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검색을 사용해 보세요
검색창 이전화면 이전화면
최근 검색어
인기 검색어

소득공제 강력추천
티토
위대한 지도자의 초상 양장
유경찬
을유문화사 2003.12.20.
가격
18,000
10 16,200
YES포인트?
900원 (5%)
5만원 이상 구매 시 2천원 추가 적립
결제혜택
카드/간편결제 혜택을 확인하세요

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해외배송 가능?
  •  문화비소득공제 가능

이 분야의 이벤트

책소개

목차

옮긴이의 말
감사의 말

어느공산주의자의 장례식
유고슬라비안인
마르크스주의자들
청년 요시프 브로즈
철강 노동자
특무상사 브로즈
러시아 내전
유고슬라비아에 돌아오다
직업 혁명가
알렉산다르 1세 시대의 감옥
쿰로베츠에서 모스크바로
럭스 호텔
히틀러와 스탈린의 약속
독일의 야욕
우지체에서 비하치로
3월 협상과 수톄스카
피츠로이 매클린
드르바르에서 베오그라드로
승리와 보복
냉전
스탈린과 결별
여명을 향하여
개선장군 티토
흐루시초프와 1956년의 위기
비동맹
자유주의자와 강경파
프라하으 봄과 1968년의 위기
크로아티아 진압
마지막 날들
티토 이후의 유고슬라비아

저자 소개 1

고려대학교 정경대학을 나와 해태제과를 거쳐 한불종합금융에 근무하면서 기획이사, 투자금융본부장을 지냈다. 한국의 실물 경제 흐름에 관한 정확한 정세 분석가로 정평이 난 그는 싱가포르에 있는 프랑스 소시에테제너럴은행의 아시아·대양주지역본부에서 일한 경험을 토대로 《금융은 신음한다》라는 책을 썼다. 한국 금융의 현주소를 낱낱이 해부한 이 책은 서울대학교 경영대학원 교재로 채택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20세기 세계사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갖고 《히로히토, 신화의 뒤편》, 《베트남 10,000일의 전쟁》, 《석유 황제 야마니》, 《티토》 등의 역서를 펴냈다.
저자 : 재스퍼 리들리
영국 서식스 출생, 프랑스 소르본대학에서 수학했으며 옥스퍼드대학의 모들린칼리지를 마쳤다. 훌륭한 역사가이자 보기 드문 전기작가인 그는 19세기 인물들에 대한 다수의 훌륭한 전기를 썼다. <파머스턴 경〉, 〈나폴레옹 3세와 외제니〉, 〈가리발디〉, 〈막시밀리안과 후아레스〉, 〈무솔리니〉 등의 굵직한 저서들이 그의 역량을 말해 준다. 그는 〈티토〉를 쓰기 위해 직접 현지로 찾아가 티토의 가족들, 휘하에서 일했던 장군, 장관, 비서, 그리고 한때는 동지였으나 후에 정적으로 변한 밀로반 질라스, 또 그의 통치 기간 동안 심한 고초를 겪었던 사람들까지 생생하게 인터뷰했다.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티토의 정치적 역경과 강렬한 카리스마의 배경을 낱낱이 파헤치고 있는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재스퍼 리들리의 전기작가로서의 명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3년 12월 20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536쪽 | 814g | 153*224*35mm
ISBN13
9788932460994

