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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귀의 사랑, 산호- 9p
욕망은 끈적끈적, 정도겸- 59p 나 이제 여자 만날 거야, 정해나- 105p 트렌드 러브 리포트, 윤이나- 153p 그 남자 왜 만나, 실키- 211p 남자에 미쳐서 커리어를 망치지 않는 법, 민지형- 259p 추천의 말- 319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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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리는 낭만적인 사랑의 역사에 투신하고 싶었다.
‘둘이라면 해결할 수 있어. 예컨대 인생의 답하기 어려운 질문들 말이야. 외로움이나 삶의 의미 같은 거. 둘이라면 달라질 거야.’ 그래야만 존재로서 완성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럴듯한 말로 포장하지 말고, 네 안의 남미새를 인정해야 해, 사마리.” “남미새…? 나 남미새냐…? 그래, 그런가….” ---「사마귀의 사랑」중에서 최근 들어 나는 페미니즘이라는 것을 알아버렸다. 한번 깨닫고 나니 이전의 내가 아주 부끄러워졌다. 예전에 내뱉은 말, 취했던 행동, 만들었던 만화에 쏙쏙 박혀있는 대사들까지. 과거를 편집할 수 있다면 그런 부분만 골라서 삭제하고 싶었다. 아주 어렸을 때 페미니즘을 접했더라면 부끄럽게 여길 과거가 적었을 텐데. 내 경우 인생의 한중간에, 그것도 창작자로서 살아가다가 불현듯 깨달았으니 삭제해야 할 흑역사가 아주 많았다. ---「욕망은 끈적끈적」중에서 페미니스트 남자 친구라는 건 내 인생엔 존재할 수 없는 걸까? 외국엔 좀 있어 보이던데…. ……. 왜 꼭 남자 친구여야 하는데? 나… 여자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하하 외로워서 미쳤나.” 왜 안 되는데. ---「나 이제 여자 만날 거야」중에서 MZ 세대의 연애가 어려워진 현실의 바탕에는 경제적인 부담과 감정적 책임을 최소화하기 위해 관계 정의를 미루는 태도가 자리하고 있다고 했다. 특히 남자들이 그런 경향을 보였고, 여자들은 그런 남자들에게 피로감을 느낀다. ‘남자가 연애 전 단계에 머무르려 하거나 가벼운 관계로 성적 또는 정서적 만족감만 취하려 든다면, 그는 이 사회의 가부장제를 공고히 하는 셈이다.’ 지원은 리포트에 그렇게 메모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트렌드 러브 리포트」중에서 “나도 알아. 너무 쪽팔려. 머리로는 아는데 안 해야 하는 거 아는데 너무 많이 배웠는데 충분히 혼자 있을 수도 있는데도 혼자가 싫어. 그게 너무 쪽팔려. 말 안 해줘도 이런 내가 나는 이미 너무 충분히 싫어.” ---「그 남자 왜 만나」중에서 평생 사랑만 받아온 남자라는 게 곁에 서있기만 해도 느껴졌다. 콤플렉스도, 꼬인 데도 없이 솔직하고 투명했다. 잠깐의 대화만으로도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채영의 경멸을 호감으로 바꾸어버렸다. 특별히 타고난 것 없이 늘 전전긍긍하며 살아온 여자로서는 질투심이 솟을 지경이었지만, 그는 미워하기엔 너무 멋진 남자였다. 자신 역시 그에게 끌린다는 걸 도저히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어서 채영은 조금 분했다. 그가 어떤 남자인지, 그에게 반하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다 아는데도. 왜 멋진 남자 앞에선 결국 약해지고 마는 걸까? 