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검색을 사용해 보세요
검색창 이전화면 이전화면
최근 검색어
인기 검색어

소득공제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
‘뉴라이트 역사학의 반일종족주의론’ 비판
베스트
역사 top100 1주
가격
16,500
10 14,850
YES포인트?
820원 (5%)
5만원 이상 구매 시 2천원 추가 적립
결제혜택
카드/간편결제 혜택을 확인하세요

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해외배송 가능?
  •  문화비소득공제 신청가능

책소개

목차

책을 내며

자기 부정의 역사 서술?반일 종족주의를 말하는 사람들의 말놀이_이철우
뉴라이트의 기괴한 역사인식_박한용
민족주의와 반일 종족주의_전재호
일본제국주의 식민 통치를 어떻게 볼 것인가_홍종욱
식민지 근대화론의 통계지표의 허구_황상익
고종, 그리고 일제 강압 속의 조약들_강성은
대법원 ‘강제동원 판결’ 공격은 문제투성이_김창록
쌀을 팔아 다른 소비를 늘렸을 것이라고?_이송순
조선 공업화는 한반도 경제에 무엇을 남겼나_정태헌
한마디로 ‘교육 억제’ 정책이었다_박찬승
도립의원 늘었다고 조선인 의료 혜택도 커졌을까_황상익
조선인 병력 동원을 어떻게 볼 것인가_김상규
일본군‘위안부’가 돈 잘 버는 ‘매춘부’였다고?_강성현
왜 항일 독립운동을 언급하지 않는가_변은진
청구권협정과 ‘글로벌 스탠더드’_조시현
독도를 역사적 현실로서 이해하기_허영란
교과서와 역사 사이_김정인
‘반일 종족주의 사태’와 한국사 연구의 탈식민 과제_김헌주
일제와 한몸인 《반일 종족주의》 진영_서승

주석·참고문헌

저자 소개18

李喆雨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런던정경대(LSE) 법학박사, 전 한국법사회학회, 법과사회이론학회, 한국이민학회 회장

이철우의 다른 상품

전 민족문제연구소 교육홍보실장이다.
서강대학교 정치학 박사. 박사 학위 논문인 「박정희 체제의 민족주의 연구 ― 담론과 정책을 중심으로」(1998)를 쓴 뒤 한국 정치와 민족주의에 관련된 주제로 여러 연구를 수행했다. 대표 저서는 『반동적 근대주의자 박정희』(책세상, 2000), 『박정희 대 박정희』(2018), 『키워드 한국 정치사』(2018)이고, 최근에 쓴 저서와 논문은 『6월 민주항쟁』(공저, 2017), 『부마항쟁의 진실을 찾아서』(공저, 2016), 『분단 70년과 대한민국』(공저, 2016), 『한국의 민주주의와 한미관계』(공저, 2014), 「2000년대 한국의 ‘극단적’ 민족주의에 관한 비판
서강대학교 정치학 박사. 박사 학위 논문인 「박정희 체제의 민족주의 연구 ― 담론과 정책을 중심으로」(1998)를 쓴 뒤 한국 정치와 민족주의에 관련된 주제로 여러 연구를 수행했다.

대표 저서는 『반동적 근대주의자 박정희』(책세상, 2000), 『박정희 대 박정희』(2018), 『키워드 한국 정치사』(2018)이고, 최근에 쓴 저서와 논문은 『6월 민주항쟁』(공저, 2017), 『부마항쟁의 진실을 찾아서』(공저, 2016), 『분단 70년과 대한민국』(공저, 2016), 『한국의 민주주의와 한미관계』(공저, 2014), 「2000년대 한국의 ‘극단적’ 민족주의에 관한 비판적 연구 ― ‘국수주의 역사학’의 존립 기반을 중심으로」(2019), 「2000년대 한국의 ‘탈민족주의’ 논쟁 연구 ― 주요 쟁점과 기여」(2018), 〈한국 민주화 이행에서 김대중의 역할〉(2016), 「북한 인권 문제의 정치사적 의미 ― 인권 및 반공 담론을 중심으로」(2015), 「2000년대 한국 보수주의의 이념적 특성에 관한 연구 ― 뉴라이트를 중심으로」(2014) 등이 있다.

그동안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 서강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연구교수,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심의위원회 전문위원, 하버드 대학교 옌칭 연구소(Harvard-Yenching Institute) 초빙연구원 등을 역임했고, 지금은 서강대학교 글로컬한국정치사상연구소 전임연구원이다. 앞으로 한국 정치와 함께 과도한 민족주의가 낳은 ‘잘못된’ 역사 인식을 비판하고 성찰하는 연구를 지속하려 한다.

