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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까지 바라는 건 욕심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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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강보라 우리의 투어 _007
#잡지기자 #임금 체불 #법의 사각지대 #프리랜서 현실

권석 방송 사고 경위서 _055
#예능 PD #생방송 사고 #시청률 경쟁 #배신

김하율 이모라는 직업 _087
#웨딩 헬퍼 #돌봄 선생님 #투잡 #투명 인간화

박연준 경희와 경희 아닌 것 _119
#하청의 하청 #직업 정신 #모녀 관계 #진짜와 가짜

성혜령 퇴직금 돌려받기 _147
#정규직의 함정 #퇴직금 반환 #현직자와 퇴사자 #거짓말

정선임 꾸밈없이 진심으로 _181
#기간제교사 #임시직 #철새와 텃새 #취미와 직업 사이

함윤이 대타 세우기 _217
#자전거 퀵 #쌍둥이 #위협 운전 #배척당하는 현실

이태승 빈칸 채우기 _257
#공무원 #승진 심사 #가짜 서명 #명분과 이해관계

기획의 말을 대신하여 _297

저자 소개8

202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티니안에서」가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2023년 이효석문학상 우수작품상, 2025년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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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예능 PD. 〈무한도전〉 〈놀러와〉를 만들고 〈아빠! 어디 가?〉 〈진짜 사나이〉를 기획했다. 장편소설 『스피드』 『리무진의 여름』 『코미디의 영광』, 산문집 『아이디어는 엉덩이에서 나온다』가 있다. 2022년 넥서스경장편작가상 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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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실천문학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어쩌다 가족』, 장편소설 『나를 구독해줘』 『이 별이 마음에 들어』 『어쩌다 노산』 등이 있다. 2023년 수림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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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蓮浚

파주에 살며 시와 산문을 쓴다. 시, 사랑, 발레, 건강한 ‘여자 어른’이 되는 일에 관심이 많다. 2019년 5월 『아무튼, 비건』을 읽은 후 비건을 지향하는 인간이 되었다. 일단 시작하면 꾸준히 한다. 사랑하면 믿는다. 분방하고 충동적이지만 (이상하게도) 수련과 수양을 좋아하는 타입이다. 무지몽매해서 늘 실연에 실패한다. 무언가를 사랑해서 까맣게 타는 것이 좋다. 1980년 서울에서 태어나 동덕여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2004년 중앙신인문학상에 시 「얼음을 주세요」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시집 『속눈썹이 지르는 비명』, 『아버지는 나를 처제, 하고 불렀다』, 『베누스
파주에 살며 시와 산문을 쓴다. 시, 사랑, 발레, 건강한 ‘여자 어른’이 되는 일에 관심이 많다. 2019년 5월 『아무튼, 비건』을 읽은 후 비건을 지향하는 인간이 되었다. 일단 시작하면 꾸준히 한다. 사랑하면 믿는다. 분방하고 충동적이지만 (이상하게도) 수련과 수양을 좋아하는 타입이다. 무지몽매해서 늘 실연에 실패한다. 무언가를 사랑해서 까맣게 타는 것이 좋다.

1980년 서울에서 태어나 동덕여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2004년 중앙신인문학상에 시 「얼음을 주세요」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시집 『속눈썹이 지르는 비명』, 『아버지는 나를 처제, 하고 불렀다』, 『베누스 푸디카』, 『밤, 비, 뱀』과 산문집 『소란』,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 『내 아침인사 대신 읽어보오』, 『밤은 길고, 괴롭습니다』,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 『모월모일』, 동화 『정말인데 모른대요』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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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창비신인소설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버섯 농장』 『산으로 가는 이야기』 등이 있다. 2023년, 2025년 젊은작가상, 2024년, 2026년 이상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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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정읍 출생.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2017년 계간 『아시아』를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근로하는 자세』가 있다. 2016년 심훈문학상, 2021년 평사리문학대상을 수상했고, 2026년 월급사실주의 단편소설 공모에 당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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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에서 태어났다. 2018년 중앙신인문학상 단편소설 부분에 『귓속말』이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첫 소설집 『고양이는 사라지지 않는다』로 2022년 대산창작기금을 받았다. 2023년 단편소설 『요카타』로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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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자개장의 용도』, 장편소설 『정전』이 있다. 2024년 문지문학상, 2025년 문학동네소설상, 이효석문학상 우수작품상, 2026년 이상문학상 우수상, 2023년, 2026년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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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5월 01일
쪽수, 무게, 크기
304쪽 | 133*200*30mm
ISBN13
9791141603243

