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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수상작
사과 | 박솔뫼 자선작 비둘기 옮기기 수상소감 어떤 날에 작품론 그대로 비워두기 | 황예인 인터뷰 독자들이 머무를 수 있는 소설을 쓰는 일 | 김유태 우수작품상 수상작 하악 | 성혜령 나의 빈 묘에 | 임솔아 영주 | 장희원 그거 점 된다 | 정기현 일일업무 보고서 | 황시운 심사평 제27회 이효석문학상 심사 경위 방금 지나쳐버린, 아주 짧은 ‘우리’였던 순간에 대해: 박솔뫼, 「사과」 | 김미정 피로한 얼굴로 차별과 배제의 정당성을 묻다: 성혜령, 「하악」 | 조해진 무덤 이후의 우리: 임솔아, 「나의 빈 묘에」 | 강동호 검은 얼굴로 눈밭에 서서: 장희원, 「영주」 | 안보윤 ‘왜’를 묻지 않는 이야기의 힘: 정기현, 「그거 점 된다」 | 최가은 과장도 엄살도 없지만 그 자체로 처절한 장애인의 일일업무 보고서: 황시운, 「일일업무 보고서」 | 조해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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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아침 애리는 자신이 오랜 시간 흔들리는 창을 보며 시간을 보내왔음을 알았다. (…) 어딘가로 향하는 감각과 함께 창 너머 공터와 집들과 골목들을 실제로 걷는 일은 왜인지 일어나지 않을 일처럼 느껴지고 언제까지나 좌석에 앉아 멀어지는 사람과 집들과 빨래와 커튼을 보고 있을 것 같다.
---「박솔뫼, 사과」중에서 두 사람은 연인이 되어도 좋을 만한 정신적 육체적 친밀함이 있었지만, 애리의 마음속에는 누가 물어보지도 않았지만 나에게는 잠이라는 갈 곳이 있다고 주장하고 싶어졌고 선호는 점점 애리가 길에 서서 흙이 묻은 감자를 굳이 씹어 먹는 사람이라고 느끼기 시작했다. 길에서 뭔가를 먹을 필요가 있을까. 그게 사과나 귤이라고 해도 이해가 안 되는데 왜 흙이 아직 묻은 감자를 씹어 먹는 걸까. ---「박솔뫼, 사과」중에서 하루 종일 도서관에 앉아 책장과 책장 사이를 오가던 시간에 나는 무언가에 줄곧 마음이 빼앗긴 상태였는데 생각해보면 그때 내가 사로잡혀 있던 것은 지금 읽는 것들을 다른 방식으로 옮기고 싶다는 열망에 가까웠다. 지금의 모든 것을 나를 통과하여 옮기기. ---「박솔뫼, 비둘기 옮기기」중에서 비둘기를 고양이로 옮길 수는 없었지만 그 순간 비둘기는 이전처럼 보이지 않기는 했고 비둘기는 날아가지도 움직이지도 않고 가만히 벤치에 앉아 있었다. 그 후로 나는 비둘기를 이전과 같이 보지 않고 아주 조금 고양이처럼 보게 되었다. ---「박솔뫼, 비둘기 옮기기」중에서 자인이 졸업하기를 기다렸다는 듯, 금옥이 태인을 입주시킬 시설을 알아보기 시작했으니까. 자인이 기꺼이 비용을 분담하리라는 금옥의 믿음 앞에서 자인은 무력했다. 그 믿음이 너무 크고 단단해서 굴복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 언제부터였더라, 그 당연한 마음, 당위를 의심하지 않는 마음이 일종의 압박이고 폭력이 아닐까 의심하기 시작한 건. ---「성혜령, 하악」중에서 남 일이라는 듯 구는 사람들. 자기들은 정상이고 너희들은 비정상이라며 분명하게 선을 긋는 사람들. 이제 자인은 분노하지 않는다. 구분하는 게 편리하다는 걸 자인도 아니까. 실은 자인도 이 시설과 이 마을로부터 분리되고 싶으니까. ---「성혜령, 하악」중에서 죽을 때 딱 이 자리면 좋겠다 싶었다. 