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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 남과 북, 굿네이버스
1장 토요일에는 통일을 이야기합시다 단둥에서 신의주로 평양 땅을 밟다 통일을 이야기합시다 소 떼가 이룬 기적 대안목장 사람들 남북관계와 남북의 정치 북한 사회에 대한 단상 북한 경제와 평화 통일의 마중물 민간지원 다시 통일을 이야기합시다 2장 북한 경제개혁 현장을 가다 경제관리 개선조치의 시작 북한의 실리사회주의 구빈리 협동농장의 사계 간이 매대의 경제학과 북한식 개발 모델 불안 속 회복 경제관리 개선에서 경제개혁으로 화해와 협력의 창구 NGO 신 기자의 북한사회 리포트 남북관계, 그 긴장과 평화의 변증법 경협으로 통일 다리 만들자 후기 -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
申錫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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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측을 도와주면서 민족이 천천히 하나가 되는 과정을 밟아가지 않고 북측 주민들이 난민이 돼버린다면 반드시 10배의 비용이 들어간다.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은 난민을 구호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이 기구의 경험에 따르면 대량 난민 3000만 명을 1년 동안 돌보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3억 명이 1년 동안 먹는 양식의 값과 같다. 난민이 방황하지 않고 빨리 정착하도록 하는 일에도 엄청난 돈이 들어간다. 이 즈음에서 나는 북측에 경제적 지원을 하는 것을 아깝게 여기며 곱지 않은 의견을 내는 사람에게 말하고 싶다. 북측 사람들을 난민으로 만들지 않고 10분의 1의 비용으로 안전하게 민족의 통합을 이뤄내야 한다고. 그것이 그들이 두려워하는 경제적 타격을 오히려 줄이는 방법이다. (47쪽)
정상회담이 끝났지만 남측 사회에는 별다른 특별한 변화가 없었다. 국민의 대부분은 그저 대통령이 평양에 다녀왔나 보다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수준이었다. 모두들 제 사는 일에 바빠 남북문제에는 크게 관심도 없는 분위기다. 그러나 북측은 달랐다. 정상회담 이후 다시 북측을 방문했을 때 그곳은 이미 통일이 된 것이나 다름없는 분위기였다. 그곳은 지도자와 노동자의 생각이 같다. 그래서 지도자가 “이제 우리는 통일로 간다”고 말하는 순간 인민들은 이미 통일의 길을 확신했다. 6.15 공동선언의 성과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정도의 영향을 북측 국민들에게 끼쳤다. 북측은 지도자의 정치적 판단에 따라 주민들이 통일로 가는 확고한 의지를 갖게 됐고, 그렇게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모든 분야가 다 바뀌었다. (83쪽) 예전 같았으면 공무원이나 군인들이 찾아와 김매기를 도와줘야 할 때였다. 벼를 잘 키워야 식량난 해소에 도움이 되지만 농촌의 일손은 늘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농장 사람들이 스스로 다하겠으니 아무도 오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유가 있었다. 전보다 많이 생산하고 비용을 줄이면 자신들의 몫이 많아지는데, 공연히 다른 사람들 일손을 빌려 일당을 주면 그만큼 손해하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 농장 이야기는 경쟁체제와 물질적 인센티브를 강화해 생산성 향상을 꾀하고자 한 7.1 경제관리 개선조치의 효과를 잘 보여준다. (177쪽) 북한을 일주일 동안 방문하고 돌아오면 나는 어김없이 한 달가량 우울증을 앓았다. 휴전선 위와 아래의 사는 형편이 너무도 차이가 나고, 같은 말을 쓰지만 그 의미와 맥락이 너무도 다르다는 것을 확인하기 때문이다. 그런 홍역을 치르면서 나는 양측을 모두 이해하고 오해 없이 의사를 소통시킬 수 있는 통역인이 필요하다는 점을 늘 느낀다. 이런 느낌은 나로 하여금 민족문제에 뛰어들게 하는 하나의 현실적인 이유다. (294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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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는 둘이다. 세대도 다르고, 목사와 기자로 신분도 다르지만 두 사람은 똑같이 화해와 협력을 통한 평화로운 통일 실현이라는 민족적 관점에서 북한을 바라보고 있다. 그들은 1995년부터 지금까지 여러 차례 순수 민간의 입장으로 북한을 갔다 왔다. 그리고 그곳에서 직접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통일이라는 민족적 염원에 초점을 두고 허심탄회하게 풀어썼다.
