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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풀들이 들려주는 위대한 백성 이야기 2
풀무학교 홍순명 선생의 이야기 모음집
홍순명 저
부키 2003.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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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권
글머리에
추천의 글
새 심청전
새 흥부전
선녀와 나무꾼

2권
글머리에
추천의 글
새 홍길동전
새 춘향전

저자 소개

저자 홍순명
1937년 강원도 횡성에서 대대로 농사를 지으며 동네 서당 훈장을 하던 유교 가정에서 태어나 중학 시절 책을 통해 김교신, 함석헌, 노평구 선생 같은 분들을 접하게 되면서 깊은 영향을 받았다.
전쟁 통에 학업을 계속하지 못하고 초·중·고교 교사 시험을 통해 교사 자격증을 취득하여 17세부터 교사 생활을 시작한 그는 권위주의적이고 군대식인 교육관행과 입시 위주의 교육방식에 실망해 있던 중 대안학교인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가 세워졌다는 소식을 듣고 군대 제대와 함께 바로 합류해 1960년부터 교사와 ‘행정상의’ 교장 생활을 하다가 2002년 정년을 맞아 퇴임했다.
그는 대안학교의 존재 근거가 학교 공동체를 통한 교육의 이상과 본질 추구에 있으며, 입시교육이 아닌 전인교육이 교육의 지향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기실현, 더불어 살기, 무너진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생태 교육 및 평화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현재 2001년 세워진 주민 풀뿌리 대안대학인 풀무환경농업 전공부의 교사 대표로 있으며, 쓴 책으로는 『더불어 사는 평민을 기르는 풀무학교』가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3년 11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229쪽 | 335g | 153*210*20mm
ISBN13
9788985989602

책 속으로

그러나 현지 주둔 군관은 굉장히 화가 났습니다. 그는 피비린내 나는 전쟁판을 두루 다녀 성질이 매우 포악해진 사람입니다. 힘없는 정복국의 백성 주제에 윗사람을 움직여 자기들을 굴복시켰다는 생각이 들자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막고해가 돌아간 뒤, 참던 분노를 폭발시켜 당장 군졸을 시켜 동네 청년들을 군인으로 끌고 오되, 특히 대장간 일을 할 줄 아는 기술자를 빠뜨리지 말라고 서슬 푸르게 병졸들에게 명령했습니다.
‘병관좌평이 뒤에 뭐라 하면 자기들이 자원했다고 하지 뭘.’
군관은 혼자 그리 생각했습니다. 그 명령이 떨어지고 나서 하루 동안에 모든 비극이 학규와 송정 부락 전체에 일어났습니다.
군인들은 득달같이 도화골 대장간으로 달려갔습니다. 어린 가성도 철정을 만드느라 동네 사람과 같이 일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학규도 대장간에 와서 나무토막을 집어 주는 일을 거들면서 수고하는 그들의 기분을 돋워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군인들이 들이닥쳐 모든 젊은이와 기술자를 당장 데려오라는 명령을 전했습니다. 가성이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함께 따라오라고 합니다.
“그런 일은 병관좌평과도 협의한 일이 없고 여기 기술자들은 동네 젊은이들인데, 이들이 빠져나가면 농사일도 그렇고, 다른 대장장이를 구하기도 어려운데 바쳐야 할 철정은 누가 만들겠소?”
학규가 호소하자 군인은 눈을 부릅떴습니다.
“그러기에 누가 군인으로 아주 데려간다고 했소? 기술자로, 그것도 당분간 데려간다고 하지 않소? 먼 곳도 아니고 당신들이 소개한 곳이 아니오? 정 협력 안 할 거요? 그럼 뒤에 일어나는 일은 책임지시오.”
마지막에 학규는 가성을 가리키며 애걸했습니다.
“이 사람은 아직 어린 사람이오. 여기 대장간의 주인이기도 하오. 이 한 사람만은 마을서 쇠 만드는 씨앗으로 남겨 줄 수 없겠소?”
“나는 군인이오. 지체 없이 당장 모든 기술자를 데리고 오라는 명령을 받았소.”
군인은 이렇게 말하며 젊은이를 모두 줄을 세웠습니다.
“어쩌겠나. 동네 사람과 작별도 못하고 떠나 아쉽구나. 저희들 말대로 기간을 채우면 돌려보내겠지. 몸 성히 잘 다녀오너라.”
학규가 마을 젊은이들과 가성에게 말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갑자기 군인 한 사람이 술내를 풍기며 비틀비틀 대장간으로 들어왔습니다.
“너 학규라고 했나? 후방에서 우리 덕에 평안히 지내는 놈들이 목숨을 걸고 싸우는 우리들에게 뭐 어쩌고 저째? 네가 얼마나 잘났기에 병관좌평 장군에게 씨부려대 우릴 이리저리 옮겨 다니게 하는 거냐? 그리고 군인이 군인 데리고 간다는데 웬 말이 그리 많으냐 말야!”
술 취한 군인은 그러면서 학규를 확 떠밀었습니다. 아, 그것이 평생의 슬픔이 될 줄이야. 눈 깜짝할 사이 학규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타는 불에 얼굴이 처박혔습니다. 동네 사람들도 저마다 비명을 올렸습니다.
학규는 가까스로 몸을 돌려 땅바닥에 넘어졌습니다. 얼굴에 불기가 닿아 따갑고 쓰라렸습니다. 군인들도 자기들이 저지른 일이 끔찍했던지 마을 젊은이들을 데리고 슬금슬금 물러갔습니다.
- 「새 심청전」 중에서