전재호의 다른 상품

Hong Jong-wook,洪宗郁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학부와 석사 과정을 마치고 도쿄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일본대한민국대사관 전문조사원, 도시샤대학 전임강사·준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時期朝鮮の?向者たち: 帝?/植民地の統合と?裂』(有志?, 2011), 『가지무라 히데키의 내재적 발전론을 다시 읽는다』(아연출판부, 2014) 등이 있고, 역서로는 『세계사의 해체: 서양을 중심에 놓지 않고 세계를 말하는 방법』(역사비평사, 2009), 『한국근대의 역사민족지: 경북 상주의 식민지 경험』(혜안, 2015) 등이 있으며, 논문으로는 「주체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학부와 석사 과정을 마치고 도쿄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일본대한민국대사관 전문조사원, 도시샤대학 전임강사·준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時期朝鮮の?向者たち: 帝?/植民地の統合と?裂』(有志?, 2011), 『가지무라 히데키의 내재적 발전론을 다시 읽는다』(아연출판부, 2014) 등이 있고, 역서로는 『세계사의 해체: 서양을 중심에 놓지 않고 세계를 말하는 방법』(역사비평사, 2009), 『한국근대의 역사민족지: 경북 상주의 식민지 경험』(혜안, 2015) 등이 있으며, 논문으로는 「주체 사관에서 인민과 민족의 자리」(『역사비평』 140, 2022), 「1930년대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의 아시아 인식과 조선 연구」 (『한국학연구』 61, 2021) 등이 있다.

홍종욱의 다른 상품

일본 조선대 조선문제연구센터 연구고문이다.

金昌祿

1961년생. 서울대 법대에서 학사학위, 대학원 법학과에서 석사ㆍ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전공은 법사학法史學이며 주로 한국 근현대 법사와 한일관계 법사를 공부해 왔다. 구체적으로는 일제강점기의 법제도와 법사상, 대한민국의 법적 정체성, 한일관계의 법적 측면으로서의 과거청산 등을 연구하면서 관련 사회활동도 앞장서고 있다. 대표논문으로 〈제령에 관한 연구〉(〈법사학연구〉 26, 2002); 〈일본에서의 대일과거청산소송 - 한국인들에 의한 소송을 중심으로〉(〈법사학연구〉 35, 2007); 〈한일 〈청구권협정〉에 의해 ‘해결’된 ‘권리’ -
1961년생. 서울대 법대에서 학사학위, 대학원 법학과에서 석사ㆍ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전공은 법사학法史學이며 주로 한국 근현대 법사와 한일관계 법사를 공부해 왔다. 구체적으로는 일제강점기의 법제도와 법사상, 대한민국의 법적 정체성, 한일관계의 법적 측면으로서의 과거청산 등을 연구하면서 관련 사회활동도 앞장서고 있다. 대표논문으로 〈제령에 관한 연구〉(〈법사학연구〉 26, 2002); 〈일본에서의 대일과거청산소송 - 한국인들에 의한 소송을 중심으로〉(〈법사학연구〉 35, 2007); 〈한일 〈청구권협정〉에 의해 ‘해결’된 ‘권리’ - 일제 ‘강제동원’ 피해 관련 대법원 판결을 소재로〉(〈법학논고〉 49, 2015); 〈법적 관점에서 본 대한민국의 정체성〉(〈법과 사회〉 59, 2018) 등이 있다.

김창록의 다른 상품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 고려대학교 사학과와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친일반 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 사무관, 고려대학교 한국사연구소 연구 교수 등을 거쳐 현재 고려대학교 강사로 있다. 한국근현대사, 사회 경제사, 문화생활사, 일상사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주요 논저로는 『일제하 전시 농업정책과 농촌경제』(도서출판 선인, 2008), 『한국철 도, 추억과 희망의 레일로드』(도서출판 선인, 2016), 『한국근대사 2- 식민지근대와 민족해방운동』(공저, 2016, 푸른역사), 「해방 전후 전 쟁기(1937~1953년) 사무직(White-Collar)여성의 형성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
고려대학교 사학과와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친일반 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 사무관, 고려대학교 한국사연구소 연구 교수 등을 거쳐 현재 고려대학교 강사로 있다. 한국근현대사, 사회 경제사, 문화생활사, 일상사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주요 논저로는 『일제하 전시 농업정책과 농촌경제』(도서출판 선인, 2008), 『한국철 도, 추억과 희망의 레일로드』(도서출판 선인, 2016), 『한국근대사 2- 식민지근대와 민족해방운동』(공저, 2016, 푸른역사), 「해방 전후 전 쟁기(1937~1953년) 사무직(White-Collar)여성의 형성과 사회진출, 젠더인식」(『역사학연구』 82, 2021), 「미군정기 한국농업기술기구의 변천과 농업기술관료」(『사학연구』 137, 2020), 「1920년대 식민지 조 선의 산미증식계획 실행과 농업기술관료」(『사총』 94, 2018), 「일제하 1920~30년대 여성 직업의 지역별 분포와 존재양태」(『한국사학보』 65, 2016), 「도쿄제국대학 농대와 1910년대 조선총독부 농업고등기 술관료 그룹의 형성」(『한국인물사연구』 25, 2016), 「1920~30년대 전 반기 식민지조선의 농가경제 분석」(『사학연구』 119, 2015), 「일제말 전시체제하 ‘국민생활’의 강제와 그 실태-일상적 소비생활을 중심으 로」(『한국사학보』 44, 2011) 등이 있다.

