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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크루즈 승무원입니다
여행하듯 일하고 머무르며 행복한 삶
홍자연
미래의창 2017.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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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Embark 어쩌다 보니 크루즈 승무원

1st Contract 그 세계에는 뭐가 있기에
안녕? 낯선 세계 | 인생의 터닝 포인트, 디즈니 인턴십 | 어서 와, 취업 준비는 처음이지?
우연을 가장한 인연 | 미스 컨시어지가 제안하는 영어 공부법
· 크루즈 승무원의 캐리어 안에는

2nd Contract 크루즈 승무원의 모든 것
프런트 데스크의 세계 | 크루즈 여행, 정말 안전해요? | 알아들은 척은 금물 |
밤의 요정, 나이트 퍼서 | 파란만장 중국 시즌 | 미스 컨시어지가 되다
· 크루즈 계급 간단 정리! | · 크루즈 승무원의 휴가

3rd Contract 바다 위 여행자의 일상
크루즈 승무원의 하루 | 바다 위 여행자로 살아가기 | 무한 자유는 없다! 크루즈의 규칙 |
이것이 바로 크루 라이프 | Home away from Home | 조금 특별한 인연
· 내 목소리는 소중하니까 | · 진희 이모의 크루즈 이야기

4th Contract 서비스? 노 프라블럼
카멜레온 같은 컨시어지 | 이름을 불러주세요 | 때로는 단호하게, 하지만 정중하게 |
일인다역? 노 프라블럼 | 나의 롤모델은 캡틴?! | 게스트의 ‘쪼리’를 신어라 | 작은 정성, 최고의 서비스가 되다
· 외국으로 떠나고 싶은 당신에게

5th Contract 크루즈의 모든 것
크루즈에 대한 오해와 진실 | 취향에 따라, 이색 크루즈 | 38일의 썸머, 드라이 도크 |
포트가 취소되었습니다 | 바다 위에서만 일어나는 일들 | 그들이 여행하는 법 | 크루즈에서 장례식을?
· ‘크루즈어’가 있다? 크루즈 용어 간단 정리

Last Contract 끝나지 않을 이야기
바다는 넓고 할 일은 많다 | 나를 변화시킨 크루즈 라이프

Disembark 서른이 뭐예요?

저자 소개

저자 : 홍자연
국문학과 영문학을 공부한 전형적인 인문학도. 겁이 많아서 자전거도 못 타고 수영도 못 하지만 남들과 다르게 사는 것,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두려움은 없다. 어떤 우연 같은 인연으로 바다 위 여행자, 크루즈 승무원이 되어 5년 동안 37개국 70개 도시를 누볐다. 크루즈에 승선한 게스트들과 가장 친밀해질 수 있는 ‘컨시어지’라는 포지션으로 근무하면서 전 세계를 다니며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하고, 귀를 기울이고, 건배했다. 그리고 그 따뜻함을 잊지 않기 위해 기록했다.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를 다섯 번째 읽었을 때, 잠시 쉼표를 찍고 멕시코로 날아갔다. 그곳에서 크루즈에서의 경험을 정리한 책을 집필한 뒤 또다시 새로운 모험을 구상 중이다. 느림의 여행을 사랑하는 크루저이지만 즉흥적인 것을 좋아해서 휴가 중에도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곤 한다. 프리랜서 번역가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모닝커피와 미드나잇와인을 좋아한다.

관련 분류

품목정보

발행일
2017년 06월 08일
쪽수, 무게, 크기
312쪽 | 527g | 148*210*19mm
ISBN13
9788959894635

책 속으로

Now or Never.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았기 때문에 그래서 떠나기로 작정했다. 혼자 떠나는 것은 처음이었다. 앞으로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 13만 톤짜리 크루즈 선에서 6개월을 보낼 것이다. 기분 좋은 떨림이 느껴졌다.
--- p.38

라운지가 새 손님들을 맞이할 준비를 마치면 나는 이제 네다섯 시간 정도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셔틀버스를 타고 10분만 가면 내가 좋아하는 파스타와 샐러드를 파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을 수도 있고, 시간이 좀 더 넉넉할 땐 썬 트롤리라고 불리는 오래된 관광열차를 타고 30분 정도를 달려 포트 로더데일 해변까지 갈 수도 있다. 오늘은 가장 친한 친구와 함께 해변 가에서 시원한 애플 사이더와 함께 새우 요리를 먹고 돌아오기로 한다. 늘 햇빛이 찬란한 선샤인 스테이트 플로리다는 날 실망시키는 법이 없다.
--- p.111