책 속으로

잘못한 사람은 따로 있는데 어째서 피해를 입은 이들이 내게 양해를 구하는 걸까. 나는 피우다 만 담배를 쓰레기통에 처박았다. 적은 그토록 분명한데 왜 나는 이들에게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게 되는 걸까……
---강보라, 「우리의 투어」 중에서

탄은 실버 라이닝의 글에 위로받던 때를 떠올렸다. 응원 한마디에 숨이 트이고 사포닌 음료를 마신 것처럼 힘을 얻던 순간들. 그렇다면 지금 이 여자가 끝까지 바늘을 놓지 않는 건 자신이 떠난 뒤에도 여전히 남아 있을 누군가를 향한, 언젠가는 주인공으로 무대에 꼭 한 번 서고자 하는 꿈을 향한, 말 대신 손끝으로 전하는 응원이 아닐까. 안타까운 느낌과 동시에 탄의 얼굴이 홧홧하게 달아올랐다.
---권석, 「방송 사고 경위서」 중에서

당신은 왜 항상 검은 옷만 입습니까?
그러면 마샤는 이렇게 대답한다.
이건 내 인생의 상복이에요. 난 너무나 불행하거든요.
정혜씨는 종종 생각했다. 연극의 주인공 니나가 아닌 짝사랑만 하는 주변인 마샤가 되었을 때, 그때 내 인생은 정해진 게 아닐까. 지하철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쏟아져내렸다. 그녀는 떠밀리듯 밖으로 나왔다.
---김하율, 「이모라는 직업」 중에서

경희는 고미숙에게 지겹도록 들어온 이야기에 반발심이 생겼다. 작은 회사라도 너를 써주는 데가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한다. 월급을 따박따박 받는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이냐. 무서운 거다, 고정적으로 돈이 들어온다는 거. 무조건 성실히 일하고 윗사람에게 잘 보이거라. 고미숙의 모든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특히 ‘월급을 따박따박 받는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이냐는 말에 가장 화가 났다. 일을 하고 월급을 받는 게 당연한 일이지, 감사한 일인가?
---박연준, 「경희와 경희 아닌 것」 중에서

물론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우리 모두 어느 정도는 잘못되어간다. 받아들여야 하니까. 우리가 삶을 바쳐서 돈을 버는 존재라는 것을.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증오하게 된다. 우리를 남김없이 발라먹으려는 상사를,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일을 너무 잘해서, 일을 너무 못해서, 말을 너무 많이 해서, 말을 너무 안 해서. 이문은 그랬다. 언제나 누군가를 마음속에서 죽이고 있었다. 상사든, 동료든, 후배든, 선배든, 누군가는 항상 죽여야 했다. 그들은 이문을 위해 죽어 마땅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러니 안 망가질 수 있나, 사람이.
---성혜령, 「퇴직금 돌려받기」 중에서

왜 새가 자유의 대명사처럼 쓰이는 걸까요. 왜 날아간다고 해서 새들이 자유롭다고 생각하는 건지. 먹이를 찾아 떠나고 자리잡을 뿐인데, 그저 살기 위해 날고 물속으로 잠수하고 길을 떠나는 건데. 철새에서 텃새가 될 순 있어도 가마우지가 참새처럼 살 수는 없잖아요.
---정선임, 「꾸밈없이 진심으로」 중에서

k는 벽면에 두 줄로 걸어둔 설리 스팀롤러와 치넬리 매시워크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무리 많은 이동 수단이 등장한다 한들 자전거를 뛰어넘을 만큼 아름답고 건강한 탈것은 없을 거라고. 오로지 몸에 의해, 몸을 통해서만 움직이며 그 무엇도 오염시키지 않는 이 눈부신 장치. 현재 한국에는 자전거 메신저가 없다시피 하지만 이 직업만의 멋과 미학이 알려지면 스케이트 보더들의 공동체처럼 메신저들의 공동체도 자리잡을 수 있으리라고도 했다.
이제 새 세대가 올 거야. 이 일은 더 주목받을 거고.
---함윤이, 「대타 세우기」 중에서