출판사 리뷰

1980년 '유고의 아버지' 요시프 브로즈 티토(Josip Broz Tito)가 사망한 후, 채 한 세대가 지나기도 전에 유고슬라비아는 다섯 개의 나라로 갈라졌다.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마케도니아, 보스니아, 그리고 세르비아-몬테네그로(2002년 신유고연방에서 국명을 변경)가 바로 그 나라들이다. 이후 끊임없이 이어진 내전 속에서 벌어진 인종 학살은 발칸 반도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어제의 이웃이 오늘의 원수가 되어 서로 죽이는 과정에서 싹튼 분노와 원한의 씨앗은 또 다른 학살을 낳고 말았다. 발칸 반도의 오늘은 여전히 불안하다. 코소보 내전을 전후로 학살을 피해 쫓겨난 난민들이 늘어나면서 이 땅에 평화의 날은 요원하기만 하다. 불과 20여 년 전 옛 유고슬라비아는 동구권에서 가장 안정되고 잘사는 나라로 평화와 번영을 누리던 나라였다. 그리고 우리는 그 핵심에 존재하는 '티토'라는 인물에 주목하게 된다. 강력한 카리스마로 소련과 미국의 냉전 구도 아래에서도 독자적인 외교 노선을 추구하였고 비동맹 국가들을 이끌었던 정신적 지도자 '요시프 브로즈 티토'.
이 책은 살아 생전 유고슬라비아를 한 나라로 묶었고, 동서양이라는 굴레를 앞세운 강대국들의 각축장에서 독립과 중립성을 지켜나간 정치인 그 이상의 인물인 티토에 대한 생생한 현장 다큐멘터리이다.

국내 최초로 선보이는 티토 일대기

이 책은 티토의 어린 시절에서부터 생을 마감하기까지의 행적을 추적하고 있다. 공산주의자가 되기까지 그의 사상 형성에 영향을 미친 성장 배경을 시작으로, 시대 상황과 티토라는 인물의 연계성에 이르기까지 매우 총체적이고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티토는 농민인 아버지를 따라 농사를 지으면서 생산과 분배의 불합리성을 깨닫게 되고, 이러한 자각은 그를 공산주의자로 만드는 밑거름이 됐다. 제1차 세계대전 등이 일어난 혼란스런 시대를 살았고, 마르크스-엥겔스의 <공산당 선언>이 티토 사상의 버팀목이 되었던 사실 또한 조목조목 파헤치고 있다. 스탈린과 티토의 연합과 갈등, 그리고 대립하는 과정, 또 처칠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과 티토의 관계를 이야기하는 대목은 매우 흥미롭다. 티토는 처칠을 '세계 공산주의의 적'임과 동시에 '훌륭한 정치 파트너'라고 높이 평가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파르티잔(partisan)을 이끌고 독일 나치에 대항했던 티토의 모습은 전세계인들의 뇌리에 깊은 영상을 남겼다. 그는 전쟁영웅이 되었고 1953년 선거에 의해 대통령으로 선출되어 1980년 생을 마감할 때까지 재직하였다. 냉전을 초래했던 양대 세력의 틈바구니에서 제3세계라는 새로운 가치관을 추구하면서 독자적 사회주의를 건설한 티토의 업적은 크게 다음 두 가지 요인에 의한 것이었다. 그것은 비동맹과 노동자자주관리제였다.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건설과 비동맹회의 "부르주아 자본주의의 횡포도 싫지만 스탈린과 소련의 만행에도 눈을 감을 수가 없다. 그렇다고 공산주의까지 포기할 수는 없다."

1948년 소련을 포함한 9개 공산국으로 구성된 코민포름에서 유고슬라비아가 추방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소련의 스탈린과 유고슬라비아의 티토 사이에 생긴 불화로 인한 이 사건은 티토에게는 엄청난 위기였다. 당시 유고와 교역하는 국가들의 50% 이상이 동구권 국가들이었기 때문이었다. 티토는 이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서구 경제 체제를 도입하는 등 자주관리와 비동맹을 축으로 한 독자적인 사회주의 건설을 추진하고 '유고슬라비아사회주의연방공화국'이라고 개칭했다.
그는 유고슬라비아연방을 통치하면서 국정의 제1순위를 '민족간의 화합'에 두었다. '1개의 연방, 2개의 언어, 3개의 종교, 4개의 민족, 5개의 국경, 6개의 공화국'이라는 말로 압축되는 유고슬라비아연방의 지배세력은 세르비아계였다. 티토는 세르비아계가 여타 다른 민족을 압도함으로써 나라가 기형적으로 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강자에게 관용과 양보를 촉구하는 정책을 폈다. 이 책은 그가 이러한 정책을 펴기까지의 과정 속에서 겪었던 정치적연대와 대립에 대한 여러 사례들을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이고 있다.

