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 프롤로그
- 도주 - 청산가리와 짚으로 만든 신 - 북한 대 한국 - 멋진 독일 민주주의 인민공화국 - 상승 - 황금시대 - 헌신과 인내 - 100미터의 아름다움 - 굿바이, 위대한 수령 - 핵 생명(비) 보장 - 호랑이는 가죽을 남긴다 |
|
그의 임무는 오로지 독재자를 위한 헌신!
그의 이름은 김정률, 명색이 북한의 해외 군수담당 조달요원이었던 그는 오스트리아에서 보낸 오랜 시간들을 오로지 김일성, 김정일 부자를 위한 헌신에 할애했다. 정작 그의 임무는 단순했다. 그는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독재자들을 위해 그들이 원하는 혹은 필요로 하는 모든 것들을 찾아내 그들 손에 쥐어주기만 하면 됐으니까 … 김정률은 20여 년간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을 거점삼아 유럽 전역에서 군수 산업용품을 포함해 고급 건축자재, 최고의 식자재 등 다양한 물품을 구매, 조달해 평양행 비행기에 선적시켰다. 그의 능력은 오롯이 독재자들을 즐겁게 하고 만족시키는데 쓰였다. 탈출! 그렇게 자신의 젊은 날을 온전히 독재자의 사적인 욕망을 채워주는 데 바친 김정률은 은퇴를 앞둔 어느 날, 드디어 결심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탈출’ 이었다. 원조 동독 유학생 출신이자 60세를 앞둔 북한의 엘리트인 그에게 몸담았던 체제로부터의 탈출은 분명 극단적인 선택이었지만 어쩌면 그건 이미 필연이었다. 심상찮은 북한체제의 분위기가 피부로 와 닿기 시작한 것도 그렇지만 수십 년간 활동하며 자연스레 호흡해온 유럽의 자유로운 공기는 여전히 피할 수 없는 사상 검증과 자아비판 앞에서 김정률 개인을 한없이 무력감에 빠지게 했고, 뻔히 알고 있는 북한 주민들의 피폐한 일상과 대비된 권력층의 모순은 그의 인내심을 바닥나게 했다. 독재자를 고발한다! 그리고 1994년, 드디어 그는 누군가를 위한 임무가 아닌 자신만을 위한 인생최대의 가장 드라마틱한 임무수행에 착수한다. 가족이 받게 될 희생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죽음을 임무 수행 중에 우발적으로 일어난 강도 살인 사건으로 위장한 김정률은 과거의 이름을 지우고 새로운 이름 ‘에밀’로 다시 태어난다. 몰래 숨겨두었던 공작금 일부를 가지고 체제의 눈을 피해 숨어들어간 오스트리아의 한 외딴 안가, 그곳에서 에밀(김정률)은 무려 16년, 정확히는 5,619일 동안 침대 한 개와 하루 용돈 5천 4백 원으로 버티며 한때 자신이 헌신한 독재자들을 위한 고발을 준비하게 된다. 잠수의 달인 혹은 역사의 증인! 잠시 소식을 끊는 이들을 두고 흔히 ‘잠수탄다’는 말을 하곤 한다. 하지만 여기 16년 동안 수면 위로 아예 올라 온 적이 없는, 차라리 고장 난 잠수함과도 같았던 이가 있다. 현재 75세인 에밀 김정률이 바로 그다. 그는 흥미진진한 시대의 증인이고, 역사의 고발자이며, 동시에 희생자이자 또 공동정범이다. 그가 현역에 있었을 때의 수많았던 직함이 그랬듯 지금의 그를 드러낼 수 있는 호칭도 그렇게 다채롭기만 하다. 아무튼 그는 이제 자신이 인생을 정리하는 시점에 이르렀음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건 가뜩이나 드라마틱했던 자신의 인생에 있어 또 한 번의 중요한 결심을 해야 하는 때라는 것도 …. 미리 말하자면 그는 이미 조심스런 한 걸음을 내딛었다. 16년 만에 현실로 나온 에밀 김정률은 오스트리아의 한 언론인을 통해 자신의 지나온 삶 - 그저 파란만장하다는 수사만으로는 도저히 감당이 안 되는 그 삶 - 을 담담하게 털어놓았다. 그리고 그 소중한 기록은 발 빠르게 2010년, 책으로 출간되었고 AFP, BBC, 아사히, 후지TV, Guardian, Taipei Times, 조선일보 등 세계 각국 언론들은 책 소식과 함께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내부고발자가 되어버린 김정률의 인터뷰를 실어 날랐다. 