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제1장 동아시아에서의 제2차 세계대전의 기념과 집단기억
제2장 일본의 아시아태평양전쟁에 대한 기억: 1995년 이후 수정주의적 전환에 대한 분석 제3장 항일전쟁과 중국혁명, 그리고 중화인민공화국의 제2차 세계대전 기념 제4장 ‘좋은 전쟁’, 그리고 희미해지는 태평양전쟁에 대한 기억 제5장 소비에트연방 해체 이후 러시아에서의 ‘대조국 전쟁’ 서사 제6장 21세기 초 영국의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문화적 기억: ‘평범한 영웅주의’ 제7장 독일의 20세기: 집단기억 속의 제2차 세계대전 |
朴贊勝
박찬승의 다른 상품
|
여기서 ‘집단기억’이란 한 집단이 상징적 기호와 행위를 통해 가지는 특수한 기억을 말한다. 그런데 한 집단에도 내부에 다양한 기억이 존재한다. 따라서 ‘집단기억’은 그 집단의 지배적인 기억을 가리키는 말이 된다. 그러면 집단기억은 어떻게 형성될까. 독일의 문화과학자 얀 아스만과 알라이다 아스만 부부는, 집단기억의 형성에는 문학작품을 비롯한 각종 텍스트, 신화와 종교적 제의, 기념물·기념 장소, 아카이브 등 다양한 문화적 매체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고 말한다. 전쟁에 대한 집단기억의 형성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전쟁에 대한 집단기억은 역사가의 저서와 논문, 생존자의 증언, 박물관, 기념행사, 각종 매체와 문학·예술 작품, 역사 교과서 등에 의해 형성된다. --- p. 5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기억은 각 나라마다 다양하다. 또 각국 안에서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하고 있다. 향후 이 기억이 어떻게 변하게 될지는 누구도 가늠하기 어렵다. 우리가 과거 전쟁에 대한 기억과 기념 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은 이 문제가 미래의 전쟁 또는 평화의 문제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과거에 대한 기억의 차이는 현재에 대한 인식의 차이를 낳고 미래에 대한 구상의 차이를 낳는다. 따라서 과거에 대한 문제를 놓고 서로 기억을 달리하는 사람들은 진지한 토론을 통해 그 간극을 좁혀나가야 한다. 특히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역사 문제를 둘러싸고 갈등이 거듭되고 있고, 이는 국가 간의 외교적 갈등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따라서 동아시아 지역에서 역사가들의 대화는 매우 중요하다. --- p. 8 동아시아에서 국가 또는 사회집단의 역사, 특히 전쟁을 둘러싼 집단기억 사이에서 벌어지는 충돌은 당분간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보편적인 가치관을 따르지 않은 담론이나 집단기억은 점점 설득력을 잃어가고, 따라서 결국은 인권, 자유, 민주 등과 같은 보편적인 가치관에 근거한 담론과 집단기억이 보다 우세하게 될 것이다. 역사학자들은 보편적인 역사관 위에서 구체적인 실증 작업을 통해 집단기억, 더 나아가 역사 서술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할 것이다. --- p. 54 전쟁 책임을 고민하는 또 다른 방법은 시민 개념을 통해 생각해보는 것이다. 시민권은 권리와 책임을 동시에 수반한다. 따라서 한편으로는 전쟁 종식 후에 태어난 사람을 포함한 모든 시민, 모든 일본인은 일본의 전쟁 책임 문제를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1945년 이전에 민주주의가 극도로 제한적이었던 상황을 고려하면 전시 일본에서 대부분의 일본인, 특히 여성들은 완전한 일본 시민이 아니었다고 볼 수도 있다. 