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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친구와 적의 차이_김대식 TENDENCY 영원한 동맹? 그런 게 있을 리가…_주경철 편 가르기의 심리학_허지원 식물 세계의 네 편 내 편_송은영 뜨개질처럼 모두 연결되어 있어요_문보영 SURROUNDINGS 적은 없되 동무도 없다_한성우 차별과 혐오의 기술자, 딥페이크 저널리즘_정준희 “적의 적은 우리의 친구”_리처드 도킨스 KEEP!_윤파랑 하지만 그럼 고슴도치는요?_강보원 INSPIRING 뇌가 만든 적, 뇌가 만든 친구_김대식 모두를 적으로 돌린 인류세의 악당들_김한민 우리는, 우리를 위해, 미움을_황예지 말_김엄지 MECHANISM 고속도로의 이방인들 : 완전한 타인과 친구가 될 수 있을까_김광기 기술과의 수고스러운 관계 맺기_신유정 적과 함께_이재갑 적을 만드는 말, 친구를 만드는 말_박소연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 관계의 가성비가 필요할 때_미깡 X 편집부 INNER SIDE 영혼의 연좌제 : 적과 친구라는 카르마_박진여 내 안의 나, 에고와 공존하는 방법_정민 에필로그 컨트리뷰터 별지 [요즘것들의 의식주호好락樂]_김남희, 김혜원, 미깡, 이경희, 차우진, 한승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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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가 볼 때 영국은 에스프리(esprit)도 없고 문화도 없는 나라, 돈만 밝히는 나라, 무엇보다 요리를 못해도 너무 못하는 불쌍한 나라이며, 자크베니뉴 보쉬에(Jacques-Beigne Bossuet)의 표현대로 ‘배신을 밥 먹듯 하는 나라’다. 그러면 반대로 프랑스는 믿어도 되는 나라일까? 영국, 독일, 네덜란드, 스페인 등 주변 국가의 의견을 들어보면 분명 똑같이 험악한 말을 할 게 틀림없다. 근대 국가는 기본적으로 다 그렇게 살아간다. --- p. 19
준비해온 문장을 적은 종이 뒷면에는 번호가 적혀 있어요. 그리고 번호를 추첨했습니다. 뽑힌 순서대로 문장을 나열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말이 되는 거예요. 그다음에는 그 시를 마지막 문장부터 거꾸로 읽어보았습니다. 더 좋더군요! 웃긴 건, 뽑기로 쓰인 시가 더 좋았다는 거예요. “공기가 시를 썼습니다, 여러분!” 저는 말했습니다. 공동 창작의 에센스는 ‘우연’ 혹은 ‘공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나 혹은 너 혹은 우리보다 좋은 건 그 모든 게 아닌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우리 사이에 흐르는 공기를 믿는 거 말이에요. --- p. 35 같은 허구더라도 〈007〉 시리즈나 서부영화가 설정한 편 가르기는 현실의 권력 불균형을 반영하면서 또 강화하는 만큼 잠재적 위험성이 더 크다. 그렇다 해도 이들은 내러티브의 유혹에 빠진 과학과 저널리즘이 행하는 편 가르기에 비해서는 여전히 덜 위험하다. 나치의 우생학, 그리고 그것을 (필경 지금도) 신봉하고 있는 극단주의 우파 저널리즘은 과학과 공학이라는 이름으로 인류를 편 갈랐고, 적대성을 공리와 효율로 포장했으며, 결국 유대인과 같은 ‘타자(他者)’에 대한 대량학살을 정당화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 p. 56 편 가르기를 포기할 수 없다는 건 결국 편 가르기가 가져오는 모든 대립과 갈등을 해소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을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요점은 어차피 모든 대립과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마법과 같은 방법은 없다는 데에 있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각자의 의견을 존중하는 화목한(그리고 때로 꼭 필요하기도 한) 방법이 언제나 가능하다면 좋겠지만, 사실 우리는 그런 식의 대화가 불가능할뿐더러 결코 인정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이들, 소위 말하는 악인들과도 함께 살아가야 한다. --- p. 70 먹는 대상과 복수의 목적을 투명하게 인식한 식인종과 달리… 전쟁을 전쟁으로 복수를 복수로 적을 적으로 인식하지도, 인정하지도 않은 문명인이야말로 다른 모두를 적으로 일상을 복수의 도살장으로 지구를 전쟁의 폐허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가장 야만적인 방식으로써 가장 야만적인 결과로써. --- p. 92 도로 위의 차량이 절대로 그 속을 다 보여주지 않는 것처럼, 인간은 서로가 서로에게 철저하게 이방인으로서 잠시 교분을 맺었다가 이내 헤어진다. 