽과 미국 각지를 순회하며 공연하였고, 1974년 주세페 디 스테파노와 조인트 리사이틀을 였었는데 이것이 그녀의 가수로서의 마지막 무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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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분류

품목정보

발매일
2003년 10월 22일
시간/무게/크기
139g | 크기확인중

제작사 리뷰

이 오페라 아리아 음반은 마리아 칼라스가 녹음한 레퍼토리 가운데 좋은 연주를 가려 뽑은 단순한 모음집은 아니다. 가장 위대한 오페라 디바의 개인적인 생활과 연주 활동 모두에 대한 하나의 여정을 담은 것이다. 이 여정은 그녀가 부르는 아리아에서 재현되는 오페라의 배역의 감정과 분위기로 메아리치고 있다.
순진한 아가씨의 모습이 가장 첫 트랙에 담겨 있다. 쾌활하고 태평스러운 '세비야의 이발사'의 로지나는 만약 자신의 뜻대로 일이 성사되지 않을 경우 발휘할 기지에 대해 생각하고 있으며('방금 들린 그대 음성') '시칠리아 섬의 저녁 기도'의 행복한 엘레나는 친구들의 축복과 꽃 선물에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감사합니다, 여러분').
그리스 이민자인 아버지가 약국을 운영하며 그다지 안정적이지 못한 생활비를 벌면서 살아가던 뉴욕의 어린 시절 동안 마리아 칼라스는 실제로 위의 아리아에서와 같은 아름다운 삶을 누리지 못하였다. 그녀가 열 세 살 때 그녀의 어머니는 성악 교육을 시키기 위하여 다시 그리스로 돌아가도록 하였고 그녀는 자신을 음악에 헌신하였다. 친구들에 둘러싸인 채로 칼라스는 편안함 속에서 10대 시절을 보냈다.
어린 가수는 점차로 자신의 성적 매력과 자신이 사랑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마치 쟌니 스키키의 라우레타가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에서처럼 아버지로 하여금 자신이 선택한 남자와의 결혼을 허락하도록 설득하거나 파리의 고급 창부 비올레타가 '아 그이였던가'에서 알프레도에 대한 감정이 진실한 사랑인가 아니면 스쳐 지나가는 환상인지 번민하고 있다.
칼라스는 소녀 시절의 낭만과 사랑을 즐겼지만, 그것이 지속적일 정도로 커다란 의미를 가진 것은 아니었다. 그녀에게 가수로서 성공하겠다는 의지는 모든 것에 우선하는 가치였고 집요하게 노력한 결과 처음에는 아테네에서, 그리고 나중에 이탈리아와 여타 지역에서 연주 활동을 하였다.
상상력이 풍부한 소녀는 성장하면서 마치 '파우스트'의 마르게리타가 메피스토펠레스가 입구에 놓아둔 보석에 유혹되듯이 장신구 수집에 점차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아울러 마치 카르멘이 육감적으로, 조롱하는 듯이 하바네라에서 남성들을 유혹하듯 자신도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을 실감하게 되었다.
마리아 칼라스에게도 이에 상응하는 일화가 있는데 그녀는 1954년에서 1955년까지 몸무게를 30킬로그램 감량하였다. 뚱뚱하고 볼품없는 여인에서 세련되고 매혹적인 패션 아이콘으로 칼라스는 변모하였고 세계 미디어의 집중 조명을 받기 시작하였다.
이어서 등장하는 일군의 아리아에서 여인은 충분히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정결한 여신'(드루이드 교도의 여사제, 노르마가 달에게 바치는 기도)는 오페라 가수로서 그녀 예술의 정점을 제시한다. 그러나 선조 로링 공주가 겪은 굴욕을 되새기는 아리아 '먼 옛날 이 궁전에서'에서 모든 남성에 대한 증오를 선언하는 투란도트 공주의 그것과는 약간 다르지만, 대중에 대한 그녀의 시각과 태도는 점차 오만하고 까다롭게 변해갔으며, 오페라 주인공으로서의 태도를 실생활에서까지 표출하게 되었다.
