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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부르는 이름들 4
마고 11 피의 구간 17 최초의 사랑 20 언니라는 처지 30 몸이라는 대명사 35 아메리칸 드림 42 산책 53 뭍 57 줄연기 65 섬망 72 장례식장 83 철창 85 현성이 93 몬순 101 광물 수집가 109 노인 116 잘못 121 찬란한 127 우리는 숲으로 가요 134 친애하는 당신에게 142 책 속의 전시 병과 악과 귀 1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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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저의 가족을 찍기까지 무척 오래 걸렸습니다. 너무 사랑하지만 가족은 제게 가장 큰 아픔이었고, 할 수만 있다면 감추고 싶은 구석이었습니다. 가족을 찍을 수 없어 풍경을 찍고 친구들을 찍었습니다. 외면하는 일이 스스로를 보호하는 일이라 생각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공허함은 점점 커져갔습니다.”
--- 「처음에 부르는 이름들」 중에서 “엄마 역할을 대신했던 언니, 십 년 만에 돌아온 엄마, 그 둘 사이의 아빠. 그들이 지나간 자리들을 멈추지 않고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시간을 직시하고 그들과 사진으로 대화하면서 저는 오래된 연민을 떨칠 수 있었습니다.” --- 「처음에 부르는 이름들」 중에서 “엄마는 집을 나가면서 대구 지리를 끓여놨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니 맑은 탕 한 솥과 편지 한 통이 엄마를 대신했다. 예고 없이 일어난 일이었는데 나는 예상했던 사람처럼 편지를 펼쳤다.” --- 「피의 구간」 중에서 “마음이 닳을수록 나는 말을 잃었다. 언니는 웃음을 키웠다. 슬픔이 웃음이 되는 것은 많은 오해를 불렀다. 언니의 엷은 웃음에 가족들은 안심하며 엄마의 빈자리를 메울 것을 요구했다. 언니는 무엇이든 척척 해냈다.” --- 「언니라는 처지」 중에서 “미국에서 돌아온 후에도 우리에게 어려움은 정기우편물처럼 잘도 찾아왔지만, 한때 채도 높은 열정을 보낸 시간이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도 큰 마트에 가거나 섬유유연제 냄새가 진하게 풍기면 어린 나로 돌아간 것처럼 신이 나고 가슴이 두근거린다. 아아. 말합니다! 우리의 아메리칸 드림은 실패였다고.” --- 「아메리칸 드림」 중에서 “애초에 사랑이 비정형이라고 누군가 일러줬다면 우리들은 더 나은 작별을 했을지도 모른다.” --- 「몬순」 중에서 “이제는 슬픔을 곁에 두고자 합니다. 그 또한 나라고 말하고 싶어요. 전하고 싶었지만 꿀꺽 삼켰던, 끝내 들키고 싶은 모습을 이 책에 차곡차곡 담았습니다. 저의 시간을 드릴게요. 이 책을 덮으면 당신은 저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된 것이에요. 아린 마음과 함께 우리가 다정한 세계로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친애하는 당신에게」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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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사랑하면서도 가장 증오했던 존재들,
그 찰나를 스친 장면과 이야기들 “이제는 슬픔을 곁에 두고자 합니다. 그 또한 나라고 말하고 싶어요. 아린 마음과 함께 우리가 다정한 세계로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황예지) 황예지는 엄마가 집을 떠났다 돌아온 시간에 대한 글로 이 책의 포문을 연다. 엄마의 부재가 발생한 원인과 엄마가 돌아오기까지의 시간은 황예지가 사진 작업의 방향을 결정한 계기이기에. 증오했던 마음을 도리어 저주하는 방식으로 과거와 화해하려는 그의 서사는 군데군데 응축된 감정을 숨기고 있다. 카메라 렌즈로 투과해 마주했던 장면들은 곳곳에 자리한 글자들을 통해 그 채도가 높아진다. 그의 사진이 습기 가득한 냉정이라면 그의 글은 채도 높은 열정이다. 그는 뭉툭한 흑심으로 서툰 마음을 쓰다가 날렵한 펜촉을 다시 끼워 단련된 시선으로 포착한 것들을 묘사한다. 