차량 속 운전자의 정체를 알 수 없듯, 우리는 타인의 마음속에 정확히 무엇이 들어 있는지 가늠할 수 없다. 즉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이방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우리는 차량들이 서로 부딪치지 않으려 애를 쓰며 다른 차량이 보내오는 신호와 속력의 증감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각자의 목적지에 도달하려 하듯, 타인이 보내는 신호에 반응해 자신의 행동을 조율해나간다. 타인의 표정, 손짓, 시선, 제스처, 침묵, 말투 등에 반응해 행동한다. 그 순간 만남은 깨지지 않고 이어지며, 그렇게 사회의 모습이 잠시 드러난다. --- p. 129 인공지능은 우리의 적일까, 친구일까? 첨단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우리는 이런 식의 이분법 잣대를 들이대며 ‘그 정체가 무엇인지’ 묻곤 한다. 첨단 기술의 불확실성이 누군가에게는 공포감을, 누군가에게는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첨단 기술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것은 공포감도 기대감도 아닌, 철저하게 종합적인 현실감각이다. 첨단 기술에 대한 무한 긍정 또는 무한 부정을 넘어서서 제3의 길을 모색해야 하는 까닭이 여기 있다. --- p. 131 ‘모든 사람을 친구로 만들 수는 없더라도 적으로는 만들지 말자.’ 바이러스와 살아갈 수밖에 없는 세상이다. 바이러스를 적으로 여겨 끝까지 퇴치하기 위해 노력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바이러스는 지금껏 우리와 같이 살아왔고, 앞으로도 어떤 형태로든 우리에게 찾아올 것이다. 친구가 될 수도, 완전히 물리칠 수도 없으니, 피해를 최소화하는 정도에서 공존하는 수밖에 없다. --- p. 149 자신의 마음을 돌보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에고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낯설지 않게 되었습니다. 에고가 어떤 것인지, 나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미쳐왔는지를 각자의 방식으로 배우고 분석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죠. 명상이나 불교 공부, 심리학 공부 등 다양한 방법이 있을 거예요. 하지만 이 과정에서 가장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 ‘에고’와 ‘나’를 또 완전히 분리하고 뭐가 더 좋은지 나쁜지 분별하려고 하는 겁니다. 분별심을 없애려다가 새로운 방식의 분별을 만드는 셈입니다. --- p. 173 |
“됐고, 그래서 너는 누구 편인데?”
내 편 아니면 네 편이 되는 극렬 대립 시대 불통과 편견의 벽을 깨트릴 Good and General Questions 세계는 좁아졌고 우리는 가까워졌다. 나의 생각, 너의 일상, 우리 혹은 그들의 행동이 실시간으로 교환되며 전 지구 규모로 확산된다. 소셜미디어를 위시한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로지 덕분이다. 나, 너, 우리 사이의 소통 가능성이 이토록 확장된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과연 우리는 서로를 더 잘 이해하게 되었을까. 아쉽게도 상황은 좋지 않다. 이해보다 편견이, 소통보다 불통이 파다하다. 확장된 소통 가능성은 오히려 독으로 작용하기 일쑤다. 서로를 향한 혐오, 차별, 배제의 언사가 콘텐츠의 탈을 쓴 채 세 불리기나 정쟁의 도구로 쓰인다. 현실의 대립이 온라인 세계로 옮겨 붙어 갈등이 더욱 비화하거나, 온라인상 갈등이 또 다른 현실의 대립을 낳기도 한다. 내 편이 아니라면 네 편과 다름없다는 사고방식이 사회 곳곳에 만연하다. 서로 가장 가깝되 또 가장 멀어진 지금, 『매거진 G』 2호는 가장 보편적이고 필요한 질문들에 주목했다. 바로 ‘적’, ‘친구’ 그리고 ‘편 가르기’다. 적과 친구의 차이는 무엇일까. 무엇이 나와 너를 가까워지게 하고, 반대로 멀어지게 할까. 편은 왜, 어떻게 나뉘는가. 네 편과 내 편의 공존은 불가능한 것일까. 고정불변, 당연시되는 네 편 내 편의 경계를 다양한 시선으로 따져 묻고 이해와 소통에 이르는 길을 가늠한다. 