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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_ 누군가의 아들, 누군가의 아버지
돌아가신 아버지와의 대화 | 한 청년에게, 그리고 다시 우리 청년들에게 Intro 세 가지 질문, 세 가지 반란 세 가지 신화, 그리고 진실 힘들지 않은 청춘이 어디 있냐고? | 내 탓이라고? | 청년정신은 죽었다고? 우리를 옭아매는 삼중(三重) 감옥 창살 없는 감옥 | 내 손에 쥐어진 열쇠 세 가지 질문, 세 가지 반란 삼중 감옥을 깨는 질문들 | 있는 자리 흩트리기 있는 자리 흩트리기 ① _ 환경 Part I 남이 던진 질문 나를 옥죄는 ‘긴고아’는 무엇인가 이력서에 빠진 8년 낮엔 은행원, 밤엔 대학생, 새벽엔 고시생 | 젊은 나와의 우연한 만남 결핍의 힘 예의 있는 저항 나를 옥죄는 ‘긴고아’ 빼내기 위장된 축복, 실패의 추억 벌컥벌컥 마시는 쓴 잔 | 나는 아직 실패가 두렵다 큰 연못, 작은 연못 작은 연못, 큰 물고기 After You, 나보다 당신 먼저 더 크고 깊어지는 힘 | 두려움조차 좋았다 아직도 서툰 이름, 어머니 나를 지켜주는 손 있는 자리 흩트리기 ②_나 자신 Part II 나에게 던진 질문 인생은 마지막 순간을 비워놓고 우리를 기다린다 가장 지독했던 회의(懷疑) 익숙한 것들과의 결별 | 나는 지금 누구의 인생을 살고 있는가 수학이 아름답다고? 참 즐거움을 찾는 법 강한 나와 약한 나의 싸움 “나는 24시간 내 생각만 한다고” | 장 발장의 마지막 선택 자기만의 답 찾기, 파란학기 내가 낸 문제를 푸는 법 절실함은 스피드 건에 찍히지 않는다 마음의 근력(筋力) “시간은 돈이다”는 틀렸다 명사형 꿈에서 동사형 꿈으로 ‘To Be’ 꿈 | ‘To Do’ 꿈 | 다시 ‘To Be’ 꿈으로 있는 자리 흩트리기 ③_세상 Part III 세상이 던진 질문 스스로 잠든 자는 아무도 깨우지 않는다 분노해야 할 의무 화낼 줄 아는 용기 | 지금 내가 있는 곳에서, 나부터 어느 식료품 가게에서 얻은 교훈 깨어 있지 않으면 보지 못한다 덧셈의 합, 틀려가는 답 단발게임이냐 연속게임이냐 우리 사회의 ‘킹 핀(king pin)’ 사회보상체계와 거버넌스 누가 더 가져가는가 _사회보상체계 초과이윤 _철밥통 구조 | 자기들만의 리그 _승자독식 구조 | 끼리끼리 _순혈주의 구조 누가 결정하는가 _거버넌스 아래로부터의 반란 멀지만 가야 할 길 사회적 합의와 싱크 홀 메우기 | 나부터 페어해야 한다 Outro 새로운 미래를 여는 답, 유쾌한 반란 지금까지 없던 세상으로의 항해 정착민에서 유목민으로 | 성을 쌓는 자 망할 것이다 결국 돌파구는 ‘자기다움’ 진짜 엘리트를 기다리며 에필로그 _ 세상의 모든 ‘덕환’에게 때늦은 참회록 | 혜화역 3번 출구 | 새 버킷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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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아이가 힘든 투병 생활을 하고 있을 때 나는 경제 관료로서 정점을 달리고 있었다. 처음 발병했을 때는 기획재정부 예산실장이었다. 두 해 예산을 편성한 뒤 기획재정부 차관으로 승진했고, 다시 1년 2개월 뒤에는 장관급인 국무조정실장으로 승진을 했다. 국정 전반을 조율하고 전 부처의 업무를 조정하는 자리였다. 공직생활 31년 만이었다. 인사가 발표되기 며칠 전 통보를 받았지만 가족 누구에게도 미리 이야기하지 않았다. 발표일은 토요일 오전이었는데 마침 큰 아이와 병실에 둘이 있으면서 TV 뉴스에 나오는 인사발표를 보게 됐다. 내가 공직에 있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던 큰 아이는 뛸 듯이 기뻐하며 축하해주었다. 고맙다고 대답은 했지만 그런 아이의 모습을 보니 마음속에서는 오히려 뜨거운 눈물이 솟구쳐 올랐다.
