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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울먹이는 콧소리는 “옛날 옛날에……”와 “죽지 않았다면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을 겁니다”에서 나중에는 물레돌리는 〈잠자는 숲속의 공주〉와 착한 요정과 나쁜 요정, 〈백설공주〉의 장난꾸러기 일곱 난쟁이와 긴 머리의 〈라푼첼〉로 옮겨갔다. 그러면서도 유독 불안한 고양이에게 정말로 용기와 자신감을 주는 〈장화신은 고양이〉 이야기는 들려주지 않았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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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박한 인간사에 던지는, 고양이 시시의 유쾌하고 발랄한 메시지
어느날 시시는 자기가 살던 집에서 대탈출을 벌인다. 이유는 그 집에 사는 인간들이 고귀한 시암 고양이에 대해 너무나 무지하기 때문. 시시가 앉아야 마땅할 소파를 차지해버린 주인, 게다가 감히 시시 앞에서 자기 부인을 ‘귀여운 생쥐’라고 부르는 언어폭력까지 서슴지 않는 환경에서 결국 시시는 가출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찾아간 새로운 집. 비오는 날 불쌍하게 보여서 그 집으로 들어가는 데 성공하지만, 시시는 자기가 율리아를 입양했다고 우기며, 이렇게 자기 입장을 합리화한다. “이 다정하고 믿음직스러운 여인이 갖고 있는 자기 능력에 대한 상은 완전히 왜곡돼 있었다. 내가 굳이 그녀 곁에 머물려는 이유는, 그녀의 생각과는 달리 그녀에겐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는 크나큰 재능이 있음을 하루빨리 깨우쳐줘야 할 임무 때문이다.” 이렇게 시시의 배려(?)로 율리아와 시시는 동거를 시작하며, 밀고 당기는 자존심 싸움과 엉뚱하고 우스꽝스런 갖은 사건들을 경험하게 되는데… 시암 고양이를 사랑하는 작가의 애정어린 시선 소설 구석구석을 보면 이 책의 작가 슈테파니 츠바이크가 진정으로 시암 고양이를 얼마나 사랑하고 늘 가까이 두고 지냈는지 알 수 있다. 우선, 깔끔하며 고고한 시시가 시암 고양이에 대해 무지하기 짝이 없는 전 주인을 묘사한 부분을 보자. “우리는 지배하기 위해서 태어났지, 시중을 들자고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다. 태생이 고매한 우리 시암 고양이는 야만스럽기 그지없는 생쥐로 배를 채우는 한심한 도둑고양이는 아닌 것이다. 나에겐 킬러 기질이 없으며 쥐들과의 관계가 좀 남다르다. 내가 쥐를 죽일 때에는 기껏해야 재미삼아서, 그것도 내가 존경하는 인간에 대한 내 사랑을 표현하고 싶을 때이다.” 아무리 고고한 척하는 시시에게도 이성을 잃게 하는 것들이 있다. 그것은 감히 고양이 앞에서 자기 부인을 ‘귀여운 생쥐’라고 부르는 옛 주인이고, 시시를 개 취급하며 물건을 물어오라고 명령하는 율리아의 행태이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시시가 낳은 새끼 고양이들을 보고 ‘생쥐같다’고 말하는 율리아에게 ‘멍청이’라며 툴툴거리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또한 인간 위에서 인간을 내려다보는 오만하기 짝이 없는 시시의 독백이 때로는 애처롭기까지 하다. 무지한 옛 주인을 피해 새 주인 율리아의 집에 기어들고는 끝까지 자존심을 지키려는 시시의 마음에서 그런 면을 엿볼 수 있다. “우선, 내가 오갈 데 없는 난민으로 그녀의 집에 숨어든 게 아니라는 점을 확실히 해두는 게 중요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유리한 입지와 조건들은 모조리 그녀의 손 안에 있다는 환상을 심어줄 필요가 있었다. (…) 내가 굳이 그녀 곁에 머물려는 이유는, 그녀의 생각과는 달리 그녀에겐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는 크나큰 재능이 있음을 하루빨리 깨우쳐줘야 할 임무 때문이다. 율리아의 자신감을 키워주는 것은 어느덧 내게 도의적 책임이 되었다. 지금 그녀에겐 자기 자신과 온화한 마음을 믿게 해줄 우정이 필요하다.” 저자 슈테파니 츠바이크가 시시를 이렇게 묘사한 데는 충분히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시암 고양이는 서양에서 가장 인기 있는 종으로서, 1800년 이후 영국과 미국 등지에서 개량되었으며 원산지는 지금의 태국의 왕궁인 시암Siam 혈통이다. 그래서 고양이계의 여왕으로 불린다. 시암 고양이는 성격이 독특하며 영리하고 애정이 많다. 감수성도 예민해서 공격적이거나 신경질적인 면도 있고, 자기 과시를 하기 좋아하며 늘 주인의 관심을 끌고 싶어 해서 안거나 쓰다듬어 주면 좋아한다. 지나치게 움직이는 것을 좋아해서 성가시기도 하며, 수컷은 발정기가 되면 너무 시끄럽게 울어 댄다. 소설에는 끊임없이 돌아다니며 여기저기 참견하기 좋아하는 시시의 모습을 엿볼 수 있고, 발정기 때 주인공 시시의 괌심을 끌기 위해 율리아의 정원에서 구애의 손길을 뻗치며 울어대는 수고양이들의 안타까운(?) 모습도 볼 수 있다. 있는 그대로의 우리 모습을 사랑하게 하는 시시 시시의 독백을 듣다보면 우리 인간들이 자기 모습을 얼마나 왜곡되게 인식하고 있는지 깨닫게 된다. 이 소설에서 시시의 둘도 없는 친구인 율리아는 자신이 늘 뚱뚱하다고 생각한다. 시시는 이런 율리아를 너무나 안타깝게 생각하며 ‘왜 인간들은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할 줄 모르는지’ 의아해한다. 게다가 율리아는 심리치료사여서 집에는 늘 심리적으로 불안한 사람들이 방문한다. 시시는 율리아의 훌륭한 보조자로서 그들의 마음을 열어준다. 결국은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며, 남의 눈으로 자신을 왜곡하기 때문에 오는 심리적인 상처를 이 쾌활한 시시가 웃음과 감동으로 치료해주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