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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누워 있거라 / 지렁이 앞에서 / 별 것 아닌 것 / 한 그루 능금나무 / 외로움 / 모든 것이 돈으로 바뀌는 세상에서 / 더 자세히 보아라 / '이것이 진리다' 하고 말하는 자는 / 장애물과 장애 / 에고 뭉치 / 첫걸음 / 잘려진 나무 등걸 / 피장파장 / 제대로 늙는 비결 / 참 종교 거짓 종교 / 이미 완벽하다 / 삶과 죽음 / 아무것도 하지 말아라 / 흐름이 있을 뿐 / 무엇을 묻고 있느냐 / 세상 모든 것이 네 것이다 / '그것' 아닌 '이것'으로 살기 / 숨을 '쉰다'는 것 2 쓸쓸함 / 그냥 보아라 1 / 그냥 보아라 2 / 지금도 쓸쓸하냐? / 작은 일 큰 일 / 좋은 일 / 천사들과 함께 살아온 천사 / 충분히 맛보아라 / 뻥튀기 과자 / 모든 것이 바로 너다 /곶감 한 개와 오랜 버릇 / 깨달음의 길 / 왼뺨 오른뺨 / 승부에 대한 집착 / 착각 / 지저귀는 것들이 새들인가? / 농과 공 / 눈 밝은 것과 감사하는 것 / 폭력 / 돋보기 / 돈을 사랑하는 것 / 꿈속의 에고들 / 불에 타서 재가 된 새끼줄처럼 / 자책도 자긍도 / 밥 먹을 때에는 밥을 먹어라 3 사랑하지 말아라 / 이윽고 때가 되면 / 용서받지 못할 죄 / 어머니 작품 / 단소 탓이 아니라면 / 진정한 '반미' / 전쟁과 전쟁 놀이 / 에고를 에고로 반대하면 / 마찬가지 / 중요한 것은 마지막 말 / 치유되지 않은 상처 / 와이셔츠와 티셔츠 / 불편부당 / 하고 싶었던 일들 / 접시꽃 /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 / 크바스도프의 장애 / 안다는 것은 기억한다는 것 / 하느님은 사랑만 보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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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이 이토록 힘든 일인 줄 몰랐습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탓이 어디 있다고 보느냐?" "그야, 있다면 저한테 있겠지요." "옳은 말이다만, 정직한 대답은 아니구나." "……" "탓이 너한테 있다면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말은 무슨 말이냐? 네가 사랑하는 상대방이 밑 빠진 독 같아서 그래서 힘들다는 얘기 아니냐." "그렇군요."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기가 어려운 까닭은 사랑받는 사람에게 있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있다. 그래서 '탓'이 너한테 있다는 말을 옳다고 한 것이다." "제가 무엇을 잘못한 것입니까?" "잘못한 것 없다." "그런데 왜 이토록 힘들지요?" "너는 사람을 사랑하려고 했다. 그걸 잘못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아니지요." "그런데, 바로 그 때문에 사랑이 힘든 것이다." "예?" "사랑은 누가 누구에게 주거나 누가 누구한테서 받는, 그런 것이 아니다. 사랑은 사람들끼리 주고받는 무엇이 아니라 무엇을 주고받으며 살아있게 하는 힘이다. 그런 사랑을 누구에게 주고 또 받으려 하니, 그것은 마치 사람이 땅을 어깨에 메고 다니려 하는 것처럼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거늘, 어찌 힘들지 않겠느냐? 하면 할수록 힘들 것이다." "그럼 저는 이제 어찌해야 합니까?" (……) "누구를 사랑하려고 애쓰지 말아라. 그냥 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말없이, 소리 없이, 흔적도 없이, 아마 바라는 것도 없이 그와 함께 있어라. 거듭 말한다. 사랑은 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그 곁에 없는 듯 있는 것이다. 하늘이 땅을, 땅이 초목을, 일월이 만물을 대하듯이 그렇게, 아무 바라는 것 없이……." --- pp. 185∼1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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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무개 목사가 자기 속 또 하나의 자기와 나눈 마음의 대화록
소란하고 쓸쓸한 계절이다. 경기 침체, 정치 혼탁 속에 부정과 불신, 전쟁과 폭력이 기승을 부리는 이 계절에 이아무개(본명 이현주) 목사의 새 책 《지금도 쓸쓸하냐》가 도서출판 샨티에서 출간됐다. 구름이 묻고 산이 답한다는 뜻에서 붙인 ‘운문산답雲問山答’이라는 시리즈명에서도 보이듯, 이 책은 구름처럼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언제나 바뀌고 있는 ‘나’가 물으면, 산처럼 늘 거기에 있고 한결같이 변함없는 또 다른 ‘나’가 대답을 하는 형식을 띠고 있다. 예컨대, 쓸쓸함에 겨워하는 ‘나’에게 쓸쓸함도 손님이라고, 잘 대접해 보내라고 말하는 ‘나’. 그 또 하나의 ‘나’는 오랜 마음 공부 길에서 만난 그의 스승이기도 하다.