--- p.18「누군가의 아들, 누군가의 아버지」중에서 청년기란 구간은 누구에게나 힘든 계곡이라고, 그러니까 너희들도 엄살 부리지 말고 버티라고, 지금의 청년들에게 말할 수 있을까? 지금 너희가 겪는 어려움은 앞 세대가 청년기에 겪었던 어려움과 고통의 조금 다른 버전일 뿐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분명 오늘의 청년들은 지금의 어른들이 보낸 청춘의 시간보다 훨씬 더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그들의 어깨에 내려진 부담과 스트레스는 과거 어느 때의 청년들보다 무겁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희망의 부재’다. 열심히 노력하기만 하면, 그래서 이 오르막 구간을 통과하고 나면 분명 더 나은 미래가 펼쳐지리라는 희망 말이다. --- p.26「세 가지 질문, 세 가지 반란」중에서 신(神)이 사람을 단련시키고 키우는 가장 전형적인 방법은 그 사람이 ‘있는 자리’를 흩트리는 것이라고 한다. ‘있는 자리’란 바로 내가 처한 환경, 나 자신 그리고 내가 사는 세상이다. 증거는 차고 넘친다. 생각나는 위인 누구라도 이름을 대보라. 자기 자리를 흩트리지 않고 그 반열에 오른 사람이 있는지. 편안하고 안전한 길만 걸은 사람이 있는지. 가끔은 안전지대 안에서 잘되는 사람이나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 성취가 오랫동안 공고하게 가는 경우는 많지 않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신이나 운명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자기 자리를 흩트리는 사람들도 있다. 편한 자리를 마다하고 안전지대를 거부하는 것이다. --- p.47「세 가지 질문, 세 가지 반란」중에서 현실로부터 도망가는 것은 불가능했고 현실을 깨기에는 내가 너무 보잘것없었다. 우선 나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을 조금이라도 변화시키는 ‘반란’이 필요했다. 작은 돌파구는 야간대학에 진학하는 것으로 출발했다. 직장생활을 하며 힘들게 대학입시 준비를 한 끝에 대학생이 되었다. 그러나 야간대학생이 되어서 주경야독을 하면서도 내 안의 목마름은 좀처럼 해소되지 않았다. 장래는 여전히 암담해 보였다. 야간대학 을 졸업한다고 크게 달라질 것도 없어 보였다. 주위에는 온통 명문대 출 신, 경제적으로 별 걱정이 없어 달리기 편한 ‘몸이 가벼운’ 사람들로 넘쳤다. --- pp.54-55「남이 던진 질문」중에서 젊은 시절 힘든 환경은 분명 ‘위장된 축복’이었다. 그렇지만 서정주 시 인의 아름다운 시어를 빌자면 나를 키운 팔 할은 ‘실패의 경험’이다. 젊 은 시절 죽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좌절한 적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 도 얼굴이 화끈거리는 부끄러운 실수도 많이 했다. ‘삼키기에는 너무 쓰다(too bitter to swallow).’는 표현 그대로 목으로 넘기기에는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경험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지나고 보니, 아직도 입안에 쓴 맛 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그 실패들이 나를 키웠다는 것을 느낀다. 우리 청년들이 젊었을 때의 실패와 시행착오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빨리 경험할수록 좋은 것이라 생각하고 실패와 친해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실패를 무릅쓰고 도전과 시도를 하면 좋겠다. 분명 그 실패들이 ‘나를 키운 몇 할’이라고 훗날 얘기할 것이다. --- p.76「남이 던진 질문」중에서 실패는 내게 좋은 자양분이자 선생이었다. 지금은 그 시련들에 감사 한다. 어떤 때는 몹시 억울하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곱씹어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더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자의로 편하게 해석한 것이다. 중 요한 것은 이미 벌어진 결과가 아니라, 그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반응하느냐이다. 울분을 토하고 저항할 수도 있고, 속은 쓰리지만 받아들이면서 다음에 해야 할 것을 생각할 수도 있다. 내게 벌어진 실패를 번복시킬 정도의 힘이 있지 않다면 받아들이는 것이 현명하다. 쉬운 일 이 아니어서 꽤 훈련이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실패는 자신을 연단시키는 기회다. 