군인이 된 놀부 아들 세원은 번쩍이는 계급장을 달고 검은 권총을 어깨 띠 아래 차고 부하를 거느리고 마을에 나타나선 부역자들을 찾아내야 한다면서 다른 쪽 군대에 보냈다는 것과, 전쟁에 쓸 군수물자를 날랐다고 여러 사람과 함께 흥부를 잡아가 닦달했습니다. 흥부는 다른 쪽 세상이 되었을 때는 또 그 반대 이유로 고통을 받았습니다.
흥부를 잘 아는 동네 사람들은 피난에서 돌아와 몇몇은 군인 막사에 가 면회를 요청하여 진정을 하고, 긴급히 소식을 들은 흥부 아들의 부대장이 먼 거리에서 전화를 걸 때쯤 되어 놀부 아들은 흥부를 풀어 주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흥부는 그때 몰매로 온몸이 성하지 않았고, 오고 가며 군인들이 정강이를 군화로 밟아 평생 다리를 절게 되었습니다.
“남의 나라 사람이 와서 괴롭힐 땐 할 말이라도 있었지. 같은 역사, 같은 말을 쓰는 형제끼리 저지른 짐승 같은 일은 부끄러워 어디다 대고 말할 수 있겠나? 동포끼리 서로 해코지를 했으니 누가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나도 내 몫을 치른 거야.”
그렇게 흥부는 가족들에게 말하였습니다.
그런 와중에 어느 날 흥부의 첫째 아들 들보가 이름 모를 남쪽의 산골짜기에서 총에 맞아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 왔습니다. 어느 야밤에 허름한 옷차림을 한 사람이 가만히 흥부 집에 와서 방에 들어오지도 않고 들보의 머리카락과 무덤의 위치를 대강 그린 수건을 전하고 황급히 어둠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너도 좋은 세상 만들려다가 죽었다만 미움으로 좋은 세상이 되겠니? 미움으로 안 된다는 걸 세상에 알려 주었으니 네 죽음도 값이 있구나.”
흥부와 아내는 주변의 눈과 귀 때문에 소리 내어 울지도 못하고 속으로 울음을 삼켰습니다.
- 「새 흥부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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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민족사의 고통을 한 몸에 짊어진 흥부>