또는, 아마도 동일한 민족에 속한(또는 속했던) 다른 이들(생사에 관계없이)이 행한 행동에 대한 책임감, 일부 정치 이론가들이 ‘국가에 대한 개인적 책임(individual national responsibility)’이라 명명한 개념을 생각해볼 수도 있다. --- p. 75 죄책감과 이에 따른 트라우마를 교정하기 위한 시도를 통해 많은 일본인은, 최소한 보통의 일본인은 전쟁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는 피해자적 역사를 받아들였다. 그 외의 사람들은 일본이 방어를 위해 아시아태평양전쟁에서 싸웠을 뿐이라는, 당시의 정치 지도자들을 포함한 모든 일본인을 전쟁 책임에서 자유롭게 하는 전시 프로파간다(propaganda)의 재판인 수정주의 역사관으로 전향했다. --- p. 68 이제 중국의 항전은 민족주의적 사학과 세계대전의 역사라는 문맥 속에서 재해석되어, 경제성장과 함께 이루어진 중화 민족의 굴기에 중요한 전환점이었던 것으로 칭송되고 만다. 즉, 항전이 그 결과로 이루어진 사회혁명과 반제국주의적 민족혁명의 성공, 사회주의 중국이나 사회주의의 대두와는 관련이 없는 것으로 이해되기 시작한 것이다. --- p. 109 제2차 세계대전의 성격에 관해 국제적인 대화를 지속적으로 이어가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필자는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일본에서 보낸 짧은 기간에 전쟁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방식이 매우 복잡하다는 사실을 배웠다. 아시아에서 제2차 세계대전은 여전히 논란이 많은 전쟁이다. 미국인은 제2차 세계대전이 ‘좋은 전쟁’이었다는 미국인의 지배적인 관점과 충돌할 수도 있겠지만 더 나은 새로운 관점을 갖는 일이 필요하다. --- p. 138 물론 파시즘의 침략을 격퇴한 소련 인민의 영웅적 모습에 긍지를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미 혁명의 열기가 식은 소련을 통치하던 스탈린 관료 체제의 ‘적색 개발주의’, 즉 대민 강제를 전제로 하는 초고속 공업화·근대화 정책이 안고 있었던 모순성을 아울러 인정하면서 이 체제의 피해자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관심을 가질 때 비로소 보다 객관적이며 미래 지향적인 역사 인식이 성립될 것이다. --- p. 162 21세기 초 영국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의 ‘온건한 영웅들’과 1940년의 중요한 사건들을 통해 과거의 기억을 여전히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글로벌화의 힘은 국가적 기억들이 더 이상 단순히 국가적인 맥락에만 머무를 수 없게 만들고 있다. 글로벌화 시대에는 문화적 기억이, 심지어 국가 정체성 형성과 관련된 사건에 대한 기억조차 국경을 넘어 하나의 국가 차원이 아닌 초국가적인 차원에서 이미 형성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또한 우리는 그러한 차원에서 문화적 기억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 --- p. 186~187 1945년 이후 독일의 집단기억은 독단적이고 자기변명적인 측면들을 갖고 있었지만, 그것은 독일이 민주적인 현재와 조화를 이루고 이웃 나라들과 평화를 유지하는 기반이 되었다. 전쟁은 긴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것은 전시 폭력과 상실을 각인시켜 안전에 대한 깊은 열망을 키웠고, 동시에 수난의 기억을 삭제하거나 미화하려 하지 않는 더욱 논쟁적이고 비판적인 시각을 허용하기도 했다. --- p. 209 |
|
“지금 우리가 기대고 있는 역사는 누구의 기억인가?”