실패가 없이는 절대 큰 일을 할 수 없다. 실패야말로 ‘환경에 대한 반란’의 과정에서 꼭 거쳐야 할 필수 경험이다. 실패가 주는 교훈 의 ‘아름다움’은 자기의 대처에 따라 그 실패를 감사하는 단계에까지 갈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나는 젊은 시절 당시에는 삼키기 힘들었던 아픈 실패담조차도 잘 짜여진 ‘위장된 축복’이었다고 가끔 생각하곤 한다. --- p.84「위장된 축복, 실패의 추억」중에서 내면 깊은 곳에서 지독한 회의가 찾아왔다.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에 가졌던 절망감보다 더 심한 회의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소용돌이쳤다. 처음에는 그 회의의 정체조차 알 수 없었다. ‘왜 이러지?’ 하는 생각은 계속 드는데 그 이유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다. 치열한 고민 중에 이상한 것을 하나 발견했다. 이제껏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한 일들이 사실은 내가 아니라 주위나 사회에서 원하는 일이었다는 것이다. 남이 하고 싶은 일을 내가 하고 싶은 일로 착각하고 살았다는 생각이었다. 그것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 p.110「나에게 던진 질문」중에서 나는 삼십대 초반 내게 닥쳤던 내 인생에서의 가장 지독했던 회의에 감사한다. 그 회의로 인해, 환경에 대한 반란에 이어 내 인생을 바꾼 두 번째 반란을 일으킬 수 있었다. 그 반란을 통해 젊은 시절 내가 정말 하 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찾는 고민을 치열하게 했다. 남의 인생이 아닌 내 인생을 찾는 도전을 치열하게 하게 되었다. 그 전에는 주어진 길을 그저 열심히 걸었을 뿐이었다. 새로운 반란은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 반란은 여러 위험부담을 무릅쓰고 행동으로 옮기는 용기를 알게 해주었다. 과거의 성공경험을 버린다는 것은 겁나는 일이었지만, 이렇게 살 수는 없다는 의지 앞에서 용감해질 수 있었다. 그 반란은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전환점을 만들어주었다. 어떤 도전에도 겁나지 않게 했으며 하는 일에 헌신하도록 했다. 자신에 대한 반란은 완전히 굳어지기 전의 내 틀을 깨도록 했다. 내게는 더할 나위 없는 행운이자 축복이었다. --- p.119「가장 지독했던 회의(懷疑)」중에서 자신과의 싸움에서 강한 상대인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싸움을 벌이 면 이기기 힘들다. 과거의 내 생각을 뒤집는 방식으로 싸워야 한다. 그동안의 성공경험을 토대로 밀어붙이는 지금의 ‘내’가 예측할 수 없는 방법으로 싸워야 한다. 전투의 룰을 내가 정해야 이길 수 있다. 답은 그동안 익숙했던 것들과의 결별이다. 그러고는 전력을 쏟아야 한다. 이 싸움 은 대충해서 이길 수 있는 싸움이 아니다. 남이나 환경과의 싸움보다 훨씬 힘든 싸움이다. 자신의 생각, 습관, 틀, 행동을 바꿔야 하는 크나큰 모 험을 실천에 옮겨야 하는 싸움이다.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화력을 동원해서 끈기 있게 장기전까지 할 각오를 해야 한다. --- p.131「강한 나와 약한 나의 싸움」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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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어진 ‘환경’과 ‘나 자신’, 그리고 ‘세상’이라는
