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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준이와 정목이 영릉에서 7
리처드 브라우티건 스파게티 37 천사가 우리에게 나타날 때 67 극동의 여자 친구들 99 만나게 되면 알게 될 거야 135 아오모리에서 169 스칸디나비아 클럽에서 199 투 오브 어스 227 작가의 말 2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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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목이 아버지가 성큼성큼 앞서 걸었고 정목이 아버지의 뒤를 정목이와 원준이가 나란히 따라 걸었다. 그런데 그 뒤를 따르는 것은? 정목이와 원준이가 정목이 아버지를 따르는 것처럼 정목이와 원준이를 따르는 것이 있었는데. 뒤를 돌아보면 알 수 있겠지만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햇빛과 선명한 파란색의 하늘은 그대로이고 그것은 어느 다른 날의 햇빛과 하늘과 구름과 같다. 그 뒤를 따르는 것은. 어느 날은 뒤를 돌아보았는데 그날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 p.13 「원준이와 정목이 영릉에서」중에서 최초의 리처드 브라우티건 도서관은 도쿄 게이오 플라자 호텔 3층에 있는 로비 갤러리 안에 있었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방 번호와 이름을 남기고 『미국의 송어낚시』를 빌려와 읽었고 체크아웃 시 열쇠와 함께 반납했다. 그러나 누군가는 그 소설을 침대 오른편 램프 옆에 두고 떠났고 누군가는 테이블 위에 두었다. 읽다 잠든 누군가는 바닥에 『미국의 송어낚시』를 떨어뜨렸고 호텔방에서 일어나는 여러 움직임들 숙박객들은 모르는 여러 움직임과 속삭임으로 송어낚시는 침대 아래로 옮겨진다. --- pp.39-40 「리처드 브라우티건 스파게티」중에서 내가 빚은 나와 실제 나는 조금 다르지만 아주 다르지는 않게 흔들거리고 그 움직임 속에서 아니 근데 혼자 술집에 온 사람은 아무래도 좀 별나다고 생각할 것 같은데라고 무난하고 무던한 빚어진 나는 관찰하고 관찰되며 속으로 그런 말을 한다. 그러면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사람은 눈앞의 먹을 것들을 조용히 먹는다. 그 사람이 누구든 먹는 일은 좋아한다. 혹은 먹는 일을 좋아하기에 결국은 한 사람인가. --- pp.74-75 「천사가 우리에게 나타날 때」중에서 친구가 근처에서 일을 해서 오가다 간판을 자주 봤거든요. 저는 발이 꽤 빠른 편인데 뭔가 마음이 급하고 자주 넘어져서 제가 뭔가 잘못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 그런데 동시에 그것이 나의 움직임이라는 생각 그 두 생각을 똑같을 정도의 양으로 자주 했습니다. 어느 쪽이든 좋지만 스스로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고 나면 모든 것이 다르게 느껴질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 p.105 「극동의 여자 친구들」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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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준이와 정목이 영릉에서」
초여름 어느 날, 원준이는 정목이와 함께 정목이 아버지의 트럭을 타고 계곡에 놀러간다. 계곡의 찬란한 색, 차가운 물, 구름과 햇빛에 둘러싸여 놀던 원준이와 정목이는 문득 정목이 아버지가 먼저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두 발로 걸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 손에 잡히지 않는 무언가가 둘의 뒤를 따른다. 「리처드 브라우티건 스파게티」 도쿄 게이오 플라자 호텔 3층 로비 갤러리에는 최초의 리처드 브라우티건 도서관이라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브라우티건을 사랑하던 호텔 직원 T로부터 시작된 이 도서관을 중심으로 호텔을 둘러싼 사람들의 시간이 때때로 교차하며 흘러간다. 「천사가 우리에게 나타날 때」 부산으로 여행을 갈 때마다 ‘나’는 국제시장에서 옷을 여러 벌 구입하고는 한다. 한번은 코트를 한 벌 사고는 숙소로 돌아와 옷장에 걸어 두었는데 그렇게 걸린 코트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니 그로부터 이상하게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다. 「극동의 여자 친구들」 중부시장에서 커피 배달 일을 하는 강주는 시장에 있는 한 건물에서 ‘움직임 연구소’라는 간판을 발견하고는 그곳에서 움직임 워크숍을 시작한다. 스스로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게 되면 모든 게 달리 느껴지리라는 기대를 갖고서. 「만나게 되면 알게 될 거야」 기정은 서울에 있을 곳이 없어진 친구 둘에게 집을 내어준 뒤 서원의 집에서 지내게 되었다. 기정을 향한 서원의 마음은 뜨거웠다가 미지근해졌다가 사라지기도 하는데 그렇게 마음이 움직이는 사이 기정을 경유하여 만난 사람들에게도 크고 작은 변화가 일어난다. 