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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릉 분포도 / 조선 왕릉 공간구성(능 상설해설도) / 조선 왕실 가계도
책을 내면서 제1대 태조(太祖) 건원릉(健元陵)-구리 동구릉(東九陵) / 제릉(齊陵) / 서울 정릉(貞陵) / 태조의 가계도 제2대 정종(定宗) 후릉(厚陵) / 정종의 가계도 제3대 태종(太宗) 헌릉(獻陵)-서울 헌릉(獻陵)과 인릉(仁陵) / 구리 명빈묘(明嬪墓) / 태종의 가계도 제4대 세종(世宗) 영릉(英陵)-여주 영릉(英陵)과 영릉(寧陵) / 세종의 가계도 제5대 문종(文宗) 현릉(顯陵)-구리 동구릉(東九陵) / 문종의 가계도 제6대 단종(端宗) 영월 장릉(莊陵) / 남양주 사릉(思陵) / 단종의 가계도 제7대 세조(世祖) 남양주 광릉(光陵) / 세조의 가계도 추존 1 덕종(德宗) 경릉(敬陵)-고양 서오릉(西五陵) / 덕종의 가계도 제8대 예종(睿宗) 창릉(昌陵)-고양 서오릉(西五陵) / 공릉(恭陵)-파주 삼릉(三陵) / 예종의 가계도 제9대 성종(成宗) 선릉(宣陵)-서울 선릉(宣陵)과 정릉(靖陵) / 순릉(順陵)-파주 삼릉(三陵) / 회묘(懷墓)-고양 서삼릉 경내 / 성종의 가계도 제10대 연산군(燕山君) 서울 연산군묘(燕山君墓) / 연산군의 가계도 제11대 중종(中宗) 정릉(靖陵)-서울 선릉(宣陵)과 정릉(靖陵) / 양주 온릉(溫陵) / 희릉(禧陵)-고양 서삼릉(西三陵) / 태릉(泰陵)-서울 태릉(泰陵)과 강릉(康陵) / 중종의 가계도 제12대 인종(仁宗) 효릉(孝陵)-고양 서삼릉(西三陵) / 인종의 가계도 제13대 명종(明宗) 강릉(康陵)-서울 태릉(泰陵)과 강릉(康陵) / 순창원(順昌園)-고양 서오릉 경내 / 명종의 가계도 대원군 1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 덕흥대원군묘(德興大院君墓) / 덕흥대원군의 가계도 제14대 선조(宣祖) 목릉(穆陵)-구리 동구릉(東九陵) / 남양주 성묘(成墓) / 남양주 순강원(順康園) / 선조의 가계도 제15대 광해군(光海君) 남양주 광해군묘(光海君墓) / 광해군의 가계도 추존 2 원종(元宗) 김포 장릉(章陵) / 원종의 가계도 제16대 인조(仁祖) 파주 장릉(長陵) / 휘릉(徽陵)-구리 동구릉(東九陵) / 소경원(昭慶園)-고양 서삼릉 경내 / 광명 영회원(永懷園) / 인평대군묘(麟坪大君墓) / 인조의 가계도 제17대 효종(孝宗) 영릉(寧陵)-여주 영릉(英陵)과 영릉(寧陵) / 남양주 안빈묘(安嬪墓) / 효종의 가계도 제18대 현종(顯宗) 숭릉(崇陵)-구리 동구릉(東九陵) / 현종의 가계도 제19대 숙종(肅宗) 명릉(明陵)-고양 서오릉(西五陵) / 익릉(翼陵)-고양 서오릉(西五陵) / 파주 소령원(昭寧園) / 대빈묘(大嬪墓)-고양 서오릉 경내 / 남양주 영빈묘(寧嬪墓) / 숙종의 가계도 제20대 경종(景宗) 서울 의릉(懿陵) / 혜릉(惠陵)-구리 동구릉(東九陵) / 경종의 가계도 제21대 영조(英祖) 원릉(元陵)-구리 동구릉(東九陵) / 홍릉(弘陵)-고양 서오릉(西五陵) / 파주 수길원(綏吉園) / 수경원(綏慶園)-고양 서오릉 경내 / 영조의 가계도 추존 3 진종(眞宗) 영릉(永陵)-파주 삼릉(三陵) / 진종의 가계도 추존 4 장조(莊祖) 융릉(隆陵)-화성 융릉(隆陵)과 건릉(健陵) / 의령원(懿寧園)-고양 서삼릉 경내 / 장조의 가계도 제22대 정조(正祖) 건릉(健陵)-화성 융릉(隆健陵)과 건릉(健陵) / 효창원(孝昌園)-고양 서삼릉 경내 / 남양주 휘경원(徽慶園) / 정조의 가계도 제23대 순조(純祖) 인릉(仁陵)-서울 헌릉(獻陵)과 인릉(仁陵) / 순조의 가계도 추존 5 문조(文祖) 수릉(綏陵)-구리 동구릉(東九陵) / 문조의 