우리를 옭아매는 삼중 감옥에서 탈출하는 세 가지 질문! “나도 실패가 늘 두려웠다. 사실은 지금도 두렵다. 아무리 실패가 ‘나를 키운 몇 할’이라고 하더라도 ‘지금’ 실패하기는 싫다. 하는 일이 실패하지 않도록 늘 발버둥 치고 있다는 것이 솔직한 고백이다. 그래서 청년들에게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 실패와 친해져라.”고 말하는 것은 편하지 않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본다. 누구나가 실패를 경험하게 마련이다. 사실은 실패하지 않는 것도 문제다. 지금의 실패를 통해 앞으로 올 수 있는 더 큰 실패의 위험에 어떻게 대처할지 공부할 기회를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본문 p.83) 언론에 소개되는 김동연 총장에게는 어김없이 따라붙는 수식어가 있다. 바로 ‘흙수저 신화’가 그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11살의 나이에 아버지를 잃은 후, 소년 가장이 되어 할머니와 어머니, 동생 셋의 부양을 책임져야 했으며, 청계천 무허가 판잣집과 천막촌 생활을 전전하며 주경야독 끝에 행정고시와 사법고시에 합격, 훗날 예산실장을 거쳐 장관급인 국무조정실장 자리에 오르기까지 한 그의 인생 자체가 ‘드라마’로서 손색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그의 ‘신화’가 그저 그런 성공담이 아닌 이유는, 그에게 더해진 엄청난 아픔에 마주했던 그의 인간적인 면모가 알려지면서였다. 그가 경제 관료로서 정점을 찍을 무렵, 큰 아이에게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이 찾아온 것이다. 그는 이 사실을 부처 동료들에게 알리지 않고, 그가 맡은 공직자로서 노력을 기울였다. 물론 큰 아이에 대한 헌신적인 치료를 멈추지 않았지만, 그 노력에도 큰 아이는 끝내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인간에게 닥친 크나큰 시련을 겪은 그지만 그는 ‘가슴속에 살아 있는 큰 아들’을 위해, 또한 아들과 동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을 위해 무언가 해야 한다는 마음의 빚을 담아 이 책을 준비했다. 실제로 이 책은 “병원 밖에 나가 함께 책을 쓰자.”는 큰 아이와의 마지막 약속에서 시작되었다. ‘철든 성인으로서 큰 아이와 나누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또 다른 ‘아들 딸’들이 좀 더 나은 세상에 살 수 있도록 저자 본인이 직접 경험했던 꿈과 열정에 관한 이야기들을 진솔하게 담아냈다. 낯선 길, 익숙하지 않은 길로 가라 세상은 끊임없이 성을 허무는 자의 것이다 “이 세계를 깨뜨리면 벗어날 수 있지만 타협하고 순응하면 결코 나를 가둔 틀에서 벗어날 수 없다. 더 높고 더 넓은 세계로 한 발 내딛기 위해서는 자기 내면의 나약함과 두려움을 극복하고 안정적인 환경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해야 한다. 주저앉을 게 아니라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 우리가 감옥에 갇혀 있다는 것을 인정하자. 여러 형태로 나를 옥죄는 이중, 삼중의 감옥이 우리를 가두고 있다. 이제 그 감옥에서의 탈출을 꿈꾸자.” _본문 p.33 이제 스스로 어느 정도 인생의 정점에 올랐다고, 성공했다고 말할 법하지만, 그는 단언코 부정한다. 자신이 걸어온 길이 정답이라고 내세울 수도 없으며, 여전히 실패가 두렵다고. 또한 여전히 실패하고 있다고. 그러나 그 실패가 있었기에 스스로 나아질 수 있었다고 인정한다. 그리고 자신의 아들딸 같은 청년들이 이 ‘실패’와 ‘시련’을 부디 두려워하지 않고 성숙해지기를 진솔하게 조언한다. 저자의 매력은 무엇보다 청년을 탓하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요즘 청년들이 나약하다, 좋은 환경에서 노력하지 않는다.’ 류의 생각들에 김 총장은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과거보다 계층이동이 어려워진 사회, 열심히 해도 일자리를 얻을 수 없는 사회는 모두 기성세대와 기득권 세력이 갖는 단단한 카르텔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러한 절망의 상황에도 청년 스스로가 무기력하게 느끼고, 방관자로서 남는다면 그들에게 더욱 희망의 빛은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충고한다. ‘흙수저 출신’으로 처절하게 느꼈던 본인의 진심이 우러나는 대목이다. 그는 청년들이 스스로 절망에 머물게 하는 세 가지 감옥에서 벗어날 것을 조언한다. 