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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프롤로그·여행을 결심하기까지 영어교육이냐, 추억만들기냐 아내의 특명 지도 위에서의 여행 면세점에서의 첫 수업 우수에 젖은 자유의 여신상 무기여, 잘 있거라 브라운대학으로 가는 길 뉴포트에서 있었던 일 미국을 이끌어가는 아이비리그의 정신 아이의 버릇 고치기 아이들의 천국 올랜도 세느강은 흐르는데, 기차는 멈추고 플랑드르 들판을 지나며 유럽의 새로운 중세 뮌헨으로 가는 야간열차 레닌그라드의 추억 그 해 여름 모스크바에서는 백조의 성에 그려진 영웅전설 독일인의 환경 사랑 검으로 지켜온 자유와 평화 알프스 산 속의 도시아이 루소의 행복 방정식 비극에도 종류가 있다 피렌체의 빛나는 별들 로마에서 쓴 편지 돌의 문화, 나무의 문화 영원한 제국은 없다 드디어 이프 섬에 우연히 마주친 옛 애인 흐르는 강물처럼 에필로그·여행의 종착지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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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아들 단둘이 보낸 54일간의 특별한 시간
아들은 초등학교 3학년, 다른 아이들처럼 ‘학원열차’에 시달리며 도무지 자기 시간이라곤 가져볼 기회가 없는 평범한 초등학생이다. 아빠라고 사정이 나을 리가 없다. 하루종일 이런저런 업무와 교제에 시달리다 늦은 밤 피로에 지친 몸으로 귀가하는 평범한 가장이다. 그런 그들이 어느 날 문득 둘만의 장기간 해외 여행을 떠났다. 그것도 5월, 아직 학기중이다. 하기 휴가조차 아이들 학원 방학에 맞추어 일정을 잡는 여느 부모들 입장에서 보자면 펄쩍 뛸 일이다. 내 아이는 누구인가? 버릇없는 아이, 자기 할 일을 스스로 할 줄 모르는 아이, 전혀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아이,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모르는 아이, 나중에 잘살기 위해 명문대학에 가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사회를 위해 훌륭한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못하는 아이… 그런 아이가 바로 내 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부모의 심정은 어떨까? 김세걸(정치학 박사/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대우교수)의 '아들과 함께한 특별한 여행'은 평소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없었던 중년의 가장이 모처럼 시간을 내어 아들과 단둘이 세계 여행을 하게 되면서 겪은 일들과 여행지에서 떠오른 여러 가지 생각들을 담담한 필치로 적어나간 여행기이면서 일종의 교육 담론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또한 저자의 평화주의/생태주의/다원주의적 세계관과 인생관이 바탕이 된 폭넓은 사색이 담겨 있는데, 이를 통해 독자들은 여느 여행기에서 기대하기 어려운 다양한 읽을거리를 제공받게 된다. 처음 여행을 계획했을 때 엄마는 ‘아이의 영어 체험’을 염두에 두었고 아빠는 ‘아이와의 추억 만들기’를 생각했다. 하지만 안에서는 잘 볼 수 없었던 모습도 밖에 나가면 눈에 띄는 법, 여행을 하는 동안 아빠는 무력하고 이기적이며 공부만능주의에 빠져있는 자신의 아이, 바로 이 시대 아이들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 사실을 자각하는 순간 내심 목적했던 ‘추억 만들기’란 사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면서 여행은 자연스럽게 ‘세계인으로 더불어 살아갈 아이의 가치관 교육’이라는 분명한 목적 의식을 지니게 되었다. 우리 아빠는 누구인가? 언제부터인지 가정 교육은 엄마의 몫으로 돌아갔다. 아빠가 아이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학급 석차가 어떠한지, 운동 선수가 전망이 좋다는데 내 아이의 운동 능력은 얼마나 되는지, 아이의 반에서 1등을 한다는 그 친구의 부모가 부담하는 과외비는 얼마인지… 온통 계량화될 수 있는 수치들뿐이다. 아이에게도 아빠란 이른 아침에 나가 늦은 밤에 돌아오는 엄마의 남편, 피자를 사먹고 게임CD를 구입할 수 있는 ‘돈’을 벌어다주는 사람, 그 이상일 수 없다. 어쩌다 자리를 같이하는 경우가 생기더라도 아빠와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 공유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 아버지들의 슬픈 초상이다. 