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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지 마, 소슬지
원도
한끼 2026.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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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 투명한 룸메이트가 생긴 건에 대하여
2. 냄새는 기억보다 오래 남는다
3. 친구 하자, 소슬지
4. 너에게 하고 싶은 말
5. 우리는 언제부터
6. 초라한 마음
7. 익사한 물고기
8. 넘어지지 않게 꽉 잡아줘
9. 언젠가, 네가 돌아올 날
10. 딱 그 정도 일

작가의 말

저자 소개1

작가로서의 목표는 언제나 유쾌한 이야기꾼이 되는 것이다. 적절한 순간에 작별 인사를 건네고, 웃음으로 돌아서는 이야기를 쓰기 위해 오늘도 어김없이 글을 쓴다. 에세이 《경찰관속으로》, 《아무튼, 언니》, 《농협 본점 앞에서 만나》, 《있었던 존재들》, 《눈물 대신 라면》, 장편소설 《파출소를 구원하라》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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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2월 09일
쪽수, 무게, 크기
356쪽 | 408g | 130*195*20mm
ISBN13
9791175770898

책 속으로

“설마… 소슬지 씨?”
귀신이 보인다. 귀신이 씨익 웃는다. 귀신이 웃는 게 절대로 좋은 징조는 아니겠지. 그래도 화를 내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
“맞아요. 제 이름 기억하시네요?”
하주는 귀신인지 침입자인지,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녀의 이름을 떠올렸다. 이름 소슬지, 나이는 29세로 자신과 동갑. 반나절 전 욕실에서 사망한 채 발견된, 세입자가 죽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해 자신의 손으로 사망 사실을 확인한 사람.
‘아, 결국 귀신도 사람이었구나.’
하주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pp.19~20

“평소엔 뭐 하고 지냈어요?”
“그러게요. 뭐 하며 살았더라. 뭐든 기다리기만 했던 것 같아요. 언젠가 기쁠 날도….”
“기쁜 날이 없었어요?”
“방금은 되게 기뻤어요. 오랜만에.”
“왜요? 변기를 실컷 내려서요?”
“경찰관님이 저 찾으러 와주셔서요.”
슬지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 눈을 뜬 속도보다 더 천천히 하주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는 맑게 웃어 보였다. 하주는 지금 자신의 마음을 뒤흔드는 감정의 이름을 영영 알아낼 수 없으리라는 사실을 알았다.
---p.119

“왜 이렇게 초라하게 죽는 사람이 많은 거예요? 나 무서워요. 제 인생의 끝도 이렇게 초라할 거라면 왜 온갖 개고생을 하며 살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요.”
“그럼 너도 불평은 그만하고 열심히 찾아봐!”
“다른 사람 눈에는 안 보이는 거. 그걸 찾으려고 뛰어다니는 게 경찰 일이잖아! 한준 선배가 너 이렇게 가르쳤어? 현장에서만큼은 약해지지 말랬지!”
“온 세상이 다 현장인데… 현장 아닌 곳이 어딨어요? 알면 좀 알려주세요.”
정신이 점점 무너져 내리고 있다는 걸 느끼며, 하주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한시라도 빨리 슬지가 돌아갈 곳을 찾아야만 한다고.
---p.180

“난 엄마가 떠난 이유를 알아.”
“어?”
“친구 집에 김치 얻으러 간다고 했어.”
“무슨 소리야?”
“김치 나눠준다던 친구가 진주에 살았나 보다. 그치?”
슬지가 눈썹을 축 늘어뜨렸다.
“제발 그렇다고 해줘. 난 김치 얻어서 돌아올 엄마를… 계속 기다렸단 말이야.”
---p.220

“천사랑 귀신은 뭐가 다를까?”
(…)
“그러게. 어감 차이일까? 서양에서는 천사고, 동양에서는 귀신인 것 같기도 해.”
“별 상관 없는 거면 넌 이제 귀신 말고 천사를 맡아. 내가 정했어.”
슬지가 작게 웃었다.
“천사는 뭔가를 지켜줘야 하는 거 아니야? 왠지 이미지가 그래.”
“지킬 게 없으면 나라도 지켜줘. 내 동생들이랑.”
하주는 슬지의 이마와 어깨를 손날로 톡톡 두드리는 시늉을 했다.
“널 변하주 담당 천사로 임명할게. 줄여서 변천사! 어때?”
---pp. 234~235

출판사 리뷰

떠나지 못한 존재와 비워져 가는 존재의
기묘하고 웃픈 동거 일지

떠나지 못한 채 이승을 맴도는 슬지와, 살아 있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 메마른 현실에 잠식되어 조금씩 비워져 가는 하주. 『죽지 마, 소슬지』는 이 두 존재가 우연히 얽히며 시작되는, 지극히 현실적인 동거 이야기다.

귀신과 경찰이라는 설정은 기묘하고 웃음을 자아내지만, 이들의 관계가 향하는 곳은 의외로 익숙한 감정이다. 초라함, 외로움, 기다림, 그리고 끝없이 버티다 지쳐버린 사람들의 시간에 대한 애달픔. 하주의 통제되지 않는 과민 대장증후군, 샤워기에서 슬지에게로 흘러내리는 물, 수많은 이들의 눈물이 떨어진 한강의 이미지는 붙잡지 못한 삶과 흘러가 버린 시간을 집요하게 상기시킨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웃음이 먼저 터지고, 그 뒤에 설명하기 어려운 슬픔이 남는다. 그리고 독자는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이 책이 다루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삶’이며, ‘무엇으로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이라는 사실을.

슬지는 사랑받고 싶었지만 사랑 때문에 망가진 사람이다. 하주는 책임감으로 살았지만 정작 자신의 삶을 돌볼 줄 몰랐던 사람이다. 두 사람은 잠시 같은 공간에 머물며 서로의 결핍을 비춘다. 하주는 그 과정을 사건 수첩에 차분히 기록하지만, 그 안은 점차 뜻밖의 농담과 생활감으로 가득 채워져 간다. 그래서 더 현실적이고, 더 아프다.

누군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오늘을 살아갈 이유는 충분해

이미 죽은 존재인 슬지에게 “죽지 마”라고 말하는 이 제목의 모순은 그래서 더 애잔하다. 이 말은 귀신인 슬지를 향한 말인 동시에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건네는 말로 다가온다. 만약 슬지가 누군가 자신을 기다려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곁에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신호를 받았다면, 그렇게 오늘을 살고 내일을 기대할 수 있는 이유를 발견했다면, 어쩌면 그녀는 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주와 슬지는 모두 혼자라는 상태에 익숙해졌고, 기대하지 않는 법을 먼저 배운 사람들이다. 그러나 뜻밖의 만남은 그들이 외면해 왔던 질문을 다시 불러온다. 나는 무엇으로 오늘을 견뎠고, 나를 이 자리에 붙잡아 두었던 것은 무엇이었는가? 이 책이 건네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누군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삶이 이어질 수 있다는 것.

살아 있는 사람은 삶을 실감하지 못하고, 죽은 사람은 삶을 되돌아본다. 그 사이에서 독자는 자신의 시간을 겹쳐 보게 되고, 자신이 기다렸던 사람과 자신을 기다려준 사람을 떠올리게 된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천사’는 구원도, 기적도 아니다. 그것은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마음의 안식, 혹은 내 곁에 남아 있는 타인의 온기에 가깝다. 『죽지 마, 소슬지』는 조용히 말한다. 우리는 모두 ‘하주’이자 ‘슬지’였으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누군가에게 기다려졌던 사람들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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