역사와 심리, 문명과 자연, 기술과 생명, 과학과 영성까지 네 편 내 편의 실재와 가상을 넘나드는 스무 가지 번뜩이는 통찰 일견 편 가르기는 인간의 숙명이자 세상의 법칙인 듯하다. 프랑스와 영국의 한시적 동맹과 유구한 반목의 역사를 짚고 난 후 역사학자 주경철은 말한다. “프랑스 입장에서 영국은 ‘배신을 밥 먹듯 하는 나라’다. 그러면 반대로 프랑스는 믿어도 되는 나라일까? 영국, 독일, 네덜란드, 스페인 등 주변 국가는 분명 똑같이 험악한 말을 할 게 틀림없다. 근대 국가는 기본적으로 다 그렇게 살아간다.”(19쪽) 우리는 모두 자신의 필요에 따라 이합집산을 반복한다는 것. 식물세밀화가 송은영의 그림을 감상하다 보면 이 사실이 더욱 생생하게 와닿는다. 동일 모계의 서양갯냉이를 한 자리에 심으면 서로 잎의 확장을 제한해 공존의 방법을 찾아내지만, 다른 모계의 서양갯냉이들을 섞어 심으면 뿌리를 옆으로 뻗고 잎의 크기를 키워 서로의 성장을 방해한다(29쪽). 물론 이와 반대되는 사례도 있다. 국어학자 한성우에 따르면 “존재로서의 나는 있을지라도 너나 저가 없다면 ‘나’라는 인칭이나 그것을 나타낼 말이 있을 필요가 없다. 나와 너, 그리고 저가 있기에 우리도 있다. 나, 너, 우리가 본래 편 가르기의 말이지만 공존 속에서만 가능한 말이다.”(47쪽) 언어적으로 본다면 편 가르기보다 공존이 우선한다는 것이다. 시인 문보영 또한 ‘집단 창작’이 주는 경이와 기쁨을 근거로 들면서, 우리가 서로 나뉘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뜨개질처럼 모두 연결되어 있”음을, “여러 사람이 모여 만들어진 존재”(37쪽)임을 힘주어 말한다. 또 한편으로 현실의 ‘편 가르기’ 문제를 한마디로 정의하거나 규정하려 드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일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네 편 내 편’ 문제를 손쉽게 결론내리고 조급하게 행동한다. 그 결과 상황은 더욱더 악화한다. “적의 적은 우리의 친구”로 얼마든 회유할 수 있다는 태도의 안이함을 비판하는 리처드 도킨스(58쪽)와, 어설픈 이해와 포용이 네 편 내 편의 경계를 더욱 고착화할 수 있다고 지적하는 문학평론가 강보원(68쪽)은 바로 이 문제를 짚고 있다. ‘편 가르기는 필요악이며 어쩔 수 없다’는 냉소주의, ‘네 편 내 편의 화합과 공존은 노력하면 얼마든 가능하다’는 낙관주의 둘 다 우리가 거리를 두어야 할 태도다. 표면으로 드러난 결과가 아니라 그 심층의 원인과 다양한 맥락을 두루 조망할 때, 나와 너 그리고 우리의 관계에 대해 더 풍부한 교훈과 해법에 이를 수 있다.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 임상심리학자 허지원은 말한다. “우리의 삶과 관계는 흑과 백도 아니고 성곽 안도 아닌, 이어진 길 위”(27쪽)에 있다. 나와 남 사이의 관계를 섣부르게 결론지으면 당장 나에게조차 이롭지 않다. 그럼에도 우리는 네 편 내 편을 즉시, 이분법적으로 가르는 데 집착한다. “음험한 편 가르기 내러티브 속에 사실 조각을 채워넣는 ‘딥페이크 저널리즘’”(57쪽)이 앞으로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라는 미디어학자 정준희의 진단은 이런 세태를 배경으로 한다. 정보가 실시간 업데이트되고 유통되는 디지털 시대야말로 시간을 들여 다양한 생각과 입장을 교환하고 숙고하는 노력이 필요한 때다. 초고속 편 가르기 세태와 거리를 두는 아날로그 지식교양잡지의 깊이와 감각 이처럼 『매거진 G』 2호는 감정으로만 좌지우지되는 편 가르기 문제를 스무 가지 갈래로 탐구한다. 역사적 사건부터 임상 심리 사례까지, 약육강식의 식물 생태계에서 최신 인공지능 기술 생태계까지, 가장 내밀한 관계인 가족부터 공적 거리 유지가 필요한 직장 동료까지. 적과 친구, 편 가르기에 대한 기존 통념에서 벗어나 네 편 내 편의 경계를 새로운 눈으로 바라본다. 구성과 디자인 면에서도 이분법적 태도와 적극 거리를 두었다. 하나의 주제에 대해 일관된 목소리를 내는 대신, 역사학자, 임상심리학자, 국어학자, 미디어학자, 진화생물학자, 뇌과학자, 사회학자, 과학기술정책학자, 감염내과 전문의 등 분야와 전공이 제각기 다른 필자들의 생각을 모자이크식으로 망라했다. 여기에 주제를 다채로운 방식으로 변주한 에세이들과 식물세밀화, 그래픽노블, 사진에세이, 엽편소설 그리고 책갈피 형식으로 구현한 별지 [요즘것들의 의식주호好락樂]까지. 다른 지면이었다면 한자리에 모으기 쉽지 않았을 생각과 관점이, 때로 친구처럼 어우러지고 적처럼 각을 세우며 잡지 한 편을 입체적으로 구성한다. 직접 손에 쥐고 시간을 들여 한 장 한 장 넘기는 아날로그식 리듬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초고속 편 가르기 세태와 비판적 거리를 두게 된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