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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글
다음으로 나아가기 위한 작은 도약을 꿈꾸며 1장. 오롯이 홀로 머무는 공간 나의 여름 별장 - 호텔 / 이다혜 하루 종일 거기서 뭐 하냐는 물음에 대한 답 - 작업실 / 연상호 우리는 밤과 화해하기 원한다 - 침대 / 박참새 2장. 취향을 실현하는 공간 마저 듣는 곳 - 현관문 / 임진아 어디서 좀 노셨군요? - 코인노래방 / 홍인혜 뜨개라는 불도저 - 뜨개 카페 귀퉁이 자리 / 이용재 도움이 필요하시면 말씀하세요 - 올리브영 / 원도 3장. 몸을 움직이는 공간 오밤중에 트랙을 빙빙 돌면 생기는 일 - 망원유수지 체육공원 / 미깡 지구에 맞서는 우주적 도전 - 폴대 / 윤이나 육아와 일이라는 삶 속에서 나만의 동굴 찾기 - 요가 매트 / 민혜원 4장. 몸과 마음을 씻는 공간 집 안의 작은 오아시스 - 욕조 / 하완 냉탕과 열탕 사이 - 대중목욕탕 / 박활성 암흑 속에서 철저히 혼자가 되어 - 샤워 부스 / 정승민 5장. 운치 있게 거니는 공간 영업부장 C의 분투 - 덕수궁 / 최재혁 디어, 캐시 - 연세대학교 언더우드가 기념관 / 백지혜 언제 다시 오더라도 지금처럼 - 제주도 하도리 해변 / 황의정 6장. 이동하는 공간 무한히 달리는 길 위에서 - KTX / 김겨울 여전히 같은 꿈을 꾸게 하는 곳 - 모터사이클 / 신동헌 아무것도 없는 여기에 그럼에도 있는 것 - 일산대교 / 하현 어디여도 좋을, 어디론가 가야 하는 - 일본 철도 / 안은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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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운하게 마감을 하지 못하는 시간을 길게 보내며 내가 호텔을 마감의 전당으로 삼은 이유가 구스타프 말러였다는 사실도 가뭇없이 잊어가고 있었다. 시간을 쪼개 살아야 하는 사람은 공간을 바꾸는 방식으로 시간을 만들어낸다. 마감을 못하는 사람은 도움이 될 것 같은 방법이라면 무엇이든 끌어다 쓴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은 여행을 떠날 이유로 아무거나 믿어버린다.
--- pp.20-21 「이다혜, 나의 여름 별장」 중에서 한 나태한 인간이 스스로 이유를 찾아 무언가를 써 내려가도록 만들기 위해 이 공간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진화해온 것이다. 동경하던 창작 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 지금, 나의 작업실은 나의 일터이자, 괴로움과 희열, 감사와 저주가 늘 반복되는 공간이자 내가 가장 나답게 있을 수 있는 나의 내면이다. --- p.29 「연상호, 하루 종일 거기서 뭐 하냐는 물음에 대한 답」 중에서 쓰게 되는 글보다 써야 하는 글이 조금씩 쌓여 늘어갈 때마다 나는 반드시 누웠다. 잠에 들지 못해도 정신은 꼭 도망가 있는 채로 몇 시간씩 누워 있다가 일어나면, 나는 생각보다 빠르게 글을 쓸 수 있었다. --- p.37 「박참새, 우리는 밤과 화해하기 원한다」 중에서 노래는 아직 더 남았는데 집에 도착해버리면, 현관문 앞에 그대로 서서 동작을 멈춘다. 아직 문을 열 수가 없다. 노래가 끝나지 않았으니까. 현관문은 내게 마저 듣는 곳, 노래만 듣는 시간이 흐르는 곳이었다. --- p.47 「임진아, 마저 듣는 곳」 중에서 영감이 샘솟고 창의력이 몰아치면 좋겠으나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고 다만 ‘어떻게든 살아지겠지.’ 하는 긍정은 생겨난다. 세상엔 이토록 아름다운 노래들이 있고, 세기가 바뀌어도 그 노래를 애절하게 불러주는 사람들이 있다. 걸어갈 수 있는 곳에 코인노래방이 있고, 만 원 한 장으로 나만의 서재페를 열 수도 있다. --- p.61 「홍인혜, 어디서 좀 노셨군요?」 중에서 이제 뜨개는 나의 불도저다. 