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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시 쓰는 47인이 팔레스타인을 위한, 팔레스타인을 향한 ‘응답’으로서 쓴 시집 『응답의 시』가 얼굴들에서 출간되었다. 김혜순 나희덕 김소연 김숨 신해욱 진은영부터 계미현 한영원 이새해 맹재범 이실비 이혜목 해초까지, 오랜 시간 많은 작품을 발표해 온 한국의 대표 시인들부터 등단한 지 몇 해 안 된 시인들, 그리고 문단이라는 테두리만으로 포괄되지 않는 안팎의 시인들까지, 오직 팔레스타인을 위해, 팔레스타인을 향해 쓴 신작 시들을 모았다.
표지에는 하얗고, 꼬리가 긴 연이 그려져 있다. 바로 가자 출신의 팔레스타인 시인이자 학자 리파트 알아리르의 시 「내가 죽어야 한다면」에 나오는 연이다. 이 시에서 화자는 내가 죽어야 한다면 내 살림을 팔아 하얗고 꼬리가 긴 연을 만들어 달라고, 가자의 한 아이가 그 연이 날아오르는 걸 보며 “순간, 사랑을 되살려내는 천사라고 여길 수 있도록” 해달라고 당부한다. 시는 이렇게 끝맺는다. “내가 죽어야 한다면 / 희망을 낳기를 / 이야기로 남기를”(류송 옮김, 『팔레스타인 시선집』). 리파트 알아리르는 2023년 12월,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가족과 함께 사망했다. 그는 생전의 한 영상 인터뷰에서 학자인 자기 집에 있는 무기는 마커펜 정도라서, 이스라엘이 공격해 온다면 마커펜을 던져 끝까지 저항하겠다고 말했다. “이야기로 남은” 리파트 알아리르를 기리며, 이 시집이 팔레스타인 이야기를 한국에 남기는 꼬리 긴 흰 연이 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표지에 담았다. 또 저항과 연대의 증표로서 각자가 지닌 마커펜이 되기를 바라며 시를 엮었다. 책은 검정 빨강 초록 3색의 표지로 제작됐다. 흰 연까지, 팔레스타인의 깃발을 이루는 4색(검정 빨강 흰 초록)이다. 정치이론가 조디 딘에 따르면, 팔레스타인에서 ‘연날리기’는 점령과 봉쇄를 부수는 저항의 한 방식이기도 하다. 2011년 가자 해변에서 1만 5000여 명의 팔레스타인 어린이가 동시에 연을 띄운 일, 2018 귀환 대행진 때 방화용 연을 띄워 가자 장벽 인근의 이스라엘에 타격을 준 일 등,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연날리기를 통해 이스라엘의 방공 체계를 돌파해 왔다. 가자지구 사람들이 연을 띄워 누구의 것도 아닌 하늘을 통해 봉쇄를 뚫었듯, 한국인 중에도 이스라엘의 것이 아닌 바다를 통해 가자지구의 봉쇄를 부수려고 한 이들이 있다. 시집의 마지막 시는 배를 타고 가자지구로 두 번 향했던 항해자 해초의 응답이다. 또 소설가 김숨은 그의 많은 소설 작업이 그러하듯, 팔레스타인 사람 시마 자예드를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눈 뒤, 시마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시를 썼다. 얄따란 연을 하늘에 띄우는 일, 돛단배를 타고 가자로 향하는 일, 팔레스타인을 위한 시를 써서 세상에 내보내는 일은 무력한 게 아니라 강력한, 저항이자 연대가 된다. 모든 시 뒤에는 시인들의 시작 노트가 덧붙여 있다. 