서서히 피로가 몰려왔다.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뜨자, 아크릴판 너머가 매직아이처럼 일그러져 보였다. 원근감이 무너지고 공간의 경계가 흐려졌다. 어느 쪽이 접견자의 자리이고, 어느 쪽이 수용자의 공간인지 헷갈렸다. 맞은편에 오늘 만난 사람들 중 누가 앉아 있대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갇혀 있는 건 어쩌면 나 자신이 아닐까. 어디선가 환청 같은 목소리가 들렸다. “내 잘못이 아니야.”

--- 이태승, 「빈칸 채우기」중에서

출판사 리뷰

강보라, 「우리의 투어」

공연 잡지 기자인 ‘나’는 재정난을 이유로 밀린 월급과 퇴직금을 받지 못한 채 권고사직을 당했다. 받지 못한 돈은 무려 이천오백만원 남짓. 그런데 휴간을 공표했던 잡지사가 어느 날 갑자기 복간을 선언하면서, 해고당했던 직원들이 모두 복직되고 ‘나’만 회사 바깥에 남았다. 체불임금이라도 받아내기 위해 찾은 노무법인 사무소에선 승무원에 버금가는 불편한 옷차림을 한 노무사 ‘송엄지’가 끼니도 거른 채로 ‘나’를 맞는다. 그에 외근을 밥 먹듯 하면서 제대로 된 밥 한끼 먹지 못했던 과거가 떠오르지만, 사색에 빠져들 여유는 없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꼈던 후배가 ‘나’의 자리를 꿰차 ‘나’를 지워내고 있다. 생활도, 동료도 빼앗고 득달같이 ‘나’를 내치려 드는 회사에 맞서 자신을 지키기 위한 기나긴 싸움이 시작된다.

잡지 복간. 경영 정상화. 벌처럼 날아든 단어들이 머릿속을 붕붕 맴돌았다. 봉선영이 직원들에게 일방적으로 권고사직 통보를 내린 게 불과 열흘 전이었다. 경영난으로 인한 무기한 휴간. 한 해를 갈무리하는 송년호 마감을 끝내고 모두가 한고비 넘긴 심정으로 신년호를 준비하던 중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렇게 한바탕 회사를 뒤집어놓고 이제 와서 복간이라니. 복직 제안이라니.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 저항하는 사람은 없었다. 잠시 후 직원들의 통장에 밀린 석 달 치 월급의 절반이 입금되었으니까. 딱 한 사람, 나, 정다정만 빼고.(17~19쪽)

권석, 「방송 사고 경위서」

금요일 밤 시청률 1위, 굴지의 토크쇼인 〈우정우 쇼〉 라이브 도중 게스트로 출연한 록밴드 ‘번아웃’이 카메라를 빼앗고 욕설을 내뱉는 방송 사고를 일으켰다. 담당 PD인 ‘탄’은 경위서 제출을 앞두고 사건의 배후에 있는 생계형 개그맨 ‘남궁현’을 떠올린다. 연출팀의 커피 취향을 꿰고 있고 일 없이도 얼굴 도장을 찍으러 매일 방송국에 출근하는, 언제든 불시에 불려 나오는 ‘땜빵 전문 연예인’. 유명 밴드 번아웃을 섭외할 수 있었던 건 마당발인 궁현 덕분이었다. 함께 출연시켜주겠다는 조건이었지만 궁현은 출연진에서 제외되었고, 다음날 방송 역사에 두고두고 남을 역대급 사고가 발생했다. 끝까지 진실을 외면한 채 사건을 무마해버릴 것인가. 탄은 개운치 않은 느낌에 사로잡힌다.

알게 되면 더 복잡해지는 구질구질한 사연은 사절이었다. 뭐든 적당히가 좋았다. 적당히 보여줄 거 보여주고 숨길 거 숨기고. 〈우정우 쇼〉도 그렇게 만들고 싶었다. 서로의 선을 넘지 않으며 적당히 심각하고 적당히 가벼운, 깊이와 의미보다는 안전하고 무난한 일상, 소소한 루틴과 작은 즐거움을 보여주고 싶었다.

(……)

“궁현아, 다음에 꼭 출연시켜줄게. 약속할게.”

