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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두기
악의 유혹, 그 철학적 고찰 - 양명수 현란한 도발의 아찔함 - 김 번 1부 암흑의 제왕, 혹은 악의 아름다움 1. 반지, 책, 우리 세계를 축소한 모델 2. 반지의 의미 3. 매혹의 신화에서 유혹의 신화로 2부 사우론의 눈, 아벨의 살해, 프로메테우스의 불, 혹은 악의 근원 4. 악과 죄 있음, 그리고 신화와 죄 없음 5. 강렬한 시선과 보이지 않음 6. 골룸 혹은 하층민의 신화 3부 역사와 동화의 마주보기 7. 톨킨에게 있어서 인종과 언어의 문제 8. 상징적인 사유와 교감의 세계 9. '담배 없이 사는 사람은 살 자격이 없어...' 결론 참고문헌 역자후기 편집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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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철학자들의 눈으로 톨킨을 말한다
이 책이 더욱 흥미로운 점은 저자가 자신의 주장에 대한 근거를 현대 프랑스 철학의 거장들로부터 가져오려 시도했다는 것이다. 가령, 반지를 마법의 물건으로 설정한 것에 대해서는 축소된 물건이 지닌 매력에 대한 끌로드 레비-스트로스의 고찰을, 악의 문제에 있어서는 폴 리쾨르의 고찰을, 군더더기처럼 보이는 정확한 세부 묘사라는 문학적 장치에 대해서는 롤랑 바르트의 고찰을, 그리고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의 시선이라는 문제에 대해서는 미셸 푸코의 고찰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보이는 것이다. 톨킨의 작품에 등장하는 묘사와 프랑스 철학자들의 사색이 묘한 일치를 보인다는 점은 매우 흥미롭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러한 시도가 오히려 어두우면서도 매력적이고, 아름다우면서도 불길해 보이는 톨킨 소설의 양면성, 혹은 매력을 잘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물론 이자벨 스마쟈의 시도가 전적으로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텍스트 자체를 잘못 이해하지 않았나 싶은 부분도 없지 않고, 톨킨의 다른 작품과의 연관은 배제하고 『반지의 제왕』만을 문제로 삼는 탓에 때로는 표면적인 의미에 급급해 지나치게 무리한 해석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세계의 창조부터 멸망까지 이르는 완벽한 “신화”를 구성하기 원한 작가 톨킨의 관점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정치적으로 올바른’ 관점에서 선과 악, 그리고 오르크와 골룸에 대한 문제를 다루려 한다는 데서 치명적인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상 소설의 거장 톨킨의 권위에 ‘감히’ 도전하는 목소리라는 점에서, 이 책은 뒤늦게 환상 문학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수용하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 생각할 문제를 던져주고 있다. 환상 문학의 주체적인 수용은 가능한가? 톨킨의 작품에 나온 요정, 난장이, 마법사, 호빗, 오르크와 같은 독특한 존재, 가운데땅이라는 특별한 공간, 그리고 북유럽 특유의 분위기가 연상되는 명칭 등은 톨킨 이후 환상 문학에 있어 부정할 수 없는 일반적인 특징이 되고 말았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1990년대에 톨킨이 소개되면서부터 환상 소설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이 본격화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톨킨의 작품은 지금 인터넷 게시판을 비롯해 곳곳에 출몰하는 온갖 ‘환타지’ 소설은 물론이고, 모든 롤 플레잉 게임의 원형이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를 의심해 보게 된다. 톨킨의 거대한 그늘 아래서 우후죽순처럼 솟아난 여러 환상 소설은 혹시나 톨킨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은 아닐까? 마치 국내 작가의 무협지가 중국을 무대로 삼은 탓에 한족 특유의 중화사상조차 은연중 답습하고 있듯이 말이다. 물론 주체성에 대한 논란은 그럴듯해 보이긴 하지만, 환상 소설이란 장르에서까지 ‘주체성’을 문제 삼는다는 것은 우스운 이야기일 수 있다. 단지 편의상으로라도 특정 장르의 특색을 잘 나타내주는 상징들을 사용하지 않고서, 어떻게 한 작품을 ‘환상 소설’로 명명할 수 있다는 말인가? 물론 여기서 말하는 ‘주체성’이 단지 한국인 특유의 이름을 가진 주인공을 등장시키고, 한반도를 무대로 하거나 단군 신화의 주인공들을 차용함으로써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톨킨을 비판적으로 읽어야 할 필요성과 가능성 톨킨의 작품을 기계적으로 답습하는 것, 혹은 확대 재생산하는 것에서 또 다른 의문을 떠올리게 된다. 우리가 톨킨의 작품을 어떠한 형태로 ‘수용’하는 경우에, 우리는 은연중에 작품 이면에 깔려 있는 톨킨의 사상, 혹은 편견까지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생겨나는 것이다. 물론 톨킨이 의도적으로 자신의 사상을 전파하기 위해 작품을 쓴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 그의 작품 속에 그런 경향이 있으며, 그 결과 톨킨에 열광하는 독자들이 그런 경향에 익숙해지게 된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과연 그것은 우리가 동의할 수 있는 사상인가? 즉 우리는 톨킨의 작품에 나오는 선악의 이분법, 계급의 차별이나 인종에 대한 편견 같은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가? 그게 뭐 어때서 그러느냐고 반문하면 나로선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우리는 한때 서부 영화를 보며 ‘야만스러운’ 미국 인디언을 완벽하게 소탕하는 ‘용감한’ 백인 기병대의 활약에 박수를 보냈고, 타잔 드라마를 보며 ‘사악하고 교활한’ 아프리카의 흑인을 이기고 금발 미녀를 구해내는 ‘정의로운’ 백인 타잔의 모습에 환호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어느 누구도 그런 광경에 열광하지 않는다. 오히려 한때 우리가 그러한 서구인들의 오만과 편견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했다는 사실에, 그리고 여차하다간 우리도 미국 인디언이나 아프리카 흑인들처럼 백인의 눈요기감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사실에 경악과 자괴감을 느낄 뿐이다. 결국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질 수 밖에 없다. “과연 어떻게 톨킨을 ‘비판적으로’ 읽을 것인가?” 하고 말이다. 그리고 아마 이 책 『반지의 제왕, 혹은 악의 유혹』은 프랑스에서 날아온, 이 물음에 대한 한 가지 대답의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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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킨 신드롬, 과연 무엇인가?