이야기가 이쯤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몇 가지 정형화된 레테르를 붙이게 마련이다. 몽상적이라느니, 낭만적이라느니, 비현실적이라느니, 이상주의적이라느니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지은이는 「새 흥부전」을 통해 그 모든 것이 얼마든지 현실화될 수 있는 일임을 제시한다.
조선이 명운을 다해가는 20세기 말, 놀부의 배다른 동생으로 태어난 흥부는 어려서는 신분 차별에 시달리고, 자라서는 일제의 압제에 찢기고, 나이 들어서는 이데올로기 갈등에 상처 입게 된다. 그 상처는 흥부에게 있어서 영원히 아물지 않는 상처이다. 이 나라에는 혁명이 필요하다며 집을 뛰쳐나간 큰아들은 그 후 두 번 다시 보지 못했다. 어느 야산에서 무덤도 없이 시체가 된 줄만 알았는데 북쪽 땅에서 살아 있다는 소식이라도 나중에 알게 된 것이 그나마 위안일 뿐이다. 또 흥부의 어머니는 동족 간의 전쟁 중에 폭격으로 죽었고, 하나뿐인 딸은 전쟁 중 군인들에게 끌려갔다 온 뒤 자살하며, 흥부 자신도 전쟁 이후 부역자로 몰려 몰매를 맞고 다리를 절게 된다. 하지만 흥부는 다른 누구를 탓하지 않는다. ‘같은 역사, 같은 말을 쓰는 형제끼리 저지른 짐승 같은 일을 부끄러워 어디다 말할 수 있겠나? 동포끼리 서로 해코지했으니 누가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나도 내 몫을 치른’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찢기고 상처 입은 속에서도 흥부의 삶의 방식은 변할 줄을 모른다. 상처를 치료해 준 제비가 물어다 준 호박씨가 인연이 되어 호박을 심게 되고, 그 호박이 열매를 맺자 호박엿을 만들어 시장에 내다팔게 되면서 살림이 펴져 전답도 장만했지만 흥부는 그 전답을 동네에서 공동으로 경작하도록 내놓자고 제안한다. 전답을 집과의 거리, 토질, 식구와 노동력에 따라 나눠주고, 그 관리는 동네 사람 중에 토지위원회(土地委員會)를 뽑아 맡도록 하되, 소출 중 10분의 1은 어려운 이 돕기, 농사 피해 보험, 동네 시설 기금으로 내놓으면 모두가 잘살 수 있다는 취지에서이다. 흥부의 그런 의견에 유기 농업의 보급에 힘쓰던 둘째 아들도, 마을의 장래를 위해 학교를 만들어 꾸려 나가던 막내아들도 모두 찬성한다. 흥부를 필두로 한 이상촌 건설을 향한 힘찬 발걸음은 그렇게 해서 시작되는 것이다.

<우리 민족의 교과서, 전래이야기>
이 책의 주요 소재인 「선녀와 나무꾼」 「심청전」 「홍길동전」 「춘향전」 「흥부전」 같은 우리 전래이야기는 대대손손 우리 겨레, 특히 서민들의 심성과 정신을 키워 온 교과서나 다름없다.
나이 든 사람들은 어린 시절 할아버지 할머니의 무릎을 베고 자장가 삼아 들으면서, 젊은 세대들은 TV나 책을 통해 그 이야기를 읽으면서 효도와 충성으로 요약되는 삼강오륜의 덕목과 권선징악으로 귀결되는 도덕적 가치관을 받아들였다.
또 이웃간의 정을 중시하고 상부상조하는 우리의 소박한 미덕이 예찬되고, 서민들의 익살과 해학이 넘쳐나며, 지순한 사랑과 행복에 대한 천진한 동경이 펼쳐지는 장면 장면을 통해서는 우리의 고유한 생활문화를 자연스레 익힐 수 있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런 이야기 속에서 이상과 혁명을 향한 열정을 북돋우기도 했다. 혼신의 힘을 다해 신분 차별에 대해 거부하는 장면에서는 평등이라는 고귀한 가치의 중요성을 배우고, 이상과 현실의 틈을 메우려는 꿈틀거림이 넘쳐나는 장면에서는 헌신과 용기의 필요성을 재삼재사 깨우칠 수 있었던 것이다.