이송순의 다른 상품

鄭泰憲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교수.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에서 경영학사, 동 대학원 사학과에서 문학석·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미국 오클라호마 주립대학교, 중국 베이징대학, 일본 세이케이대학 등에서 방문교수를 지냈다.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학장, 한국사연구회 회장, 역사문제연구소 소장, 남북역사학자협의회 이사장, 국제고려학회 서울지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경제사를 중심으로 한국 근현대사를 연구하면서 남북 역사학 교류와 적대적 분단체제 해체에 대한 연구를 통해 다음 세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탐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일제의 경제정책과 조선사회』, 『한국의 식민지적 근대 성찰』, 『문답으로 읽는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교수.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에서 경영학사, 동 대학원 사학과에서 문학석·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미국 오클라호마 주립대학교, 중국 베이징대학, 일본 세이케이대학 등에서 방문교수를 지냈다.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학장, 한국사연구회 회장, 역사문제연구소 소장, 남북역사학자협의회 이사장, 국제고려학회 서울지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경제사를 중심으로 한국 근현대사를 연구하면서 남북 역사학 교류와 적대적 분단체제 해체에 대한 연구를 통해 다음 세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탐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일제의 경제정책과 조선사회』, 『한국의 식민지적 근대 성찰』, 『문답으로 읽는 20세기 한국경제사』, 『한반도철도의 정치경제학』, 『평화를 향한 근대주의 해체』 등이 있고, 공저서로는 『Understanding North Korea』, 『민주화·탈냉전 시대, 평화와 통일의 사건사』, 『일제시대 문화유산을 찾아서』 등이 있다.

정태헌의 다른 상품

朴贊勝

한양대학교 사학과 명예교수.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목포대학교와 충남대학교를 거쳐 한양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비교역사문화연구소 소장, 한국사회사학회 회장, 한국사연구회 회장 등을 역임한 바 있다. 저서로 『한국근대정치사상사연구』, 『근대이행기 민중운동의 사회사』, 『민족주의의 시대』, 『민족, 민족주의』, 『마을로 간 한국전쟁』, 『언론운동』(「한국독립운동의 역사」 시리즈),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21세기 한국사학의 진로』, 『1919?: 대한민국의 첫 번째 봄』 등이 있다. 한국출판문
한양대학교 사학과 명예교수.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목포대학교와 충남대학교를 거쳐 한양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비교역사문화연구소 소장, 한국사회사학회 회장, 한국사연구회 회장 등을 역임한 바 있다. 저서로 『한국근대정치사상사연구』, 『근대이행기 민중운동의 사회사』, 『민족주의의 시대』, 『민족, 민족주의』, 『마을로 간 한국전쟁』, 『언론운동』(「한국독립운동의 역사」 시리즈),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21세기 한국사학의 진로』, 『1919?: 대한민국의 첫 번째 봄』 등이 있다. 한국출판문화상, 단재상, 임종국상 등을 수상하였다.

박찬승의 다른 상품

고려대 한국사연구소 연구원이다.
성공회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 HK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사회학(사회사, 법사회학, 정치사회학)을 전공했다. 한국과 동아시아의 사상 통제와 전향, 법과 폭력, 전쟁과 학살, 과거 청산, 점령과 군정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The Organization and Activities of the US Army Signal Corps Photo Unit”(2014), 「한국전쟁기 예비 검속의 법적 구조와 운용 및 결과」(2014), 「‘아카’(アカ)와 ‘빨갱이’의 탄생」(2013) 등이 있고, 지은 책으로 『식민지 유산, 국가 형성, 한국 민주주의』(전 2권
성공회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 HK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사회학(사회사, 법사회학, 정치사회학)을 전공했다. 한국과 동아시아의 사상 통제와 전향, 법과 폭력, 전쟁과 학살, 과거 청산, 점령과 군정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The Organization and Activities of the US Army Signal Corps Photo Unit”(2014), 「한국전쟁기 예비 검속의 법적 구조와 운용 및 결과」(2014), 「‘아카’(アカ)와 ‘빨갱이’의 탄생」(2013) 등이 있고, 지은 책으로 『식민지 유산, 국가 형성, 한국 민주주의』(전 2권, 공저, 2012)가 있다.

