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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제2부 역자 후기 추천사 : 나노기술과 나노픽션 - 이인식 |
Neal Town Stephen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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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 기술과 나노 픽션
1.
석탄과 다이아몬드는 똑같이 탄소 원자로 구성되어 있지만 원자 배열 상태가 달라 하나는 값싼 땔감으로, 다른 하나는 값비싼 보석으로 사용된다. 이와 같이 물질의 특성과 값어치는 원자의 배열에 따라 결정된다. 그러므로 원자의 배열을 바꿔 줄 수 있다면 얼마든지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몇 개의 원자가 서로 결합하면 분자가 된다. 원자와 분자의 크기는 나노미터로 측정된다. 1나노미터는 10억분의 1미터로, 사람 머리카락 굵기의 10만분의 1에 해당된다. 이처럼 극미한 원자나 분자를 조작하여 전혀 새로운 성질과 기능을 가진 물질을 만드는 것을 나노기술이라고 한다. 2000년 1월 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은 정부 차원의 나노기술 지원 계획을 발표하면서 나노기술을 “미국 의회 도서관에 소장된 모든 정보를 각설탕만한 장치에 집어넣는 기술”이라고 표현했다. 나노기술은 거의 모든 산업 분야, 특히 의학 분야에 혁명적인 변화를 초래할 것으로 예상된다. 왜냐하면 질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나노기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연의 나노기계를 인공의 나노기계로 물리치려는 발상이 나노의학의 출발점이다. 나노 크기의 로봇, 곧 나노로봇을 신체에 주입하면 잠수함처럼 혈류를 따라 항해하면서 바이러스를 박멸하거나, 세포 안으로 들어가서 자동차 정비공처럼 손상된 세포를 수리한다. 낙관론자들은 나노의학의 가능성 때문에 나노기술을 인간의 굴레인 노화와 사멸까지 방지하는 만병통치약으로 여기고 있지만 부정적인 측면을 간과할 수 없다. 혹시나 나노기술이 전쟁이나 테러에 쓰인다면 눈으로 식별이 불가능한 나노병기의 파괴력은 틀림없이 핵무기 못지않을 테니까. 2. 오늘날 나노기술의 연구 주제는 대부분 나노기술이 출현하기 전부터 과학소설에서 다루어진 것들이다. 나노기술의 본격적인 이론서로 평가되는 최초의 책은 1986년 에릭 드렉슬러(Eric Drexler)가 펴낸 『창조의 엔진(Engines of Creation)』이다. 하지만 1965년 프랭크 허버트(Frank Herbert)의 소설 『듄(Dune)』에 이미 나노기술의 핵심개념인 원자 조작이 상세히 묘사되어 있다. 특히 소형화된 기계장치들, 이를테면 아주 작은 독침인 헌터시커(hunterseeker)는 영락없는 나노기계이다. 1966년 개봉된 영화 “환상여행” 역시 놀라운 상상력으로 나노의학의 세계를 펼쳐보였다. 의사들이 잠수정을 타고 환자의 혈관 속으로 들어가서 뇌수술을 하는 장면이야말로 나노의학이 꿈꾸는 미래가 아니겠는가. 나노기술이 태동한 1980년대 중반부터 나노픽션(nanofiction)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다. 1985년 그레그 베어(Greg Bear)의 장편소설인 『블러드 뮤직(Blood Music)』이 발표되었다. 나노기술 문학의 효시로 평가되는 이 소설에는 누사이트(noocyte)라는 인공지능 세포가 나온다. 이 세포가 유행병처럼 번져 나가 인류를 파괴함과 동시에 초자연적인 변화를 일으켜 인간을 새로운 존재로 개조한다. 나노기술은 종종 영화의 소재가 되었다. 1987년 작품인 “이너스페이스”는 축소된 사람이 인체에 투입된 후 일어난 에피소드를 다루며, 1989년 방영된 “스타 트렉”은 나나이트(nanite)라는 작은 로봇들이 성장하고 진화하는 과정을 소개한다. 그레그 베어는 1990년 『천사들의 여왕(Queen of Angels)』, 1997년 그 후속작인 『슬랜트(Slant)』를 펴낸다. 