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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4
테스트 씨와 함께한 저녁 13 에밀리 테스트 부인의 편지 35 테스트 씨 항해일지 발췌 55 한 친구의 편지 75 테스트 씨와 함께한 산책 95 대화 101 테스트 씨의 초상 109 테스트 씨의 몇몇 생각 121 테스트 씨의 끝 135 해제, 또는 역자의 변 1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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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이든 최악이든, 이 중에 내가 간직하려던 것은 없다. 남을 수 있는 것이 남았을 뿐. --- p.15
종종 모든 것이 끝났다는 생각에 나는, 어느 고통스러운 정황을 샅샅이 들춰내 밝혀내기가 두려운 나머지 온 힘을 다해 나를 끝맺으려 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타인들이 제 생각을 표현한 것에 견주어 우리가 너무도 많이 우리 고유의 생각을 가늠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후 귓가를 울리는 수십 억 마디 말이나 그에 담긴 의도에 나는 동요되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나 자신이 남에게 내뱉은 모든 말이 언제나 내 생각과 구별됨을 느꼈다. 더는 변하지 못할 말들이기에. --- p.16 내가 보는 바가 나를 눈멀게 한다. 내가 듣는 바가 나를 귀먹게 한다. 내가 아는 바가 나를 무지하게 한다. 나는 아는 만큼, 아는 만치 무지하다. 내 앞을 밝히는 이러한 빛은 일종의 가림막으로, 밤과 빛을 뒤덮는 더욱… 더욱 어떠하단 말인가? 기이한 전복으로 이곳의 원이 닫힌다. 하여 앎은 존재에 걸친 구름이고, 반짝이는 세계란 각막을 덮은 백반이며, 명료하지 못함이다. 여기 내가 보는 모든 것을 거두어 가소서. --- p.59 인간은 언제나 생각의 정상에 서서, 사물이나 풍경의 한계 위로 두 눈을 부릅뜨니…. 저 자신의 ‘진리’를 받아들이기란 불가능하다. 진리가 형성되는 것을 느낄 때(이는 인상의 문제다), 동시에 익숙지 않은 또 다른 자신을 형성하게 되고… 그러함에 자랑스러워하고, 그러함에 시샘한다…(이는 내적 정치의 극치다.) 맑은 나와 혼탁한 나 사이, 올바른 나와 죄지은 나 사이에, 오랜 증오와 오랜 타협이, 오랜 포기와 오랜 애원이 있다. --- p.61 내가 지닌 미지가 나를 나로 만든다. 내게 있는 서투름이, 불확실함이, 바로 나 자신이다. 나의 나약함, 나의 연약함… 결함이 내 시작의 바탕이 된다. 불능이 내 기원이다. --- p.62 나는 아무것도 필요치 않다. 필요라는 낱말마저 내게는 어떠한 의미도 지니지 못한다. 그러니 나, 무언가를 행하리라. 내가 나에게 하나의 목적을 주리라. 하지만 그럼에도 어떠한 것도 나를 넘어서지 않는다. 나는 약간이나마 나를 닮은 존재들을 만들기도 할 것이며, 그것들에게 눈과 이성을 줄 것이다. 또 그들이 내 존재를 두고 무척이나 막연한 마음이 들게 할 것이며, 그리하여 그것들이 내가 준 이성을 통해 내 존재를 부인하는 데 이르게 하리라. 그러면 그들의 두 눈은 나 자신이 아닌 사물들의 무한함을 바라볼 것이니. --- p.1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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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모호함도 발설하지 않는 자
화자는 어느 날 우연히 카페에서 테스트 씨라는 사십 대 무렵의 기묘한 남자를 알게 된다. 증권가에서 잔챙이 매매를 하면서 살고 비비엔 거리에 있는 작은 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그와 밤에 함께 극장에 가게 되면서, 화자는 점점 더 알 수 없는 그에게 호기심을 느끼게 된다. 테스트 씨는 눈짓과 손짓이 분명치 않으며 누가 인사를 해도 들은 척도 안 하고 웃지도 않는다. 마치 모든 인간적인 사소한 문제를 무시하는 것 같다. 그러나 기억이나 통찰, 의식과 관련해서는 그 누구와도 다른 놀라운 능력을 보여준다. 