김혜순은 세상과 떨어져 혼자 얻어맞고 있는 그 도시를 향해 누군가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말하고 있다는 조그만 사실이 필요하다고 썼다. 나희덕은 보잘것없는 한 편의 시를 무력하지만 간절한 유리병 편지처럼 건넨다고 썼다. 김소연은 학살을 묵인하는 것도, 학살에 기생하는 자본도, 중립도, 당신의 침묵도 학살의 일부라고 썼다. 김숨은 팔레스타인 사람 시마가 들려준 집, 계단, 땅, 하늘, 가족의 이야기로 시를 썼다고 밝혔다. 신해욱은 말의 무력함을 넘어 어떻게 닿을 수 있을지를 고민한, ‘모름’의 여정을 적었다. 진은영은 이 끔찍한 비극에 맞서 연대하지 않는다면 한 곳에서 승인된 폭력이 모든 곳으로 옮겨 갈 거라고 썼다. 송경동은 이 묵인을, 안일함을, 미필적 고의를, 적극적 동참을 당장 멈추라고 썼다. 오은은 무력감 속에 있던 자신을, 사방에서 울리는 작은 종들이 일으켜 세운다고 썼다. 강성은은 팔레스타인에서 그 누구도 가족과 헤어지지 않기를 바란다고, 팔레스타인의 해방을 기원한다고 썼다. 유현아는 목소리가 멀리 퍼져나갈 수 있다고 믿으며 낭독투쟁을 이어가 보겠다고 썼다. 서효인은 이스라엘에 나포된 항해자의 얼굴에 달린 댓글을 보며 시를 쓴 소회를 남겼다. 임경섭은 무기력을 떨치고 함께 행동한다면 아이들의 삶은 조금 나아질지도 모른다고 썼다. 김현은 팔레스타인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팔레스타인을 말하기 위해 어디서든 시를 읽겠다고 썼다. 박소란은 살아 있다는 말, 그 하나의 답장만을 간절히 바란다고 썼다. 지현아는 준 조던과 가자로 향한 리나 알 나불시호와 키리아코스 X호, 윤이형의 『작은마음동호회』를 빌려 시를 썼다고 밝혔다. 송승언은 지금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깨닫지 않은 채 보고 듣는 일이라고 썼다. 임승유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죽이고 있다고 썼다. 김영미는 리파트 알아리르의 연과 우리의 인연이 연결되기를 바란다고 썼다. 임솔아는 완결되지 않는 마음으로 팔레스타인과 함께이고 싶다고 썼다. 안태운은 시를 쓰면서 우리의 시들이 실재가 되기를 기도하는 마음이 되었다고 썼다. 권창섭은 응답하지 않는 것은 언어의 소멸에 동의하는 것이라고 썼다. 한연희는 팔레스타인에 관한 모임에서 들은 할머니 이야기를 떠올리며 시를 썼다고 밝혔다. 희음은 다 볼 수 없어도 끝까지 보고, 다 들을 수 없어도 끝까지 들으며, 리파트 알아리르의 연을 따르고 싶다고 적었다. 윤은성은 저항은 온전한 사랑의 다른 말이라면서 “하비비”라고 말하는 저항의 시를 쓰고 싶었다고 썼다. 배시은은 연약한 방법으로 투쟁하기 위해 희망보다 나은 것을 찾고 싶다고 썼다. 장혜령은 우리가 망각한 자신의 가장 감춰진 얼굴을 거울로 삼아, 응답해 보려 했다고 썼다. 나하늘은 시가 삶 죽음 정치를 배반하거나 혹은 상관없는 방식으로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두려웠다고, 팔레스타인의 목소리가 다시 시를 믿게 해줬다고, 자신의 응답도 시가 되기를 바란다고 썼다. 강상헌은 가자로 향했던 친구를 생각하며 여러 시를 썼다가 지운 끝에 시를 완성했다고 썼다. 박은지는 시는 무엇이든 할 수 있고 해야 한다고, 우리가 각자의 돌을 쌓고 던져야 한다고 썼다. 권누리는 나의 안전을 바라는 것만큼 우리의, 팔레스타인의 안전과 평화를 바란다고 썼다. 