<민족의 수난사와 미래의 희망을 노래하는 대서사시>
하지만 현대의 시각에서 보자면 우리 전래이야기가 적지 않은 문제점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가령 전래이야기의 대부분은 가족 이기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가족이나 당파를 초월한 공동체 전체에 대한 관념이 미약한 것이다. 또 비민주적 상하 관계를 고착화시키는 동시에 형식화된 도덕을 답습하게 함으로써 전반적으로 체제 옹호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경향이 강하다.
지은이가 이 책을 쓰기로 결심한 것은 우리 전래이야기의 이와 같은 모순점을 바로잡아 어린 아이부터 어른까지 누가 읽어도 이상하지 않은 그런 이야기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 목적의 달성을 위해 지은이는 과감하게 선녀와 춘향이, 길동이, 몽룡이, 흥부에게 우리 민족이 겪은 모든 수난을 투영한다. 외세의 침탈, 야만적 군사 문화의 횡행, 기득권층의 후안무치한 보신주의, 기회주의적이거나 공명심만 가득한 지식인…. 선녀와 심청이, 길동이, 몽룡이, 흥부는 그 속에서 신음한다. 하지만 지은이는 그들 모두에게 희망을 심어준다. 군사 문화의 희생양 심청은 용서와 화해를 통해, 불우한 혁명아 홍길동은 미약하지만 작은 불씨를 남김으로써, 조선의 브나로드(V narod) 이몽룡은 실천의 한 발자국을 내딛음으로써, 민족사의 고통을 한 몸에 걸머진 흥부는 자기가 가진 것을 내놓음으로써 선녀와 나무꾼이 그리던 이상향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들풀들이 들려주는 위대한 백성이야기』라는 이 책의 제목은 바로 거기서 나왔다. 이 책이야말로 심청이와 길동이, 몽룡이, 흥부로 상징되는 이 땅의 학대 받고 고통 받는 민초들이 만들어 내는 희망찬 미래를 노래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선녀와 나무꾼」 「심청전」 「홍길동전」 「춘향전」 「흥부전」 같은 우리 전래이야기는 철저하게 재창조된다.
연못에서 목욕하다 나무꾼과 결혼하는 선녀나 쌀 삼백 섬에 팔려가 인당수에 빠지는 심청이,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하기 위해 의적 행각을 벌이는 길동이, 몽룡을 기다리며 변 사또의 수청을 거부하다 옥에 갇히는 춘향이, 제비가 물어다 준 씨로 부자가 되는 흥부의 경우에서 보듯 이 책에서도 주인공의 이름과 심성은 그대로이고, 주요 사건 역시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외의 것은 모두 바뀐다. 시대 배경이 달라지고, 사건 전개가 달라지며, 결말이 달라진다.

<군사 문화의 희생양, 심청>
가령 「새 심청전」에서 심청은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공양미 삼백 섬에 자신의 몸을 판 것이 아니다. 피정복민인 마한 사람으로 승자인 백제 군인들에게 미운 털이 박힌 탓에 팔려가는 것이다. 군사 문화의 태생적 한계인 야만성과 폭력성의 희생물인 셈이다. 그러나 심청은 그들을 모두 용서한다. 그것도 인당수 시퍼런 물속으로 뛰어들기 직전에.

<불운한 혁명아, 홍길동>
「새 홍길동전」에서 신분 차별 없는 사회를 꿈꾸며 개혁을 시도하는 홍길동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 외관상으로는 공명심에 눈 먼 동료들 탓이기도 하고, 뚜렷한 신념이 없기 때문에 우왕좌왕하게 되는 백성들 탓이기도 하다.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왜란 이후의 혼란기라 하더라도 기존 질서라는 것은 강고할 수밖에 없음을, 혁명적인 방식은 내적으로 한계가 있음을 몰랐던 탓이라고 밖에는 달리 평할 수가 없다.