아빠로서 그 동안 아이의 <가정교육>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관심을 가졌던 적이 있었던가? 아이가 버릇없이 굴면 그때그때 야단이나 칠 줄 알았지, 아이의 버릇을 바로 잡아주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했던가? 밖에 나가서 술 마시면서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도 정작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은 거의 없지 않았던가? 기러기아빠는 아이를 해외 조기유학 보낸 가정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나 같은 사람도 사실 기러기아빠인 셈이다. 밖에 나가서 돈만 벌어다 주고 자녀 양육 및 교육 문제는 전적으로 엄마에게 맡긴다면, 그것이 기러기아빠가 아니고 뭐란 말인가? ‘해외별거형’ 기러기아빠만 있는 것이 아니라 ‘국내동거형’ 기러기아빠도 있는 것이다. 바쁜 사회생활과 남성 위주의 놀이문화로 인해 가정과 아이들로부터 멀어져 있는 한국의 많은 아빠들이 사실 모두 기러기아빠인 것이다. - 책머리에 중에서 아버지가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 건강한 가정은 가족 구성원이 따로따로 역할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서로 동참하는 관계에서 형성되는 것이다… 바로 그러한 자각이 그들의 이번 여행을 ‘특별한’ 것으로 만들었다. 진솔한 대화를 나누며 서로를 발견하고 서로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하기에 여행만큼 좋은 기회가 어디 있겠는가? 성숙한 이상주의와 현실 교육이 만나는 자리 경쟁 사회의 냉엄한 현실 속에서 교육의 근본 이념을 실현한다는 것이 한낱 공상에 불과한 것일까? 저자가 혹시라도 이상주의의 허망한 꿈에 빠져 현실 교육의 여러 현안들을 도외시하고 있지는 않을까? 그런 기우라면 일단 접어두어도 좋을 것 같다. 성숙한 이상주의란 현실 기반 위에 서있는 것이고 저자 또한 그 점을 잊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국제정치와 경제, 동서양 사상과 문화 예술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동원하고 있으며, 탁월한 분석을 통해 읽는 이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386세대의 추억 찾기 저자는 말 그대로 평범한 가장이다. 글 쓰는 일을 업으로 삼은 문인도 아니고 여행전문가도 아니다. 80년대 학교를 다닌 많은 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도 한때 문학을 사랑했고 예술을 동경했던 사람이다. 그런 그에게 이번 여행은 한동안 잊고 지내던 학창 시절의 추억들을 되살리는 의미도 있다. 맨하탄 앞바다를 바라보며 당시 감명 깊게 보았던 셀지오 레오네 감독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를 떠올리고 밴더필트 2세의 별장 브레이커스에서는 요한 슈트라우스의 경쾌한 왈츠를 듣는다. 세느강변에는 이장희와 박인희의 감미로운 목소리가 흐르고 있다. 뮌헨으로 가는 야간열차 안에서는 그 시절을 이렇게 회상한다. …… '파우스트'만큼 사상의 깊은 심연으로 나를 이끌고 가지는 못했지만, 내 인생역정을 바꾸어놓는 데 일조한 책이 하나 있다. 나치스 치하에서 자유를 위해 투쟁하다가 스러져간 뮌헨 대학생들의 이야기를 감동적인 문체로 기록한 잉게 숄의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이 그것이다. 1980년 가을 오랜 휴교 끝에 문을 연 대학의 캠퍼스에는 적막과 긴장이 감돌았다. 학생운동의 전설적인 영웅들은 모두 체포되어 군대나 형무소로 보내졌고, 학생들의 입과 입을 통해 <학살자>들의 만행이 전해져 왔다. 캠퍼스 곳곳엔 워키토키를 신문지에 말아든 한국판 게슈타포들이 누비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어느 날 저녁, 신문사 선배가 내게 던져준 낡은 표지의 그 책을 밤새 읽고서 난 찢어지는 듯한 양심의 고통을 느꼈다. 자유를 향한 투쟁의 함성이 거리를 메울 때 난 무엇을 했단 말인가. 오월의 햇살 아래 그들이 금남로에서 붉은 꽃잎처럼 지고 있을 때 난 무엇을 했단 말인가. 내 조국의 현실이 이럴 진데, <애너벨 리>나 <초원의 빛>이나 읊조리고 앉아 있을 것인가. 이리하여 난 영문과로 진학할 꿈을 접고 정치학을 선택했다. 낭만적 문학청년에서 현실 비판적 사회과학도로 변신한 것이다. 그로부터 이 글을 쓰기 전까지 20여 년 간이나 나의 문학적 잠재력은 <알라딘의 램프> 속의 거인처럼 바다 속 깊은 곳에서 잠자고 있어야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