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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식 다시 읽기』를 시작하며
re-ading 1 윤석남_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순간이 있다 김연수_ 믿는 자여, 그대 더욱 방황하리라 조해진_ 그의 궤적 안과 바깥에서 정연두_ 서경식 선생님에게 나는 “맏아들”이라는 칭호를 부여받았다, 그것도 아주 “완고한” re-ading 2 서동진_ 서경식 선생과 로얄 밀크티 권성우_ 희망과 비관 사이―나는 왜 서경식의 에세이에 끌리는 것일까? 한승동_ 고독한 반식민주의 투사 박혜진_ 번개 같은 직감 re-ading 3 이종찬_ 여행자가 될 수 없었던 순례자 권영민_ 해부도의 윤리학 양창섭_ 매혹과 각성의 시간―서경식과 함께 음악 듣기 최재혁_ 월경하는 미술 re-ading 4 하마무_ 소녀의 눈물 유유자_ 안으로부터의 굴레, 밖으로부터의 굴레 리행리_ 만남을 통해 확장된 질문 re-ading 5 박태근_이름을 전하는 사람 김희진_다시 만난『만남』 후나하시 유코(F) 만남 서경식 길 위에서―응답과 감사의 글 서경식 저작 목록 서경식 관련 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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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서경식 문장술이라는 게 있다면, 그 요체는 ‘짐짓’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딴청’이라고 해도 좋고, 요즘 유행어로 말하면, ‘할많하않’이라고 해도 괜찮겠다. 『나의 서양미술 순례』에서 내가 배운 게 있다면 바로 그 문장술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문장술의 문제가 아니었다. 어떤 거대한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개개인의 자세한 사연을 생략하는, 어떻게 보면 군더더기를 과감하게 쳐내는 냉혹한 편집술에 가깝다. 왜 그런가? 그것이야말로 지식인의 세계관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김연수」중에서 『빛의 호위』가 출간되고 1년여 뒤, 『나의 이탈리아 인문 기행』 출간 기념 강연회에 간 적이 있다. 강연이 끝난 뒤엔 사인을 받으려는 사람들과 함께 줄을 섰고 내내 떨리는 마음으로 내 차례를 기다리기도 했다. 드디어 그의 앞에 섰을 때, 나는 책에 사인을 받은 뒤 가슴에 품고 있던 『빛의 호위』 한 권을 드렸다. 책 면지에는 “文章의 인연에 감사하여, 마음을 담아”라고 썼다. 그가 반가워하며 “조해진 군?” 하고 확인하듯 물었던 순간을 기억한다.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소설집 목차 페이지를 열어 보인 뒤 이 중에서 「사물과의 작별」은 특히 작가님의 형들 덕분에 구상할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내 뒤에도 사인을 받으려는 독자들이 꽤 있었고 행사장은 이미 정리 중이었다. 그러나 그날 밤은 이미 내게 특별했다. 빛을 찾아 헤맸던 내 긴 여정에서 어떤 때는 출발역이, 또 어떤 때는 환승역이 되어 준 실체를 만난 밤이었으니까. 그가 비록 한국어로 된 내 소설을 읽지 못한다 해도 상관없었다. 그를 읽으며 소설을 쓰고 세상을 알아 가는 한국 소설가가 있다는 것을 알아준다면, 그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했다. ---「조해진」중에서 서경식의 『디아스포라 기행』을 읽고 나는 이 ‘연약한’ 저자에게 깊이 감동받았다. 아마 그것은 그 책에서 언급하는 디아스포라란 존재의 삶에 관한 서술보다는 그가 그것을 경험하는 방식, 순전한 그의 실존적인 이야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가 그에게 품고 있던 근거 없는 반감을 완전히 해제하게 된 것은 그의 책 곳곳에 등장하는 죽음, 특히 자살에 대한 언급 때문이었다.” ---「서동진」중에서 서경식의 산문은 늘 내게 책 읽기의 열망과 설렘, 고통, 서늘한 긴장이라는 드문 체험을 선사해 왔다. 처연한 슬픔과 학살, 망명, 죽음, 깊은 고뇌, 진지한 지성의 향연으로 채워진 그의 글을 읽는 과정은 항상 고통스럽다. 그러나 서경식의 저작을 읽는 시간은 내게 먹먹한 여운, 근본적인 생각거리를 남기곤 했다. 나는 왜 이토록 서경식의 에세이에 끌리는 것일까? 시대와 인간의 아픔과 상처에 대해 간곡하게 공감하는 마음, 첨예한 논점을 다루면서도 담백하고 아름다운 문체 등 몇 가지 이유를 댈 수 있겠다. 