가계도 제24대 헌종(憲宗) 경릉(景陵)-구리 동구릉(東九陵) / 헌종의 가계도 대원군 2 전계대원군(全溪大院君) 전계대원군묘(全溪大院君墓) / 전계대원군의 가계도 제25대 철종(哲宗) 예릉(睿陵)-고양 서삼릉(西三陵) / 철종의 가계도 대원군 3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흥선대원군묘(興宣大院君墓) / 흥선대원군의 가계도 제26대 고종(高宗) 홍릉(洪陵)-남양주 홍릉(洪陵)과 유릉(裕陵) / 영휘원(永徽園)-서울 영휘원(永徽園)과 숭인원(崇仁園) / 숭인원(崇仁園)-서울 영휘원(永徽園)과 숭인원(崇仁園) / 고종의 가계도 제27대 순종(純宗) 유릉(裕陵)-남양주 홍릉(洪陵)과 유릉(裕陵) / 영원(英園)-남양주 홍유릉 경내 / 덕혜옹주묘(德惠翁主墓)-남양주 홍유릉 경내 / 순종의 가계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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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릉의 석물을 살펴보면 망자가 살아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문무백관이 도열해서 왕을 보호하고, 곡장이 나쁜 기운을 막아주며 석호는 맹수를, 석양은 귀신과 잡귀를 막고, 망주석은 육신에서 분리된 혼이 능침을 찾을 수 있도록 안내표지의 역할을 한다. 혼유석을 받치는 고석에는 귀신의 얼굴을 새겨 악귀가 근접하지 못하도록 하며, 장명등은 망자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워졌다. 심지어 혼유석은 선령이 와서 휴식하는 공간으로 설치해놓았으니, 망자를 위한 배려가 참으로 놀랍기만 하다.
-57쪽 단종은 할아버지 세종이 45세 되던 해에 태어났다. 그 시대에는 늦은 나이에 손자를 보게 된 것이다. 아들 문종이 처복이 없어 두 번이나 헤어지고 세 번째 부인에게서 단종이 태어났으니 얼마나 기뻤을까. 단종은 일찍이 어머니를 여의고 할아버지의 귀여움을 받으며 자랐다. 8세 때 왕세손에 책봉되고 10세 때 세종이 세상을 떠난다. 아버지가 왕이 되면서 왕세자가 되는데, 병약한 문종이 재위 2년 3개월 만에 세상을 떠나 12세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오른다. 조선이 건국된 지 60년이 된 해였다. 선조들이 닦아놓은 기틀을 더욱 다져 발전에 힘써야 할 시점이었으나 역사는 그렇게 진행되지 않았다. -85쪽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는 급히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하고 분조를 맡겼다. 분조란 원래의 조정은 그대로 두고, 전란 중에 별도로 만든 조정이다. 원래의 조정은 선조가 맡고, 분조는 광해군이 맡은 것이다. 종묘사직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다. 전란 중에 광해군은 평안도, 황해도, 강원도 일대를 돌며 민심을 수습하고, 경상도와 전라도에 내려가 군량을 모으고 무기를 조달하는 등 상당한 공을 세웠다. 광해군의 분조활동은 임진왜란을 극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어찌 된 일인지 선조는 광해군의 공을 인정하지 않았다. -219쪽 조선 왕릉 답사길에는 늘 집사람도 동행했는데, 그때마다 서로 “서울 근교에 이토록 훌륭한 산책 공간, 역사 공간, 휴식 공간이 있었구나” 하며 놀랐다. 앞으로도 시간이 날 때마다 자주 찾아보기로 했다. 