고운 모래로 찜질을 하듯 싸늘해진 몸을 뜨거운 모래 속에다 누이는 것이 생의 끝이었으면 했다. 응달조차 따뜻한 곳이 주는 행복감을 마지막으로 누리는 것. 지윤은 조아도 그렇게 따뜻한 곳에 묻어주고 싶었다. 지윤과 윤미가 쉽게 기억할 수 있어 다시 찾아갈 수 있는 곳이면. 조아에겐 그럴 자격이 있었다. ---「임솔아, 나의 빈 묘에」중에서 “이게 내 묘야.” 윤미가 검지로 가리키는 그 사이트 앞에 둘은 나란히 섰다. 윤미는 자신의 묘를 내려다보다 허리를 굽혔다. 윤미의 묘비에 윤미가 손바닥을 가져다 댔다. 얼굴이 되비칠 정도로 매끄럽게 연마된 묘비는 묘하게 안온한 느낌을 주었다. ---「임솔아, 나의 빈 묘에」중에서 “네 옆에서 죽으려고.” 영주는 가까이 다가와 땀으로 번들거리는 내 얼굴에 붙은 머리카락을 천천히, 하나하나 떼어주었다. “그리고 그때.” 영주는 잠깐 입안에 고인 침을 삼켰다. “내가 죽는 순간에, 네가 내 옆에 있었으면 좋겠어.” 처음으로 영주가 웃었다. ---「장희원, 영주」중에서 나는 말을 잃어버렸다. 어쩌면 영원히. 이제 아무것도 쓸 수 없겠다는 예감에 사로잡힌 채 노트북 화면 속 깜박이는 검은 커서만 바라보고 있다. 어쩌면 영주는 이것을 바랐을까. 바로 이것. 이것이 영주의 복수였을까. ---「장희원, 영주」중에서 이러다가는 점들이 온몸을 뒤덮겠어…… 어린이가 되어 운동화를 신고 밖을 걸을 수가 있게 된 희정은 생각하였고 점을 짓이기고 파내고 피 나도록 긁었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점들은 정말 굳건하구나. ---「정기현, 그거 점 된다」중에서 희정이 예측했던 갈고리의 용도가 꼭 들어맞는 순간이었다. (…) 몸 역시 다친 곳 하나 없이 멀끔했다. 점들이 조금 연해진 것도 같았다. 점들아, 너희들…… 자신을 바쳐 내게 용기를 준 것이로구나. 그리고 무엇보다…… 난생처음 느껴보는 이 상쾌함! ---「정기현, 그거 점 된다」중에서 간단한 반찬은 엄마나 활동지원사의 도움을 받아 마련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엄마의 도움은 가능한 한 받고 싶지 않았고, 활동지원사가 끓여준 미역국을 먹어본 뒤 그녀에게는 청소와 신변 보조만을 맡기기로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내가 직접 하는 게 속 편하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고 나중에 치르는 값에는 이자가 붙었다. ---「황시운, 일일업무 보고서」중에서 오늘의 내가 어제의 나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고, 이대로라면 내일의 나 역시 오늘의 나처럼 아무 쓰임이 없을 거라는 사실에 절망할까. 어떤 마음도 갖지 않겠다는 다짐은 얼마나 부질없는가. 오늘만 생각하며 꾸역꾸역 살아가다가 정해진 때에 홀가분하게 통증에서 벗어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는데, 마음은 언제고 마음대로 되지가 않았다. 꾸르륵꾸르륵, 또다시 설사가 밀려 나왔다. ---「황시운, 일일업무 보고서」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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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시간 속 찰나적인