벤치에 주저앉은 궁현이 고개를 저었다. 믿지 못하겠다는 투였다. 탄도 믿지 못했다. 지키지 못할 약속을 또 했다고 생각했다.(70~71쪽)

김하율, 「이모라는 직업」

웨딩 헬퍼로 일하는 ‘정혜’의 하루는 고난의 연속이다. 성격과 취향을 알 턱이 없는 신부를 한눈에 파악하고, 긴장한 몸에 드레스를 입힌 뒤 예식장까지 인도해 무사히 식을 마치도록 돕는 게 정혜의 역할이다. 주중에는 어린아이를 돌보는 시터로 일하면서까지 밥벌이에 힘써왔지만 나이가 들며 드레스 숍에서 3번이던 서열은 6번까지 밀렸다. 어느 주말, 여느 때처럼 식장을 찾은 정혜를 향해 평일에 돌보는 아이 ‘유나’가 달려온다. 사건은 순식간에 벌어진다. 유나가 신부의 베일을 잡아당긴 것이다. 식전에 가까스로 수습했지만, 진짜 수습해야 할 현실은 따로 있다. 숍으로 돌아온 정혜에게 1번이자 매니저인 지선이 묻는다. “언니, 7번으로 내려가고 싶어?”

검은 차창에 얼굴이 비쳤다. 검은 옷을 입고 검은 가방을 멘, 피로감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누가 보면 장례식에 가는 줄 알겠군. 옷장을 열어보면 옷이 죄다 검정색뿐이었다. 검정색 바지, 검정색 블라우스, 검정색 자켓, 검정 양말. 나의 유니폼들. 순백색의 신부 옆에 선 그림자 같은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블랙이어야 한다. 이상하게 가장 진한 색인데도 검은 옷을 입는 순간, 투명해진다. 신부의 뒤에서 베일을 잡고 버진 로드를 걸어도, 신부의 옆에 붙어서 화장을 고치고 있어도 사람들 눈엔 그녀가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그때마다 정혜씨는 투명 인간이 된 느낌이었다.(97~98쪽)

박연준, 「경희와 경희 아닌 것」

작은 광고 회사에 다니는 ‘경희’에게는 마트 정육점에서 장기계약직으로 일해온 엄마 ‘고미숙’이 있다. 정해진 시간보다 두 시간 빨리 출근하고 늘 일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사람. 일을 하고 월급을 받는 당연한 일에 ‘감사해야 한다’고 말하는 엄마와는 달리 경희는 무례한 상사의 막돼먹은 요청과 불합리한 처우를 도저히 감내할 수 없다. 심지어 허름한 차림새를 지적당하고 상사의 명품 가방을 강제로 떠안은 채 미팅에 나서야 했던 날, 경희는 친구 ‘지우’를 만나 자신이 바라는 진짜 삶과 사회로부터 부여된 가짜 모습 간의 간극에 대해 토로한다. 그리고 얼마 후, 그토록 성실했던 엄마가 마트 경영 악화로 인해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경희야, 가방 사. 백 개 사. 그게 뭐 별거라고. 그냥 카드 할부로 긁어.

지우가 목련을 턱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진짜 가지기 어려운 건 저런 거야. 저 주먹만한 목련꽃을 살 수 있겠어? 사서 주머니에 넣고 한 달 두 달 간직할 수 있겠냐고.

막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경희는 생각했다. 무대 위에서 독백하는 배우처럼 속으로 외쳤다. 이것 봐요. 난 당신과 달라요. 이것 봐요, 난 비싼 인간이에요. 당신이 함부로 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요. 난 싸구려 가방은 들지 않아요. 이것 봐요, 난 흔치 않은 존재랍니다. 흔치 않다고요.(142쪽)

