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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서경식과 그의 시대: 비평가로서, 활동가로서, 교육자로서(하야오 다카노리) 1. 자기 형성과 사색의 궤적 최종 강의 ─인문교육으로서의 예술학(서경식) 인터뷰 ─서경식, 저작을 말하다 (하야오 다카노리+도베 히데아키+리행리+모토하시 데쓰야+다카쓰 히데유키) 좌담 ─서경식의 언론 활동과 재일조선인: 세대 간 대화 (서경식+조경희+최덕효+리행리) 2. 한일을 오가는 비평 활동의 다면성 ─ 정년퇴임 기념 심포지엄 기록 발표 1 ‘재일’을 ‘생각하기’와 ‘재일’을 ‘살아가기’(우카이 사토시) 발표 2 책임에 대하여, 계속 물어 가는 것: 사반세기의 대화로부터(다카하시 데쓰야) 서경식의 응답 코멘트 1 ‘재일조선인의 쇼와사昭和史’라는 아포리아: 서경식과 포스트콜로니얼리즘(모토하시 데쓰야) 코멘트 2 서경식은 어떻게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가: ‘서경식 스쿨’의 일원으로서(시부야 도모미) 3. 예술 표현을 둘러싼 두 번의 대화 대화 1 가마쿠라 히데야 + 서경식 〈영상 제작을 함께한 20년〉 대화 2 사키마 미치오 + 서경식 〈‘오키나와’라는 장소에서 예술을 생각하다〉 감사의 글(서경식) 일본어판 후기 (도베 히데아키) 서경식 연보 서경식 주요 저작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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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민주주의와 동아시아의 냉전이 긴장 관계를 갖고 있었던 1970년대와 1980년대, ‘포스트냉전’과 ‘포스트 쇼와’가 겹치며 역사 인식 논쟁이 격화된 1990년대, 남북한과 중국과의 관계가 악화되는 한편에서 ‘9·11’ 이후 대對테러 전쟁으로 군사적 긴장 관계가 더욱 첨예해진 2000년대, 원전 사고 이후 안으로 향한 ‘부흥 내셔널리즘’이 목소리를 높여간 2010년대까지 서경식은 흔치 않았던 시대의 목격자인 동시에 어떤 시대에도 체제나 머조리티를 냉철하게 꿰뚫어 보는 ‘마이너리티의 눈’으로 발신을 계속해서 이어 간 비평가였다. 재일조선인으로서의 민족 아이덴티티를 강하게 긍정하는 ‘민족주의자’(이 용어의 정확한 의미는 본문에서 설명될 것이다)이자, 서양문화(회화, 음악, 문학)의 전통에 정통하고 거기에서 가장 좋은 것을 길어 올리는 ‘인문주의자’,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제3세계의 학대받는 사람들과 연대를 모색하는 ‘새로운 보편주의자’, 그리고 일본의 대학이나 사회에서 학생과 동료, 시민을 항상 일깨워 준 ‘교육자’였다. 한 사람의 인간이 떠맡기에는 너무나 무거운 짐을 서경식이 짊어져 왔다고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바라건대 이 책을 통해 서경식 선생의 다양한 저서가 다시금 읽힐 수 있기를.