그러자면 주어진 환경이라는 ‘남이 던진 질문’과 스스로 한계를 가두는 나 자신이라는 ‘나에게 던진 질문’, 마지막으로 사회라는 ‘세상이 던진 질문’에 답을 찾는 노력, 즉 스스로 ‘있는 자리’를 깨트릴 용기가 필요하다. 첫 번째 남이 나에게 던진 질문에 답을 찾는 노력은 내게 주어진 환경과 상황에 적응하며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이다. 부족한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좌절, 마음속 분노, 열등감 등을 극복할 수 있는 해법이기도 하다. 두 번째는 내가 나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남이 던지는 질문을 넘어 자기 스스로 인식하는 틀을 깨는 과정이다. 안 될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 나의 한계를 정해놓고 안주하는 마음, 남의 시선에 나를 가두는 틀에서 벗어나 자신의 생각을 궁극적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과정이다. 세 번째 마지막 질문은 세상이 던지는 질문이다. 이는 우리 공동의 문제에 대한 질문이다. 첫 번째 질문과 두 번째 문제를 풀었다 하더라도 우리의 삶을 규정하는 ‘카르텔적 시스템’에 수수방관한다면 결국엔 또 다른 ‘흙수저’를 만들 뿐이다. 즉 공정한 게임의 룰을 만드는 데 참여하는 노력이다. 저자는 이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은 우리를 가두는 삼중 감옥을 부수고 우리 자신을 탈옥시켜줄 것이라 말한다. 그것은 곧 ‘반란’이다. 반란은 무엇인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뒤집는 것이며, 나를 둘러싼 부족환 환경, 살면서 형성된 나 자신의 틀, 그리고 공정하지 못한 사회를 움직이는 게임의 룰 전체를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신(神)이 사람을 단련시키고 키우는 가장 전형적인 방법은 그 사람이 ‘있는 자리’를 흩트리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있는 자리를 흩트리는 ‘유쾌한 반란’의 과정에서 가졌던 순간순간의 꿈들은 인생의 단계 단계에서 이루고자 하는 목표처럼 보였던 신기루였다. 인생에서의 성공을 각자가 정의하는 것이라면, 내 경우 성공은 목표의 달성이나 이룬 성과가 아니었다. 유쾌한 반란을 일으키는 노력과 그 과정 자체가 훨씬 더 의미 있는 일이었고 성공의 가늠자였다.” (본문 p.259) 저자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무엇보다 진실함이 느껴진다. 흔히 봐왔던 ‘고난 극복기’처럼 느껴지지 않는 것은, 어쩌면 저자 스스로 감추고 싶었을 법한 이야기도 서슴없이 들려주는 것도 한 이유가 아닐까 싶다. 고위 공직자에 이를 때까지 가정환경에 대한 열등감, 학력에 대한 콤플렉스 등이 가감 없이 담겨 있는 것. 그것은 여전히 우리가 ‘공정하지 못했던 우리 사회’에서 모두가 느끼는 열등감이자 콤플렉스이다. 그래서 읽는 이라면 누구라도 공감이 간다. ‘부모가 죽으면 땅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마음에 묻는다’라고 했던가. 생때같이 키운 자식을 마음에 간직했던 부모로서의 저자를 보고 있노라면, 그 슬픔을 독자도 감히 짐작키 어렵다. 하지만 그가 걸어온 길이, 그리고 병마와 싸우는 자식을 두고 급박했던 업무에 임했던 그의 면모는 역설적이게도 우리의 삶에 더 진한 진실함을 느끼게 해준다. 아들과의 마지막 약속이었던, 이 책이 ‘우리의 아들딸’인 청년을 넘어 모든 이들에게 더 깊게 와 닿는 까닭이다. 그는 말한다. 세 가지 질문에 답을 구해갈 때, 있는 자리를 흩트리는 과정과 결과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노력하는 과정이 더 가치 있고 아름답기 때문이며, 그런 속에서 성숙되어가는 ‘내’가 결과보다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스스로 결과를 눈치 보며 망설이지 말고 안전지대에서 벗어나 끊임없이 있는 자리를 흩트리라고. 그리고 마지막에 이렇게 덧붙인다. “우리 청년들이 용기를 내면 좋겠다. 씩씩하게 반란을 일으키고, 누구나가 다 그 반란에 성공했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