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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밥상 앞에선 오늘의 슬픔을 잊을 수 있으니까
[미역국] 미끄러진 그곳에서 다시 시작될지 모르니 [김밥] 잘 말아줘, 마음이 터지지 않게 [짜장면] 나만의 둥지를 찾아서 [조개전골] 껍데기가 모여 방패가 되어줄 때까지 [라면] 내 한계는 내가 정해 [쌀밥] 아픔마저 꼭꼭 씹어 삼키는 법 [비빔밥] 그릇은 최대한 큰 걸로 [김치] 주인공은 너였어 [포장마차] 우릴 구원하는 불빛을 향해 [해장국] 속 풀 일은 왜 이리 많은지 [고속도로 휴게소] 바퀴는 계속 굴러가야만 하고 [치킨] 네 멋대로 해라 [공복] 언제나 여기에 있어 [삼겹살] 침묵마저 반찬이 되고 [달고나] 부서질 걸 알면서도 [불닭볶음면] 나의 꿈도 불닭볶음면처럼! [샤부샤부] 끓어라, 마지막 순간까지 [마라탕] 비로소 완벽한 조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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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로 미역을 채취한 곳도, 전 세계에서 미역을 가장 많이 먹는 곳도 한국이라고 한다. 미역 채취에 관한 최초의 기록이 무려 《삼국유사》에 실려 있다고 하니, 적어도 서기 157년부터 우리나라는 미역을 채취해 먹었다는 뜻이다. (…) 출산한 여성을 위한 보양 음식인 미역국은 어쩌다 현대에 이르러 시험날 먹으면 미끄러진다는 속설을 낳게 됐을까. 조상들은 알았던 건지도 모른다. 실패는 곧 새로운 무언가의 탄생을 뜻하는 것임을.
--- p.13 「미역국: 미끄러진 그곳에서 다시 시작될지 모르니」 중에서 선천적 장애를 갖고 태어난 오빠로 인해 나는 ‘그 시절에 으레 겪었을’ 추억을 꽤 많이 가지지 못했는데, 소풍날 먹는 김밥도 그중 하나였다. (…) 엄마에게는 딸을 위해 김밥을 싸줄 시간 따위 없었다. 시금치를 데친 뒤 참기름에 무치고, 게맛살을 먹기 좋게 자르고, 계란을 지단으로 곱게 부친 후 (…) 갖가지 채소를 손질한 후 밥과 돌돌 말아 만드는 김밥이 수고롭다는 건 어린 마음에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원했던 건 김밥 그 자체라기보다 엄마의 수고로움과 나만을 위해 쏟는 시간이었다. --- pp.27-28 「김밥: 잘 말아줘, 마음이 터지지 않게」 중에서 싱싱한 조개와 각종 채소를 넓은 냄비에 담아 육수와 함께 끓여내는 요리인 조개전골은 적어도 15분 이상 끓여야 하는데, 타이머를 한껏 째려보아도 1분 1초가 느리게 흐른다. (…) 첫 국물은 싱겁고, 한창 끓어 조금 졸아든 국물은 적당하고, 마지막 국물은 감격스러운 감칠맛이 도는 것도 조개전골의 묘미. 오래 끓일수록 진가를 발휘하는 조개전골은 오래 두고 볼수록 좋은 친구와 먹는 게 최고의 궁합. 조금의 꾸밈도 없이 함께 자리만 지켜도 웃음이 나는 친구와 먹다 보면 잘 익은 조개처럼 입을 크게 벌리고 웃을 수밖에. --- p.47 「조개전골: 껍데기가 모여 방패가 되어줄 때까지」 중에서 아직도 김치 한 무더기가 남아 있다. 보내지 말라고 해도 엄마는 말을 듣지 않는다. (…) “김치 보낸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곰팡이가 낀단 말이고? 내는 평생 그런 적이 없는데….” 진심으로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묻는 엄마에게 나는 소리를 질렀다. 김치냉장고가 있는 집과 중고 냉장고를 쓰는 집이 어떻게 같을 수 있냐고. 내가 진짜 받아들일 수 없었던 건, 일방향 소통을 이어가는 엄마였다기보다 커다란 양문형 냉장고가 들어가는 주방을 가질 수 있을지 모를 나의 미래였다. --- pp.94-95 「김치: 주인공은 너였어」 중에서 지금까지 판매된 불닭볶음면의 면 길이를 합치면, 지구와 달 사이를 101번 왕복할 수 있는 거리라고 했다. (…) 내가 만든 물건이 그렇게나 팔린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그런 순간이 현실로 펼쳐지면 나는 어떤 표정을 지으려나. (…) 빈 종이에 오늘의 목표를 쓴다. 옳은 길로 가고 있다는 확신이 든 적은 없다. 다만 매일 반복되는 이 풍경이 언젠가 확신을 가져다줄 거라고 믿으며, 오늘도 글을 쓴다. 아무렴, 내 롤 모델은 불닭볶음면이다! --- pp.181-183 「”불닭볶음면: 나의 꿈도 불닭볶음면처럼!」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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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을 뻘뻘 흘리며 식사를 마치고 나면
놀랍게도 많은 게 풀렸다는 걸 알게 된다 술기운이 채 가시지 않은 속도, 아픔을 끌어안고 있던 속내도 삶에 대한 따뜻한 시선으로 많은 독자에게 사랑받아온 에세이스트 원도가 이번에는 ‘음식’으로 돌아왔다. 그는 철들 무렵부터 “뭐 먹고살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되뇌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질문은 취업 후에 더 자주 떠올랐다. ‘철밥통’이라 불리는 공무원이 되고 나서도, 친구들과 삼겹살을 굽고 치킨을 뜯으며 나누는 대화의 주제는 늘 같았다. “우리, 앞으로 뭐 먹고살지?” 그러던 중 직장 생활의 희로애락을 담은 독립출판물이 입소문만으로 수만 부 판매되면서, 그는 안정적인 공무원을 그만두고 전업 작가의 길을 택했다. “뭐 먹고살 거냐”는 걱정 어린 질문은 여전하다. 하지만 그는 이제 그 질문 앞에서 흔들리지 않는다. 여전히 불안할 때도 있고, ‘전업’ 작가라는 말이 무색하게 서울살이를 위해 여러 일을 병행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모든 순간마다 좋아하는 일과 따뜻한 음식, 그리고 더 따뜻한 사람이 곁에 있었다. 《눈물 대신 라면》은 제대로 된 1인분의 삶을 살아가는 여정을 담은 책이다. 백 마디 말보다 따뜻한 한 그릇 음식이 더 큰 위로가 될 때가 있다. 스트레스로 머리가 터질 것 같은 날, 땀을 뻘뻘 흘리며 매운 음식을 먹고 나면 머릿속이 놀랍도록 개운해진다. 미래에 대한 불안,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은 실패, 상처로 남은 관계 때문에 울고 싶다면 일단 입을 크게 벌리고, 맛있는 음식부터 한입 먹어보자. 그 한입의 온기가, 오늘을 버티게 하는 힘이 될 테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