---「p.54-55, 서문」중에서 미술관에서는 보통 그림엽서를 팔지요. 제가 두 장을 사라고 한 까닭을 말씀드리자면 우선 한 장은 자신의 추억으로 간직하라는 의미입니다. 저는 지금도 반세기도 더 전에 오하라미술관에서 사 온 나카무라 쓰네의 그림엽서를 가지고 있습니다. 나머지 한 장은 소중한 사람에게 전해 주면 좋겠습니다. 친구든, 가족이든, 연인이든 소중한 이에게 “나 이런 곳에 다녀왔어.”라고 말하며 선물하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미술은 (미각이나 음악적 취향과 비슷한 면도 있겠지만)그 사람의 감각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부분까지 포함하여 나타내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 이 사람 이런 걸 좋아하는 줄은 몰랐는데 멋진데!”라는 식의, 바로 그런 세계입니다.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중략) 미술은 주관적인 것이 가장 허용되어야만 하는 세계입니다. 남이 예쁘다고 하건, 더럽다고 하건 상관이 없습니다. 어떤 작품을 두고 있는 그대로 좋다고 말하는 사람, 그런 식으로 자기 스스로를 자유롭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인권에 대해서도, 정치에 대해서도, 경제에 대해서도 자신의 생각을 통해 여러 가지 문제와 마주할 수 있습니다. ---「p.100-101, 최종 강의」중에서 반세기 전 학생 시절, 재일본한국학생동맹(한학동)에 들어갔을 때, 처음으로 본명을 이야기하고, 이제 막 조선어를 공부하기 시작한 재일조선인 친구와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는 미음(ㅁ) 받침 발음이 잘 되지 않아 자신의 성인 김을 일본식으로 ‘기무’라고 발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그걸 비웃거나 창피 주지 않고, ‘기무’도 ‘김’도 모두 金이라고 감싸 안아 줄 수 있는 시야를 가질 수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너는 자기 성조차 제대로 발음 못하니까 더 이상 조선인이 아니다.”라고 생각할 게 아닙니다. 좀 더 말하자면 저는 만약 조선어를 한 마디도 못하더라도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식민지 지배 역사의 결과로, ‘나는 누구인가?’를 끊임없이 생각할 수밖에 없는 존재, 그런 사람이라면 충분히 대화할 수 있고, 같은 ‘조선인’으로서 만날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p.256-257(좌담-‘서경식의 언론 활동과 재일조선인」중에서 1980년대에 인문사회과학 영역에서 일반화된 ‘내셔널리즘 비판’과 ‘국민국가(비판)론’의 조류가 포스트모던 사상과 아이덴티티 비판론 등과 결합하면서, 리버럴하면 할수록 국가나 민족이라는 것은 이미 극복되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만연했습니다. ‘재일일본인’이라는 말도 그중 하나인데, 실제로 국적을 가지고 ‘국민’으로서의 권리를 누리면서도 ‘내적 망명자’나 ‘난민’ 등에 스스로를 빗대고, 국가의 구속에서 자유로운 듯 말하는 분위기가 지적 유행이 된 것 같았습니다. ‘국경 넘어’라든가 ‘월경’ 같은 말의 유행도 같은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졌습니다(참고로 서경식 선생의 저서 중에도 『월경화랑』이 있습니다만, 이건 그런 분위기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책입니다). 저는 그런 말에 위화감을 느끼면서도 내셔널한 것에 대한 회의감에서 당시 조류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도 사실입니다. 국제회의나 심포지엄에서 다국적 연구자들과 교류를 거듭하면서, 자신이 일본 정부의 여권에 의해 보호받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듯 지식인을 향해 서경식 선생이 던진 비판은 정말 정수리에 일침을 가하는 것이었습니다. ---「p.301(발표 2 ‘책임에 대하여 -계속 물어가는 것」중에서 서경식의 글을 읽다 보면 자신이 지닌 초능력 때문에 스스로 고통 받는 이야기의 주인공을 떠올리게 된다. 