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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 한 발은 공중에 띄우고
좋아하는 일에 매일 시간을 쓴다는 것 9 Middle 33 천변을 달리자! 맥주를 마시자! 65 2부 | 한 발은 땅을 딛고 달리는 건 도망이지만 도움이 된다 101 특정 사랑을 향해 133 킵 고잉 163 아직 유효한 핑계 191 |
金衍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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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쑥불쑥 일어나는 슬픈 생각은 내 어깨를 잡아끌지만 나는 계속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렇게 가지들 사이의 작은 하늘을 바라보며 계속 걷는다. 내가 확인하는 건 내게도 작은 하늘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길에도 끝이 있다는 것. 날마다 그 길의 끝까지 갔다가 나는 돌아온다.
---p.13 이 동그라미들은 내가 하루 중 일정 시간을 좋아하는 일에 썼다는 것을 말해 준다. (···) 매일매일의 날씨가 다르듯이 매일매일의 동그라미는 모두 다르지만, 그 동그라미들은 저마다 하나의 완결된 달리기다. ---p.26 살아 있는 한, 수많은 것들이 나를 지나간다. 호수공원을 달릴 때 나는 가만히 있는데 다른 것들이 지나가는 느낌이 드는 것처럼. 환하고 가벼운 봄꽃들, 서로 겹쳐지는 여름 나무들, 산책로에 나무 그림자를 짙게 드리우는 한낮의 햇볕과 바람에 잔물결을 일렁이는 호수와 우는 새와 웃는 새, 노랗고 빨간 단풍과 바람에 쓸려 가는 낙엽들이 모두 지나가는 것처럼. ---pp.30~31 왜 연남동과 홍제천을 달리면서부터 유독 올드팝을 찾아 듣기 시작했을까? 얇은 커튼 하나를 열고 신비로운 세계로, 다른 차원의 우주로 입성하고 싶어서다. 불순물 하나 없이 오직 나라는 사람의 본질만으로 이루어진 세계. 약간은 독특하다고도 할 수 있는 나만의 취향이 가득한 세계, 내가 좋아하는 연필과 메모지와 열쇠고리를 넣어 둔, 처음으로 갖게 된 내 책상 서랍 같은 세계. ---pp.60~61 나는 뒤를 도는 척하면서 한 바퀴, 두 바퀴를 돈다. 갑자기 전속력으로 질주했다가, 갑자기 느릿느릿 달린다. 오늘 달리기에서 페이스라든가 기록은 이미 중요하지 않아졌다. 나는 여름의 한가운데, 인생의 한가운데에 있다. 이 7월의 햇살 안에서 내 마음에 드는 사람,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 될 수 있다. ---p.63 지면을 박차는 느낌, 공중에 떠오른 발을 다시 내려놓는 소리, 이마를 스치는 바람,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천변의 풍경. 땀이 흐르고 얼굴이 타오를 것 같았지만 질질 끌고 다니던 무거운 마음이 조금씩 가벼워지고 있었다. ---p.72 아, 이래서 달리기를 인생이라 하는 건가. 예상치 못한 고난과 역경, 이것을 헤쳐 가야 하는 운명. 어떡하겠어. 달려야지. 뛰면 뛴다. - ---p.85 사람들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기 위해 뛰는 게 아닐 것이다. 인생을 뒤집을 만한 계시를 얻기 위해서도 아닐 것이다. 아주 약하지만 오래가는 불빛 하나를 손에 쥐기 위해, 내가 한 걸 몸이 모르는 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오늘도 내 몸에게 나쁜 것만 주고 살지는 않았다는 감각을 잠깐이라도 얻기 위해 뛰는 것일 테다. ---p.96 달리기가 좋아졌다. 내가 도망치기 위해 달려 왔다는 걸 알게 되고 난 뒤의 일이다. 도망쳐 왔고, 그래도 괜찮으며, 심지어 이 필사의 도망이 내게 도움이 됐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나니 더 잘 달리고 싶어졌다. 오래, 길게 달리고 싶다는 말은 더 멀리 도망치고 싶다는 말이니까. - ---p.127 삶은 대개 불행에 가까운 모양으로 너무 쉽게 깨지곤 하지만, 흩어진 조각을 모아 행복의 모양으로 만들어 내는 건 인간의 일이다. 그리고 내 달리기에 붙은 눈물이 빛을 반사할 수 있도록 이왕이면 햇빛 아래를 달리는 것은 나의 일이다. - ---p.131 낮에 걸으며 보던 많은 건물들, 건물의 간판들, 나무와 불빛과 신마치의 지붕들이 나를 스쳐 지나가며 자기들만의 속도로 뭉개졌지만, 더위와 더위 사이를 지나던 바람과 사랑 한가운데 서 있던 나의 몸, 그것만은 지워지지 않은 채 남았다. ---p.148 러너스 하이. 혼란스러운 풍경 속에서 나 자신이 지워지는 순간, 역설적이게도 나는 달리기 안에, 쓰기 안에, 삶의 상처와 위로 안에 존재할 수 있었다. 무언가를 딛고 선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럴 때 시간 역시 나를 역행해 미래의 나를 붙잡아 둔다. 그날 나는 시간이 지나도 생생히 살아 있는 한 장면 속에 존재할 수 있었다. ---pp.149~150 달리기도 쓰기도 모두 순간의 장르. 