머릿속 온갖 잡생각의 돌멩이며 때로 넘기 버거운 감정의 산과 물을 싹 밀고 메워 곧고 탄탄한 평지로 만들어준다. 한 코 한 코마다 불도저가 앞으로 나아가며 땅을 닦아주면 나는 그 위로 생각의 씨를 뿌린다. 무슨 생각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저 집에서 폭면을 취하는 동안 다른 그 많은 것들과 더불어 할 수 없던 생각을 다시 하게 된 그 자체가 나에겐 너무 중요하다. --- p.71 「이용재, 뜨개라는 불도저」 중에서 긴장한 얼굴로 입장한 사람 앞에 번개같이 나타난 직원분이 도움이 필요하시면 말씀하시라며 바구니를 쥐여주신다. 소심한 나는 도움이 필요한 순간에도 딱히 말씀드리지 않고 스스로 매대를 뒤지며 어떻게든 고난을 해결하는 편이지만, 나의 어려움에 귀를 기울여주겠다는 형식적인 인사말 하나로도 마음이 푸근해진다. 바구니를 품에 안고 느적느적 코너를 돌아다니다 보면 다양한 목소리가 저마다의 말투로 공기 중에 나와 흩어진다. 76-77 「원도, 도움이 필요하시면 말씀하세요」 중에서 며칠 동안 끙끙 앓던 문제가 갑자기 ‘탁!’ 해결되는 것이다. 이 신비한 작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주 하찮은 A 생각에서 C로 갔다가 맥락 없이 점프해 H 생각을 하고 있는데 꽉 막혀 있던 Z 문제가 불현듯 생각나면서 ‘이건 이렇게 하면 되겠는데?’가 되는 것이다! 이게 무슨 조화냐고? 나도 모르겠다고요, 정말. --- p.87 「미깡, 오밤중에 트랙을 빙빙 돌면 생기는 일」 중에서 폴을 타는 1분은, 지구가 날 끌어당기는 힘에 맞서는 우주적인 도전이다. 그 1분 남짓을 위해 20분 넘게 스트레칭과 근력 운동을 하고 30분 이상 동작을 배워야 하는 지독한 비효율이 좋다. 그래서 이제는 할 수 있는 걸 넘어, 잘하고 싶다. 잘 타고 싶다. 계속, 오래. --- p.102 「윤이나, 지구에 맞서는 우주적 도전」 중에서 나도 모르게 엉킨 생각의 실타래를 대면한다면 요가 매트를 들고 거실로 나가자. 아주 잠깐이라도 생각을 비우고 나면 비로소 다른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좀 전에 했던 행동이나 말을 객관적으로 되돌아보고, 디자인의 콘셉트가 무엇이었는지 다시 상기한다. --- p.112 「민혜원, 육아와 일이라는 삶 속에서 나만의 동굴 찾기」 중에서 어릴 땐 시냇물이 흘러가는 것이나 개미들이 바삐 움직이는 걸 질리지도 않고 몇 시간이고 지켜보곤 했다. 나이가 들면서 그런 자연의 움직임에 대한 흥미나 감탄을 잃어버리게 됐다. 자극적인 맛에 길들어 순수한 즐거움을 잊은 걸까. 목욕하는 동안에는 딱히 할 일이 없기 때문에 다시 어린아이가 된다. --- p.118 「하완, 집 안의 작은 오아시스」 중에서 흔히 예술을 위해서는 영감이 필요하다고들 하지만 교대욕에는 전혀 영감이 필요하지 않으며, 머리를 텅 비우고 탕 사이를 오가는 와중에 영감을 얻을 수도 있으니 어쩌면 교대욕이야말로 예술을 위한 예술일 가능성마저 잠재한다. --- p.132 「박활성, 냉탕과 열탕 사이」 중에서 나는 집 밖에서 샤워를 해야 할 때마다 샤워기를 유심히 살핀다. 호텔에 머물거나 헬스장에서 운동 후 샤워할 때, 그 공간의 샤워기는 단순한 장비가 아니라, 내 일상에 영향을 줄 새로운 경험의 매개체가 된다. --- p.141 「정승민, 암흑 속에서 철저히 혼자가 되어」 중에서 덕수궁에 들어가면 전각을 둘러보고 나무와 꽃들을 지나 돌 틈 사이 이끼까지 찾아보는 습관이 생겼다. 마치 식물학자나 정원사처럼. 근거 없는 자신감 같지만 덕수궁을 한 바퀴 돌고 온 다음 날은 조금은 더 능숙한 편집자가 되는 느낌이다. --- p.155 「최재혁, 영업부장 C의 분투」 중에서 꽤 오랜 시간을 가슴에 꾹꾹 누르고 그리워만 했던 소중한 추억의 공간을 예고 없이 맞닥뜨린 기분에 하마터면 주책맞게 울음을 터뜨릴 뻔했답니다. 누구든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작은 쉼터인 언더우드가 기념관 옆의 그 정원이 오랜 시간 그리워만 해왔던 내 마음속의 안식처를 조우한 느낌이었다면 설명이 될까요? --- p.164 「백지혜, 디어, 캐시」 중에서 수평선 위로 길게 펼쳐진 우도와 빼꼼 고개를 내민 성산일출봉. 