‘우리’에 주목하는 이야기 이효석문학상은 2025년 5월부터 2026년 4월까지 문예지 및 기타 매체에 발표된 중·단편소설을 대상으로 1, 2차 독회를 거쳐 뛰어난 문학성을 보여준 여섯 편을 선정하고, 그중 한 편에 대상, 다섯 편에 우수작품상을 수여해 독자에게 선보인다. 제27회 대상 수상작 박솔뫼의 「사과」는 “거대한 시간 속 ‘찰나적’인 ‘우리’”에 주목하는 작품이다. ‘애리와 선호가 만나고 멀어지는 서사’로 압축할 수 있는 이 이야기는, 흔들리는 창으로 바라본 풍경처럼 각기 다른 속도와 궤적으로 이동하던 두 존재가 잠시 비슷한 방향과 속도로 마주치는 국면을 포착한다. 소설 속 찰나의 ‘우리’가 특별히 반짝이는 것은 붙잡을 수 없기 때문이 아니라, 오직 붙잡을 수 없는 방식으로만 실재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소설은 ‘이별’과 ‘멀어짐’이 필연적인 조건이 되는 비규정적이고 유동하는 세계의 실재감을 생생하게 환기한다. “사과를 감자로 보고자 하는 사람에게 사과가 사과임을 증명하는 일을 하고 싶지는 않”(21쪽)다는 ‘애리’의 말처럼, 소설은 무언가를 설득하거나 증명하기보다 그 순간을 있는 그대로 감각해보기를 독자에게 권한다. 수상작품집에 함께 실린 자선작 「비둘기 옮기기」는 일본의 대표적인 문예지 『신초(新潮)』 2026년 4월호 ‘걷는 풍경(歩く風景)’ 특집에 실린 소설로, 박솔뫼를 비롯해 온유주, 세오 나쓰미 등 동세대 여성 작가 세 명이 각각 부산, 대만, 도쿄와 니가타를 걸으며 마주한 도시의 풍경과 역사에 대한 생각을 글로 풀어내는 기획의 일환으로 쓰인 작품이다. “지금 읽는 것들을 다른 방식으로 옮기고 싶다는 열망”(33쪽)에 사로잡혀 있던 ‘나’는 도쿄와 니가타의 풍경을 거닐며 “옮기는 것과 보고 말하는 것을 조금은 구분할”(55쪽)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는 보고 읽은 것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자신에게로 옮겨져 새로운 의미를 획득하는 창작의 속성을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그 과정은 박솔뫼의 다른 소설이 그러하듯, “일어난 일과 일어나지 않은 일, 말해진 것과 말해지지 않은 것, 여기 있음과 저기 있음을 가리지 않은 채 겹쳐놓으면서, 질서에 길들여진 우리의 독법으로는 좀처럼 가닿기 어려운”(황예인, 작품론) 방식으로 펼쳐진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지우고 ‘우리’라는 반경을 다시 그리는 이야기들 성혜령의 「하악」은 화자 ‘자인’이 마흔 번째 생일을 보내는 하루를 담담하게 기록한 소설이다. 자인은 그날 장애를 가진 동생 ‘태인’과 완벽한 외모의 사촌 동생 ‘서린’을 차례로 마주한다. 소설은 두 사람을 대비시키며, 장애의 유무를 넘어 우리 사회가 타인의 몸을 어떻게 배제하고 분리하는지를 집요하게 보여준다. 작가는 살아남기 위해 선함과 악함을 가를 힘조차 남지 않은 ‘자인’의 피로한 얼굴을 통해, 우리 사회가 지닌 이중성을 빤히 응시하게 한다. 임솔아의 「나의 빈 묘에」는 ‘지윤’과 ‘윤미’가 장마철 습기에 눅눅해진 반려견 ‘조아’의 유골함을 열어본 뒤, 그 안에 담긴 뼛가루를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하다 가족묘에 안장하기로 하는 이야기다. 겉으로는 반려동물의 죽음 이후 남겨진 이들의 애도를 다루는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정작 소설이 사유하는 것은 애도의 자격을 둘러싼 가족의 경계다. 