특히 야외 조깅 트랙의 매력은 깜깜한 밤에 더 빛을 발한다. 모두가 잠든 밤에 살짝 올라가 썬 베드에 누워서 밤하늘에 가득한 별을 보는 것은 일상의 작은 행복이다. 밤에는 바람이 불고 쌀쌀해서 두꺼운 옷을 가지고 올라가 얼굴이 얼얼해질 때까지 별을 보거나 달빛으로 물든 바다를 내려다보곤 한다. 살아 있음에 감사하고, 내가 사랑하는 일을 이렇게 멋진 곳에서 다정한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음에 행복해지는 밤이다.
--- pp.122~123

여행이 일상이 되면서 먼저 걷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짧은 시간 안에 랜드마크를 둘러보고, 찾아둔 맛집에서 점심을 먹고, 리스트에 따라 쇼핑까지 하다보면 늘 시간에 쫓겨 허겁지겁 배로 돌아오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배에서 나가면서 “오늘의 앞마당은 리스본이네” 하고 말하는 여유가 생겼다. 그런 마음으로 천천히 걷다 보면 작고 아름다운 것들에 대해 예찬하게 된다. 길거리에서 파는 제철 과일을 한 봉지 사서 먹으며 천천히 걷다가 조금 지치면 잔디밭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 구경을 한다. 런치 브레이크를 즐기는 직장인들, 반려견과 함께 조깅을 하는 현지인들의 풍경 속으로 잠시 빠져들어 보기도 한다.
--- p.128

나에게 ‘여행’이란 단어는 떼려야 뗄 수 없는 키워드가 되어버렸지만 아직도 난 여행이 뭔가 싶다. 처음에는 자유 시간이 단 두 시간뿐이어도 잽싸게 나가서 현지 음식을 먹고 오거나, 잠깐이라도 나가서 기항지를 둘러보고 아쉬운 마음으로 돌아왔었다. 그러나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돌아다니는 게 일상이 되면서 우스운 딜레마에 빠졌다. “나가서 세상 구경을 할까. 세탁기 돌리고 낮잠이나 잘까” 따위의 고민을 하게 된 것이다.
--- p.130

좋은 일, 힘든 일을 함께 나누며 몇 개월을 한 가족처럼 지낸 크루즈 식구들은 내 삶의 일부가 되곤 한다. 이렇게 내가 가는 세계 곳곳은 꽃밭이 되고, 난 그곳에서 나와 함께 자라난 꽃과 같은 사람들과 추억들을 기억한다. 떠나오더라도, 곁에 두지 못하더라도, 생각만으로도 행복해지는.
--- p.156

나는 결코 특별한 기억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저 좋았던 사람들, 행복했던 만남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기억되는 법이다. 그래서 이런 인연을 선사해 준 나의 직업에 감사한다.
--- p.185

“게스트의 컴플레인을 개인적으로 받아들이지 마.”
맞는 말이다. 서비스업에 종사하면서 모든 컴플레인을 개인의 것으로 받아들이면 마음이 상하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하지만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게스트에게 사과해야 하는 건 나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게스트는 나에게 화를 낸다. 그래서 나는 이제 컴플레인을 개인적으로 받아들이며 핸들링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진심이 담긴 마음을 내보이면 게스트도 마음을 준다. 게스트도 이미 알고 있는 회사의 규칙을 읊기 전에, 먼저 게스트와 눈을 마주치고 공감의 텔레파시를 쏜다. 그렇게 나는 종종 ‘컴플레이너’와도 절친이 되곤 한다.
--- p.196

제주도에는 응급차가 대기 중이었다. 들것에 실린 게스트와 그 가족과 함께 생전 처음으로 응급차에 탔다. 나는 구급요원의 지시에 따라 게스트의 코와 입에 연결된 산소 주머니를 3초에 한 번씩 눌러야 했다. 주머니를 누를 때마다 의식이 없는 게스트가 숨이 넘어갈 것 같은 소리를 내서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른다. 겁에 질려서 울고 있는 아내와 내 또래의 딸에게 뭐라고 위로라도 해주고 싶은데 그분들은 영어나 한국어를 못하고, 나는 중국어를 못하니 손을 꼭 잡아주는 수밖에 없었다.
--- p.203