제2차 세계대전과 이에 대한 집단의 지배적인 기억을 말하다 인류의 대부분이 공통적으로 기억하는 역사적 사건은 과연 몇이나 될까. 아마 그 범위는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협소할 텐데, 그중 하나가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2017년의 오늘날을 사는 우리가 1939년부터 1945년까지 이어진 이 전쟁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인류 역사에서 유례없는 가장 큰 피해가 발생한 전쟁이었으며, 이를 기점으로 미국과 서유럽 중심의 자본주의와 중국과동유럽 중심의 공산주의 체제로 세계가 재편성되었다는 사실 외에 단편적인 몇몇 정보만을 제시할 수 있지 않을까 시기상의 차이만큼이나 그때의 사실과 지금 우리가 그 사건에 대해 그리는 그림의 간극은 꽤나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가 그 사건에 대해 공통적으로 생각하는 바가 있는데, 바로 그것이 ‘집단기억’이라 불릴 수 있는 것이다. “‘집단기억’이란 한 집단이 상징적 기호와 행위를 통해 가지는 특수한 기억이며 집단의 지배적인 기억이다. 전쟁에 대한 집단기억은 역사가의 저서와 논문, 생존자의 증언, 박물관, 기념행사, 각종 매체와 문학·예술 작품, 역사 교과서 등에 의해 형성된다.” 즉, 오늘날 우리의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인식은 집단기억을 통해 형성된 것이다. 집단기억은 사람들의 인식을 통제하고 나아가 사회를 구성한다. 당시의 집단기억은 곧 역사에 편입되고, 이로써 역사는 집단기억으로 점철된다. 즉,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는 당시의 집단기억, 누군가들의 기억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기억이 형성한 오늘날의 국내외 정세 제2차 세계대전 관련 주요국들의 다양한 집단기억 우리가 제2차 세계대전과 관련된 기억 문제에 주목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제2차 세계대전과 집단기억』의 엮은이인 한양대학교 박찬승 교수는 “우리가 과거 전쟁에 대한 기억과 기념 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은 이 문제가 미래의 전쟁 또는 평화의 문제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과거에 대한 기억의 차이는 현재에 대한 인식의 차이를 낳고 미래에 대한 구상의 차이를 낳는다”라고 말한다. 책의 각 장에서 필자들은, 실제로 이 전쟁과 관련된 당사국들이 서로 다른 기억을 가지고 있으며 이에 따라 기념 역시 다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러한 각국의 집단기억 사이에서는 다양한 충돌이 발생하기도 하는데, 이는 오늘날 국내외 정세에서 또 다른 사건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책에 나와 있는 비근한 사례를 들자면, 특히 동아시아에서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각국의 집단기억에서 나타나는 차이는 역사 분쟁으로 연결되었다. 즉, 집단기억의 차이가 역사 인식의 차이를 낳아 동아시아 국가들 사이의 갈등 요소로 자리 잡은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현재 진행형이고 당분간은 사그라들 것 같지 않다. 한 집단 안에서 완벽하게 ‘동질적인 기억’은 존재할 수 없다고 인정되는바, 거대 집단인 국가 간 집단기억의 차이 역시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것이 초래하는 집단 사이의 대규모 갈등은 우리 앞에 놓인 하나의 숙명적인 과제다.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보편적인 가치관을 따르지 않은 담론이나 집단기억은 점점 설득력을 잃어가고, 따라서 결국은 인권, 자유, 민주 등과 같은 보편적인 가치관에 근거한 담론과 집단기억이 보다 우세하게 될 것”이라며 집단기억의 향방을 노정하고 있다. 역사 연구의 주요 주제로 떠오르고 있는 ‘집단기억’ 문제 현지 필자들이 전하는 각국의 실상에 대한 고찰과 제언 제1장 동아시아에서의 제2차 세계대전의 기념과 집단기억에서는 우선 종전 70주년을 맞이해 중국, 타이완, 일본에서 어떤 기념행사가 열렸는지, 종전 70주년을 맞이해 발표한 아베 일본 총리의 담화는 어떤 내용을 담고 있으며 이에 대해 주변 각국은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를 다룬다. 또 중일전쟁·태평양전쟁에 대한 일본의 집단기억, 전쟁 책임과 전후 책임에 대한 일본 각계의 인식, 난징대학살에 대한 중국과 일본의 집단기억의 충돌에 대해 다룬다. 