강성현의 다른 상품

卞恩眞

전주대학교 한국고전학연구소 HK교수 고려대학교 문학박사. 고려대 · 영남대 · 가천대 · 방송대 등 연구교수, 대통령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학술연구팀장, 일본 리쓰메이칸대학 객원연구원 등을 역임. 대표 연구로 『파시즘적 근대체험과 조선민중의 역사인식』(2013), 『일제말 항일비밀결사운동 연구』(2018), 『독립과 통일 의지로 일관한 신뢰의 지도자, 여운형』(2018), 『자유와 평화를 꿈꾼 ‘한반도인’, 이소가야 스에지』(2018), 『전시체제기 여론통제(1)-기본구상과 방향』(2021), 『전시체제기 여론통제(2)-관련기구와 조사』(2022), 『허헌 평전-항
전주대학교 한국고전학연구소 HK교수

고려대학교 문학박사. 고려대 · 영남대 · 가천대 · 방송대 등 연구교수, 대통령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학술연구팀장, 일본 리쓰메이칸대학 객원연구원 등을 역임. 대표 연구로 『파시즘적 근대체험과 조선민중의 역사인식』(2013), 『일제말 항일비밀결사운동 연구』(2018), 『독립과 통일 의지로 일관한 신뢰의 지도자, 여운형』(2018), 『자유와 평화를 꿈꾼 ‘한반도인’, 이소가야 스에지』(2018), 『전시체제기 여론통제(1)-기본구상과 방향』(2021), 『전시체제기 여론통제(2)-관련기구와 조사』(2022), 『허헌 평전-항일운동의 선봉에 선 인권변호사』(2022) 등 다수

변은진의 다른 상품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이다.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역사교육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사학과 대학원에 진학하여 한국 근대사를 전공했다. 천도교 근대 민족운동을 주제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4년부터 춘천교육대학교 사회과교육과 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한국 민주주의 역사와 대학사를 주로 연구하고 있으며, 동아시아 역사 대화에 관심을 갖고 한중일3국공동역사편찬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눈으로 한국 근현대사를 재해석 · 재구성한 ‘민주주의 한국사’ 3부작을 기획 · 출간해왔다. 19세기부터 3 · 1운동과 민주공화정의 탄생까지를 다룬 《민주주의를 향한 역사》(2015), 3 ·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역사교육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사학과 대학원에 진학하여 한국 근대사를 전공했다. 천도교 근대 민족운동을 주제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4년부터 춘천교육대학교 사회과교육과 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한국 민주주의 역사와 대학사를 주로 연구하고 있으며, 동아시아 역사 대화에 관심을 갖고 한중일3국공동역사편찬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눈으로 한국 근현대사를 재해석 · 재구성한 ‘민주주의 한국사’ 3부작을 기획 · 출간해왔다. 19세기부터 3 · 1운동과 민주공화정의 탄생까지를 다룬 《민주주의를 향한 역사》(2015), 3 · 1운동 이후부터 해방 직후까지 독립운동사를 담은 《독립을 꿈꾸는 민주주의》(2017)에 이어, 해방 이후부터 21세기 촛불시위까지 현대 민주주의의 역사를 다룬 《모두의 민주주의》는 3부작을 완결 짓는 책이다.

그 외에 지은 책으로 《오늘을 마주한 3 · 1운동》, 《대학과 권력》, 《역사전쟁, 과거를 해석하는 싸움》, 《천도교 근대 민족운동 연구》 등이 있으며, 함께 쓴 책으로 《공공역사를 실천 중입니다》, 《여성 단체들의 독립운동》, 《한국 근대사 연구의 쟁점》, 《저항의 축제 해방의 불꽃, 시위》, 《87년 이후 35년의 한국 민주주의》, 《식민지의 사립전문학교, 한국대학의 또 하나의 기원》, 《교과서와 역사 정치》, 《간첩 시대》, 《동아시아사 입문》, 《미래를 여는 역사》, 《한중일이 함께 쓴 동아시아근현대사 1, 2》 등이 있다.

김정인의 다른 상품

연세대 근대한국학연구소 연구교수이다.