그의 가명 “에밀”은 이제 한때 자신이 헌신했던 독재자의 보복을 피해 짙은 어둠 속에서 숨죽여온 운명적인 한 개인이 참아내야 했던 16년 세월의 궁핍하고 힘겨운 삶을 드러내 주는 증거로 세계인들의 마음에 각인되었다. 이념이 아닌 사람에 대한 이야기 「독재자를 고발한다!」(글_ 잉그리트 슈타이너 가쉬, 다르단 가쉬 / 위즈덤피플 刊)는 북한 군수담당 조달요원이었던 김정률의 증언과 자료, 그리고 유럽 현지 저자들의 북한 정세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전개되는 독특한 시점의 책이다. 책의 제목이 주는 강렬함 때문에 그 내용이 단순히 원색적인 성토가 난무하고 고발장 쓰듯 격하게 써내려 간 느낌일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진다면 이 책의 출입구를 제대로 찾지 못한 것일 수 있다. 1인칭 시점을 배제한 채, 저자들의 객관적인 개입과 배경 설명, 김정률의 관점과 생각이 적절히 교차하며 독자들의 숨을 고르게 해 주고 관점의 완급을 제어해 준다. 그리하여 자칫 주관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릴 수 있는 우려를 말끔히 씻어내는데, 그것은 특히 김정률에 대한 묘사에 나타나는 그의 고뇌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진정성 덕분이다. 그것이 이 책의 자리를 찾아 주고 중심을 잡게 하는 추 역할을 해 준다. 「독재자를 고발한다!」는 사람이 돋보이는 ?이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모순 된 체제의 희생양이 되고만 불행한 한 개인이 끝내 운명과 맞서 용감하게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게 되는 그 순간, 벅찬 감동과 함께 인간의 존재 의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기 때문이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인생 김정률의 어린 시절과 유학생활로부터 시작해 파격적인 발탁과 그에 걸 맞는 활약, 이어지는 번뇌와 회의, 그리고 북한의 참상과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벌이는 독재자들의 놀라운 실상이 숨 가쁘게 교차되면서도 주인공인 김정률의 정제된 고백은 오히려 감정을 조율해 주는 박자와 리듬을 타며 현란하고 아찔한 현장감을 자아낸다. 읽다 보면 김정률이 마치 스파이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한 발짝 물러서서 객관적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도 하는데, 그것은 북한체제의 상황과 감시 속에서 가족과도 속엣 말과 진심을 못 나누는 현실을 통해 드러난다. 하지만 이는 어쩌면 김정률 자신이 스스로에게 닥칠, 예측 못할 미래에 대한 살아남기 위한 방편으로 자연스레 선택한 그만의 카멜레온식 전술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쯤 되면 책 속에 펼쳐지는 기막힌 현실에 놀라는 대신 다음 페이지를 넘기기에 바쁜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여태껏 독일어권에서 북한 내 고위간부급 탈주자가 이토록 솔직하게 북한 내부의 실정과 그 체제 안에서 산다는 게 무엇을 뜻하는지 설명한 적은 결코 없었다고 한다. 책을 쓴 잉그리트 슈타이너-가쉬와 다르단 가쉬는 김정률과 벌인 수차례의 깊이있는 인터뷰를 통해 세계적으로도 유래가 없는 폐쇄적인 나라 북한에서 온 한 공작원의 파란만장한 생애와 더불어 공산주의 독재의 억압적인 정치 체제, 그리고 이를 위해 오스트리아와 독일 회사들이 북한과 거래한 불법 행위에 대해 효과적으로 언급함으로써 수면 아래 잠들어 있던 진실들을 깨워냈다. 스스로에게 부여한 생애 마지막 임무인 ‘독재자를 위한 고발’을 마침내 마친 지금, 어쩌면 다시 또 어딘가로 숨어들어 숨죽인 채 이 세계의 흐름을 지켜보고 있을 에밀 김정률의 마음은 조금 더 편해졌을지 궁금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