성혜령, 「퇴직금 돌려받기」

매출 규모가 무려 백억 대인 번듯한 기업에 합격한 뒤, ‘이문’은 기뻐했던 것도 잠시 사방에 함정이 도사리고 있음을 깨닫는다. 총무부터 회계, 인사를 아우르는 모든 잡다한 일들을 책임지고 총괄해야 했으니까. 게다가 전임자들이 십 년 동안 이백 건이 넘는 퇴직금을 과지급해왔다는 사실을 발견한 직후, 이문은 강렬한 퇴사 욕구를 느끼지만 어렵게 얻은 정규직 자리를 지키고자 수습에 나선다. 퇴사자들에게 연락해 사실상 협박에 가까운 멘트로 퇴직금 회수를 종용하는 와중, 무려 구 년 전에 퇴사한 ‘진해정’씨로부터 답신이 도착한다. 그는 뜻밖에도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다고 청해오고, 곧이어 부러 알고자 하지 않으면 결코 알 수 없는 회사의 불편한 진실이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래서, 제가 오늘 한 생각이 뭐냐면. 여기다. 여기서 뭔가 잘못된 게 틀림없다. 이 직장 이후로 간 곳들에서 사람들과 잘 못 지냈어요. 왜인지 뭔가 불편하고, 위축되고. 그래서, 제가 오늘 일을 열심히 하고 계시던 우리 대리님을 여기까지 왜 불러냈냐면요. (……) 돈 못 드리겠다고요. 잘못 주었든 어쨌든, 저는 그 정도는 받을 권리가 있어요. 벌써 거의 십 년 전 일인데, 그걸 지금 와서 저한테 내놓으라고 하는 것도 참 웃기지 않나요? 무슨 회사가 일을 그렇게 해요?”(171~172쪽)

정선임, 「꾸밈없이 진심으로」

기간제교사인 ‘나’는 겨울방학을 맞아 일 년간 함께한 학생들의 생활기록부를 작성하고 있다. 담임교사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만, 문제는 학교와의 계약이 종료되었다는 데 있다. 돌아갈 곳이 사라진 지금, ‘나’는 절친한 지인 ‘해원’이 머무는 강릉 숙소로 찾아간다. 탐조가인 해원은 낮에 새를 보기 위해 정기적인 일자리를 갖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하다 2월마다 지역을 지정해 한 달 살이를 한다. 그게 진정한 생계유지가 맞는지, 취미가 아닌 직업이라고 불릴 수 있을지 고민하는 한편 ‘나’는 상투적인 문장으로 아이들의 입체적인 면면을 평탄화하기를 계속한다. 그러던 중 활동지에 적힌 한 아이의 욕설을 발견하고, 자신이 그간 밀어냈던 그 아이의 꿈과 해원의 삶을 다시금 들여다본다.

생계유지가 되지 않으면 그건 역시 직업이 아니라 취미 아닐까. 해원이 다른 사람들에게 들었을 말을, 질문을 나도 몇 번이고 해원에게 해왔다. 해원은 그때마다 자기 직업을 이해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언제까지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 있을 것 같으냐는 질문을 바꾼 것이었다. 그건 나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했다. 해원이 그 시간을 얻기 위해 무엇을 포기했는지 알면서도,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그렇게 물었다.(206쪽)

함윤이, 「대타 세우기」

늦은 밤, ‘태성’은 메신저로 일하는 쌍둥이 동생 ‘태주’로부터 대타를 뛰어달라는 연락을 받는다. 국회위원으로부터 값비싼 수석을 건네받아 감정사의 진단을 받은 뒤 도로 배달해달라는 의뢰였다. 자전거 퀵. 한국에선 생소하지만 외국에서는 꽤나 대중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일이다. 다리를 다친 태주의 간곡한 부탁에 몇 달 만에 자전거에 오른 태성은 황홀경을 느낀다. 발밑으로 느껴지는 바퀴의 힘과 그 무엇도 오염시키지 않는, 아름답고 건강한 탈것. 한때 그가 진심으로 사랑했던 것들이었다. 그러나 이내 뒤에서 자동차가 위협적으로 경적을 울리며 다가오고, 태성의 머릿속에 차도 위에서 배제되고 모욕당했던 순간들이 스쳐지나간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태성의 팔다리가 위태롭게 떨려오기 시작한다.

차창이 내려가고 태성과 비슷한 모양의 선글라스를 쓴 남자가 무어라 소리쳤다. 바람소리 때문에 잘 들리지 않았지만 욕설이나 비난임이 분명했다. 차도 위에서 얼쩡거리지 말고 꺼지라는 유의 내용일 터였다. 그것은 태성이 메신저로 일하는 이 년 내내 심심찮게 듣던 소리였다.