발신자를 확인해보니 “CAPTAIN”이라고 뜨는 것이 아닌가. 캡틴이 나에게 직접 전화를? 라운지 데스크에 앉아 있다가 놀란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전화를 받았다. 잘못한 것도 없으면서 괜히 불안한 마음이 일었다. 수화기 너머로 유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굿모닝 미스 컨시어지, 라운지의 게스트들은 모두 행복한가?”
예상치 못했던 캡틴의 말에 약간 당황했지만 이내 마음이 포근해졌다.
“그럼요. 게스트가 행복해야 저도 행복하니까요. 캡틴은 어때요?”
“나야 뭐 언제나 행복하지. 좋아 좋아. 그럼 좋은 하루 보내라고!”
짧은 순간이었지만 아침밥을 든든히 먹은 것처럼 따뜻해지는 통화였다.
--- p.206

“소피, 이쪽은 컨시어지 누나야. 네가 크루즈를 하면서 불편한 점이 있으면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야. 알겠지?”
“오빠, 나 불편한 거 없는데?”
“네가 오빠처럼 크루즈를 열 번 넘게 하다 보면 불편한 것도 생기고 그러는 거야.”
아무튼 나는 이 작은 손님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라운지에 올 때마다 꼬박꼬박 핫초코를 손수 만들어주고 블록 쌓기 놀이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라이언의 엄마가 얼마나 고마워했는지 모른다). 룸으로 돌아간다고 할 때는 가방에 초콜릿 쿠키 두 개를 넣어주기도 했다. 크루즈 마지막 날, 이 꼬마 손님은 나를 꼭 껴안아주면서 귓가에 속삭였다.
“제이, 내가 만난 컨시어지 중에서 누나가 제일 좋아요. 매일 그렇게 웃어야 해요!”
--- p.212

“어제 친구 생일이라서 와인을 한 잔 마셨더니 잠이 와서 다행히 잘 잤어요.”
순간 머릿속의 전구가 반짝하는 것 같았다. 아하! 이 방법이 있었구나. 생각해보니 나도 배가 많이 흔들리거나, 숙소 위층에서 아이스쇼 공연이 있어 시끄러울 때 와인 한 잔을 천천히 마시고 누우면 꿀잠을 자곤 했다. 그날 오후 나는 게스트에게 커다란 리본을 단 레드와인 한 병을 선물로 보냈다. 소음을 멈추게 할 수는 없지만 게스트의 취침을 도울 수는 있을 거라는 희망을 안고. 역시나 다음 날 오후, 게스트는 밝은 얼굴로 데스크에 와서 엄지를 치켜들며 웃었다.
“That was a brilliant resolution(아주 좋은 해결책이었어요)!”
--- p.215

데본에게는 신기한 점이 있다. 게스트를 한두 번 마주쳤을 뿐인데 마시는 음료를 이미 다 기억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게스트가 좋아하는 음료의 특성을 곧잘 파악해서 특별한 음료를 만들어 주는 신공까지 발휘한다. 게스트가 도대체 뭐가 들었기에 이렇게 맛있냐고 물으면 데본은 캐리비언 억양으로 까불거리며 답한다.
“내 마법의 손가락을 잠깐 담갔다 뺐지요.”
일주일짜리 짧은 크루즈 기간 동안 라운지의 모든 게스트들은 데본의 팬이 된다. 나중에는 뭘 드실 거냐고 묻는 데본의 말에 게스트들은 이렇게 답한다.
“Surprise me(날 놀라게 해줘요)!”
--- p.217

크루즈는 느림의 여행이다.
--- p.232

이번 크루즈는 일명 게이 크루즈다. 아틀란티스라는 그룹은 1년에 한 번씩, 일주일간 크루즈를 통째로 빌려 게이 3,000명과 함께하는 파티 크루즈를 연다. 나는 이 크루즈에 대해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최고의 파티가 열린다는 말에 신나 있었는데 이런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보딩 데이부터 온갖 첨단 장비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거대한 특수 디지털 조명과 사운드 장비들, DJ 부스, 풍성한 데커레이션 용품들이 설치되는 것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눈이 즐거웠다.
--- p.240

구조 작업은 꽤 오랫동안 이어졌다. 저녁을 먹으러 가는 것도 잊고 그 상황을 지켜보는 게스트들도 많았다. 한 사람씩 총 여덟 명을 옮겨 태우고 캡틴이 상황을 마무리하는 방송을 하자 모두가 박수를 보냈다. 다음 날 멕시코에 도착하면 이들은 본국으로 다시 이송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정말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을 텐데 우리 배를 향하여 사력을 다해 팔을 흔들어야만 했던 그들을 생각하니 안쓰러워졌다. 노을이 옅게 깔렸던 바다는 벌써 캄캄한 밤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 pp.258~259