ソ.スン,徐 勝

1945년 일본 교토에서 재일조선인 2세로 태어났다. 도쿄교육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 유학하던 중 1971년 4월 보안사에 끌려가서, ‘재일교포학생 학원침투간첩단사건’으로 동생 준식과 함께 기소되었다. 1심에서 사형, 2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990년 2월 28일 가석방될 때까지 19년간 옥살이를 했다. 출소 후 넓은 세상을 만나려고 미국, 유럽, 남미 등을 돌아다니고, 1994년에 교토로 돌아와서 대학 강사를 하면서, 동아시아의 분단, 냉전과 국가폭력의 진상규명과 피해의 회복, 역사청산, 평화를 지향하고, 한국, 타이완, 오키나와, 일본의 동지들과 함께
1945년 일본 교토에서 재일조선인 2세로 태어났다. 도쿄교육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 유학하던 중 1971년 4월 보안사에 끌려가서, ‘재일교포학생 학원침투간첩단사건’으로 동생 준식과 함께 기소되었다. 1심에서 사형, 2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990년 2월 28일 가석방될 때까지 19년간 옥살이를 했다.

출소 후 넓은 세상을 만나려고 미국, 유럽, 남미 등을 돌아다니고, 1994년에 교토로 돌아와서 대학 강사를 하면서, 동아시아의 분단, 냉전과 국가폭력의 진상규명과 피해의 회복, 역사청산, 평화를 지향하고, 한국, 타이완, 오키나와, 일본의 동지들과 함께 ‘동아시아의 냉전과 국가 테러리즘’ 국제심포지엄운동을 설립하여 1992년까지 각 지역에서 행사를 진행했다.

1998년부터 2011년까지 일본 리츠메이칸 대학 법학부 교수로 일했으며 2018년부터는 우석대학교 석좌교수, 동아시아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재직 중이다. 1994년, 한국정치범감옥의 실태와 독재정권의 사상전향제도에 맞선 정치범들의 투쟁을 기록한 『옥중 19년』(일본어판, 이와나미 서점)을 펴냈으며 1999년에는 한국어판, 2002년에는 영어판, 2017년에 중국어판을 출간했다. 한반도와 동아시아 평화를 위해 활동하면서 『서승의 동아시아 평화기행-한국, 타이완, 오키나와를 가다』(창비, 2011), 『동아시아의 우흐가지 1,2-서승의 역사인문기행, 2016』 (진인진)등의 저서를 펴냈다.

서승의 다른 상품

울산대학교 역사문화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했고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국사편찬위원회를 거쳐 현재 울산대학교 역사문화학과에 재직하고 있다. 한국구술사학회 회장, 역사문제연구소 이사(비상임) 등을 역임했으며, 주요 저서로는 『일제시기 장시 연구: 5일장의 변동과 지역주민』(역사비평사, 2009), 『(울산 고래포구의 사람들)장생포 이야기』(울산광역시, 2012), 『남양과 식민주의: 일본 제국주의의 남진과 대동아공영권』(사회평론아카데미, 2022), 『울산항의 역사』(공저, 2015), 『동해포구사』(전3권, 공저, 민속원, 2021) 등이 있다.

허영란의 다른 상품

기획우석대 동아시아평화연구소

관심작가 알림신청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를 기획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8월 22일
쪽수, 무게, 크기
268쪽 | 504g | 152*224*16mm
ISBN13
9791156121725

책 속으로

역사의 ‘탈정치화’를 부르짖어 공감을 얻은 그가 강성의 정치적 경향성을 노정하는 역사의 ‘재정치화’의 길을 걷게 된 결정적 계기는 2004년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논란이었다. 이 입법의 바탕을 이루는 친일 청산의 논리를 선악사관으로 매도한 그는 일본군‘위안부’ 동원을 매춘에 비유한 발언으로 인해 곤욕을 치렀다
--- p.24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이 논란에도 불구하고 탈민족주의 역사 서술이란 명분을 내세웠다면, 《반일 종족주의》는 그러한 움직임이 민족의 자리에 제국을 올려놓는, 백두산 신화의 자리에 황국신민의 서사를 적어 놓는 허위와 모순의 나락으로 빠질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 p.24

이영훈은 “한국의 거짓말 문화는 국제적으로 널리 잘 알려진 사실”이라며, 그 증거의 하나로 한국과 일본의 ‘거짓말 관련 범죄’(위증죄와 무고죄) 통계를 비교 제시했다. 그런데 이 이영훈의 주장 자체가 거짓말에 기반하고 있다. 장제원에 따르면 이영훈의 이러한 주장의 근거는 《맥심 코리아》, 《펜앤드마이크》, 《비즈니스 저널》 등 대부분 한국과 일본의 시답잖은 우익 가십 기사나 잡지류에 근거한 것이다. 장제원은 늘 통계를 신처럼 받드는 이영훈의 이 주장은 애초 통계의 ‘누락의 오류’ 또는 지인의 말을 빌려 일종의 화투판의 ‘밑장 빼기’ 같은 꼼수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 p.27