그 사이를 바삐 오가는 여객선들. 물때가 변할 때마다 모양이 달라지는 해변, 하얗게 빛나는 모래사장, 바람에 일렁이는 은갈색 억새풀 언덕과 쪽빛 바다. 제주에 사는 동안 정말 많은 것들이 변했는데 이 바다는 항상 그대로다. 다채로운 형형색색의 아름다움들이 늘 고스란하다. --- p.174 「황의정, 언제 다시 오더라도 지금처럼」 중에서 KTX에서 매번 하는 일은 이것이다. 가만히 앉아 밖을 보며 시시각각 변해가는 풍경을 즐기기. 내 삶이 오로지 이동하고 흐르는 것으로만 존재한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아주 가만히 멈춰 있는 순간마저도. --- p.186 「김겨울, 무한히 달리는 길 위에서」 중에서 모터사이클 위에 올라 달리는 동안에는 어느 하나도 허튼 동작 없이, 어느 하나 멍하니 보내는 순간 없이 주변을 살피고, 노면을 파악하고, 공기의 냄새로 날씨의 변화를 느끼고, 즐거웠던 순간을 백미러 속으로 흘려보내면서 한순간 한순간을 오롯이 살아내야 한다. --- p.196 「신동헌, 여전히 같은 꿈을 꾸게 하는 곳」 중에서 일산대교를 건너 김포에 진입하면 습관처럼 휴대폰 메모장을 열어 짧은 일기를 쓴다. 다리 위에서 한 생각들은 몇 개의 문장이 되고, 그것들은 내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여 어떤 날의 용기 혹은 위로가 된다. --- p.207 「하현, 아무것도 없는 여기에 그럼에도 있는 것」 중에서 나를 나다운 상태로 만들어주거나 쉼이 되는 구체적인 장소에 관한 글을 써야 했을 때 나는 열차에 탄 채로, 정확히는 열차가 좀 한산하고 나는 자리에 앉은 채여야 하지만, 아, 사실은 누가 운전하는 자동차의 옆자리도 괜찮기는 한데, 어쨌든 그렇게 어디론가로 이동 중인, ‘아직’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인, 뭔가가 시작되기 전인 그런 상황을 떠올렸다. 아무것도 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동)하고 있는 그런 상태……. --- p.218 「안은별, 어디여도 좋을, 어디론가 가야 하는」 중에서 |
침대, 코인노래방, 뜨개 카페, 올리브영,
폴대, 대중목욕탕, 덕수궁, KTX, 일산대교…… “왜 그들은 ‘영감의 공간’으로 향했을까?” 영감을 찾아 떠난 여정은 곧 나다움을 찾는 과정 번뜩이는 영감은 어디서, 어떻게 나올까? 오랜 경력과 거대한 성취를 자랑하는 베테랑 작업자도 영감을 찾아 오늘도 고군분투한다. 이 책에 실린 20명의 작업자는 각기 다른 분야에서 자신의 일을 잘하고 싶은 마음과 더불어 일이 잘 풀리지 않는 답답함을 동시에 털어놓는다. 이름만 대도 아는 대가들이지만, 그들 역시 하루하루 일 때문에 고뇌한다. 20년 넘게 기자로 일하면서 다수의 베스트셀러 도서도 써낸 이다혜 기자는 “집에서 매일 꾸준히 원고를 쓰는 방식이 통하지 않을 때 집이 아닌 어딘가로 향”한다고 한다. 1,000만 영화 [부산행]을 비롯해 개성 있는 작품을 꾸준히 선보이는 연상호 감독도 열심히 떠올린 이야기 전개 방식이 대본에 부적합함을 깨달았을 때 “‘다시 패잔병이 되겠구나.’라는 절망감 같은 것이 밀려온다.”라고 작업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성취와 함께 결과적으로만 언급되는 ‘영감’이란 존재가 그 과정에선 얼마나 막연한지 다시금 실감하게 된다. 더불어 과거의 성공과는 무관하게 또다시 ‘0’에서 시작된, 영감을 찾는 과정은 자연히 그들의 노동과 성취를 더욱 값지게 한다. 그래서 이들은 영감을 찾아 ‘바로 여기’로 향한다. 아이디어와 에너지를 얻는 장소다. 특별하지 않고 일상적이지만 나다운 상태로 존재할 수 있는 곳, 그래서 몸과 마음을 잘 쉴 수 있는 곳, 그렇지만 일과 옅고도 짙게 연결된 곳. 다만 영감을 쉽게 찾을 수 없듯, 영감의 공간도 단번에 찾기는 어렵다. 