타인의 것이든, 자신의 것이든, 인간의 추악한 면모를 남보다 갑절이나 예민하게 간파하는 통찰력이 서경식 본인의 인생을 괴롭게 하는 것은 아닐까. 물론 그를 괴롭게 하는 근본적인 원인이 일본의 식민지주의인 이상, 그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은 적절치 않다.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인간의 추악함을 더없이 적확하게 언어화하는 서경식의 문장력에 나도 모르게 이런 생각을 하고 마는 것이다. ---「p.364, 코멘트 2-서경식은 어떻게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가」중에서 나카노 씨가 『프리모 레비를 찾아가는 여행』을 보여 준 날도 그런 여느 날 중 하루였습니다. 책의 여기저기에는 연필과 볼펜으로 그은 선과 메모가 빼곡했고, 포스트잇도 빽빽하게 붙어 있었어요. 몇 번이고 반복해 읽었다는 걸 한눈에 알 수 있을 정도로 책은 너덜너덜했죠. 나카노 씨는 알렉시예비치와 대화하는 서경식 선생의 모습에 감명을 받아 그의 저서를 이것저것 찾아 읽었는데, 그중에서도 프리모 레비라는 인물에 점점 빠져들게 된 것 같습니다. 서경식 씨가 토리노로 프리모 레비를 찾아가며 그에게 자신의 인생을 중첩시킨 사색의 과정에 깊이 매료되었던 그는, “가마쿠라, 이제 서경식 씨와 방송 만들 일 없을까? 나도 참여하고 싶은데.”라고 먼저 말을 걸어왔지요. 저는 서경식 씨를 알고 나서 그와는 왠지 죽이 잘 맞는달까, 말이 통한달까 ─ 솔직히 처음에는 조금 무서운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 그래서 친한 친구처럼 지냈는데, 그와 일면식도 없는 나카노 씨가 그의 책에 관해 열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걸 보고 놀랐습니다. 술잔을 기울이며 서경식 씨의 책에서 감동받은 구절을 서로 주거니 받거니 인용하고 낭독하고 하다 보니, 책을 낭독하는 방송을 만들어 보자는 방향으로 이야기가 흐르더군요. 하지만 우리 둘 다 그건 좀 아닌 것 같아서, 최종적으로는 서경식씨가 직접 ‘현장’을 여행하며 그 과정에서 생겨난 새로운 만남이나 사색을 영상으로 담자는 데 의견이 모였습니다. 『프리모 레비를 찾아가는 여행』을 바탕으로 새로운 ‘여행’ 이야기를 만들어보자는 이야기로 후끈 달아올라 그대로 다음 날 아침까지 달렸지요(웃음).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이었어요. 기획안을 받아주는 데가 없는 거예요. ---「p.396-397, 대화1 ─ 영상 제작을 함께한 20년」중에서 |
서경식과, 그의 시대를 다시 읽다.
“제가 이해하기로는 원래 이런 식의 책은 오랜 시간 학문을 갈고 닦은 연구자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성격을 지니거나 그래야 합니다. 저는 본격적인 연구자가 아니라, 그저 ‘아웃사이더’이며 업적이라고 불릴만한 연구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주저하던 마음을 접고 제안을 승낙한 까닭은, 저라는 존재에 흥미와 관심을 가진 사람이 있는 이상, 기꺼이 스스로를 소재로서 내어 드리고 도마 위에 몸을 뉘여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의 출간과 관련해 서경식은 위와 같은 말로 자신의 마음을 전했다. 2022년 3월 일본에서 출간된 이 책은 도쿄경제대학 교수 서경식의 정년퇴임을 맞아 마련한 기획(마지막 강의, 심포지엄, 인터뷰, 대담과 좌담)을 모은 것이다. 하지만 서경식이라는 개인을 통해 전쟁과 폭력, 차별의 상흔으로 가득한 이 시대를 성찰하는 기회를 제안했다는 점에서 의례적인 고별 강연집이나 기념 논총과는 구별된다. 비슷한 시기인 2022년 2월, 한국에서는 예술가, 소설가, 평론가, 번역가, 편집자, 기자, 동료, 제자 등 17명이 모여 서경식과의 인연을 되짚으며 그의 글과 사유를 반추했던 문집 『서경식 다시 읽기』가 출간되었다. 엄밀히 말하면 후속편은 아니지만, 감히 이 책에도 같은 제목을 붙인 이유는 단지 서경식뿐만 아니라, 우리의 시대를 읽기 위한 또 하나의 참고서가 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재독의 방법은 이 책의 원제 그대로 바로 ‘회상’과 ‘대화’이다. 