“그럼 지금부터 글을 쓰기 시작해봐. 아주 간단해. 작가가 별 거야? 글을 쓰는 사람이 작가지.”
그 이후로 나는 매 순간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언젠가 그가 나에게 조언해준 것처럼 나와 같은 꿈을 가진 사람들을 격려하고 싶었다. 당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이 이야기가 될 수 있다고. 작가는 다름 아닌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그리고 난 이렇게 작은 꿈 하나를 이루었다.
--- pp.270~271

그럼 매주 사용되는 식음료의 경우에는 어떨까? 매주 평균 1만 4,400킬로그램의 쇠고기, 8,100킬로그램의 닭고기, 6,300킬로그램의 돼지고기가 소비되는 것은 기본이고, 3만 개의 달걀, 6,750킬로그램의 밀가루, 1만 8,000킬로그램의 신선한 과일, 3만 1,500킬로그램의 야채가 사용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우유 9,450리터, 1만 8,000개의 조각 피자, 1만 700개의 병맥주, 8,500개의 캔맥주, 5,000개의 와인이 매주 소비된다.
--- p.277

이렇게 나는 반강제적 미니멀리스트가 되었다. 23킬로그램짜리 캐리어 두 개에 들어가면 꽉 차는 인생, 마음으로는 더 큰 바다를 품을 수 있으니 그걸로 만족해도 되지 않을까.
--- p.303

중학교에 들어가면 고등학교 입학을 준비하고, 원하는 고등학교에 들어가면 개학 첫날부터 고3처럼 공부하고, 서울 4년제가 인생의 목표가 되고, 대학에 들어가면 대기업 취업을 준비하고, 취업을 하면 결혼을 생각해야 하고, 결혼 상대를 찾는 것도 만만치 않은데 결혼자금부터 모아야 하고, 결혼하면 내 집 마련, 육아비 마련, 아이를 낳고 나면 좋은 어린이집, 이름 있는 영어 유치원을 찾아야 하고. 친구들을 만나면 애들 성적 비교, 남편 연봉 비교. 슬프지만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나는 이런 사회에서 내가 행복할 수 있을지 늘 의문이었다. 그래서 난 조금 다르게 살기로 했다.
--- p.309

그렇기 때문에 난 때로는 떠나 있는 삶이 좋다. 크루즈에서 근무를 시작하고 지금까지 이렇게 쭉 해오고 있는 이유도 사실 자유로움이 좋아서다. 지금의 젊음과 자유로움이 너무 좋아서 여기서 그만두고 싶지 않다. 있고 싶은 곳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며 가슴 뛰는 일을 하는 것, 그것이 내 목표다.
--- pp.309~310

If we were meant to stay in one place, we’d have roots instead of feet.
한 곳에 머물러야만 하는 것이 우리 운명이라면, 우린 다리 대신에 뿌리가 있었겠지.
나의 이 기행이 언제까지일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확실한 것이 있다면 나는 지금 무척 행복하다는 것이다. 나에게 크루즈는 첫사랑이자 행복한 중독이다.

--- p.311

출판사 리뷰

여행하는 삶을 동경하고 있다면,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막막하다면, 망설이지 말고 크루즈 승무원을 선택하라.
크루즈 승무원 선배가 알려주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진솔한 크루즈 이야기.

우연이면 어때, 운명으로 바꾸면 돼!

그녀는 무척 겁이 많았다. 넘어질까 무서워 자전거도 못 타고, 공에 맞을까 피구도 못하고, 물에 가라앉을까 두려워 수영도 못했다. 할 수 있는 일보다 못하는 일이 더 많았지만, 그녀는 지금 타이타닉보다 세 배는 더 큰 크루즈를 타고 전 세계를 누빈다. 세계를 자유롭게 누비는 데 필요한 요건은 어마어마한 자신감도, 남들이 우러러 볼 만큼 당찬 마음가짐도 아니었다. 그저 세계를 무대로 살아보고 싶다는 꿈 하나면 되었다. 꿈을 향한 곧은 마음을 반드시 가져야할 필요도 없었다. 그녀가 처음으로 꿈꾼 미래는 항공사 승무원, 스튜어디스였다. 하지만 그 꿈을 선망하는 이들은 너무 많았고, 그녀는 그 틈에서 화려한 외모도, 눈에 띄는 큰 키도, 모델 같은 비율도 가지지 못한 수수한 지원자일 뿐이었다. 하이힐에 닳아버린 발뒤꿈치에 눌어붙은 반창고만큼이나 우울한 시기, 희망과 절망의 반복으로 지쳐가는 동안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다. 기회는 하늘만큼이나 넓은 바다 위에 있었다. 우연처럼 다가온 꿈은 그녀가 붙잡는 순간 운명이 되었다. 그렇게 그녀는 바다 위의 시민, 크루즈 승무원이 되었다.