왜 하필, 남자 같은 걸 좋아해서. ---「남자에 미쳐서 커리어를 망치지 않는 법」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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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7월, 《뉴욕 타임스 매거진》에는 〈남자를 원한다는 문제The Trouble With Wanting Men〉라는 글이 실려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작가는 남자에 대한 체념에 빠졌으면서도 이성애적 욕망을 버리지 못하는 여자의 모순을 다루면서 ‘이성애 비관주의heterofatalism’라는 용어를 소개했다. 남자와 만나는 일에 질려 버린 여자들의 피로감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이성애 비관주의는 실존하는 현상일지언정 이성애자 여성의 종착지는 아닐 터다. 남성과의 관계로 행복해질 순 없다는 낙담에 머물면 이 세계는 여성 이성애자의 연애 잔혹사가 끝없이 되풀이되는 나락이 될 뿐이다. 궁극적으로는 여성이 원하는 관계 속에서 만족스럽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져야 하고, 그 이전에 이 사회와 남성들의 변화를 이끌어 낼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당장은, 이성애자인 자신을 미워하게 된 여성들의 숨겨진 사연이 수면 위로 나올 필요가 있다. 여성이 안전하고 완전하게 욕망할 수 있는 세상을 향한 첫걸음 〈남자를 원한다는 문제〉의 작가는 ‘그렇다면 우리의 욕망은 어떻게 해야 할까?’라고 묻는다. 갈 곳을 잃은 이성애자로서의 욕구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냐는 물음이다. 《이제 진짜 남자 안 만날 거야》에 참여한 작가들은 완벽한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욕망을 두려워하고 달래 보려 애쓰다가도 욕망에게 주도권을 내주는, ‘탐욕스러운’ 여성들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는 용기를 선보인다. 남성을 원하는 자신에게 깊은 수치심을 느껴 말을 아꼈던 이들의 목소리가 또렷해질수록, 여성이 안전하고 완전하게 욕망해도 괜찮은 세상은 더 가까워질 것이다. 만화 〈사마귀의 사랑〉, 산호 매체와 장르를 막론하고 로맨스투성이인 세상에서 살아온 암컷 사마귀 사마리의 꿈은 운명의 짝과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동족포식 본능이 강해 수컷을 열한 마리나 잡아먹고도 여전히 사랑을 동경하는 사마리는 열두 번째 연애의 한복판에서 흔들린다. 낭만적인 사랑을 칭송하는 세상, 수컷과 암컷의 욕망 사이의 괴리, 알을 낳으라는 압박, 그런 문제를 고민할수록 커져 가는 동족포식 본능이 사마리를 궁지로 몰아넣는다. 《장례식 케이크 전문점 연옥당》, 《그리고 마녀는 숲으로 갔다》에서 현실의 비극을 판타지와 매끄럽게 결합했던 산호 작가는 본작에서 암컷이 수컷을 잡아먹는 것으로 유명한 사마귀를 주인공 삼아 이성애자 여성이 남성을 원하기에 겪는 개인적, 사회적 문제들을 우화로 세련되게 풀어낸다. 소설 〈욕망은 끈적끈적〉, 정도겸 여성향 헤테로 19금 웹툰의 스토리 작가인 나리는 슬럼프에 빠졌다. 최근 알게 된 페미니즘 때문이다. 페미니즘에 비추면 남주인공 세 명 중 누구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아 이야기가 길을 잃은 것이다. 페미니스트로서도 상업 작가로서도 어정쩡한 자신을 한탄하던 나리는 자신이 욕망하는 사랑, 실제로 하고 있는 사랑, 이상적으로 여기는 사랑을 일치시키라는 반협박성 요구를 받고 진정으로 원하는 사랑을 찾아 나서기 시작한다. 정도겸 작가는 ‘모든 순간에 페미니스트이고 싶지만, 그렇게 되지 못하는’ 스스로에 집중해 이 작품을 최대한 솔직하게 썼다고 고백한다. 