그래, 이거지. 태성은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자전거를 좋아했는지 기억했을 때만큼이나 불쑥, 왜 자전거 타는 일을 멀리하게 되었는지 떠올렸다. 바로 이런 일들 때문이었다. 자전거 타는 일의 황홀경이 그의 머릿속을 번쩍 밝혔듯, 그 깨달음은 벼락처럼 내리치고 사위를 환히 비췄다.(243쪽)

이태승, 「빈칸 채우기」

승진 심사를 앞둔 공무원 ‘나’는 갑자기 찾아든 기습 감사로 인해 낙천될 위기에 처한다. 혹여 적발될 수 있는 서류상의 실수를 미연에 발견해내기 위해 자리를 정리하던 ‘나’는 삼 년 전 진행했던 연구용역 자료와 맞닥뜨린다. 그런데 연구에 참여했던 여섯 명의 서명이 전부 누락되어 있다. ‘나’가 지금 그 서류를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한 가지, 빈칸을 전부 채우는 것뿐이다. 서명을 위조하는 건 명백한 범법 행위이기에 ‘나’는 당시 함께했던 연구자들을 직접 한 명씩 찾아가기 시작한다.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사람, 여전히 생계에 발 묶여 동동거리는 사람, 다시는 만날 수 없게 된 사람에 이르기까지, 마치 인생처럼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로드무비가 펼쳐지는 가운데 그토록 간절했던 승진의 의미가 희미해지기 시작한다.

승진하면 뭐가 달라질까. 월급이 꽤 오르긴 할 것이다. 머지않아 우희처럼 팀장 자리로 갈 테고, 김영식 교수가 말했던 유학을 준비할 수도 있었다. 곧 마주하게 될 나의 모습들이었다. 그런데 왜 그것들이 좀처럼 궁금하지 않은 걸까.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설령 알게 된다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으리라는 걸 알았다. 불쑥 경고등 하나가 켜진 듯했다. 또 늦어버렸다고, 미래의 나는 생각할 것이다. 지금의 나처럼.(293쪽)

■ 기획의 말을 대신하여

‘이런 시대에 문학을 왜 읽어야 하느냐’ ‘문학의 힘이 뭐라고 생각하느냐’ 같은 질문을 종종 받는다. 문학계에 한 발 걸친 사람이라면 요즘 다들 비슷한 질문을 받는다. 문학의 힘이 잘 보이지 않으니 나오는 질문이다. 돈의 힘이 뭔지 궁금해하는 사람은 없다.

내 귀에는 궤변처럼 들리는 답이 있다. ‘문학의 힘은 무력함에서 나옵니다’ ‘문학은 힘이 없기 때문에 힘이 있습니다’ 같은 이야기. 공허한 말장난 같다. 나는 문학에 힘이 없는 게 아니라 힘있는 문학이 줄어든 것 아닌가 의심한다.

(……)

아름다운 노래가 재난을 당한 이들에게 위로를 줄 수 있고 그것은 예술의 힘이다. 때로는 찢어지는 비명이 다가오는 재난을 경고할 수 있고 그것 역시 예술의 힘이다. 위로의 노래가 필요한 순간이 있고 사이렌이 필요한 순간도 있다.

지금 새로운 재난이 오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게 뭔지, 거기에 어떤 이름이 붙을지는 잘 모르겠다. 중산층이 무너지고 있다. 몇몇 천재들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나 부동산에 매겨지는 가격은 가파르게 상승하는데 성실한 노동의 가치는 추락한다. 플랫폼과 인공지능이 노동시장을 흔든다. 일에서 의미나 보람을 찾는다는 사람은 드물다. 이런 현상들을 ‘자본가 대 노동계급’이라는 과거의 틀로 파악하고 대처할 수는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나는 저 현상들의 한가운데 있으며 그 현상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원인도 모르고 대책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고통스럽다는 사실을 알고, 그 고통에 대해서는 쓸 수 있다. 후대 작가들은 알 수 없는 것, 동시대 작가의 눈에만 보이는 것도 있다. 스타인벡도 통화 긴축이 대공황을 불러왔다거나 재정지출 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얘기를 소설에 쓴 것은 아니었다. 이런 마음으로 기획안을 쓰고 작가들을 모았다. _장강명, 「기획의 말을 대신하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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