무엇보다 큰 이유는 평생 경계인으로 살아온 그의 삶 자체가 이처럼 아름다우면서도 슬픈 사유의 힘을 담은 글을 쓰게 만든 원동력이 아닌가 싶다. ---「권성우」중에서 서 교수는 세상을 바꾸려면 먼저 사람들의 마음을 돌려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들 머릿속에 ‘타자에 대한 공감 능력’, ‘타자의 고통에 대한 상상력’을 만들어 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문학이 해야 할 일이다, 라고 했다. 문학의 유력한 무기 가운데 하나가 육박주의인 것이다. 육박주의의 1차적 목적은 서 교수가 지적했듯이 “우리들 대다수가 보지 못하는 것, 보지 않고 지나가 버리는 것”에 눈길을 주게 하고, “보고도 못 본 척하는 태도”를 문제 삼는 것이다. 이것이 사람들의 마음을 돌려 세상을 바꾸기 위한 첫걸음이다. 그렇게 해야 타자가 눈에 들어오고 그들에 대한 공감, 그들의 고통에 대한 상상력이 생긴다. 그것 없이는 아무리 좋은 얘기도, 아무리 절박한 얘기도 하나 마나 한 소리로 빗겨 갈 뿐이다. 그럴 때 절박은 절망이 된다. ---「한승동」중에서 그는 거듭 문제 삼기 위해 ‘증언의 언어’를 택했다. 그러나 그 방식은 자신을 증언한 것과 다르다. 발언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사람들이 자신을 관통하도록 통로가 되는 증언. 서경식은 자신의 세기를 증언의 시대라 불렀다. 내 생각은 다르다. 그가 증언의 시대를 산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해 증언의 시대가 왔다. 증언은 하는 자의 것이지 듣는 자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박혜진」중에서 그런 이야기를 서경식 선생님과 나누다가, “난 이래도 괜찮아.”라고 존재를 ‘인정’받는 경험을 처음으로 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일본 사회의 소수자에게 위로를 받는 일본인’이라는 구조는 참 아이러니하며, 자칫하면 소수자를 소비하는 방식(소수자이기에 타인을 잘 공감해 준다든가 하는)으로 빠질 수 있기에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하지만 선생님은 내가 느끼는 그 고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셨고, 나는 내 고통의 맥락을 알아가야 겠다고 결심했다. 처음으로 ‘좋아하는 어른’이 생겼다. 숨이 막히는 듯한 느낌은 그대로였지만 그때 왠지 희미한 빛이 보인다고 느꼈다. 집으로 돌아가는 고속버스에서 눈물이 났다. 밖에는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하마무」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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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지며 디아스포라의 관점에서 국경과 국민주의 너머를 상상해온 서경식 선생이 2021년 도쿄경제대학에서 정년을 맞았다. 서경식 선생은 파울 첼란의 말 ‘투병 통신’을 빌려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글쓰기란) 외딴섬에 표류하는 사람이 빈 병에 편지를 넣어 바다에 흘려보내는 것과 같은, 또는 어둠을 향해 돌을 던지는 것과 같은 행위다. 누군가에게 가닿을지, 반향이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채 알지 못하는 독자를 향해 말하기를 계속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유리병과 돌이 마냥 멀고 어두운 곳을 헤매지만은 않았음을 기억하고자 몇 분의 필자에게 원고를 의뢰하는 편지를 보냈다. 그들이 응답해주지 않았으면 사라졌을지도 모르는 열여덟 개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이 구성되었다. 1부는 서경식의 글이 문학과 예술 창작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에 관한 이야기를 모았다. 윤석남은 서경식 초상화 작업을 진행하며 떠올린 단상과 기억을 작업 노트 형식으로 기록했다. 소설가 김연수는 오랜 시간 따라 읽어왔던 서경식의 책을 다시 꺼내 보면서 쓰는 자, 그리는 자, 노래하는 자, 즉 믿음을 가지고 표현하는 사람들의 방황에는 방향이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소설가 조해진은 서경식의 궤적 안과 밖을 오가며 고민하고 알아 갔던 과정이『빛의 호위』를 비롯한 자신의 소설 쓰기로 어떻게 이어졌는지 보여준다. 