실제로 즐기는 것과 옳다고 생각하는 것 사이에서 방황하며 적나라하고 비밀스런 욕망과 페미니즘에 입각한 윤리적 판단을 툭 터놓고 이야기하는 주인공이 깊은 공감을 자아낸다. 만화 〈나 이제 여자 만날 거야〉, 정해나 ‘빻은 소리’를 한 남자 친구를 그 자리에서 대차게 차버린 혜진은 한동안 외로움에 시달린다. 페미니스트 남자 친구를 만나기 힘들다는 현실에 씁쓸해하던 어느 날, 문득 여자와 사귀어 보자는 결심이 선다. 레즈비언 데이팅 어플에 과감하게 등록한 혜진의 여성애자 데뷔 시도는 ‘여자 정말 좋다!’와 ‘왜 이렇게 어색하지…?’ 사이를 수시로 넘나든다. 《요나단의 목소리》에서 퀴어 청소년의 마음을 섬세하게 짚어 나갔던 정해나 작가는 앤솔러지의 제목과 짝을 이루는 재치 있는 제목 아래 이성애자 페미니스트의 딜레마를 파고든다. ‘한남’과의 연애에 환멸을 느끼지만 관계가 주는 온기를 갈망하는 여성의 절박한 모색이 세밀하고도 경쾌한 묘사로 가감 없이 그려진다. 소설 〈트렌드 러브 리포트〉, 윤이나 서른여섯 살 지원은 마음이 조급하다. 동기 중에서 가장 먼저 과장으로 승진했지만, 평균 나이에 결혼하지는 못했다. 결혼 생각이 없는데도 만나는 남자마저 없다는 사실이 어째 마음에 걸린다. 마침 인턴의 과제물 ‘MZ세대 트렌드 리포트’를 읽게 된 지원은 리포트를 참고해 동호회에서 남자를 만나 보기로 한다. 지원의 15년 지기 친구이자 기혼자인 설은 지원이 메신저로 전하는 새로운 시도의 과정을 응원하며 지켜본다. 지원이 오랜만에 다시 사랑할 수 있을지, 진심으로 원하는 무언가를 새로운 관계에서 찾을 수 있을지를. 윤이나 작가는 다양한 대중문화 분야에서 활동하며 시대의 흐름을 읽어 온 작가답게 MZ세대의 연애 트렌드를 작품에 고스란히 녹이면서 지극히 현실적인 연애의 민낯을 보여 준다. 한편으로 이성애자 여성의 삶을 지탱하는 존재는 연애 대상만이 아니라고 말하는 이 이야기는, 관계를 책임지지 않으려는 가벼운 욕망에 지친 여성들을 다정하게 위로한다. 만화 〈그 남자 왜 만나〉, 실키 에밀리는 여자에게 왜 남자가 필요한지 끊임없이 고민한다. 연애가 곧 시련임을 알면서도 남자를 원하고 섹스를 원하는 자신이 부끄럽기만 하다. 이성애적 욕구와 페미니스트라는 정체성이 치열하게 대립하는 에밀리의 내면은 대칭성이 두드러지는 캐릭터 디자인과 화면 구성, 회색 없이 흑과 백으로만 이루어진 이미지를 통해 인상적으로 시각화된다. 문제 많은 세상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카툰 에세이들로 수많은 독자의 공감을 얻은 바 있는 실키 작가는 주변 여성들까지 두루 살피는 에밀리의 시선으로 비슷한 고민을 품은 이들을 폭넓게 아우른다. “남자를 왜 만나?”라는 질문을 받은 모든 여성이 “그냥, 그렇게 태어났으니까.”라고 선뜻 답할 수 있는 세상에서는 에밀리의 눈물이 그칠지도 모른다. 소설 〈남자에 미쳐서 커리어를 망치지 않는 법〉, 민지형 최근 가장 핫한 여배우 하리에 대한 대중의 평가는 이렇다. “예쁘고 연기도 잘하는데, 남자에 미쳐서 커리어 망친다.” 하리는 남자 만나는 게 범죄라도 되냐며 웃어넘기지만 매니저 채영의 생각은 다르다. 좋은 건 한때고 소문과 일은 오래가니 순간적인 충동은 절제해야 마땅하다. 오랜 시간 평행선을 달리던 둘의 연애관은 숱한 여성과 얽혔다는 풍문으로 이름난 한 남자의 등장 이후 위태롭고도 매혹적인 방식으로 접점을 찾는다. 《나의 미친 페미니스트 여자친구》로 ‘페미니즘 연애소설’이라는 좁은 영역을 개척해 온 민지형 작가는 이 작품에서 여성의 욕망이 남성의 욕망에 비해 얼마나 폄하되는지, 우리 사회가 욕망하는 여성을 얼마나 억눌러 왔는지를 시원하게 폭로한다. 강렬한 충격을 선사하는 결말은, 남성에 대한 욕망 때문에 긴 세월 자책했지만 그 욕망을 무모하게 드러내는 여성들이 어쩔 수 없이 사랑스럽다는 작가의 말과 맞물려 긴 여운을 남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