이들은 ‘수탈’이란 개념을 마적이나 강도들의 ‘약탈’ 또는 ‘강탈’과 같은 의미로 사용함으로써(경제외적 강제), 그러한 일제의 수탈은 없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한국사 학계는 그런 ‘원시적 수탈’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제국주의가 식민지의 정치?경제?사법 등 모든 분야를 장악하고, 이러한 식민통치의 시스템과 각종 차별과 그것을 용인하는 실제 현장을 통해 자신의 이익을 일방적으로 실현시킨 ‘구조적 수탈’을 지적하는 것이다
--- p.36

1930~1935년 연평균 쌀 생산량은 700만 석이 아니라 약 372만 석 증가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 경우 증산이 372만 석인데, 800만 석 정도가 일본에 이출된 것이니, 약 430만 석이 추가로 일본으로 유출된 것이다. 쌀의 증산 분량보다 훨씬 더 더 많은 양의 미곡이 일본으로 이출되어, 이 때문에 조선에서 쌀 부족 현상이 일어났다. 이 시기 조선인 1인당 쌀 소비량은 일본인 1인당 소비량의 절반 남짓에 지나지 않았다
--- p.38

일제강점기의 농업 개발, 공업 개발, 조선인 인적 자본의 형성 등에서 일제강점기 ‘개발’에 따른 외형적인 성장은 당연히 확인된다. 그러나 그 이면, 즉 경제 개발의 과실이 일본인과 조선인 가운데 누구에게로 돌아갔는가를 분석해보면 실상은 “혜택 없는 개발”에 지나지 않았다
--- p.39

일제 식민지 시기를 경제 성장과 조선인 생활이 향상되었다 보고, 친일파를 근대화의 선각자로 보는 한, 항일운동은 근대화의 걸림돌이 되고 만다. 일제가 ‘문명화’에 쓸 돈을 ‘항일세력’이 소모시켰으니, 사실상 ‘근대 문명화’의 비용 손실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42

일제강점기를 통해 의사 수는 꾸준히 증가했지만, 대부분의 조선인들과는 무관했던 일본인 의사를 합치더라도 의생 수의 감소를 겨우 상쇄할 정도에 그쳤다. 의사와 의생을 합친 수는 일제강점 초기나 말기나 거의 변화가 없었다
--- p.78

첫째, (일본 측 을사오조약 관련 사료 〈복명서〉) 초안에는 고종 황제가 보호조약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부분을 동의했다고 고쳐 썼다. 둘째, 황제가 대한제국 정부에 대해 일본 정부의 제안에 타협할 것을 지시했다는 내용을 가필했다. 셋째, ‘회합 담판’, ‘협의’라는 자구字句를 정식 교섭의 성격이 보다 농후한 ‘협상’으로 수정했다(90

‘개인의 청구권은 〈청구권협정〉 자체에 의해 소멸된 것은 아니며, 단지 그에 관한 국가의 외교보호권만이 해결된 것이다’라는 의미임이 한국 정부는 물론이고 일본 정부 및 일본 최고재판소에 의해서도 확인되었다. 따라서 개인의 청구권은 소멸하지 않은 것이다
--- p.103

일제강점기 조선 쌀은 ‘수탈’된 것이 아니고 ‘수출’되었다는 주장은 일본이 강제성 없이 대가를 주고 조선 쌀을 구입했다는 것이다. 물론 깡패나 도둑처럼 빼앗아간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식량은 단순한 상품이 아니다. 과연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아니었다면 자국민을 절대적인 기아 상태로 내모는 쌀 수출을 보고만 있었을까. 식민지와 본국 간의 거래를 독립국가 간의 수출이라는 용어로 등치시키는 것이 과연 타당할까
--- p.117

조선 경제의 역할은 일제의 침략정책에 부합되도록 일본의 중공업제품을 소화하고 이에 종속적으로 부응할 수 있는 낮은 수준의 공업지대로 조정되었다. 당연히 조선 경제의 산업연관성은 고려될 수 없었다
--- p.122

1939년 공장(가내수공업 제외) 생산액을 보면 정미업(41.8퍼센트)이 압도적이었고 그다음이 양조업--- p.11.8퍼센트), 동물 유지 제조업(9.5퍼센트)이었다. 이 3개 업종이 63.1퍼센트를 차지했다. 이 중 경화유 공장에 판매되어 유지 공업 원료로 사용되는 동물 유지 제조업 생산물을 제외하면 정미업과 양조업은 전통적 소비재 업종이었다. 자본, 기술, 노동력이 필수적인 중화학 공업과의 산업 연관은 없었다. 조선인 자본은 조선인의 일상생활과 관련된 노동집약적 틈새 부문에서 영세기업으로 존재했던 것이다
--- p.125