서경식의 마지막 강의, 〈인문교육으로서의 예술학〉 2021년 3월 코로나 긴급 사태가 해제된 직후, 여전히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어렵게 성사되었던 그의 도쿄경제대학 ‘최종 강의’는 예정했던 장소를 더 넓은 곳으로 변경해야 했을 정도로 수많은 졸업생과 재학생, 동료가 모여 들었다. 그가 마지막 강의의 테마로 삼은 주제는 바로 미술. 『나의 서양미술 순례』 이후, 통일 독일의 근대미술을 거쳐(『고뇌의 원근법』), 최근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는 일본 근대 미술의 이단자들(『나의 일본미술 순례1』), 그리고 전 세계의 디아스포라가 만들어내는 아트(『디아스포라 기행』)까지 30여 년 이어져온 서경식의 미술 관련 저술 속의 작가들이 등장한다. 브뤼헐, 나카무라 쓰네, 조반니 세간티니, 반 고흐, 오토 딕스, 케테 콜비츠, 펠릭스 누스바움, 데이비드 강......그리고 강의를 맺으며 그는 미술관에 (자주) 다니기를, 전시를 보고 나면 마음에 들었던 작품의 엽서가 있다면 ‘두 장’ 사서 오기를 당부 한다. 자신의 ‘미의식’을 표명하라는 의미다. ‘미의식’이란 ‘예쁜 것을 좋아하는 의식’이 아니라, ‘무엇을 미라고 하고 무엇을 추라고 할 것인가’를 판단하는 의식이라는 서경식의 지론이 어떻게 펼쳐지는지, 인문 교육으로서 예술학이 가진 의미를 그의 최종 강의를 통해 듣는다. 회고를 통해 드러나는 이 시대의 아포리아 1971년 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영어의 몸이 된 서승, 서준식 두 형의 석방 운동으로 시작했던 자신의 비평 활동을 회고하는 서경식의 롱 인터뷰에서는 그 과정에서 만났던 스승과 선배들을 향한 그리움과 존경을 담은 이야기가 펼쳐진다. 후지타 쇼조, 히다카 로쿠로, 야스에 료스케, 고자이 요시시게, 이바라키 노리코, 가토 슈이치 등 전후 일본의 비판적 지식인의 계보가 어떻게 이 재일 디아스포라 작가의 사상적 기반을 형성했는지가 드러날 것이다. 한편 일본의 실천적 지식인 우카이 사토시는 서경식의 본격적인 저술(비평)을 ‘정치범의 동생’이라는 보통명사의 입장에서 ‘고유명사로서의 서경식’을 표현하기 위한 활동으로 평가한다. 그러면서 “아무리 해도 일반적인 고유명사는 되지 않는, 아니 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며 이렇게 언급한다. “정치범의 동생이라는 입장과는 별도의, 또 하나의 ‘보통명사로서의 서경식’으로 향하는 벡터vector가 항상 존재했기에 다른 작가에게서는 볼 수 없는 긴장감이 저에게는 늘 느껴졌던 것입니다.”(본서 280쪽) 이러한 평가는 바로 1990년대 냉전 이후, 이른바 포스트모던의 사상적 파고가 높았던 변화의 시대에 서경식이 서 있던 위치를 이야기해준다. 역사수정주의자나 보수·극우파 세력과 결연히 맞선 것은 물론, 힘을 잃고 퇴락해가던 좌파, 리퍼럴 세력에게도 비판의 날을 거두지 않아야 했던 고된 시기의 기억 역시 함께 싸웠던 동지 우카이 사토시, 다카하시 데쓰야, 시부야 도모미 등의 발언을 통해 전개된다. 간혹 서경식의 사상적 근원이나 동경이 서양을 향해 편중되었다는 오해가 생겨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은 그가 서구 근대가 주창했던 보편주의가 아니라, 제국에 억압된 각지의 마이너리티 동지(유대인, 팔레스타인인, 재일조선인 등)가 연대할 수 있는 또 다른, ‘새로운 보편성’을 모색해 갔음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즉 “근대 자본주의 세계 체제 속에서 발생하는 인간 소외, 국가·민족과 개인 사이에서 발생하는 모순, 머조리티majority와 마이너리티minority의 긴장 관계, 권력과 폭력이 자아내는 어두운 양상이, 동양과 서양 어디에서나 생겨나는 ‘인간성’을 둘러싼 아포리아(난문)”이라는 점(하야오 다카노리, 본서 47쪽)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한 지난한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 것인가를 함께 고민하는 일이 바로 우리의 책무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