노동자자주관리제
'유고슬라비아형 노동자자주관리제'의 요점은 인간들이 자유시장자본주의 체제에서 노동자(勞動者)와 관리자(管理者)라는 두 개의 부류로 나누어지는 상황 자체를 부정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이러한 이데올로기를 바탕으로 출발한 덕택에 노동자자주관리제는 진정한 사회공산주의 체제 건설을 위한 제도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이 제도는 공산 국가 중에서는 처음으로 자본주의의 이윤 동기와 경쟁 원리를 도입한 획기적인 '유고형 시장 사회주의'이다. 정부는 단지 경제 발전의 기본 목표만을 설정하고 구체적인 계획은 각 공장이나 기업이 자유롭게 수행했다. 이런 정치, 경제의 분권화로 유고 국민들은 다른 공산 국가와는 달리 국민 소득 2천 불이 넘는 신흥 공업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공산주의자이자 민족주의자, 그리고 독재자이기도 한 티토
티토를 평가하는 다양하고 생생한 증언

이 책은 티토가 가진 독보적인 업적에 대한 기술뿐만 아니라 티토를 평가하는 여러 가지 단상에 대해서도 빠짐없이 기록하고 있다. 티토의 가족들, 오랜 지기이자 동료였던 밀로반 질라스(Milovan Djilas)를 비롯해서 티토 산하의 장관들, 각국의 대사들, 개인비서들과 여러 언론 등 세계 각국과 계층의 사람들의 통해서 듣는 생생한 증언은 이 책의 백미로 꼽을 수 있다.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은 "미국은 유고슬라비아의 중립적인 정책을 지지할 것이며 세계 정치 무대에 우뚝 섰던 티토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한다"라고 했으며, 대처 전 영국 수상은 "제2차세계대전 당시 영국의 튼튼한 지원자였던 티토 대통령의 운명에 슬픔을 금할 수 없다"라고 추앙했다. 그리고 서독의 헬무트 슈미트 수상은 "티토야말로 유고슬라비아의 독립을 지켜낸 위대한 전사"라고 최고의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한편, 티토는 공자주의자들로부터 배신자라고 평가받기도 했으며 분명히 독재자이기도 했다. 알바니라 공산당 기관지 <제리 이 포풀리트(Zeri I Popullit)>는 "역사상 들어보지 못한 티토의 추악한 음모와 배신이 그리스 인민의 영웅적인 투쟁에 찬물을 끼얹었으며, 민주 전사들의 등에 비수를 꽂았다"고 논평하면서 티토를 배신자라고 몰아세웠다.
또 한 가지 빠질 수 없는 사실은 티토 대통령의 집권 시절에 공산당에 의한 독재가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위에 언급한 밀로반 질라스는 유고슬라비아의 공산주의를 비판한 뒤, '민주적 사회주의 정당의 도입 등 좀더 민주적인 정부 형태를 택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가 숙청된 바 있다. 즉, 그는 어떠한 행동이나 행위 등에 대한 자유는 보장하되, '유고슬라비아 정치'사회 체제의 근본'을 뒤집을 만한 행동은 결단코 용납하지 않았던 것이다.

21세기 분단과 지역주의로 갈라진 대한민국에 던지는 메시지

티토 사후 사라진 나라 유고슬라비아는 아직도 분열과 대립이 끝나지 않았다. 20만 명의 사상자와 실종자를 내고 430만 인구의 절반 이상을 난민으로 전락시킨 '보스니아 내전'은 100만 명이 넘는 난민이 발생한 '코소보 내전'으로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일어난 각종 학살과 인종청소로 발칸 반도는 피로 얼룩졌고 지금도 그 후유증으로 시달리고 있다.

이 참혹한 내전을 살펴보면서 우리는 그보다 더 작은 땅덩어리에서 남북으로 분열된 것도 모자라 아직도 동서로 분열되어 지역감정에 흔들리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된다. 티토 사후 세르비아의 지역감정을 이용해서 정권을 잡은 밀로셰비치 같은 정치인이 이땅에도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정치인을 묵과한다면 우리의 평화도 요원한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우리가 '티토'라는 정치인에게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리뷰/한줄평5

리뷰

8.8 리뷰 총점

한줄평

첫번째 한줄평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