칼라스에게 1951년부터 1959년까지의 기간은 엄청난 예술적 성취의 기간 가운데 하나였다. 예술적인 고향이나 다름없는 밀라노의 스칼라 오페라 극장의 잊을 수 없는 프로덕션에서 그녀는 성공을 거두었다. 특히 루키노 비스콘티의 연출 작품('베스타의 무녀', '몽유병의 여인', '라 트라비아타', '안나 볼레나' 그리고 '타우리데의 이피게니아')에서 그랬다. 그러나 1959년이 되자 칼라스는 이미 정상에 자리에 올랐고 더 이상 성취할 목표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페라 가수로서 한 가지 목표에만 매달리고 고된 일을 해내어야 하는 삶에 염증을 느끼고 라 스칼라와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과의 관계를 공개적으로 끊었고, 이는 대대적으로 언론에 보도되었다. 즉흥적이고 변덕스럽다는 그녀에 대한 평판은 무척 과장된 것이기는 했지만, 좋은 기사거리였다.
이제 화제를 다시 오페라 속에서의 그녀의 면모로 돌아가보자. 다음 레퍼토리는 그녀의 개인적인 삶을 드러내고 있다. 이 당시 그녀는 진정으로 사랑했던 남자로부터 실연을 당했다고 알려졌다. 음악과 예술에 대한 헌신의 대가로 고통과 슬픔이 안겨지자 부르는 토스카의 아리아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는 그녀의 분노를 압축해서 보여준다. 그러나 여전히 희망은 실낱같이 남아 있어 마치 나비부인의 '어떤 갠 날'에서 사랑했던 남자가 돌아올 것을 확신한다. 그러나, 칼라스가 그의 자식까지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오페라 '해적' 가운데 아리아 '순결한 미소로'는 아들의 존재로서 아버지의 자비를 구하는 한 어머니의 가슴 저미는 사랑이 담겨있다.
1959년 칼라스는 늙은 이탈리아인 남편 죠반니 바티스타 메네기니와 이혼하고 부유한 그리스의 선박왕 아리스토텔레스 오나시스의 연인으로 세계 각지를 비행기로 오가며 화려한 삶을 살기 시작하였다. 칼라스는 오나시스가 자신과 결혼해주기를 기대했지만 이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1960년 그녀가 오나시스의 아들을 낳았다는 소문이 돌았으나 아이는 하루도 채 살지 못하였다. 칼라스는 아이가 오나시스와의 관계를 굳건히 해 주리라 희망했지만 그렇지 못하였다.
불행과 비극을 알아버린 여인의 슬픔과 고통을 노래한 아리아가 끝나고 우리의 디바는 결국 카드 점의 결과로 죽음을 선고 받은('다이아몬드! 스페이드!') 카르멘의 절망을 함께 나눌 정도로 체념에 빠진다. 뒤 이은 '돈 조반니'의 아리아 '배은망덕한, 비열한 그 자가 나를 배신했구나'에서 사랑을 저버린 남자에 대해 독설을 퍼붓는다. 그러나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생각은 계속 남아서('자살!') 결국 '홀로 쓸쓸하게 버려지고'의 마농 레스코처럼 외로운 종말을 맞는다. 초기 시절의 모든 기쁨과 행복 그리고 이 위대한 디바의 예술적인 성취는 모두 사라진다. 죽음을 맞이 하였을 때 그녀는 혼자였다.
슬프게도 칼라스의 생애 자체는 바로 이와 같았다. 그녀 최대의 침체기는 오나시스가 그녀 대신 재클린 케네디를 선택하여 1968년 결혼했을 때였다. 그녀는 파졸리니가 감독한 유리피데스의 희곡 '메데아'영화와 투린의 '시칠리아 섬의 저녁기도'의 공동 연출과 같은 여타의 프로젝트를 통해 이를 잊으보려고 했다. 재클린 케네디와의 결혼 생활이 기대만큼 만족스럽지 않자 오나시스는 칼라스와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려 했으나, 칼라스는 재클린과 결혼한 상태의 오나시스를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오나시스가 1975년 사망하자 칼라스는 삶의 의지를 상실한 듯 하였고 파리의 아파트에 칩거하였다. 그곳에서 세기의 디바는 1977년 9월 16일 영면하였다.