테스트 씨를 관찰하던 화자는 그가 ‘정신의 법칙’을 발견한, 자기 생각의 주인이라고 결론 내리게 된다. “나는 진짜 내 것인 것들로 소급하고자 했다” 발레리 초기 사상의 집약 “나는 문학만이 아니라 철학마저 거의 다 내가 그토록 진심으로 거부하던 모호한 것과 불순한 것 사이로 내던져버렸다.” _서문 중에서 발레리는 ‘지적 희생’이 따르는 문학적 글쓰기에 회의심을 품고 자신의 글에 극단적 언어의 정확성을, “언어의 능력 바깥에 있는 완벽과 순수”를 담으려 했다. 에드몽 테스트는 발레리가 ‘정확성’의 문학적 구현이라는 가능할 법하지 않은 시도로서 창조한 독창적인 인물로서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과 정신 현상의 분석에만 몰두하는 특이한 캐릭터다. 이러한 독특한 등장인물은 인식의 불확실성에 대해 고민하던 젊은 발레리가 기존의 문학과 철학을 비판하며 스스로 내놓은 해답이었다. 발레리는 정신의 법칙들을 발견하고 자기 자신에 대한 명료한 인식에 도달하는 것을 가장 큰 목표로 했다. 그가 젊은 날에 극심한 짝사랑의 고통 속에 겪은 감정적 파국이 지금까지 그를 지탱해오던 것을 무너뜨리고 자신에 대한 확신을 무너뜨렸기 때문일 것이다. 테스트 씨는 목격자다. Conscious ―?Teste, Testis. _본문 중에서 ‘테스트’라는 이름은 ‘머리’를 의미하는 중세불어 teste와 ‘관찰자’를 의미하는 라틴어 testis를 어원으로 한다. 즉, 테스트 씨는 정신 현상의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하나의 ‘두뇌’이자 자기 자신의 변화를 명료하게 포착하는 관찰자, 또는 목격자다. 작품을 집필하던 시기에 발레리는 하나하나의 개성이며 그 개성이 작동하는 체계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는 좀 더 임의적이고, 그러므로 보편적인, 한 작업의 체계보다는 그 작업을 가능케 하는 방법에 집중했다. 테스트 씨는 발레리가 그렇게 제 정신의 역학원리를 탐구한 결과 탄생한, 어떠한 과오로도 얼룩지지 않은 가공할 괴물, 실제의 시간 속에서는 결코 존재할 수 없는 존재, ‘나’에 사로잡히지 않은 채 일체를 목격하는 인물이다. 인간성을 완전히 탈피한 순수한 의식의 산물인 것이다. 철학은 좀체 신용을 얻지 못하고 언어는 언제나 규탄의 대상이 되는 이 별난 두뇌 속에서, 임시적이라는 자각이 따르지 않는 사상은 거의 없다. 규정된 활동에 대한 기다림과 실행 말고는 남은 게 거의 없다. 짧고 굵은 그의 삶은, 알려진 것과 알려지지 않은 것의 관계를 설정 · 조직하는 역학원리(mecanisme)를 감시하는 것으로 그 소용을 다한다. _서문 중에서 발레리는 최초의 「테스트 씨와 함께한 저녁」에 이어 1926년에 「에밀리 테스트 부인의 편지」, 「한 친구의 편지」, 「테스트 씨의 항해일지 발췌」를 한데 묶어 테스트 씨 연작을 발표했으며, 잡지에 새롭게 수록될 때마다 「테스트 씨와 함께한 저녁」을 조금씩 개정하면서 작품을 완성해나갔다. 그는 죽기 전까지도 테스트 씨 연작을 새롭게 묶기 위해 작품을 집필하고 순서를 고심하였고, 결국 발레리의 유지를 받들어 기존 테스트 씨 연작에 새로운 작품들을 더해 1946년에 이르러 지금의 『테스트 씨』가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테스트라는 불가능한 괴물을 읽어내기 위해서는 불가능한 개인이 필요하다 「테스트 씨와 함께한 저녁」은 등장인물과 서사적 줄거리를 가진 소설의 형태이지만, 그 후에 발표된 작품들은 점점 소설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인다. 「에밀리 테스트 부인의 편지」와 「한 친구의 편지」까지는 다른 인물의 목소리를 빌어 테스트 씨를 묘사하는 형태를 취하지만, 다른 장들을 살펴보면 문학적이라기보다는 철학적이고, 개연성 있는 스토리보다는 독백과 짧은 단상들로 채워져 있다. 이 작품은 수십 년에 걸쳐 집필되었고, 하나로 체계로 보려는 일반적인 감각으로는 쉽게 파악할 수 없는 정신현상의 작동 원리를 이처럼 다양한 등장인물의 관점을 통해 여러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읽어내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테스트 씨가 열어 보여주는 세계는 우리의 안목을 넓히고 ‘지성’과 ‘정신’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준다. 옮긴이는 이 난해한 텍스트를 읽기 위해서 일반적인 논리로 자신을 무장한 채 책과 적당한 거리를 두어 안전을 도모하지 말고, 매 순간 자신의 감각과 의미에서 발생된 논리를 의심하면서 읽을 것을 당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