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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초원을 가다
2. 십자군, 아시아로 3. 지하드의 절규 4. 파란 이리의 후손들 5. 세 대륙을 탐험한 사나이 6. 아시아에서는 7. 유럽의 도시와 농민 8. 15세기의 바다 9. 상선과 선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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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자르는 일단 정권을 황제의 아들인 투란(샤자르가 낳은 자식이 아니었다)에게 물려주었지만 그는 전쟁에서 공을 세운 장군들을 소홀히 대하는 바람에 그들에게 반감을 사 5월에 암살되었다.
이후 장군들은 샤자르 황비를 새 황제로 추대했다. 이것이 마므루크 왕조의 시작이다. 샤자르는 이슬람 사상 최초의 여황제가 되었다. 여황제 샤자르는 십자군 포로였던 루이 9세를 몸값을 받고 풀어주었고 그녀의 이름으로 정치적 포고를 발했으며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화폐도 발행했다. 그러나 이슬람 지배자에게 여성이 옹립된 데 대한 국내 각지의 반발은 컸다. 그러자 샤자르는 마므루크군 총사령관인 아이바크와 결혼하고 황제의 지위를 남편에게 넘겼다. 그러나 샤자르는 남편 아이바크가 국내 안정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지방장관의 딸과 결혼한 사실을 알게 되자 1257년 4월 노예를 시켜 목욕중인 아이바크를 살해했다. 그리고 마침내 이 일을 안 아이바크의 부하 마므루크는 곧장 샤자르를 잡아 죽였다. 샤자르가 왕위에 머문 것은 불과 80일제 지나지 않았으나 십자군으로부터 이집트를 지켜냈고, 아이유브왕조를 멸망시키고 마므루크왕조를 세웠으며 그 초대 황제에 취임하는 등 큰 의미가 있었다. 마므루크는 황제의 세습을 인정치 않아 황제의 자리에 걸맞는 지혜와 재능을 갖춘자를 추대했기 때문에 비록 황제의 자식이라 하더라도 아버지의 뒤를 잇기가 쉽지 않았다. 한편 안나시르 무하마드는 아홉 살에 황제에 오른 뒤, 14살과 25살에 두 번이나 황제에 복귀한 인물로서, 암살된 황제가 많은 그 시대에 몇 안 되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 p.132-13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