서경식과 (그를 통해 알게 된)프리모 레비, 그리고 자신의 문장이 이루는 삼각형의 세계 안에서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었는지를 말한다. 미디어 아티스트 정연두는 서경식과 2012년 첫 만남 이후 영감을 받아 만든 작품들을 소개한다. 특히 서경식의 『시의 힘』을 읽으며 타자에 대한 현실과 공감을 담은 작품 [블라인드 퍼스펙티브]를 제작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서술했다. 2부는 서경식을 다시 읽으며 그가 한국 사회에 미친 영향과 자극을 살펴본다. 사회학자이자 문화평론가 서동진은 소수자(마이너리티)의 삶과 실존적 아픔을, 그리고 현재 우리 사회가 예술을 향유(소비)하는 방식을 사유한다. 서경식을 향한 자신의 오해가 독서와 만남을 통해 공감으로 바뀌었던 흥미로운 에피소드도 담았다. 문학평론가 권성우는 서경식의 에세이가 자신을 매혹하는 이유를 고백하면서 그의 글이 지닌 힘과 가치를 조명한다. 아울러 서경식의 글을 읽으며 이 비관적인 시대 속에서도 여전히 문학의 역할이 유효하다는 희망을 전한다. 서경식의 사회 비평 칼럼을 꾸준히 번역해 오고 있는 언론인 한승동은 포스트콜로니얼 시대로 이어진 ‘기억의 투쟁’ 현장에 선 ‘고독한 반식민주의 투사’로서 서경식을 주목한다. 문학평론가 박혜진은 발언 기회를 박탈당한 사람들의 통로가 되었던 서경식을 ‘증언의 시대’를 연 사람으로 기억하며 연대의 길을 걷고자 다짐한다. 3부의 필자들은 자신이 속한 분야(문화, 철학, 음악, 미술)에서 서경식의 저작을 다시 읽는다. 독립문화기획자이자 비평가 이종찬은 『나의 서양미술 순례』를 언급하며 서경식의 ‘길 떠남’을 여행이 아닌 ‘순례’의 시선으로 해석한다. 순례자의 시선을 통해 문화와 예술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소장파 철학연구자 권영민은 서경식을 읽으며 꾸려갔던 연구공동체와 독서모임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서경식의 자택에 걸려 있던 해부도를 실마리 삼아 근대성, 인문주의, 윤리의 문제를 파고든다. 서울시향 기획팀장을 지냈던 양창섭은 『나의 서양음악 순례』를 꼼꼼히 재독하면서 매혹과 각성을 끊임없이 오가야 하는 것이 음악을 감상하는 이의 자세라는 서경식의 말을 되새긴다. 번역가이며 미술사학자 최재혁은 서경식에게 있어 갇힌 ‘지하실’ 너머를 보게끔 한 ‘창’이었던 미술이 ‘나’의 고통 극복뿐만 아니라, ‘우리’가 속한 세계를 의심하고 새로운 세계를 인지하여 경계를 넘을 수 있게 했는지를 언급한다. 4부에서는 일본의 현장에서 바라본 교육자 서경식의 모습을 담았다. 차별과 아이덴티티의 혼란 가운데 있는 재일조선인의 삶과 대학 수업의 생생한 정경도 그려진다. 일본인 제자 하마무는 고등학생 때 진학 상담을 하며 서경식을 만나 처음 ‘좋아하는 어른’이 생겼던 날의 기억으로 글을 시작한다. 그 인연으로 도쿄경제대학을 거쳐 현재 서울에서 유학 생활을 하며 페미니즘 연구자와 아티스트로서 어떻게 자신의 삶을 개척해 가는지 서술한다. 『역사의 증인 재일조선인』일본어판의 디자인을 담당한 후 도쿄경제대학의 연구조교가 된 재일조선인 유유자는 서경식이 어떻게 학생들과 진솔한 대화를 하려 노력했는지 그 지난하고도 감동적인 소통 과정을 전한다. 리행리는 귀화를 고민하던 중 서경식의 「재일조선인의 위기와 기로에 놓인 민족관」을 읽게 된다. 결국 자신이 왜 귀화를 선택하지 않았는지, 그 과정 속에서 서경식이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를 회상하며, 식민지배 역사의 증인으로서 재일조선인 문제, 소수자를 향한 일본 사회의 폭력 등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5부는 출판 현장의 최전선에서 서경식 저작의 영향을 살핀다. 인터넷서점 알라딘의 MD로 활동했던 박태근은 ‘바갈라딘’이라는 이름을 지어 준 서경식과의 인연을 회상하며, 서경식이 한국 독자에게 전해준 ‘이름’을 열거한다. 20세기를 온몸으로 살아간 49인의 이름을 전해 준 그의 저서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이 아이러니하게도 ‘품절’ 상태라는 씁쓸한 상황을 전하지만, 그에게 이름을 전해 받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서경식과의 연대를 꿈꾼다. 서경식의 책 14종을 편집 혹은 기획했던 김희진은 자신의 본격적인 첫 기획인 서경식-김상봉의 대담집 『만남』(돌베개, 2004)의 출간 과정을 되짚는다. 두 경계적 지식인이 펼치는 치열한 문답을 복기하면서 그 과정을 통해 남은 귀한 유산을 꼼꼼하게 기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