내가 어디서 잘 쉴 수 있는지, 언제 어떤 상황에서 지치는지, 또 무엇에서 힘을 얻는지 알아야 내게 맞는 공간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경찰관으로 일했던 원도 작가는 “글이 풀리지 않을 때도 나는 사람을 찾아, 정확히 말하면 나를 전혀 모르고 앞으로 신경 쓸 일도 없는 사람을 찾아 떠났”다며, 카페는 너무 시끄럽고 정처 없이 길을 걷는 건 평발이라 힘들어 올리브영을 최종적으로 영감의 공간으로 꼽았다고 설명한다. 다시 말해, 나를 잘 알아야 자신에게 최적화된 영감의 공간에 당도할 수 있다. ‘나는 어디에서 잘 쉴 수 있을까?’ 좋은 쉼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해 좋은 삶에 대한 고민으로 나아가다 영감도 쉼도, 모두 사람이기에 필요한 것이다. 사람이기에 쉬어야 하고, 그 쉼을 통해 만들어진 ‘비움’에서 에너지와 아이디어가 생긴다. 실제 이 책의 저자들이 그 증명이다. 폴대를 영감의 공간으로 꼽은 윤이나 작가는 “폴을 잡는 순간 생각의 스위치는 꺼진다. 폴을 다치지 않고 잘 타볼 생각만 한다.”라며 다른 생각은 하지 않고 행위에 집중하는 순간을 언급한다. 민혜원 디자이너는 “몸을 이완시키고 감정과 생각을 요가 매트 위에서 비우고 나면 다시 새로운 것으로 채울 수 있는 흰 도화지 같은 상태가 된다.”라고 말하며 ‘비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하완 작가 역시 “몸은 쉬고 있지만 정신은 온전히 쉬지 못할 때, 온갖 생각들로 머릿속이 복잡할 때면” 목욕을 통해 전원 스위치를 끈다고 밝히며 욕조에서 얻는 영감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렇게 저자들은 부담감을 비우고 잠시 휴식하면서 어떻게 잘 일하고 잘 쉴 수 있을지 사색한다. 잘 쉬고 잘 일하는 것은 곧 좋은 삶으로 연결된다. 보통의 삶이 다수의 일하는 시간과 약간의 쉼으로 이루어져 있으니 자연스러운 결과다. 홍인혜 작가는 코인노래방에서 노래하고 돌아오는 길에 “영감이 샘솟고 창의력이 몰아치면 좋겠으나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고 다만 ‘어떻게든 살아지겠지.’ 하는 긍정은 생겨난다.”라며 영감의 공간을 다녀온 뒤 느낀 삶에 대한 긍정을 독자들과 나눈다. 그래서 이 책은 어떻게 하면 잘 일할 수 있을지 말하기 시작해 어떻게 잘 쉴 수 있을지 이야기하며, 이런 물음이 순환하면서 이루는 좋은 삶의 감각을 다룬다. 따라서 『영감의 공간』은 일과 쉼, 영감을 키워드로 하지만 결국 삶을 말하는 책이다. AI에게는 필요 없는, 사람이기에 갖게 되는 휴식과 의지를 이야기하며 인간다움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실제 이 책에는 사람 냄새 나는 글들이 모여 있는데, 호주 여행에서 우연히 만난 캐시에게 편지를 띄운 백지혜 요리 연구가의 글이 그 중 하나다. 그는 자신의 영감의 공간으로 ‘연세대학교 언더우드가 기념관’을 소개하며 캐시와의 교류와 추억이 묻어나는 글을 선보인다. 여유가 없다고 느낄 때 하도리 해변을 찾는 황의정 작가는 무지개 다리를 건넌 반려견 두식이를 떠올리며 그리움과 사랑을 내비친다. 그렇게 『영감의 공간』은 사람과 감정, 삶에 대한 이야기로 논의를 확장한다. 독자 역시 스무 편의 글을 읽으며 삶과 인간의 본질에 대해서 함께 고민해볼 수 있다. 소진과 충전, 목적과 무목적, 웅크림과 발돋움…… 그 사이에서 발견한 창의력과 의지력 서로 다른 영감의 공간에서 발견할 수 있는 흥미로운 지점은 ‘사이’와 ‘경계’라는 특성이다. 다시 말해 저자들은 소진과 충전, 부담감과 홀가분함 가운데 존재하는 미묘한 순간과 상태를 포착하고 이를 글로 표현한다. 영감의 공간에서 머무는 시간은 일과 쉼 사이의 틈새 시간과도 같다. 쉬고자 온 곳에서조차 일 생각을 떨칠 수는 없고, 그렇다고 일을 하고 있는 건 아닌 상태. 언뜻 괴로운 순간으로 보일 수 있는 이 미묘한 순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일에 대한 애정, 삶에 대한 의지가 돋보인다. 