잔뜩 부어오른 뜨거운 발로 사랑 위에 서서 사랑 너머를 보게 되는 것 역시 아주 찰나의 일. ---p.153 그들이 남겨 둔 궤적을 읽으며 나는 사랑의 체력과 체력의 한계에 대해, 이곳과 저곳을 오가는 감각에 대해, 지표면과 공중에 한 쪽씩 걸쳐 있는 발에 대해, 낙담과 희망에 대해 배웠다. ---p.161 나의 두 다리로 땅을 디디고 공기를 들이마시면 설악의 정기와 동해의 푸르름이 온몸 가득 들이치는 듯했다. 자동차 없이도 10km 넘는 거리를 내 몸으로 나아간다는 건 신비로운 일이었고, 양발로 바닥을 구르며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도시의 숨결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p.178 나 또한 소설 속 요시야처럼 나도 모르는 사이 이 세계로 떠밀려 왔고, 이루 설명할 수 없는 통증과 함께 길을 헤매고 있었다. 하지만 바다와 태양을 바라보며 계속 몸을 움직이다 보면 어디로든 나아갈 수 있다는 확신이 붉은빛 감도는 해수면의 파도처럼 일렁이며 밀려왔다. ---p.189 트랙에는 처음과 끝이 정해져 있지 않았다. 갑자기 진입해도, 느리게 달려도 괜찮았고, 바닥을 구르거나 굴렁쇠를 굴려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을 것 같았다. 규칙도 지시도 강요도 없었다. 언젠가부터 나는 트랙 위에서만 해방감을 느꼈다. 그게 밤마다 내가 트랙으로 뛰어 들어가는 유일한 이유였다. ---pp.199~200 그럼에도 나는 당장 밖으로 나가 달리지 않기로 마음먹는다. 당장 나가 달리기를 시작하면, 해방감을 맛보고 자유를 느껴야 할 것 같은 기분에 떠밀려 뛰는 것 같으니까. 그건 내게 또 다른 목표를 부여하는 일이니까. 그건 또 다른 형태의 강요니까. ---p.2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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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달릴까?
달리는 작가들이 들려주는 ‘내가 달리는 이유’ 『좋아한다 말하기엔 조금 숨이 차지만』은 달리기가 작가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폭넓게 담아낸다. 이를테면 소설가 김연수에게 달리기란 좋고 나쁨과 관계없이 나의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일이라면, 번역가 노지양에게는 “불순물 하나 없이 오직 나라는 사람의 본질”을 감각하는 시간이다. 작가 윤이나는 달리기를 괴로운 날들에서 벗어나는 “필사의 도망”이라 일컫고, 시인 김연덕은 자신을 진공 상태에 둠으로써 비로소 도약할 용기를 얻는 일이라 말한다. 이처럼 달리기란 저마다의 고유한 세계를 지탱하는 방식으로, 이 책에서는 그 세계들을 1부 ‘한 발은 공중에 띄우고’와 2부 ‘한 발은 땅을 딛고’ 두 갈래로 나누어 펼쳐 보인다. 1부에서 김연수는 30년 넘게 달려 온 베테랑 러너로서, 자신을 비난하지 않고 좋아하는 일, 즉 달리기와 글쓰기에 매일 시간을 쓴다는 것의 의미를 짚는다. 노지양은 주말 아침 홍제천을 달리며 듣는 올드팝 속에서 자유롭고 순수했던 시절의 자신과 다시 만나고, 박은지는 천변을 달린 뒤 마시는 맥주 한 잔의 짜릿함을 유쾌하게 풀어내는 한편, 달린 날들이 쌓이며 자기 자신을 제대로 알아 가는 기쁨을 발견한다. 2부에서 윤이나는 나쁜 기억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시작한 달리기가 끝내 조금 더 괜찮은 오늘을 만들어 주었다고 고백하며, 김연덕은 한여름 밤 아오모리를 달리며 사랑의 열망과 상처를 온몸으로 감각한 경험을 시적으로 옮긴다. 김혜나는 스승을 떠나보낸 뒤 속초를 달리는 나날 속에서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얻는다. 마지막으로 최유안은 경쟁적인 달리기를 내려놓고 멈춰 서기를 택하며, 언젠가 정말로 신나게 뛰고 싶어질 날을 기다리겠다는 핑계로 이 책을 끝맺는다. 이 책은 더 빨라지는 법이나 더 멀리 가는 법을 말해 주진 않지만, 달리기로 나의 세계를 넓혀 가는 일의 기쁨을, 기록이나 속도와 상관없이 묵묵히 하루를 살아 내는 일의 즐거움을 보여 준다. 달리기든 무엇이든, 좋아하는 마음을 오래 지켜 내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통해 자기만의 방식으로 계속해 나갈 힘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러니 계속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를. 그렇게 계속 나아가기를. 좋은 나날이라면 감사하며 그 일을 더 많이 하기를. 나쁜 시절을 지나가고 있대도 멈추지 말기를. 느려도 좋으니 계속 그 일을 하기를. 걷든 달리든 어쨌든 앞으로 나아가는 매일의 달리기처럼.” -「좋아하는 일에 매일 시간을 쓴다는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