부부가 함께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이 큰 수확이었다. 또한 왕릉을 둘러보면서 조선 역사를 돌아보게 되었고, 역사를 통해 현실의 세계를 볼 수 있었다. 선조의 행적에서 많은 것을 배우며, 왕가의 생활도 보통 사람들의 모습과 다름이 없다는 것도 알았다. 과거를 알면 거기에서 교훈을 얻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는 말이 깊이 와 닿았다. -430쪽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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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 최고의 건축과 조형예술을 담은 조선 왕릉 그 독특한 아름다움을 재조명하다
조선 왕릉은 조선 시대 왕이나 왕후에 올랐던 이가 죽은 뒤에 안장된 능이다. 한 왕조의 왕릉 전부가 이처럼 손상 없이 보존된 예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당시 문화를 집대성한 왕릉을 보면 죽은 왕과 왕후에 대한 후대의 평가를 매우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왕릉은 풍수지리와 유교 사상을 기반으로 조성됐으며 크게 진입 공간, 제향 공간, 능침 공간으로 나뉜다. 진입 공간에는 재실과 금천교가 있고, 제를 지내는 제향 공간에는 홍살문, 참도, 정자각, 수복방, 수라간, 비각이 있다. 능침 공간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조형 방식이 조금씩 달라졌지만 대부분 삼면에는 곡장을, 봉분에는 난간석을 두르고 봉분을 수호하는 석호와 석양을 세웠다. 왕릉은 주변 산세와 지형에 따라 단릉, 쌍릉, 합장릉, 삼연릉, 동원이강릉, 동원상하릉 등 다양한 방식으로 조성되었다. 왕릉 42기 중 북한 개성시에 있는 2기와 강원도 영월군에 있는 제6대 단종의 장릉을 제외한 모든 능이 서울 시내와 경기도 일대에 자리한다. 이 책은 왕릉 답사 전에 필요한 정보와 지식을 알려주는 게 목적인 만큼 전주 이씨의 후손이기도 한 저자가 직접 답사한 경험을 최대한 살렸다. 제1대부터 제27대까지 연대별로 진행되며, 원과 묘는 관련되는 왕릉에서 같이 설명했다. 조선 왕릉은 일제 강점기에 훼손, 방치되어온 것을 문화재청이 복원하고 관리하여 살아 숨 쉬는 역사의 공간이자 도심 속 산책, 휴식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왕권이냐, 신권이냐 그들의 권력은 어디서 왔는가 조선 왕가의 삶과 죽음은 곧 조선의 역사다. 권력을 빼앗기 위해, 지키기 위해, 물려주기 위해 치열한 삶을 살았던 왕가의 이야기는 그들이 남겨놓은 우리의 문화다. 역사는 갈등과 대립으로 갈라지고 융화와 통합으로 뭉치면서 끊임없이 반복되어 왔다. 만물은 생성되었다가 사라지는 생의 고리를 끊지 못한다. 죽음은 천하의 권력을 쥔 왕일지라도 비켜갈 수 없는 필연적인 것으로, 죽음이야말로 생을 완성하는 마지막 단계일지도 모른다. 조선은 당쟁과 외척들의 세도정치로 어지러운 정세가 이어졌으며, 그사이에서 고통받는 건 늘 힘없는 백성들이었다. 조선을 쥐락펴락했던 권력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간 것일까. 왕이 떠난 자리이자 반복되는 역사의 현장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생의 마지막 자리에서 현재의 역사를 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