그러므로 ‘빈 묘’는 단순히 죽음을 위한 자리가 아니라, 애도를 매개로 새로운 연대와 가족공동체의 가능성을 열어 보이는 장소가 된다. 장희원의 「영주」는 학교 폭력 피해자 ‘영주’가 과거 자신의 고통을 구경했던 가해자 무리 중 한 명이자 현재는 작가가 된 ‘우진’을 찾아가, 자신의 죽음을 지켜볼 마지막 목격자로 선택하는 이야기다. 과거에는 가해자들이 ‘영주’의 고통받는 신체를 일방적으로 구경했다면, 이제는 그 ‘목격’의 주도권이 영주에게 넘어가면서 두 사람의 위치가 완전히 뒤바뀐다. 문학은 결국 타인의 삶을 이해하려는 일이자, 기꺼이 그 삶에 연루되는 일이다. 그렇다면 한때 타인의 삶을 파괴했던 사람의 문장은 과연 정당화될 수 있을까. 작가는 “말도 글도 소리도 잃어버린 (…) 울음” “소리 없이 벌어진 입, 버둥거리는 몸짓”(안보윤, 심사평)으로 남은 마지막 장면을 통해 그 무거운 질문을 독자에게 건넨다. 정기현의 「그거 점 된다」는 “세상의 우려 섞인 잔소리와 오지랖에 ‘점 되기(최소 인간)’로 맞서는 인간들의 이야기”(최가은, 심사평)다. 벽에 박힌 쇠갈고리로 자신의 ‘거죽’을 반복해 벗기는 두 인물, ‘희정’과 ‘문혜’를 그린 유쾌하고도 섬뜩한 소설이기도 하다. 삶에 미숙해 보이는 이들은 ‘갈고리’라는 수상하고 멋진 비밀을 통해 세상과 내밀한 관계를 맺으며, 실은 누구보다 살아가는 법을 제대로 터득한 ‘꾼’들이다. 그리고 그들만의 요령은 허구를 향한 무지막지한 믿음에서 비롯된다. 어떤 이야기는 그것이 존재해야 할 정당한 이유 때문이 아니라, 이야기를 지속시키는 힘 그 자체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이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기란 어려울 것이다. 황시운의 「일일업무 보고서」는 두 다리가 마비된 재택근무자 ‘세진’의 하루를 한 치의 과장과 엄살 없이 담아낸 소설이다. 사고 직후 중환자실에서 정신이 들 때마다 그녀가 했던 다짐은 “남은 삶에 대해 어떤 마음도 갖지 않고 살아가겠다”(220쪽)는 것이었다. 그 다짐을 지켜내겠다는 듯 ‘세진’은 무의미해 보이는 업무를 성실히 수행하며, 사업을 도와달라는 언니의 성화에도 사고 보상금을 묵묵히 지켜낸다. 먹고 배설하고 일하는 평범한 일상조차 끊임없이 절제하고 최소화해야 하는 ‘세진’의 ‘일일업무 보고서’는 한 인물의 고백이자 삶의 기록이며, 동시에 독자에게 건네는 보고서이기도 하다. 제27회 이효석문학상 대상 수상작 「사과」를 비롯해 이 책에 함께 실린 다섯 편의 우수작품상 수상작은 “‘흔들리는 창’ 너머의 ‘멀어지는’ 풍경과 ‘멈춰 서 있는’ 풍경”을 한눈에 담아내듯 선연하게 펼쳐 보인다. 그리고 “두 개의 풍경이 사실은 동일한 세계에 속해 있음을 알아차리게 될 때”(김미정, 심사평) 우리가 바라보는 세계 역시 조금 더 넓어질 것이다. 소설은, 느슨하고 유동적이지만 그렇기에 반짝이고 소중한 ‘우리’의 순간을 감각해보기를 독자에게 권한다. 방금 지나쳐버린, 아주 짧은 ‘우리’였던 순간에 기꺼이 연루되어보기를 청한다. 개체적 존재 이전에 ‘우리’로서의 관계가 무수하게 선행하고 있음을 이 소설은 아름답게 환기시킨다. 나아가, 이 세계 모든 존재 혹은 차창 바깥의 근경과 원경이 사실은 하나의 세계에 속한 비밀이라고, 그렇기에 흔들리는 열차 안의 우리는 조금은 안심해도 된다고 박솔뫼의 「사과」는 귀띔하고 있는 것 같다. (대상 박솔뫼, 「사과」 심사평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