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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제1장 | 월경하는 재한 피폭자와 일본의 연대운동 -손귀달의 ‘밀항’과 엄분련·임복순의 도일 치료 시도를 둘러싸고 | 오타 오사무 1. 들어가며 2. 1968년-재한 피폭자를 둘러싼 상황 3. 손귀달의 ‘밀항’과 엄분련·임복순의 도일 치료 시도 4. 1969~1971년의 재한 피폭자와 일본의 연대운동 5. 나가며 제2장 | 1970년대 ‘조선반도 연구자’의 한국론 -다나카 아키라(田中明)를 중심으로 | 박삼헌 1. 들어가며-다나카 아키라에 대한 서로 다른 기억들 2. ‘조선반도 연구’의 출발점, 두 번의 한국 방문과 ‘조선문학의 회’ 3. ‘조선반도 연구’의 심화, 한국 유학의 실감(實感) 4. ‘조선반도 연구’의 과제, 민족주의를 어떻게 볼 것인가 5. 나가며-‘나쁜 일본인’으로의 전향? 제3장 | 아시아 냉전학술의 자장과 1970~1980년대 한일 지식인 교류 | 김인수 1. 지식교류의 정치적·물질적 토대에 대한 질문 2. 냉전 시기 아시아 지식네트워크의 형성과 작용 3. 담론분석 4. 나가며 부록_ 제1~4차 회의 단행본의 세부 목차와 논고 제4장 | 재일在日 지식인이 구축한 연대의 공론장 『계간 삼천리』 | 조수일 1. 들어가며 2. 1970년대 일본과 『계간 삼천리』의 목적의식 3. 특집-‘한일교류(사)’를 위한 폴리포니 4. 대담/정담/좌담회-격동이 낳은 시대의 증언 5. 연재-‘또 하나의 연재’에 담긴 유·무명의 증언?:?K·I, 마에다 야스히로 6. 번역-자성을 촉구하는 한국 지식인의 사유와 시대 정신 7. 나가며 제5장 | 탈식민적 식민지 연구의 원점 -1980년대 후반 한국 근대경제사 한일 공동 연구 | 홍종욱 1. 한국의 경제 성장과 탈식민적 한일 관계 모색 2. ‘NICs 충격’과 일본 지식인의 한국자본주의 인식 3. 한일 교류와 식민지 반봉건사회론의 동요 4. 탈냉전 민주화와 식민지근대화론 대두 5. 새로운 식민지 역사상의 모색 제6장 | 아라이 신이치의 ‘식민지 책임’에 이르는 길 -1990년대 이후 동아시아 지적 교류 속에서 | 도베 히데아키 1. 들어가며 2. 연구의 원천과 한국에 대한 관심-1980년대까지 3. 시민운동으로서 전쟁책임 추구-1990년대 4. 동아시아 역사 대화에 대한 공헌-2000년대 5. 식민지 지배 책임으로서 문화재 문제-2010년대의 도달점 6. 나가며-아라이가 완수한 역할과 지적 교류의 의의 제7장 | 내셔널리즘 비판의 맥락에서 본 한일 지식인의 교류 | 심정명 1. 들어가며 2. 일본 내셔널리즘 비판에서부터 3. 『당대비평』과 한일 지식인의 대화 4. ‘동아시아 역사포럼’의 주변 5. 나가며 참고문헌 필자 소개 |
Ota Osamu,太田修
Park Sam Hun,朴三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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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In-soo,金仁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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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 Su-il,趙秀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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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g Jong-wook,洪宗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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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be Hideaki,??秀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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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 Jeong-myoung,沈正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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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실린 7편의 글은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 이후 2000년대까지 한일 지식인 교류의 다양한 사례를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각 글은 그 분석 시기마다 ‘지식인 교류’가 얼마나 뜨겁게 ‘정치적’이었는지 분석하고 있다. 그 결과 이 책의 글을 모두 읽고 나면, 지금의 반일과 혐한은 그렇게 지나온 한일 양국 지식인의 ‘뜨거운 정치’의 결과물에 불과함이 드러나게 된다.
오타 오사무는 1968년 재한 원폭피해자의 월경 행위가 히로시마·나가사키의 원폭 피해를 ‘전후 일본인’의 희생으로만 생각하는 일본 시민의 일국주의적 ‘평화’를 성찰하고, 식민지 책임을 불문에 부치는 한일조약 체제를 다시 묻는 재한 원폭 피해자와의 연대를 도모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평가한다. 박삼헌은 1970년대 일본에서 지한파로 평가받던 다나카 아키라를 일본(인)의 속죄의식을 전제로 한 반공주의와 자유주의적 보수주의자로 규정하고, 1982년 일본 역사교과서 문제를 일본 국가에 대한 주권 침해로 인식하고 더 이상 속죄를 전제로 한 ‘좋은 일본인’을 그만두겠다고 선언하는 했던 그의 역사 인식이 현재 일본 사회의 혐한론의 원형을 이루는 기본 논리가 되었다고 평가한다. 김인수는 1977년 7월에 일본에서 한국과 일본의 사회과학자들이 모였던 제1차 한일지식인교류회의(Korea-Japan Intellectual Exchange, KJIE)를 분석했다. 그 결과 KJIE는 한일관계에서 필연적으로 충돌을 불러올 수밖에 없는 ‘역사’와 ‘영토’ 담론을 배제하고 이를 상쇄하는 ‘안보’와 ‘경제’ 위주의 상호협력 담론을 생산하는 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에 대한 한국 사회학자들의 불신을 온전히 해소시키지 못하는 한계점을 드러냈다고 평가한다. 조수일은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에 촉발된 재일 지식인들이 주체적으로 만들기 시작한 『계간 삼천리』야말로 동시대 한국의 현대사적 과제 및 한반도와 일본열도의 현안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를 수렴하여 역사적 합의를 위한 ‘한일교류사’를 시도한 일본어 공론장이라 분석한다. 홍종욱은 1985년 안병직의 일본 유학을 계기로 한국 경제 발전의 역사적 조건을 탐구하려는 한일 공동연구를 분석했다. 그 결과 이 공동연구를 식민지근대화론의 발원지로 단순화할 수 없다는 단서를 다는 한편, 식민지에 대한 다양한 실증적, 이론적 분석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1990년대 이후 본격화하는 식민지 연구의 원점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고 평가한다. 도베 히데아키는 일본의 국제관계사 연구자 아라이 신이치를 통해서 전후 일본의 지식인이 일본의 식민지 지배 문제에 대한 인식을 어떻게 심화시켰는지 분석했다. 또한 아라이의 실천적 활동이 일본 역사교과서 문제에 대한 동아시아 지식인들의 공동 토론장 형성에 기여했다고 평가한다. 심정명은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에 걸친 한일 지식인의 교류를 내셔널리즘 비판/탈민족주의라는 맥락에서 분석했다. 특히 『당대비평』과 같은 잡지는 일본의 논의를 한국에 소개하는 매개로서 기능하는 동시에, 한국과 일본의 지식인들이 지면을 통해 만나는 장을 마련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이들의 교류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국주의 국가와 식민지라는 역사적 경험의 차이가 이러한 대화에 계속해서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는 사실을 한계점으로 지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