정재율은 가자지구의 비극이 우리에게도 일어난다면 우리가 무엇을 감당할 수 있을까 질문했다. 한여진은 죽은 이들과 춤추며, 그들 노래를 배우고 그들 몸짓을 익히며 오래도록 그들을 기억하겠다고 썼다. 김리윤은 시를 쓰는 동안 적어도 이 시 안에서, 시간의 연속성을 오작동하게 두고 싶었다고 했다. 김선오는 시의 여백이 숫자 너머를 상상하는 장소가 될 수 있을지, 어떻게 함부로 애도하지 않으면서 함께할 수 있을지 자문했다. 송정원은 이어 붙인 우리의 목소리가 지구를 한 바퀴 돌아 가자에 도착할 정도로 길어지기를 바랐다. 윤유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저항에 존경을 표하며, 삶의 아주 작은 부분으로나마 그들과 함께 있다고 믿고 있다고 썼다. 장미도는 제주 4.3. 때 불탄 나무와 팔레스타인의 꺼지지 않은 올리브나무에 언어가 있다면, 같은 바람이 불어올 거라고 썼다. 임유영은 시를 쓴 뒤 ‘그래도 여전히 사람의 힘을 믿고 싶다’고 짧게 썼다. 박규현은 지나치게 평화로운 날들이 이상하다고 썼다. 하미나는 커다란 이야기를 매우 개인적인 방식으로 몸 안에 적어넣음으로써 폭력에 대응하고 있다고 썼다. 계미현은 ‘팔레스타인은 해방되리라’는 자신이 믿는 문장으로부터, 황조롱이와의 작은 마주침으로부터 시가 시작되었다고 썼다. 한영원은 팔레스타인을 생각하면서, 한 장소에 남겨진 기억과 상실, 죽음과 그 후에도 계속되는 삶의 흔적에 대해 썼다고 밝혔다. 이새해는 이제 팔레스타인 민중의 얼굴을 볼 것이라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것이라고 썼다. 맹재범은 여전히 집단학살이 일어나고 사람들이 죽고 있다고, 그것이 너무 여전하고 자신도 너무나 여전한 것이 부끄럽다고 썼다. 이실비는 마음속으로 ‘세상’을 불러볼 때면 팔레스타인을 먼저 떠올려보려 한다고 썼다. 이혜목은 연극 〈가자 모놀로그〉와 다큐멘터리 〈팔레스타인을 위한 두 대의 카메라〉를 만든 과정을 시에 담았다고 썼다. 해초는 저기, 악몽보다 참혹한 팔레스타인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그리고 여기, 우리는 가자에 도착하는 꿈을 꾸며 산다고 썼다. 시집을 여는 첫 시, 김혜순의 「미러볼 행성」 마지막 연은 이렇다. “안의 너와 밖의 나, 밖의 너와 안의 나 / 거기의 여기 있고 여기의 거기 있는 너”. 마지막 시 해초의 「여기 그리고 저기」는 이렇게 끝맺는다. “여기 그러니까 가자로”. 모두가 봤으면서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집단학살을 멈추지 못한 지 1050일(2026년 8월 21일 기준)이 지났다. 얼마 전 이스라엘 총리 네타냐후와 국방부 장관 카츠는 가자지구 어린이들이 날리는 연을 F-35 전투기나 레바논 이란 우크라이나 전선에 쓰이는 무장 드론에 빗대며 발포와 학살의 빌미로 삼기 시작했다. 이제 연조차 날릴 수 없게 된 가자지구 아이들을 위해, 누군가 꼬리가 긴 흰 연을 대신 띄워 보내야 하지 않을까. 이 ‘응답’들을 읽고 높이- 멀리- 띄워주기를. “순간, 사랑을 되살려내는 천사라고 여길 수 있도록”. 팔레스타인에 해방을. * 이 책의 판매 수익 일부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후원하는 활동에 기부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