대충하고 싶지 않고 이왕이면 잘하고 싶은 욕심, 일하는 시간이 뜻깊고 의미 있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생기는 의지의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영감의 장소’에서 그 틈새 시간을 거쳐 웅크림에서 발돋움하는 도약을 이뤄낸다. 『영감의 장소』는 딱 떨어지지 않지만 분명 존재하는 ‘애매함’을 언어화하는 도전이 모인 책이기도 하다. 경계적 성격의 순간, 상태를 느끼는 공간에서 감정 변화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흘려보내지 않고 저자 각자가 발견한 통찰력을 글로 표현했다. 쉽게 표현하기 어려운 것을 언어화한 내용은 독자에게도 호기심과 공감을 불러일으켜 독서의 재미를 배가시킨다. 박활성 워크룸 프레스 대표는 “당위에서 멀어질수록 그 활동은 여가에 가까워진다.”는 이야기를 여러 사례로 밝히며, 교대욕이야말로 “일련의 목욕 과정 가운데 가장 당위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순간, 어쩌면 가장 예술에 근접한 순간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게 삶에서 필수와 당위적인 것들과 먼 무언가를 할 때만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을 표현한다. 최재혁 번역가 역시 미술사를 업으로 삼았을 때는 일터에 불과하던 덕수궁이 이제는 “더 이상 말은 필요 없어”진 공간이 되어 편하게 거닐 수 있는 공간이 되고, 출판 일의 영감을 얻어가는 곳이 되었다고 고백한다. 과거에는 ‘일’이라는 특정 목적을 수행했고, 지금은 일과 무관해져 자신에게 무목적의 성격을 지니게 된 덕수궁이라는 공간이 자신에게 준 것을 독자들과 나눈다. “당신의 ‘영감의 공간’은 어디인가요?” 일상 속 그 어디든, 나다움을 느끼게 하고 영감을 주는 공간의 가능성에 대해 책은 총 여섯 개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스무 가지의 공간을 각 장으로 분류하는 여섯 가지 카테고리는 우리 일상과도 무관하지 않다. 많은 이들이 가끔은 혼자 있고, 종종 취향을 모색하며, 때때로 운동하고, 씻고, 정처 없이 거닐고, 어딘가로 이동한다. 각 요소가 우리의 평범한 나날을 구성하고 있는 순간이자 장소인 셈이다. 침대에서 누워 보내는 무위의 순간, 올리브영에서 여러 제품을 쇼핑하는 순간, 샤워 부스에서 씻는 순간, KTX를 타고 이동하는 순간에도 우리 주변에 영감이 머물고 있을 가능성을 이 책을 통해 감지하게 된다. 그래서 『영감의 공간』을 읽고 나면 우리 일상 속 어디든 영감의 장소가 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더불어 이들 모두 각자의 공간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휴식하고 다시 일할 힘을 얻는다. 이러한 모습은 그 여정을 바라보는 독자에게도 용기와 힘을 전한다. 박참새 시인은 ‘침대’를 영감의 공간으로 꼽으며 이렇게 표현한다. “나는 일어설 수 없을 때마다 이토록 작고 견고한 착각들이 필요했을 뿐이다. 이것은 패배가 아니다. 어쩌면 지속이고 전진이며, 그럼에도 차차 망가지는 기분이 드는 이유는 그곳에서 바로 새살이 돋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독자 역시 자문하게 될 것이다. ‘나만의 영감이 공간이 어딜까?’ 하고 말이다. 자신에게 필요한 영감에 대해 요리조리 생각해보고, 일상 속 어느 공간에서 영감을 채울 수 있을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계속 이동 중이며, 어디선가 내려야 하고 어디선가 타야 하는지 모두 정해져 있지만 경로를 변경하거나 그만해도 괜찮으며 그럼에도 꿋꿋이 한다는 점.”이라는 안은별 연구가의 표현처럼 영감의 공간과 삶의 뜻밖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도 있다. 그리고 책장을 덮으며 이 책의 저자들처럼 창의력과 의지력, 아이디어와 에너지를 얻어가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