제2장 일본의 아시아태평양전쟁에 대한 기억: 1995년 이후 수정주의적 전환에 대한 분석에서는 우선 1995년 우파 정부가 다시 들어서면서 전쟁을 비롯해 일본 근현대사에 대한 신수정주의적 시각이 등장하게 된 배경을 설명한다. 이어서 1945년 이후 출생한 세대를 ‘포스트메모리’ 세대라 지칭하고, 이 세대가 아시아태평양전쟁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다룬다. 그리고 일본인이 전쟁의 가해자라는 인식 대신 피해자라는 인식을 갖게 된 배경을 다루며, 최근 일부 학자들이 거론하는 ‘전후 책임감’이라는 논제에 대해 설명한다. 제3장 항일전쟁과 중국혁명, 그리고 중화인민공화국의 제2차 세계대전 기념에서는 먼저 1970년대까지의 중국 정부나 역사학자들의 중국혁명과 항일전쟁의 관계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다룬다. 또 1980년대 개혁·개방 이후, 특히 1990년대 이후 중국 정부나 역사학자들의 역사 인식의 추가 혁명에서 근대화로 옮겨간 과정과 항일전쟁에서의 국민당 역할에 대한 재평가 문제를 설명한다. 그리고 2000년 이후 항일전쟁에 대한 시각이 혁명 중심에서 평화와 발전 중심으로 바뀐 것, 사회주의에서 애국주의와 민족주의로 바뀐 것에 대해 다룬다. 제4장 ‘좋은 전쟁’, 그리고 희미해지는 태평양전쟁에 대한 기억에서는 우선 역대 미국 대통령들이 유럽에서의 제2차 세계대전 승전 기념식에는 참석하는 반면에 정작 일본에 대한 자국의 태평양전쟁 승전 기념식에는 소극적이라는 점을 지적하며 미국에서 태평양전쟁에 대한 관심이 쇠퇴한 이유를 설명한다. 또 미국인들이 남북전쟁, 양차 세계대전을 기념하는 방식을 설명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의 기념물 제작에는 상대적으로 소극적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그리고 태평양전쟁에 관한 시각에서의 주요 쟁점, 예컨대 ‘미국인이 생각하듯이 제2차 세계대전은 좋은 전쟁이었는가’, ‘핵무기 사용은 정당했나’와 같은 이슈들을 다룬다. 제5장 소비에트연방 해체 이후 러시아에서의 ‘대조국 전쟁’ 서사는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소련의 공식적 기억과 민간의 비공식적 기억 사이의 상호작용 과정을 분석한다. 우선 1941년 독소전쟁이 개시된 이후 ≪프라우다(Pravda)≫가 이 전쟁을 ‘소련 인민의 대조국 전쟁’으로 명명하게 된 배경과, 그러한 ‘대조국 전쟁’은 결국 군국주의적 독재로 전락한 자본주의와 미래를 향한 사회주의의 대결이었다는 인식이 1960년대에 이르러 역사서, 문학적 서사, 영화 등으로 완성되어간 과정을 다룬다. 이어서 1980년대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특히 1990년대 소비에트러시아 붕괴 이후 반공주의 물결 속에서 위와 같은 ‘대조국 전쟁’의 공식 서사가 상당히 동요했다는 점을 설명한다. 결론적으로 1990년대 말 이후 민족주의적 열풍 속에서 민족주의적으로 해석된 ‘대조국 전쟁’ 서사가 다시 등장하게 된 점을 설명한다. 제6장 21세기 초 영국의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문화적 기억: ‘평범한 영웅주의’는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영국인의 문화적 기억이 과거의 산물이 아니라 바로 현재의 산물이라는 시각에서 그 기억의 생성과 순환을 설명한다. 우선 2015년 9월 15일을 영국 본토 공중전의 날로 지정하게 된 배경을 설명한다. 또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트랜스내셔널한 기억들, 특히 홀로코스트와 난민에 관한 영국인의 기억 문제를 다룬다. 마지막으로 영국 본토 공중전에 대한 기억과 영국 공군의 독일 지역 폭격 작전에 대한 기억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제7장 독일의 20세기: 집단기억 속의 제2차 세계대전은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독일인의 집단기억 문제를 다룬다. 우선 1950년대 이후 독일인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폭격과 포로 등의 경험을 되살려 ‘독일은 피해자의 나라’라는 집단기억을 만들어냈으며, 이는 “히틀러 외에는 독일인 모두가 패배한 전쟁의 피해자들”이라는 주장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전쟁에 대한 독일의 집단기억은 ‘감상적이고 편파적이며 독단적이고 자기변명적’이라고 지적한다. 물론 독일 안에서는 가해자로서의 기억, 즉 부역자들의 활동, 민간인에 대한 범죄 등도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상실과 실향의 경험을 통한 피해자로서의 기억이 더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