헬로, 미스 컨시어지!
소심하고 겁 많은 그녀는 13만 톤 크루즈를 만나 정말 다른 사람이 되었다. 3,000여 명의 게스트와 1,000여 명의 크루와 부대끼며 겁을 내기보다는 용기를 내게 되었다. 쉽진 않았다. 영어로 날아드는 질문을 혹시라도 알아듣지 못할까 매번 긴장했고, 업무를 파악하기 위해 1시간 일찍 출근해 사내 메일을 모두 열어보며 애를 썼다. 질문을 두려워하고 알아서 해내야 한다는 한국인 기질이 그녀를 괴롭혔지만 무엇이든 질문해 척척 알아내는 후임 오피서를 보며 질문을 두려워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길게 늘어선 줄을 무시하고 다가와 다짜고짜 업무를 봐달라고 하는 중국 게스트와 다투기도 하고, 그 게스트와 친구가 되기도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도 웃으며 넘길 수 있게 되자 그녀는 계급장을 한 줄 더 달고 VIP 라운지의 컨시어지가 되었다. 라운지에 들러 억지로 근태를 지적하는 다른 부서의 상사를 정당하게 고발하고, 근무 시간을 꼬박꼬박 체크해 두었다가 휴가를 알차게 받아쓰며 회사의 상식에 기대 ‘똑쟁이’ 면모도 과시한다. 또한 무례한 게스트에 단호하게 대처하는 회사에 감화 받고, 꼬마 게스트와 촬영한 사진을 직접 전달하는 캡틴의 세심함을 보며 서비스 정신을 다시 아로새기기도 했다. 회식 대신 팀원들과 편안한 자세로 함께 영화를 보고, 매니저와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정찬 디너를 함께 하며 직업이 주는 편안함과 자유로움에 푹 빠져들었다.

여행자로 살아가는 법
그녀의 자리는 365일 바다가 보이는 라운지다. 그녀의 라운지에는 크루즈를 일상처럼 즐기는 VIP 멤버들이 찾아와 라운지를 한층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1년 중 350일 크루즈를 타는 크루즈 스타 마리오는 ‘슈퍼마리오’로 불리며 디지털 노마드를 몸소 보여준다. 한국전쟁 후유증을 앓고 있는 게스트는 그녀를 만나 전쟁 당시 찍은 손때 묻은 사진을 꺼내 놓으며 함께 눈물짓기도 한다. 뇌성마비 딸을 입양해 거대한 휠체어에 태운 채 세계 여행을 하는 멋진 게스트, 게이 크루즈에서 만난 화려한 게이 게스트들은 삶의 열정을 느끼게 만들어주는 고마운 사람들이다.

탁 트인 라운지에서 매일 다른 사람들과 이국의 항구를 만나다보면 정말 매일매일이 여행이다. 나가서 파리의 거리를 걸을지 룸 안에서 세탁기를 돌려놓고 음악이나 듣고 있을지를 고민하는 수준이다. 배가 멈춰 서는 곳마다 앞마당이 되니, 배에서 내리면 딸기 한 봉지만 사들고 한가롭게 거리를 누빈다. 누구보다 느린 여행자가 되는 셈이다. 오클랜드의 바리스타는 나를 기억해 두었다가 플랫화이트를 맛있게 뽑아주고, 플로리다의 단골 레스토랑에서 먹는 점심식사는 햇살을 한껏 머금은 듯 눈부시다. 크루즈 안으로 들어와서는 바다 위 조깅 트랙을 달린다. 바다의 향기가 진하게 밀려오는 아침에는 조깅을 하고, 파도가 잦아든 밤에는 썬 베드에 누워 쏟아지는 별빛을 바라본다. 6개월 동안 이런 일상이 이어진다. 낭만의 6개월이 지나면 다시 2개월의 휴가가 기다리고 있다.

그녀는 이 일을 선택한 뒤 자신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모델 같은 지원자들 사이에서 일반인처럼 끼어 있던 면접의 악몽에서 벗어나 다양한 국적의 동료와, 사람들을 만나며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는 일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답지 않은 옷을 입고 불편한 프레임의 모서리에 다치고 있다면 짙푸른 바다로 시선을 돌려라. 바다 위에 부서지는 햇살처럼 다양한 색으로 빛나는 인생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으니까. 젊음을 가장 아름답게 유영하는 법, 크루즈 승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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