J. R. R. 톨킨(Tolkien, 1892-1973). 그는 두 가지 세계에 속한 사람이었다. 한편으로는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저명한 언어학자로서 평범한 삶을 살아갔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가운데땅(Middle-Earth)이라는 세계의 창조주로서 선과 악을 뒤섞고 수많은 피조물의 운명을 결정하는 절대자로서의 삶을 살아갔던 것이다. 기독교적인 이원론의 세계관에 북구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이름들로 장식된 그 상상의 세계는 20세기 초에 지구상에 그 존재를 알렸다. 결코 많은 사람이 그 세계를 이해하진 못했지만, 적지 않은 사람이 톨킨의 세계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더 많은 사람이 그곳을 다시, 또 다시 발견했다. 심지어 저자가 사망한 지 무려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말이다. 지난 2001년 말, 피터 잭슨 감독의 영화 <반지의 제왕 : 반지 원정대>가 개봉되면서, 전 세계는 또 다시 톨킨을 발견하고 기꺼이 그의 포로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 2003년 말, 3부작 영화의 마지막 편인 <반지의 제왕 : 왕의 귀환>이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수많은 열광과 찬사, 그리고 톨킨을 향한 천편일률적인 감탄을 넘어서서 우리는 이제 이런 해묵은 질문을 던져 보고자 한다 : “어째서 우리는 톨킨에게 열광하는 것일까?” 톨킨은 인종차별주의자이며 여성차별주의자인가? 이러한 질문에 대하여, 프랑스의 철학자 겸 평론가인 이자벨 스마쟈는 다음과 같이 단호한 대답을 남긴다. “사람들이 톨킨에게 열광하는 이유는, 그 작품이 선악의 구분을 모호하게 처리함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면서도 각자의 욕망을 마음껏 대리충족할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그의 분석에 의하면 톨킨의 작품은 지나치게 어둡다. 선과 악의 대결을 그린 소설이고, 결국에 가서는 절대반지로 상징되는 악이 선의 노력에 의해 파괴된다는 줄거리이긴 하지만, 저자는 오히려 밝고 정의로운 선보다는 어둡고 음침한 악의 편을 더욱 선호하는 듯 보인다는 것이다. 물론 이전부터 톨킨의 작품 『반지의 제왕』은 유명세만큼이나 수많은 비판의 대상이 되어 왔다. 지나치게 ‘어둡다’는 점이 가장 많이 지적되었고, 그 외에도 작품 속에 드러나는 계급의식, 인종차별, 여성비하, 지나친 폭력성 등이 늘상 문제가 되었다. 물론 소수의 톨키니스트(톨킨의 매니아를 지칭하는 말)들은 이러한 일반 독자와 평론가의 지적에 늘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였지만, 톨킨의 작품을 처음 읽는 독자들에겐 당황스럽게도 톨킨의 작품 속에서 이러한 냄새가 짙게 풍긴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자벨 스마쟈는 아이들은 물론이고 어른들조차 『반지의 제왕』과 『해리 포터』라는 환상 소설에 매료되는 사실을 흥미롭게 생각하고, 이들 작품에 들어있는 매력의 요소를 분석하려 시도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그는 소설의 매력보다는 톨킨을 처음 대하는 독자들이 『반지의 제왕』을 읽으며 느낄 수 있는 여러 가지 당혹감을 정확하게 발견해낸다.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은 물음을 던진다. 어째서 악에 대한 선의 승리를 줄거리로 삼고 있는 작품이 처음부터 끝까지 이리도 어둡고 우울하게 묘사되어 있는지, 어째서 이 작품에서는 여성이 부차적인 존재로밖에 묘사되지 않는지, 그리고 오르크에 대한 인종적인 편견과 골룸에 대한 계급적인 편견은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