「아오모리에서」 ‘나’는 9월의 아오모리에서 많은 이들을 만나며 “우리는 우리가 만날 법한 사람들이 배턴 터치를 해 주었기에 만나게 되었다고” 직감한다. 그러고는 ‘나’는 만났던, 만날 법했던, 곧 만나게 될 사람들에 대한 기록을 시작한다. 「스칸디나비아 클럽에서」 중부시장 움직임 워크숍의 또 다른 멤버 ‘나’는 자신의 움직임에 대해 생각하자 꿈에서 아빠와 함께 팔을 맞대고 걷게 된다. 공교롭게도 그 주에는 작은 아버지의 장례식이 있었다. 중부시장 개장과 작은 아버지의 군입대가 같은 해임을 깨닫게 된 ‘나’는 움직임 연구소 인근에 위치한 미극동공병단을 유심히 들여다본다. 「투 오브 어스」 움직임 워크숍의 또 다른 멤버이자 강주의 움직임 파트너인 애리의 이야기다. 애리는 보드를 타고 춤을 추던 사람이었고 그래서인지 자신의 움직임을 잘 아는 사람처럼 보인다. 워크숍이 끝난 뒤 강주와 극동공병단 근처를 걸으며 알렉스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는 애리. 이제 그 둘은 잘 움직이는 것에 이어 잘 듣는다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골몰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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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든지 갈 수 있다
『영릉에서』에 수록된 소설들은 이곳저곳에서 펼쳐진다. 여주에 위치한 영릉, 사과가 맛있는 일본의 도시 아오모리, 건어물이 유명한 서울 중부시장, 리처드 브라우티건이 묵었던 도쿄의 게이오 플라자 호텔, 크리스마스에 걸어 본 명동성당, 부산에 갈 때마다 들르게 되는 옷 가게. 이토록 다양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소설집의 작가답게, 박솔뫼는 “책에는 이곳저곳이 나오는데 어디를 가 보면 좋을까.”라는 말로 ‘작가의 말’을 시작한다. 책을 펼치기 전, 이 문장은 앞으로 씩씩하게 걸어 나가 서로 다른 곳에 서 있는 인물들 모두에게 기꺼운 인사를 건넬 수 있도록 그 준비를 돕는다. 책을 다 읽고 난 뒤, 이 문장을 다시 마주하게 되면 우리는 우리의 걸음이 앞으로만 나가게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우리는 『영릉에서』와 함께 어디로든, 어떻게든 움직일 수 있다. 내가 움직이는 방식으로부터 세계는 말할 수 없이 복잡하지만 우리는 소설을 경유하여 세계를 단숨에 재편할 수도 있다. 소설집 『영릉에서』에는 ‘움직임’ 연작으로 묶어 읽을 수 있는 단편소설 세 편이 수록되었다. 「극동의 여자 친구들」 「스칸디나비아 클럽에서」 「투 오브 어스」의 화자들은 중부시장을 드나들다 시장 내 건물에 위치한 ‘움직임 연구소’ 간판을 마주치고는 그리로 향한다. 움직임 연구소의 워크숍에서 인물들은 자신이 움직이는 방식에 대해 설명한 뒤 말한 내용을 사람들 앞에서 선보이며 팔과 다리가 작동하는 모양에 관해 새삼스레 인식한다. 그렇게 자신의 움직임을 인지하자 공원에서 보드를 타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도 그들의 동작을 운동이나 놀이라 칭하는 대신 ‘움직임’이라 일컫게 되고, 그러자 “너무 세상 모든 것이 움직임 같”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이 말은 곧, 움직임을 의식적으로 알아차리려고 드는 순간, “세상 모든 것”이 인지 영역 안으로 들어온다고 바꾸어 이야기해 볼 수도 있다. 각각 다른 곳에서 벌어지는 중부시장 안팎 사람들의 움직임, 시장 내 움직임 연구소 워크숍에서의 움직임, 지금은 부지로만 남아 있는 미극동공병단에 존재하였을 움직임 들은 내가 움직이는 방식으로부터 하나의 자연스러운 흐름 안에 놓인다. 넘실대는 기미들 움직임은 보다 면밀한 차원까지 확장될 수 있다. 나의 팔과 다리가 작동하는 방식을 움직임이라 할 수 있다면, 눈과 코에서 흐르는 눈물과 콧물도 움직임이라 할 수 있을 테고, 눈으로 식별이 어려운 빛, 시선, 시간, 변해 가는 마음, 이야기의 흐름 역시 움직임이다. 「원준이와 정목이 영릉에서」에서는 계곡으로 난 길을 걷는 정목이의 뒤를 자꾸만 무언가가 따르고 있음이 암시되는데, 이 움직임의 정체에 대해 골몰하면서 우리는 그것을 한낮의 빛이라고도, 초여름 볕에 말라 가는 물기라고도, 미래로부터 온 호기심 가득한 시선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만나게 되면 알게 될 거야」에서는 기정을 향한 서원의 마음이 몇 차례의 변화를 겪는다. 언뜻 갑작스러워 보이는 변화의 이유를 짐작해 보면서 우리는 마음이 움직이는 길을 지도로 그려 볼 수도 있다. 소설집 『영릉에서』에는 이런 기미들이 온통 넘실댄다. 수상하고도 간지러운 기미를 붙잡아 인물들이 그러하듯 오래 들여다보자. 마침내 정체를 드러낸 움직임을 따라 이곳을 벗어나 한참 거닐다 보면 뜻밖의 장소에서 눈을 뜨게 될 것이다. 작가의 말 책에는 이곳저곳이 나오는데 어디를 가 보면 좋을까. 누구에게는 을지로가 가까울 것이고 아오모리가 가까운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우선 나는 영릉에 가고 싶다. 영릉은 몇 년 전 한 번 가 본 것이 다이다. 그런데 영릉을 떠올리면 늘 다시 그곳에 있고 싶어진다. (……) 다시 가 보면 그때는 같으면서도 다른 영릉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다르면서도 그대로인 영릉도 있을 것이다. 영릉에 가야지. - 작가의 말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