조선총독부가 학교를 많이 세워 조선인들에게 큰 은혜를 베푼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조선인 취학률은 1930년대 중반에 20퍼센트, 1942년에 50퍼센트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이는 해방 이후 불과 15년 만인 1960년에 초등학교 취학률이 거의 100퍼센트 가깝게 되었던 것과 비교가 된다. 총독부의 교육정책은 한마디로 ‘교육 억제 정책’이었던 것이다
--- p.137

1930년대, 조선의 독립이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 일제는 동화와 내선일체, 황국신민화를 제시했다. 제국주의 일본은 청년들에게 입대를 한다면 식민지민의 비애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했다. 강제, 회유, 선전, 선동이 이어졌다.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유명 인사들이 연설을 하며 돌아다녔다. 신문에는 혈서를 쓰는 지원자, 불합격에 자살을 하는 이들의 기사가 나왔다. 이런 상황을 생각해보면 조선 청년들이 육군 특별지원병에 지원한 사실은 그다지 ‘당혹스럽지도, 미스터리’도 아니다. 하지만 한 번 더 생각해보자. 조선인들의 일부가 ‘애국적인 마음’ 때문에 지원병에 지원했다는 것은 일본제국주의가 조선인들에게 긍정적인 권력이었다는 사실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 p.157

피해자의 기억과 증언이 구성적이므로 객관적이지 않다는 구닥다리 협소한 실증사관을 끄집어낸 것은 차치하더라도, 역사적 증거를 인멸한 자들이 엄격한 실증주의를 자처하는 꼴이다. 이영훈 같은 역사부정론자들에게 실증주의는 피해자들의 기억이 부정확하고 정치적으로 왜곡되거나 조작되었다는 인상을 인위적으로 만들기 위해 소환한 ‘부정의 실증주의’에 불과하다
--- p.167

그들에게 강제연행이란 일본 헌병(군)이나 순사가 여성을 총칼로 위협해가며 머리채를 끌고 납치하듯 트럭에 태우는 것이고, 그렇게 하라고 일본군과 정부의 공문서에 명기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어떤 공문서가 그런 지시를 상세히 담고 있겠는가?
--- p.168

일본군‘위안부’가 자유 폐업 권리가 있었다는 말도 얼토당토 않는 말이다. ‘자유 폐업’이란 계약 기간이나 선금(‘전차금’)이 남아 있어도 폐업할 수 있었음을 의미한다. 전선에 있는 ‘위안부’ 생활을 하는 여성이 부채를 다 변제하지 않고 과연 일본군에게서 귀국을 허락받을 수 있었을까?
--- p.170

청구권협정은 ‘청구권’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정의하지 않는다. 협정과 합의 의사록이 언급하는 ‘한국의 대일 청구 요강’, 소위 대일청구 8항목 어디에도 “전쟁”, “손해와 고통”, “배상” 등의 표현이 없다. 청구권협정 제1조는 무상 3억 달러의 제공과 2억 달러 유상차관을 말할 뿐 ‘배상금’이란 단어가 없다
--- p.199

한국은 주권국가로서 청구권 문제와 별도로 일본을 상대로 일본의 침략전쟁과 불법한 식민 지배로 발생한 손해와 고통에 대하여 배상을 요구할 권리가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한 권리를 역대 정부가 관철시키지 않았다거나 혹은 좌절되었다고 하여 그러한 권리의 존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 p.199

한국인의 믿음과 주장을 비판하기 위해, 일본 측이 내세우는 다케시마 고유 영토론과 무주지 선점론의 자가당착, 울릉도와 독도를 한 묶음으로 보고 두 섬이 일본에 속하지 않는다고 확인한 일본 정부의 엄연한 기록들을 도외시하는 것은 묵과하기 어렵다
--- p.211

목차에서 드러나듯 학술서에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가 난무한다. ‘기억’, ‘상징’, ‘환상’, ‘거짓말’, ‘황당무계’, ‘신화’, ‘업보’ 등의 용어는 본문에서 종족주의의 신화를 격파하는 레토릭rhetoric으로 기능한다. 이런 서술전략에 따라 심도 깊은 역사적 실증과 치열한 토론을 통해 논의되어야 할 다양한 논제들은 일도양단 식으로 명쾌하게 정리되고 있다
--- p.229

‘이승만이 세우고 박정희와 전두환 등이 발전시킨 대한민국’을 격하시키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해방 이후 1997년 정권교체 이전까지 50년 동안 이승만 정권을 계승한 정당이 권력을 잡았고 ‘반일 종족주의’는 바로 그 시기에 절정에 달했다. 이 모순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또한 그토록 극찬하는 국부 이승만 또한 대표적인 반일 민족주의자이다
--- p.233