“선생님, 오늘 종일토록 참 쓸쓸했습니다.” “알고 있다. 축하한다.” “축하한다고요? 무엇을 말입니까?” “네가 하루종일 쓸쓸했다는 사실을. 쓸쓸함도 너에게 온 손님이다. 지극 정성으로 대접하여라.” “어떻게 하는 것이 쓸쓸함을 대접하는 겁니까?” “쓸쓸한 만큼 쓸쓸하되, 그것을 떨쳐버리거나 움켜잡으려고 하지 말아라. 너에게 온 손님이니 때가 되면 떠날 것이다.”―〈쓸쓸함〉중에서 이와 같은 문답 형식으로 된 67편의 글 마다에는 평범한 진리가 숨어 있으면서 이 가을, 우리의 마음을 반짝 윤이 나게 한다. 그것은 한평생 ‘마음 공부’의 길에 매진해 온 그의 오랜 구도자적 삶이 빚어낸 열매이며, 그 달고 시원한 열매를 맛보는 것은 그와 동시대를 사는 독자들의 즐거움일 것이다. 그의 깨달음이 그에겐 물론 독자들에게까지도 달고, 즐거운, 성장을 위한 행복한 경험이 될 수 있는 것은 그의 깨달음이 요란스럽지 않기 때문이며, 무엇보다 억지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설혹 억지 깨달음에 안주하려는 자신의 모습이 보이면 가차없이 스스로를 꾸짖을 뿐 아니라 부디 자연의 섭리대로 살라고 자신을 독려한다. 사람과 사람, 집단과 집단, 국가와 국가 사이의 관계가 불화와 갈등, 폭력과 전쟁으로 치닫는 것도 억지스러움에 있다는 걸 그는 자신 속 스승의 가르침을 통해 깨닫는다. 이 목사는 특히나 이 책에 실린 여러 편의 글에서 폭력(과 비폭력)의 문제에 대한 간절한 깨달음을 구한다. “왜 사람의 힘이 폭력으로 바뀝니까?” “사람이 억지를 부리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결코 억지를 부리시지 않는다.” “무슨 말씀이신지요?” “꽃이 억지로 피어나는 것을 보았느냐? 구름이 억지로 흘러가는 것을 보았느냐? 물이 억지로 얼어붙은 것을 보았느냐? 얼음이 억지로 녹는 것을 보았느냐? 그런 일은 없다. 그것들한테서 인간의 힘이 조금도 작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폭력〉중에서 그는 세상에 실재하는 폭력이 “‘나’가 따로 있다는 착각, ‘내 것’이 따로 있다는 착각, 그것들을 ‘남’한테서 지킬 수 있다는 착각”에 사로잡힌 ‘에고’의 미망에 있다고 지적하고, ‘평범한 일상’ 속에서 이러한 미망의 부림을 받지 않겠다는 개인들의 ‘선택’이 자신을 변화시키고, 그래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선생님, 깨달음을 추구한다는 게 무엇입니까?…… 사회 현실을 외면하면서 깨달음의 길을 갈 수 있는 겁니까?” “길을 밟지 않고서 길을 갈 수 있느냐?…… 사회 현실을 외면하고서 갈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것은 ‘사탄의 길’이지 ‘깨달음의 길’은 아니다. 속지 말아라. 깨달음이란, 밥 먹고 일하고 사람 사귀는 평범한 일상 속에 있는 것이다.”―〈깨달음의 길〉중에서 <위로와 안식, 그리고 깨달음의 즐거움이 있는 책> 이 가을, 힘들고 상처입은 영혼들이 길을 잃고 묻지만, 절망은 더욱 두꺼운 더께가 되어 어깨로 가슴으로 내려앉는다. “염려 말아라. 너는 지금 잘하고 있다”(<이윽고 때가 되면>)고 말해 주는 이를 어디에서도 만나지 못한다. 위로받지 못해서 우리는 더욱 쓸쓸하다. 그러나 잘 들어보면 우리를 향한 사랑의 노래가 끊인 적은 없다. 그 목소리는 아주 오랜 옛날부터 “아무리 어두운 밤이라도 그 밤의 어둠 때문에 굴절되는 빛은 없다”(<폭력>)고, “너는 이미 나무랄 데 없이 옹근 존재”(<이미 완벽하다>)일 뿐 아니라 실은 “우주가 동원하여 너를 돕고 있다”(<한 그루 능금나무>)고 말해 왔다. 이현주 목사만이 이러한 목소리를 새삼 들은 건 아닐 것이다. 우주에 편만한 그 소리를 들을 준비가 안 되어 있었을 뿐이다. 이현주 목사는 이 책을 통해 우리로 하여금 하늘과 땅과 별과 바람에게서 들을 수 있는 그 소리를 듣는 법을 자신의 경우를 통해 독자들에게 일러주고 있을 따름이다. 그는 자신이 받은 사랑과 위로의 목소리를 이렇게 세상에 다시 전한다. “지금 여기서 네가 하고 있는 일을 왜, 무슨 목적으로 하고 있는지 들여다보아라. 그것이 과연 사랑 때문에 사랑으로 하고 있는 일이면 기꺼이 계속하되 어떤 모양으로든 두려움이 작용하고 있다고 판단되면 당장 손을 떼어라.”(<진정한 ‘반미’>) 이것은 그가 육십 평생을 살아오면서 자신을 돌이키고 점검하고 격려하는 기본 태도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이현주 목사 자신을 포함해서 쓸쓸한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위로와 안식, 그리고 깨달음의 즐거움”을 주는 책이다. 그의 고백을 통해서 우리는 자신 안에 숨어 있던 참 나 혹은 하느님과 만난다. 그 하느님은 그에게나 그의 전언을 듣는 우리에게나 공히 “평범하게 살아 평상인으로 되는 것”에 진리가 있다고 말해 준다. 독자들에게 이 책을 천천히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일상을 하루 단위로 음미하고 살듯 이 책도 하루에 한 편씩 마음 가는 페이지에 머물어 가만가만 음미하며 읽어보라고 말이다. 전체를 작정하고 쓴 글들이 아니라,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묵상하듯 써내려간 글들이기에 더욱 그렇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