두 소설 모두 나노기술의 위력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천사들의 여왕』에서 나노장치는 사람의 신체를 변경시킬 뿐만 아니라 정신적 질환까지 치료한다. 『슬랜트』에서 나노로봇은 소화기 분말거품처럼 깡통에서 퍼져 나간 뒤 건물 창고의 물건들을 해체하고 원자를 재조립해서 로봇무기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3. 『천사들의 여왕』처럼 나노기술에 의해 완전히 바뀐 인류사회를 묘사한 걸작으로 휴고 상에 빛나는 닐 스티븐슨의 1995년 작품인 『다이아몬드 시대』가 있다. 이 소설에는 각종 나노기계가 등장한다. 사람의 두개골 속에 설치되는 해골총(11쪽 참조), 공기 중을 떠다니는 초소형 비행장치인 에어로스탯(101-04쪽 참조), 초소형 로봇인 마이트(130-32쪽 참조), 그리고 몸 안에 심는 벌레인 나노사이트. 나노사이트는 근육(18쪽 참조), 척추(237-39쪽 참조), 두뇌(421-22쪽 참조) 안에서 활동하며 네트워크를 형성(560-63쪽 참조)하여 정보를 주고받는다. 이러한 나노장치는 물질 변환기에 의해 제작된다. 모든 가정에 깔려 있는 “공급회선의 끝에 연결된 단말기인 물질변환기는 프로그램에 따라 컨베이어에서 필요한 분자를 한 번에 하나씩 가져다가 복잡한 구조물로 조립”(123쪽 참조)한다. 비록 소설 속의 허구이기는 하지만 물질 변환기의 아이디어를 실현 가능하다고 보는 나노기술 전문가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만큼 스티븐슨의 상상력은 과학적인 요소를 듬뿍 지니고 있다. 아무래도 독자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대목은 난교 파티에서 가련한 여인이 즉시 잿더미로 변하는 장면(427-31쪽 참조)일 것이다. 이러한 ‘자발적인 인간 연소(spontaneous human combustion)’는 오늘날 과학이 풀지 못한 초자연 현상이다. 하지만 이 소설의 마지막 부분(821-23쪽)에 그 해답이 환상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아마도 독자들은 700쪽이 넘는 이 소설이 “멀리 산 위에서 성당의 종소리가 들려왔다.”는 문장으로 끝나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하면서 다음 문장을 다시 음미하게 될 것 같다. “현재는 나노기술 덕에 거의 모든 것이 가능해졌다. 그래서 나노기술을 어떤 목적으로 사용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문화적 역할이, 나노기술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내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69쪽) 이 『다이아몬드 시대』만큼 그 ‘문화적 역할’에 안성맞춤인 길라잡이는 흔치 않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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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와 분자를 조작할 수 있는 나노기술은 2000년 클린턴 대통령이 국가 차원의 지원 계획을 발표하면서 차세대를 선도할 과학 기술로 떠올랐다. 그러나 이 기술은 이미 대중문화에 자주 등장해 왔다. 영화 “백투더퓨처”의, 만화를 능가하는 기발한 상상력은 바로 나노기술이 실용화될 때 현실로 나타날 미래상이다. 1996년 휴고 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그러한 최첨단 나노기술에 대해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다. 첫 장부터, 나노기술을 통해 유리보다도 싼 다이아몬드를 만들어가는 미래 세계가 작가의 풍부한 상상력과 만나 화려하게 펼쳐진다. 하지만 작가는 이런 유의 소설이 신기술 소개에만 치중하는 함정에 빠지지 않고, 불우한 환경을 딛고 일어서는 소녀가 사회의 지도자로 성장하는 이야기와 잘 조화시켜 이를 감동적으로 그려 낸다.