이일하 회장은 실사구시의 행동가다. 그는 이렇다할 연고도 없이 중국 단둥에서 북한 사람을 만나고, 미국의 북한 대사관을 찾아가 굿네이버스 북한 지원사업의 돌파구를 열었다. 그는 1997년 첫 방북 때 비행기를 이용한 ‘젖소 공수’를 북한에 제안했지만 무시당했다. 북한 당국 내에 남측의 대북 지원사업에 대한 불신이 팽배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의 집요한 추진력은 젖소 지원을 실현시켰다. 굿네이버스의 젖소는 현대보다 앞선 1998년 4월에 공수될 예정이었지만, 미국의 엠바고 조치로 인해 9월에야 비행기가 아닌 배편으로 북한 땅을 밟았다. 이후 굿네이버스의 북한 지원 사업은 전방위에 걸쳐 다각화된다. 젖소목장에 대한 추가 지원은 물론, 북한의 양계장 사업에 대한 지원, 병원과 제약 부문 지원, 탁아소와 육아원 같은 어린이 시설 지원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런 지원이 처음부터 북측의 전폭적인 환영을 받았던 것은 아니다. 고난의 행군 기간에 젖소를 지원 받게 된 북측 주민들은 당장 사람도 굶어죽을 판에 소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을 가졌다. 실제로 사료로 보낸 콩을 소모이로 쓰지 않고 사람이 먹는 바람에 소의 절반가량이 굶어죽는 일이 발생한다. 한술 더 떠 그들은, 죽은 소의 뱃속에서 나왔다며 밧줄과 비닐을 전시해놓고, 소가 죽은 것은 자신들을 비방하기 위한 남측의 공작 때문이었다고 우겼다. 하지만 이러한 대립은 남북 정상의 역사적인 만남이 있고부터 눈에 띄게 해소되기 시작한다. 2000년 6.15 공동선언에 따른 남북의 정치적 해빙은 북한 사회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북측 주민들은 남측 민간의 지원을 사심 없이 받아들이며, 망설임 없이 고마움을 표현하게 됐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커다란 변화는 그들이 시장경제에 눈을 떴다는 사실이다. 고난의 행군 시절에 무너진 국가경제를 회복하자는 의미에서 시행된 2002년 7.1 조치 이후 북한 사회는 본격적으로 달라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일한 만큼 대가를 받게끔 경쟁체제가 도입됐고, 그동안 금지됐던 간이 매대가 평양의 거리에 다시 등장했으며, 고난의 행군 시절에 만연한 사경제(농민시장, 장마당)가 공식경제 영역으로 양성화됐다. 애초에 7.1 조치는 계획경제의 완성 혹은 개선 과정으로 시작됐다. 그러나 북한 당국이 국영상점 이외에 농산품과 공산품이 유통되는 시장을 허용하고, 이러한 종합시장을 전국적으로 확대하고 있다는 점에서, 7.1 조치는 ‘개선’을 뛰어넘은 ‘개혁’으로 봐야 한다는 저자의 시각은 눈여겨 볼만한 부분이다. 아직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진 못했지만, 이제 북한은 예전의 적국이 아니다. 양쪽 정상이 두 손을 맞잡은 그 순간부터 북측은 이미 통일로 가는 준비단계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떠한가? 저마다 제 사는 일에 바빠 남북문제에는 관심 쓸 새가 없다. 어디 그뿐인가? 이른바 ‘남남갈등’과 ‘퍼주기’ 논쟁이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에 생채기를 낸다. 바로 이 점이 저자들로 하여금 이 책을 쓰게끔 했다. 저자들은 북측에 대해 그동안 교육돼온 증오와 편견을 버리고 열린 마음과 관심을 갖자고 제안한다. 또 남북이 무리 없이 자연스런 통합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경제 협력으로 남북의 경제적 격차를 점차 줄여나가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민간지원의 역할이 더욱 커져야한다고 강조한다. 저자들이 처음부터 통일에 대한 관심으로 북한에 접근했던 것은 아니다. 한 사람은 통일은 생각하지도 않고 단지 어려운 이웃을 돕는다는 생각으로, 또 한 사람은 기자라는 직업상 갖게 된 호기심으로 각각 북한을 방문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통일에 대한 북측 사람들의 열의에 자극을 받아 그들도 통일에 눈을 뜨게 됐고, 방북의 횟수를 거듭할수록 관심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그리하여 저자들은 매주 토요일마다 만나 북측을 방문했던 경험을 되돌아보고 분석하며 통일을 논의하기에 이르렀다. 이 책은 저자들의 이런 ‘토요일 토론’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