<조선의 브나로드, 이몽룡>
반면 「새 춘향전」에서는 그래도 자그마한 성취가 이루어진다. 변학도의 수청을 거부하여 옥에 갇힌 춘향이 구명되는 것이다. 그러나 몽룡은 그 과정에서 아무런 역할을 못한다. ‘아전들은 백성들의 살가죽을 벗기려 하고, 수령들은 아전들의 녹을 가로채고, 고관들은 뇌물을 받고 벼슬까지 파는’ 조선 말기의 극심한 혼란에 절망해 과거 시험 자체를 거부하고 ‘이러다간 남의 침략을 받기 전에 안에서 무너지고 말 것’이라며 백성들과 함께 일하며 백성들과 함께 공부하기로 결심한 몽룡은 그런 상황에서 무력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춘향이 옥에서 나오게 된 것은 순전히 나중에 처남으로 밝혀지는 암행어사 덕분이다. 하지만 그런 일을 겪고도 몽룡의 결심은 변하지 않는다. 몽룡은 춘향과 함께 결국 백성들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민초들의 소박한 이상향, 선녀와 나무꾼>
반만년 민족사를 이런 식으로 우리 전래이야기 속에 하나하나 담아 가던 지은이는 드디어 「나무꾼과 선녀」에서 자신이 바라는 세상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노다지만 걸리면 호의호식하게 해주겠노라는 광산꾼은 ‘사치 속에는 가난한 사람들의 한숨이 들어 있는 법’이라고 싫다 하고, 투구 쓰고 갑옷 입은 무인은 ‘어떻게 하늘 뜻을 내세워 귀한 목숨을 빼앗을 수 있느냐’고 거부하고, 입신양명을 자신하는 선비는 ‘주인은 백성이오, 벼슬아치는 그들을 섬기는 사람인데, 어찌 주인 행세를 하느냐’고 공박하고, 학문의 세계로 안내하겠다는 학자는 ‘눈을 감고 해에 대해 말하는 것 같고, 눈을 뜨고도 사람은 보지 못하는 것 같다’고 피하고, 세상을 교화하자는 스님은 ‘일도 기도고, 생활도 수행이 되지 않느냐’며 외면하던 선녀가 ‘나도 모르게 말로 편을 가르고 남을 원망하였고 / 그간 생명을 가꾸기가 싫어 편한 대처로 갈 생각도 했고 / 형제를 대하듯 자매를 자매로 대하지 못했다’고 반성하는 나무꾼을 ‘마음 속 작은 불순도 고통으로 알았으니 / 그 일이 당신을 더욱 믿음직스럽게’ 한다며 남편으로 맞아들이는 장면을 통해서.

추천평

홍순명 선생의 이 책에서 춘향이, 청이, 흥부, 길동의 얼굴로 등장하는 이 시대의 위대한 평민들을 새롭게 만났습니다. “아, 우리 선조들의 유산인 고전문학이 이렇게 낡은 옷을 벗고 새로운 모습으로 되살아나는 수가 있구나!”
처음에는 이런 느낌이었습니다만, 그냥 옷만 갈아입은 게 아니라 아예 새롭게 태어난 것임을 알아차리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 없었습니다. 맞습니다. 이것은 겉의 틀이나 표현만 바꾼 고전이 아니라 내용까지도 바꾸어 버린 그야말로 환골탈태한 고전 이야기들입니다. 그런데도 춘향은 춘향, 흥부는 흥부, 길동은 길동으로 변질되지 않은 채 그 모습 또한 한결같으니, 우리 고전의 알맹이를 제대로 짚어 새로운 시대 새로운 이야기로 부활시킨 솜씨야말로 명실상부 위대한 평민의 그것이라 하겠습니다. (…) 특히 구약성서의 「아가」를 연상케 하는 「선녀와 나무꾼」은 홍순명 선생의 인생관과 교육관이 간결하고 질박한 문체에 담겨진 단편으로서, 국정교과서에라도 실어서 모든 학생들이 읽을 수 있게 했으면 좋겠다는 심정입니다.
--- 이현주(목사·동화작가·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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