또한 이 작품은 과학이 지나치게 발달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을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다. 사람들은 문자대신 마치 PC통신에서 볼 수 있는 아이콘 같은 ‘미디어 그림 문자’와 영상, 소리를 소통의 수단으로 사용한다. 개인 정보를 완벽하게 보호할 수 있게 되면서 국가도 사라진다. 개인 소득 추적이 불가능해지자 조세 제도가 무너진다. 인류는 수많은 공동체로 갈라져 각자 다른 법률 체계 아래에서 움직인다. 예를 들어, 북한에는 공산주의 법률이 적용되고 중화왕국에는 유교적 사법 체계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이다. 또한 수많은 공동체가 서로 갈등하고 빈부의 격차는 날이 갈수록 커져 가며, 교육 수준은 추락한다. 작가는 특유의 빠른 문체와 장면 전환으로 독자의 시선을 움켜쥐고 달린다. 이야기는 나노기술의 선구자인 ‘알렉산더 충식 핑클맥그로’가 자신의 손녀를 교육시키기 위해 ‘소녀의 그림책’을 만들면서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우여곡절 끝에 이 책은 빈민가 여자아이인 넬의 손에 들어가게 되고, 그 책이 넬을 주인으로 인식하는 순간 그녀에게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소녀의 그림책’은 당대의 과학 기술을 압축한 최첨단 교육기구이다. 책처럼 생긴 이 기구는 온갖 매체를 활용하여 동화, 놀이, 체험 학습 등 다양한 방법으로 주인을 지도자로 교육한다. 강하고 지혜로운 역할 모델을 보여 주고 문자를 가르치며 동서고금의 사상, 일반상식 그리고 컴퓨터 프로그래밍까지 익히게 하는 이 책은 작가의 반짝이는 상상력의 결정체가 아닐까 한다. 나노기술이 적용된 독특한 아이디어가 페이지마다 독자의 시선을 끈다. ‘다이아몬드 시대’에는 총도, CD플레이어도, 신용카드도 필요 없다. 몸속에 ‘심어놓는’ 방식이니 말이다.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각가지 생필품을 몇 분 안에 만들어 주는 ‘물질 변환기’로 가면 끝이다. 놀이문화도 새롭다. 나노기술은 다양한 오락거리로 사람들을 잡아끈다. 만화 『총몽』에서 선수의 뇌신경에 접속해 경기의 박진감을 느끼게 해 주는 서비스가 인기를 끌듯, 여기서는 ‘나노사이트’를 몸에 심은 사람들이 가상현실 속에서 모험, 연극, 게임, 심지어 섹스까지 즐기는 ‘랙티브’가 호황이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손님의 개인 정보에 반응하는 광고판이 원시적인 랙티브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나노기술의 발전에는 부정적인 면도 있다. 자연 질병과 전쟁은 자취를 감췄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끊임없이 전투가 벌어진다. 의료용 ‘나노로봇’이 바이러스를 없앤 후 엉뚱하게 인체 조직을 공격하자 그것을 해체하기 위해 사람들은 또 다른 나노로봇을 만들고, 이런 과정이 계속 되풀이된다. 결국 자연 질병 대신 인공 질병이 나타나는데, 이러한 과정은 인간을 위해 만든 도구에 인간이 해를 입게 되는 세상, 현대의 무의미한 군비경쟁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 책에서 볼 수 있는 또 하나 특징은 끊임없이 광고판이 점멸하는 젓가락 ‘찹스틱’처럼 작품 속에서 동양과 서양의 특질이 어우러진다는 점이다. 공자와 노자를 수시로 인용하는가 하면, ‘소녀의 그림책’을 만드는 이가 알렉산더 충식 핑클맥그로라는 한국계이고, 북한인들이 나팔 소리와 함께 기상하여 수령님 찬양가를 부르며 하루를 시작한다는 대목에서는 실소가 나올 지경이다. 충식 이상으로 중요인물인 중국계 의사 엑스는 서양의 기술이 지배하는 세상이 못마땅해 ‘씨앗’이라는 동양 특유의 기술을 만들다가 주인공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운명을 바꿔놓는다. ‘농자천하지대본야’라는 구절에서 ‘동양 = 농경 사회’라는 발상을 떠올린 것이 아닐까? 작가 닐 스티븐슨은 ‘아바타’라는 말을 제일 처음 사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현대 SF작가 중 거의 유일한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작가이며 『다이아몬드 시대』로 휴고 상을 수상하면서 경력을 더욱 화려하게 장식했다. 국내 번역판에서는 전문 용어 등에 대해 주석을 곁들였고, 책 말미에 과학 칼럼니스트인 이인식 씨가 나노기술이 생소할 독자들을 위해 설명글을 달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