집을 나간 엄마, 자신을 소유물처럼 여겼던 언니, 실패의 경험으로 점철된 아버지, 가족의 대안이 될 수 없었던 연인, 유일한 위로가 되어준 반려동물들, 끝내 사랑할 수 없는 나 자신 등 불가항력적으로, 혹은 선택적으로 얻어진 관계에 대해 객관적이면서도 뜨겁게 서술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 책은 황예지의 첫 에세이임과 동시에 사진가 황예지의 작업을 한데 만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여성과 사랑에 대한 다층적 해석을 다룬 [마고Mago]로부터 출발해 [절기], 아버지의 빛바랜 필름사진이 실마리가 된 [INEVITABLE], 대안적 가족 형태를 보여준 [뉴 노멀], 자신의 셀프 포트레이트를 뭉그러뜨린 [SWEETY Safety], 책 속의 전시로 따로 소개한 [병과 악과 귀] 등 주요 전시 작품이 총망라돼 있다. 이 사진들을 구심점으로 삼는 황예지의 글은 사진과 사진을 잇는 징검다리다. 우리는 그가 놓은 징검다리 위를 한 발 한 발 디디며 우리의 관계들을 떠올린다. 나와 엄마, 나와 아빠, 나와 자매형제를 생각하며, 또 나보다 앞서 세상을 스치고 생명을 잃은 만나지 못한 피붙이의 존재를 그리워한다. 가족만큼이나 가까웠던 연인과 친구의 자취를 되짚는다. 슬픔이 부끄럽지 않은 세계, 우리만의 ‘다정한 세계’를 꿈꾸자고 말하는 용기 “저는 제게 스친 일이 더 이상 부끄럽지 않습니다. 삶과 치열하게 싸운 저 자신이 자랑스럽기도 합니다.” (―‘처음에 부르는 이름들’에서 (본문 6쪽)) 황예지는 그동안 자신의 사진을 통해 “생의 의지를 회복했다”라고 고백하는 관객들을 거듭 만나면서, 끝내 누군가를 위로하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힌다. 그 열망이 사진가로서의 확고한 사명이 되어갈 때쯤 아이러니하게도 소중한 친구 이도진의 시한부 판정 소식을 전해 듣는다. 도진의 친구들은 ‘아픔’에 대한 이야기 딜리버리 프로젝트 〈앨리바바와 30인의 친구친구〉를 오픈하고, 이 프로젝트에서 황예지는 이 책의 시작이 된 사진 에세이를 연재한다. 병마와 싸우는 친구를 위로하기 위해, 아픔을 공유하려는 동료와 구독자들을 다독이기 위해. 황예지는 사진을 찍는 것만큼이나 홀로 글을 쓰면서 해소하지 못한 감정들과 마주해온 사람. 무엇보다 ‘아픔’이라는 주제를 초상사진으로 표현해온 사람으로서 자신과 가족, 자신을 둘러싼 관계들에 머물렀던 ‘아픔’을 복기한다. “저는 저의 가족을 찍기까지 무척 오래 걸렸습니다. 너무 사랑하지만 가족은 제게 가장 큰 아픔이었고, 할 수만 있다면 감추고 싶은 구석이었습니다. 가족을 찍을 수 없어 풍경을 찍고 친구들을 찍었습니다. 외면하는 일이 스스로를 보호하는 일이라 생각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공허함은 점점 커져갔습니다.” 그는 아름다움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지만 필연적으로 아픔이라는 피사체를 외면할 수 없었음을 고백한다. 사진이라는 매체가 가진 잔인함을 아픔의 근원인 가족들에게 향하게 함으로써 “잔인한 화해”를 이뤄왔음을 털어놓는다. 기묘한 관계 회복은 가족이기에 가능한 걸까.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각자 뿔뿔이 흩어져 지내는 네 사람이 한 가족이라는 사실을 포기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게 된다. 찬란했던 네 식구의 시간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겠지만, 가끔 다함께 숲으로 떠나는 ‘다정한 세계’를 꿈꾼다는 것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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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을 투명하게 갈아 렌즈로 만들고, 흉터를 눈금으로 세상을 재어 이 책이 쓰였다. 매끄러운 부분뿐 아니라 요철이 있는 부분까지 끌어안아야만 얻을 수 있는 밀도에 대해 생각한다. 혈관처럼 얽혀 있는 상처는 어디서부터 나의 것이고 어디서부터 공유되는 것일까? 자신의 근원을 집요하게 짚어보는 황예지 작가의 글과 사진은 페이지를 오래 응시하게 한다. 너무 가까워서 초점이 좀처럼 맞지 않는, 서로를 찌르기도 핥기도 하는 관계들을 어떻게 견뎌야 할지 몰라 울고 싶은 날 읽기를 권한다. 덮고 나면 우연한 모서리에 다치거나 아끼던 누군가를 잃어도 끝내 계속 해나갈 수 있을 거라고, 도무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다정한 세계를 끝없이 향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리라고 조용한 전환에 다다른다.” - 정세랑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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