글/Tony Locantro, 2003.
김준형(音盤評論家) 옮김

전문가 리뷰

마리아 칼라스
글/Tony Locantro, 2003. 김준형(音盤評論家) 옮김
이 오페라 아리아 음반은 마리아 칼라스가 녹음한 레퍼토리 가운데 좋은 연주를 가려 뽑은 단순한 모음집은 아니다. 가장 위대한 오페라 디바의 개인적인 생활과 연주 활동 모두에 대한 하나의 여정을 담은 것이다. 이 여정은 그녀가 부르는 아리아에서 재현되는 오페라의 배역의 감정과 분위기로 메아리치고 있다.
순진한 아가씨의 모습이 가장 첫 트랙에 담겨 있다. 쾌활하고 태평스러운 '세비야의 이발사'의 로지나는 만약 자신의 뜻대로 일이 성사되지 않을 경우 발휘할 기지에 대해 생각하고 있으며('방금 들린 그대 음성') '시칠리아 섬의 저녁 기도'의 행복한 엘레나는 친구들의 축복과 꽃 선물에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감사합니다, 여러분').
그리스 이민자인 아버지가 약국을 운영하며 그다지 안정적이지 못한 생활비를 벌면서 살아가던 뉴욕의 어린 시절 동안 마리아 칼라스는 실제로 위의 아리아에서와 같은 아름다운 삶을 누리지 못하였다. 그녀가 열 세 살 때 그녀의 어머니는 성악 교육을 시키기 위하여 다시 그리스로 돌아가도록 하였고 그녀는 자신을 음악에 헌신하였다. 친구들에 둘러싸인 채로 칼라스는 편안함 속에서 10대 시절을 보냈다.
어린 가수는 점차로 자신의 성적 매력과 자신이 사랑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마치 쟌니 스키키의 라우레타가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에서처럼 아버지로 하여금 자신이 선택한 남자와의 결혼을 허락하도록 설득하거나 파리의 고급 창부 비올레타가 '아 그이였던가'에서 알프레도에 대한 감정이 진실한 사랑인가 아니면 스쳐 지나가는 환상인지 번민하고 있다.
칼라스는 소녀 시절의 낭만과 사랑을 즐겼지만, 그것이 지속적일 정도로 커다란 의미를 가진 것은 아니었다. 그녀에게 가수로서 성공하겠다는 의지는 모든 것에 우선하는 가치였고 집요하게 노력한 결과 처음에는 아테네에서, 그리고 나중에 이탈리아와 여타 지역에서 연주 활동을 하였다.
상상력이 풍부한 소녀는 성장하면서 마치 '파우스트'의 마르게리타가 메피스토펠레스가 입구에 놓아둔 보석에 유혹되듯이 장신구 수집에 점차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아울러 마치 카르멘이 육감적으로, 조롱하는 듯이 하바네라에서 남성들을 유혹하듯 자신도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을 실감하게 되었다.
마리아 칼라스에게도 이에 상응하는 일화가 있는데 그녀는 1954년에서 1955년까지 몸무게를 30킬로그램 감량하였다. 뚱뚱하고 볼품없는 여인에서 세련되고 매혹적인 패션 아이콘으로 칼라스는 변모하였고 세계 미디어의 집중 조명을 받기 시작하였다.
이어서 등장하는 일군의 아리아에서 여인은 충분히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정결한 여신'(드루이드 교도의 여사제, 노르마가 달에게 바치는 기도)는 오페라 가수로서 그녀 예술의 정점을 제시한다. 그러나 선조 로링 공주가 겪은 굴욕을 되새기는 아리아 '먼 옛날 이 궁전에서'에서 모든 남성에 대한 증오를 선언하는 투란도트 공주의 그것과는 약간 다르지만, 대중에 대한 그녀의 시각과 태도는 점차 오만하고 까다롭게 변해갔으며, 오페라 주인공으로서의 태도를 실생활에서까지 표출하게 되었다.