이러한 연구 성과들은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보는 틀을 확장시키고 민족주의적 역사인식의 한계, 성녀/창녀의 이분법 등을 넘어서는 문제의식을 촉구하는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반일》에서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위안부 공창제론’의 도구로 치환시켜 극우적 언설을 강화하는 데 활용하고 있다. 성녀/창녀의 이분법을 넘자는 문제의식과 ‘매춘부일 뿐이다’라는 주장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 p.237

출판사 리뷰

역사 부정과 자기 부정으로 점철된 ‘말놀이’

뉴라이트의 실체를 알기 위해서는 이들의 학문적 이력을 파악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이는 이철우 교수의 글에서 적실히 드러난다. 그에 따르면 역사의 ‘탈정치화’를 부르짖어 공감을 얻은, 1980년 진보파 학도들의 ‘큰형님’으로 추앙받던 이영훈은 “젊은 시절 한때 그 혁명에 영혼이 팔려 본 사람”으로 일차 자기 부정을 한다. 여기에 민족차별이 없었음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일제강점기 한일관계를 주권국가들이 만든 유럽연합EU에 비유한 김낙년, 한국은 법적으로 유효하게 일본의 일부가 되었기에 승전국도 식민지도 아니어서 일본에 배상을 청구할 근거가 없다는 주익종의 ‘변신’ 등을 이야기하며 정치적 도그마에 영혼이 팔린 사람의 구차함을 적시한다. 뉴라이트 역사학의 배경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여기에 ‘수탈’을 물리력을 동원한 강제는 없었다는 주장으로 주권 없는 민족에 대한 ‘구조적 수탈’에 눈감는 것은 전형적인 ‘말장난’임을 지적한다.

맞다, “사실이 승리한다” 단, 제대로 보면

이 책의 필자들은 《반일 종족주의》에 대해 지엽적인 구절에 매달리거나 맹목적 혹은 국수주의적 입장에 매몰되는 대신 19편의 글을 통해 그야말로 실증적으로 비판한다. 예컨대 강성현(성공회대 열림교양대학 교수)은 일본군‘위안부’ 문제와 관련, 피해자의 증언은 무시하고 관련 공문서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강제연행은 없었다는 주장은 실증사관의 외피를 둘러쓴 억지라고 지적한다. 실증사학에 대한 통렬한 반격이다. 나아가 당시 동남아와 일본의 물가지수 등 통계를 들어가며 ‘고수익 자유 영업’ 매춘부 주장을 일축한다(164쪽~). 《반일 종족주의》의 핵심 중 하나인 ‘식민지근대화론’에 대해서도, 1942년에도 조선인 취학률은 50퍼센트에 못 미쳤다든가 조선의 공업생산액이 8.4배 느는 동안 일본으로 빠져나간 생산재는 100배 이상 폭증했으며, 일제강점기 의료인 수가 꾸준히 늘었다는 통계에는 일본으로 빠져나간 의사 수가 빠져 있다는 ‘통계의 허구’ 등 ‘혜택 없는 개발’의 실체를 짚는다. 청구권협정, 독도 영유권, 특별지원병 문제도 구체적으로 논박하고 있다.

한국사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열기 위해

그렇다고 이 책이 무분별한 《반일 종족주의》 비판으로 일관하는 것은 아니다. 민족주의의 한계를 벗어나는 한국사 연구를 위한 고언으로 받아들인다. 김헌주 연세대 근대학국학연구소 연구교수는 〈‘반일 종족주의 사태’와 한국사 연구의 탈식민 과제〉(226쪽~)에서 《반일 종족주의》가 학술서를 표방한 대중서이며 어떤 측면에서는 정치적 선전물에 가깝다고 꼬집으면서도 ‘반일 종족주의’ 여파를 무시 일변도로 대응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중요한 것은 탈식민의 지향이라며 한국사 연구의 현실을 짚고, 트랜스내셔널 역사학, 성소수자를 비롯한 마이너리티의 인권 문제사, 생태환경사 등을 제언한다.

물론 이 책이 《반일 종족주의》 비판을 위한 우리 학계의 역량과 수준, 방향을 대표하는 것은 아닐지 모른다. 또 “《반일 종족주의》는 일제와 한몸”이라며 “이들의 정치?군사?경제적 패악과 제도를 포괄하기 위해 ‘친일’ 대신 ‘친일 레짐regime’이 적합한 용어”(서승 우석대 석좌교수)라는 주장도 담겼다. 그러나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지난 40년의 지성사를 되돌아보는” 의미 있는 작업의 결실이면서 올바른 한국사 연구를 위한 작은 디딤돌이 될 것이다.

리뷰/한줄평4

리뷰

9.6 리뷰 총점

한줄평

3.0 한줄평 총점

클린봇이 부적절한 글을 감지 중입니다.

설정
14,850
1 14,8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