칼라스에게 1951년부터 1959년까지의 기간은 엄청난 예술적 성취의 기간 가운데 하나였다. 예술적인 고향이나 다름없는 밀라노의 스칼라 오페라 극장의 잊을 수 없는 프로덕션에서 그녀는 성공을 거두었다. 특히 루키노 비스콘티의 연출 작품('베스타의 무녀', '몽유병의 여인', '라 트라비아타', '안나 볼레나' 그리고 '타우리데의 이피게니아')에서 그랬다. 그러나 1959년이 되자 칼라스는 이미 정상에 자리에 올랐고 더 이상 성취할 목표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페라 가수로서 한 가지 목표에만 매달리고 고된 일을 해내어야 하는 삶에 염증을 느끼고 라 스칼라와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과의 관계를 공개적으로 끊었고, 이는 대대적으로 언론에 보도되었다. 즉흥적이고 변덕스럽다는 그녀에 대한 평판은 무척 과장된 것이기는 했지만, 좋은 기사거리였다.
이제 화제를 다시 오페라 속에서의 그녀의 면모로 돌아가보자. 다음 레퍼토리는 그녀의 개인적인 삶을 드러내고 있다. 이 당시 그녀는 진정으로 사랑했던 남자로부터 실연을 당했다고 알려졌다. 음악과 예술에 대한 헌신의 대가로 고통과 슬픔이 안겨지자 부르는 토스카의 아리아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는 그녀의 분노를 압축해서 보여준다. 그러나 여전히 희망은 실낱같이 남아 있어 마치 나비부인의 '어떤 갠 날'에서 사랑했던 남자가 돌아올 것을 확신한다. 그러나, 칼라스가 그의 자식까지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오페라 '해적' 가운데 아리아 '순결한 미소로'는 아들의 존재로서 아버지의 자비를 구하는 한 어머니의 가슴 저미는 사랑이 담겨있다.
1959년 칼라스는 늙은 이탈리아인 남편 죠반니 바티스타 메네기니와 이혼하고 부유한 그리스의 선박왕 아리스토텔레스 오나시스의 연인으로 세계 각지를 비행기로 오가며 화려한 삶을 살기 시작하였다. 칼라스는 오나시스가 자신과 결혼해주기를 기대했지만 이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1960년 그녀가 오나시스의 아들을 낳았다는 소문이 돌았으나 아이는 하루도 채 살지 못하였다. 칼라스는 아이가 오나시스와의 관계를 굳건히 해 주리라 희망했지만 그렇지 못하였다.
불행과 비극을 알아버린 여인의 슬픔과 고통을 노래한 아리아가 끝나고 우리의 디바는 결국 카드 점의 결과로 죽음을 선고 받은('다이아몬드! 스페이드!') 카르멘의 절망을 함께 나눌 정도로 체념에 빠진다. 뒤 이은 '돈 조반니'의 아리아 '배은망덕한, 비열한 그 자가 나를 배신했구나'에서 사랑을 저버린 남자에 대해 독설을 퍼붓는다. 그러나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생각은 계속 남아서('자살!') 결국 '홀로 쓸쓸하게 버려지고'의 마농 레스코처럼 외로운 종말을 맞는다. 초기 시절의 모든 기쁨과 행복 그리고 이 위대한 디바의 예술적인 성취는 모두 사라진다. 죽음을 맞이 하였을 때 그녀는 혼자였다.
슬프게도 칼라스의 생애 자체는 바로 이와 같았다. 그녀 최대의 침체기는 오나시스가 그녀 대신 재클린 케네디를 선택하여 1968년 결혼했을 때였다. 그녀는 파졸리니가 감독한 유리피데스의 희곡 '메데아'영화와 투린의 '시칠리아 섬의 저녁기도'의 공동 연출과 같은 여타의 프로젝트를 통해 이를 잊으보려고 했다. 재클린 케네디와의 결혼 생활이 기대만큼 만족스럽지 않자 오나시스는 칼라스와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려 했으나, 칼라스는 재클린과 결혼한 상태의 오나시스를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오나시스가 1975년 사망하자 칼라스는 삶의 의지를 상실한 듯 하였고 파리의 아파트에 칩거하였다. 그곳에서 세기의 디바는 1977년 9월 16일 영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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